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버지가 어떻게 나를 낳아요? 초등생 같은 질문이다. 그 눈은 맑다. 근본에 관한 의문이다.

전통문화연구회에서 만든 앱 <명심보감>에 나오는 네 번째의 ‘효행 편’ 1장은 아래와 같다.

詩曰/ 父兮生我(부혜생아)하시고 母兮鞠我(모혜국아)하시니 /哀哀父母(애애부모)여 生我劬勞(생아구로)삿다 /欲報深恩(욕보심은)인대 昊天罔極(호천망극)이로다

《시경》에 〈이렇게〉말하였다 “아버지 나를 낳으시고 어머니 나를 기르시니, 아아 애달프다 부모님이시여 나를 낳아 기르시느라 애쓰고 수고하셨다. 그 은혜를 갚고자 하나 넓은 하늘처럼 끝이 없어라.”  

위와 같은 번역은 원문에 나오는 생아(生我)를 산아(産我)로 봤음 직하다. ‘아버지 나를 낳으시고’는 과학적으로 가능한가? 은유일지라도 그 은유는 이치에 합당해야 한다. 아버지는 결코 나를 낳지 않으셨으리라. 어머니는 나를 낳으셨다. 눈에 보이는 현실이다. 아버지는 나를 낳게 하신 분이다. 어머니께서 나를 잉태하도록 하신 분이다.

‘밀레니얼 세대 부모를 위한 뉴스레터’ <호락호락>을 발행하는 이민재 편집장이 딸아이를 안고 있다. 이민재씨 제공.  출처: 한겨레, 2021-06-07
‘밀레니얼 세대 부모를 위한 뉴스레터’ <호락호락>을 발행하는 이민재 편집장이 딸아이를 안고 있다. 이민재씨 제공. 출처: 한겨레, 2021-06-07

번역자는 원문의 국아(鞠我)를 ‘나를 기르시니’로 옮겼다. 적절한가? 보통 사람이 ‘나를 기르시니’를 들으면, 아마도 육아(育我)를 연상할 법하다. 育은 낳은 아이를 기르는 일이다(네이버 한자사전). 반면에 鞠은 어머니 몸에 잉태된 태아를 기르는 일로 풀어진다. 파자하면, 鞠(가죽 공 국) = {革 가죽 혁, 匊 움켜 뜰 국}. 형성문자이다. 革은 뜻을, 匊은 소리를 각각 나타낸다. 革은 날가죽을 무두질한 가죽이다. 그렇게 정성 들여 다듬은 가죽으로 만든 둥근 공이 鞠이다. 모가 나게 하기는 쉬워도 둥글게 만들기에는 더 많은 손질이 필요하다. 그런 까닭에 鞠의 뜻은 ‘기르다’, ‘사랑하다’로까지 확장된다. 말하자면, 鞠我는 ‘태아인 나를 둥근 공처럼 배불러 기르시니’로 풀어진다. 동시에 만삭이 가까운 임신부의 모습이 그려진다.

출처 게티이미지뱅크.   출처: 한겨레, 2021-07-19
출처 게티이미지뱅크. 출처: 한겨레, 2021-07-19

원문의 哀哀父母(애애부모)는 번역문에 ‘아아 애달프다 부모님이시여’로 나온다. 감성이 풍부하지 못한 내게는 얼른 뜻이 다가오지 않는다. 왜 시적 화자가 애달파하는지를 잘 모르겠다. 네이버 중국어 사전에서 보니, 哀哀父母는 생전에 부모에게 불효한 것을 후회하고 슬퍼한다는 뜻이다. 관용어이다. 시적 화자의 부모는 이 세상에 안 계신다.

어떤 분은 부모·자식 간의 사랑을 ‘슬픈 사랑’이라 한다. 부모·자식 관계는 서로 떨어짐의 연속이다. 분리의 연속이다. 1차 분리는 출산과 출생이다. 부모님은 나를 낳으시고 나는 태어난다. 갓난아이의 첫 울음은 엄마와 육체적으로 떨어지는 분리에 대한 환호이자 동시에 괴로움이 끝없는 인간 세상 속으로 진입을 신고하는 두려움과 긴장의 표현이리라. 분리는 새로운 만남으로 이어졌다. 2차 분리는 질풍노도와 같은 청소년기에 겪는 부모·자식 간의 개별화(individualization)이다. 부모는 정신적으로 성숙하여 독립해가는 자식이 대견스러우면서도 때로는 빈 둥지 증후군을 앓는다. 과도한 애착은 서로 부담이다. 사는 동안 부모·자식 간 분리와 애착은 교호적으로 빈번히 발생한다. ‘헤쳐 모여’의 반복이다. 3차 분리는 죽음이다. 영원한 이별이다. 떠난 자와 남은 자로 나뉜다. 그 나뉨에는 순서가 없다. 그래선지 말로 다 못 할, 슬프고 슬픈 참척을 당한 분이 도처에 많다. 자식이 먼저 떠나다니, 참으로 슬픈 사랑이다.

원문의 生我劬勞(생아구로)는 번역문에 ‘나를 낳아 기르시느라 애쓰고 수고하셨다’ 로 나온다. 生我는 이미 앞에서 설명했다. 劬勞(구로)는 ‘애쓰고 수고하셨다’이다. 자식(子息)을 낳아 기르는 수고이다(네이버 한자사전). 이러한 풀이로는 부모님이 어떻게 얼마나 애쓰고 수고하셨는지 상상하기 어렵다. 낱글자를 살펴보면 도움이 된다.

인간은 젖먹이 동물로 구분되지만 인류 진화에서 수유의 중요성이 ‘심미적 기능’보다 주목받은 적은 거의 없었다. 모유 수유 선발대회 모습. 한겨레 김정효 기자.   출처: 한겨레21, 2020-06-26
인간은 젖먹이 동물로 구분되지만 인류 진화에서 수유의 중요성이 ‘심미적 기능’보다 주목받은 적은 거의 없었다. 모유 수유 선발대회 모습. 한겨레 김정효 기자. 출처: 한겨레21, 2020-06-26

파자하면, 劬(수고로울 구) = {力 힘 력(힘써 일을 하다), 句 글귀 구}. 형성문자이다. 力은 뜻을, 句는 소리를 각각 나타낸다. 한편 劬는 회의문자로도 볼 만하다. 갑골문에서 句자는 끈으로 말뚝을 휘감았다 하여 ‘굽다’나 ‘휘어지다’라는 뜻으로 쓰였다(네이버 한자사전). 말하자면, 劬는 허리가 굽어 휘어질 정도로 힘써 일하다는 뜻으로 풀어진다. 한편 勞(일할 로) = {力 힘 력(힘써 일을 하다), 炎 불꽃 염, 冖 덮을 멱}. 몇몇 노동자가 염천(炎天; 몹시 더운 날씨)에 일하다 온열질환으로 쓰러졌다는 뉴스가 들린다. 勞자는 ‘매우 열심히 일하거나 과도하게 일하다’나 ‘지치다’라는 뜻을 가진 글자이다(네이버 한자사전). 요컨대, 劬勞(구로)는 ‘허리가 굽어 휘어질 정도로 과도하게 힘써 일하다 지치다’이다. 그 단어에는 力이 두 개나 자리 잡았다.

위와 같은 논의를 종합하여 원문을 새롭게 옮겨보자.

《시경》에서 말하길, “아버님께서 나를 잉태하도록 하시니, 어머님께서 둥근 공처럼 크게 배불러 나를 기르셨네. 슬프게도 살아계실 때 불효한 나를 잉태하여 낳아 살도록 하려고 아버님과 어머님께서는 허리가 몹시 굽어 휘어질 만큼 힘들여 애쓰셨도다. 그 깊은 은혜를 갚고자 해도 그 은혜는 넓은 하늘처럼 끝이 없어라.”

위의 원문과 거의 같은 내용은 사자일구(四字一句)로 이뤄진 <사자소학>(四字小學)에서도 보인다.

아가야, 젖병은 그렇게 무는 것이 아니란다. 그래도 젖병을 좋아해줘서 고마워. 송채경화.  출처: 한겨레21,  2016-02-16
아가야, 젖병은 그렇게 무는 것이 아니란다. 그래도 젖병을 좋아해줘서 고마워. 송채경화. 출처: 한겨레21, 2016-02-16

父生我身 母鞠我身 腹以懷我 (부생아신 모국아신 복이회아)

아버지는 내 태아를 생기게 하시니 어머니는 내 태아를 둥근 공처럼 배불러 기르시고, 배로 나를 품어주셨도다 .

乳以哺我 以衣溫我 以食飽我 (유이포아 이의온아 이식포아)

(어머니는) 젖먹이인 나를 젖으로 먹여 주시고, 옷으로써 나를 따뜻하게 하시고, 먹을 것으로써 나를 배부르게 하셨도다.

전반부는 잉태에서 출산 전까지의 기간에 온 정성을 다하는 아버지와 어머니의 헌신을 보여주고, 후반부는 출산 후에 어머니가 아이를 기르는 정성과 수고로움을 나타냈다.

我身은 ‘내 태아’로 풀어진다. 身은 임신으로 배가 부른 여자를 그린 상형문자이다(네이버 한자사전). 身자의 본래 의미는 ‘임신하다’, ‘(아이를)배다’이다. 身의 음은 娠(아이 밸 신)과 같다. 한편 아체(我體)로 표현하지 않았음에 유의해야 하리. 體는 뼈를 포함한 모든 것이 갖추어진 ‘신체’, 또는 목ㆍ두 손ㆍ두 발 따위 여러 가지가 갖춰진 몸 전체를 뜻한다(네이버 한자사전). 즉, 아체는 ‘내 몸 전체’이다.

父兮生我(부혜생아)는 ‘아버지는 나를 생기도록 하시니’, ‘아버지는 나를 잉태하도록 하시니’, ‘아버지는 나를 낳게 하시니’ 등으로, 母兮鞠我(모혜국아)는 ‘어머니는 둥근 공처럼 크게 배불러 나를 기르셨네’로 풀이하니, 내 간에 맞다.

 

편집 : 형광석 객원편집위원, 양성숙 편집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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