인왕산은 조선의 법궁인 경복궁을 내려다본다고 하여 연산군 9년(1503년)에 그때까지 이 산에 있던 복세암, 금강암, 천향암 등의 사찰과 함께 그 부근의 민가까지도 모두 철거했다. 그해 11월에는 인왕산 입구에 경수소(警守所)를 설치하여 아예 입산금지조치를 취했다. 조선시대 내내 인왕산은 도성안의 내사산 중 하나이면서도 일반 백성들이 가까이 할 수 없는 가깝고도 먼 산이었다.

이런 사정은 근년 군사정권 아래서도 마찬가지였다. 안보상의 이유로 군사정부 내내 출입이 통제되었다가 1993년 문민정부의 출범과 더불어 시민들에게 개방되었다. 지금은 동서남북 할 것 없이 하루에도 수백 명씩의 시민들이 찾아와 등산과 암벽등반을 하면서 망중한을 즐긴다. 이제는 옛 도성의 자취를 내려다보며 영고성쇠 하는 역사의 무상함을 되새기는 시민공원이 되었다.

▲ 북악산 전면개방 기념비. 노무현대통령은 2007년 북악산까지 국민에게 돌려주셨다.

 인왕산 정상에서 성벽을 따라 백악산을 향하여 내려오면 산록 길까지 얼마 남지 않은 지점에서 군부대에 막혀 더 이상 갈 수 없다. 오른쪽 길을 따라 내려오면 포장도로에 닿는다. 이 도로가 북악스카이웨이로 이어지는 인왕산스카이웨이다. 1968년 김신조 일당의 무장간첩이 침투한 이후 전략상 인왕산과 백악산에 낸 군사도로인데, 후에 그 길을 스카이웨이라고 이름 지었다. 그러나 그 길은 인왕산과 백악산을 횡단하면서 엄청난 자연파괴를 하고 경관을 해친 도로가 되었다. 겸재 정선이 1750년경 필운대, 대은암, 청풍계, 청송당, 자하동, 독락당, 취미대, 수성동을 그린 「장동팔경첩(壯洞八景帖)」의 배경은 이 스카이웨이와 군인아파트 때문에 거의 자취를 찾아볼 수 없게 되었다.

▲ 겸재 정선의 필운대(弼雲臺)

 

▲ 겸재 정선의 대은암(大隱岩)

 

▲ 겸재 정선의 청풍계(淸風溪)

 

▲ 겸재 정선의 자하동(紫霞洞)

 

▲ 겸재 정선의 독락정(獨樂亭)

 

▲ 겸재 정선의 취미대(翠微臺)

 

▲ 겸재 정선의 수성동(水聲洞)

글 허창무 주주통신원/ 사진 이동구 에디터

편집 : 박효삼 객원편집위원

허창무 주주통신원  sdm3477@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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