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르포] 김유경 주주통신원

8월 하순에 『고비사막』 일부를 읽었다. 그나마 정독이 아닌 속독이었다. 고대 실크로드의 핵심코스 하서주랑을 훑는 4박5일의 여정에서였다. 하서주랑은 황하의 서쪽에 난 긴 복도 모양으로 무위, 장액, 주천, 돈황 등 하서사군을 품으며 난주에서 1,100㎞로 이어졌다. 쌍봉낙타에 비단을 잔뜩 싣고 지났을 그 길을 버스로 달리며 황하고원의 구릉들 아래 펼쳐진 황토벌판과 마주했다.

강한 햇볕과 적은 강수량, 밤낮의 큰 기온 차와 세찬 바람 등이 합작하여 이룬 황토의 성질은 몽골어로 ‘고비’였다. 고비는 ‘풀이 잘 자라지 않는 거친 땅’을 일컫는데, 하서주랑 전체가 이른바 고비사막이었다. 모래와 자갈, 그리고 초원을 포괄하는 끝 모를 너른 황토 덩어리였다. 현재는 수십 개의 오아시스 도시들을 내장하고 있는 하서주랑을 뒤에서 호위하듯 기련산맥은 달리는 버스와 내내 동행했다. 그러다 서쪽 국경 양관에 이르러 끝자락을 보이며 만년설을 얹어 송환식을 해주었다.

만리장성의 흔적이 하찮은 돌담의 잔해처럼 방치된 것을 차창으로 내다보면서 고대 실크로드에 쏠렸던 관심이 중국의 현재로 옮겨졌다. 긴 시간이 걸렸을 고속도로 건설은 차치하고라도 햇볕 아래 번쩍이며 우뚝 선 송전탑과 풍력발전의 끝 모를 행렬, 그리고 지나치는 오아시스 외곽 허름한 집에 외장처럼 붙인 태양광판 등에 놀라서였다. 삶터로서 악조건인 고비사막을 사람이 살 수 있는 공간에 편입시키는 현대 기술 문명의 도입이 한창인 그곳은 중국이 내딛은 문화를 가늠하게 했다.

문화는 ‘어떻게 살 것인가’의 지향성을 표현하는 유무형의 산물이다. 핵과 매장된 원유를 보유하고, 우주탐사에 자신감을 갖춘 중국이 전력 생산과 공급을 위한 에너지 산업을 다지느라 고비사막의 지형을 바꾸고 있음이 강하게 다가왔다.

고비사막의 변화는 실크로드의 과거사와 무관하지 않다. 당대 최고 1인의 통치 논리가 문화의 지표로 기능한다는 점에서 그렇다. 한무제는 이민족의 정벌을 위해 보낸 장건의 서역 탐사 보고서를 국가의 부강을 위한 지피지기(知彼知己)에 활용해 실크로드를 개척했다. 현재 중국이 한국과 동북공정 논란을, 그리고 일본과는 다오위다오에 얽힌 영유권 분쟁을 진행시키는 자기중심적 역사 해석을 견지함은 새로운 실크로드를 염두에 둔 장기적 포석이다.

패권을 다투는 국제무대에서 역사 왜곡을 자행하는 아전인수가 중국만의 것은 아니지만, 자국에서도 승자의 역사는 뭇 패자를 낳는 진통을 겪게 마련이다. 흉노족을 위시한 유목민족들을 정벌하는 과정에서 생성된 55개 소수민족의 한은 급기야 중국 통치에서 벗어나고파 시끄러워진 최근의 신장 위구르 자치구에서 드러났다.

그 위구르족을 ‘반테러 공안정국’으로 일사분란하게 다스리는 폐쇄성은 과거 만리장성을 축조하는 과정에서 ‘하룻밤에 만리장성을 쌓는다’는 설화 속 민중의 한을 심화시킨 인권 사각지대를 고착시키며 강화되고 있다.

돈황의 불화에도 그렇게 퇴적된 번뇌가 새겨져 있다. 대승불교의 전래를 입증하는 막고굴과 서천불동의 유적은 당대의 병폐에 시달리는 민심을 품어 치유하려는 예술의 창의적 정신지형을 보이는데, 그것이 민심을 회유하는 중국 공산당의 명분에 교묘히 차용된 듯하다.

분노하는 대중을 의식해 정략적이지만 조직의 상부를 숙청하는 극단적 처방으로써 세계의 시선을 집중시켰던 시진핑의 부패척결방식은 다른 국가들에서는 보기 힘든 중국 공산당의 용단이다. 그것은 하서주랑의 여정에 함께한 현지 가이드처럼 많은 국민이 중국 공산당을 다시 응원하도록 이끌었다. 고비사막은 예나 지금이나 실크로드의 영화를 만들려는 욕망에 의해 변화하고 있다.

실세가 주도하는 문화는 여백의 융통성보다는 편의의 규칙성을 추구하기 쉽다. 공산당이 실세인 중국에서 하서주랑의 주된 유적지는 이미 체계 잡힌 관광지였고, 그 운영 방식은 관광객의 시간과 돈을 나름으로 통제했다. 고비사막 지형의 특수성을 십분 살리는 최단의 동선에 전문성을 제고하여 일자리를 늘리면서 문화재 훼손을 막는 관리 방식은, 매표소에서 문화보존 관련 개입이 거의 끝나는 한국에 비해 치밀했다.

막고굴과 서천불동에서 정해진 개수의 동굴만을 개방하면서 해설사가 일일이 자물쇠를 열고 잠그는 일상화된 보존 태도, 막고굴을 방문하기 전에 실감나는 3D 원형극장을 통해 대내외적으로 중국의 정통성을 세뇌(?)시키는 역사의 타당성 제고, 막고굴과 빙구단하경구, 칠채산 등의 외경에 넋이 빠진 관광객을 관광버스나 이동열차를 배치해 시간과 동선을 규제하는 ‘빨리빨리’의 경제성, 윤후명 소설 특유의 비애감의 배경이었던 명사산 체험을 쌍봉낙타를 타고 오른 중턱에서 긴 계단을 걸어 꼭대기에 이르게 해 썰매를 타고 중턱으로 미끄러진 후 다시 쌍봉낙타를 타고 하산할 수 있도록 색다른 놀이감을 연출하며 획일화시킨 인위성 등등은 도식적이기까지 했다.

물론 내가 미처 읽지 못한 다른 지역의 고비사막에는 소설가 이시백이 ‘게르 주막’을 열고플 만큼 반한 몽골 초원에 밴 만만디 방식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현대 기술 문명이 발 빠르게 점령한 하서주랑의 고비사막에는 그 느긋함과 유유자적함이 없다. 도리어 고속도로 벌판에서 운 좋게(?) 마주했던 작업 인부들의 숙소 근처와 그들이 머물던 지역에서 눈살을 찌푸렸던 것은 바람에 휘날리는 두루마리 휴지 조각들 때문이었다. 공터인 사막을 일시적인 배설공간으로 활용한 증거물이었다.

고비사막의 풍경에 개발에 투입된 노동자의 밑 닦은 휴지는 안 보이게끔 최소한의 인권을 보장하는 식으로 기술이 삶의 의미를 지향하는 윤리와 연계되어 변화를 일구기를 바랄 뿐이다. 그래야 명사산의 오아시스 ‘월아천’이 하나 남은 수원을 잃지 않을 것이고, 한반도가 발암물질 가득한 황사에 노출될 일이 드물어질 것이다.

돌아오는 날 아침, 난주역에 닿았다. 중국 최고급 침대차였지만, 4인실의 꾸러미 공간에서 복도의 담배연기를 막지 못한 공기 흡입으로 밤새 녹초가 된 몸이 휘청거렸다. 긴소매가 필요한 선선한 기온을 반가워하며 ‘황하모친상’ 앞에 섰다. 세계 4대 문명의 발원지인 황하는 중국인에게 어머니의 강이었다. 그것을 안온한 엄마 품에 안긴 아가의 모습으로 형상화 해놓았다.

조각상을 찬찬히 살피니 찌뿌듯한 마음에 의외의 선물이 되었다. 아가의 형상을 빚은 주도세력의 세심한 배려 때문이었다. 수십 개 이민족을 의식한 듯 아가의 머리카락은 곱슬곱슬했고, 남녀차별 시비를 차단하느라 성별 확인이 어려운 자세였다. 누구든 제 나름으로 볼 수 있는 중성의 귀여운 아가였다. 의도가 쉽게 드러나는 전략에 배시시 웃음을 흘리면서도 한편 부러웠다.

여정 탓에 잊고 있던 한국의 진구렁 정국이 어슴푸레 떠올랐기 때문이다. 일명 ‘세월호법’이 이런저런 시비로 미뤄진 채 국회에 걸려 있다. ‘황하모친상’에 스민 배려는 공동체의 화합을 추구하는 실세의 고민에 의해 가능했다.

그 고민 과정에서 숱한 ‘나’와 ‘너’가 마주했으리라. ‘나’와 ‘너’의 만남은 ‘우리’의 탄생이다. ‘우리’로 관계맺음은 황폐한 삶터에 살맛나는 오아시스를 마련하는 일이다. ‘우리’를 중시하는 삶은 ‘너’를 배려하며, 따라서 더불어 삶을 위해 ‘어떻게 살 것인가’를 고민하기에 그렇다. 그것은 삶의 의미를 물으며 내딛는 윤리적 삶이다. 삶터에 ‘우리’의 윤리성이 건재하다면, ‘세월호법’ 추진을 막말로 훼손시키는 악의가 횡행하지도, 그리고 그 악의에 휘둘리지도 않을 것이다.

이제라도 공동체를 책임져야 하는 정부가 앞장서서 ‘우리’가 되기 위한 카드를 내밀면 고비사막 같은 정국을 넘어설 수 있을 것이다. ‘황하모친상’의 화합을 닮은 ‘세월호법’이 완결되기를 꿈꾸며 공항으로 걸음을 옮겼다.

 

김유경  newcritic21@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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