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김미경 주주통신원

며칠 전 한 천주교 사제가 들려준 이야기다.

“지난 주 토요일(9월 20일), 세검정에서 광화문으로 이동하는 버스를 탔습니다. 다리를 다쳐 목발을 짚고 탔는데 다행히 자리가 나서 앉아서 가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등산복을 입고 버스를 탄 60대~70대 노년 몇몇이 모여 이야기를 하던 중 그 중 한 사람이 큰소리로 이런 말을 하는 거였습니다.

'노란 리본 단 사람들은 다 빨갱이야. 광화문에 있는 사람들은 물론이고 노란 리본을 달고 다니는 연놈들도 다 빨갱이야. 총 쏴서 다 죽여야 해'

"마치 노란 세월호 리본을 달고 앉아 있는 나에게 들으란 듯이 말하는 것 같았습니다. 그 말에 상당히 황당했지만 그 말을 한 당사자에게 분노를 느끼지는 않았습니다. 불쌍하다는 생각이 들더군요. 오히려 빨갱이라는, 총으로 쏴 죽여야 한다는… 그런 말을 서슴없이 뱉어도 된다고 용인하고 있는 이 사회에 더 분노를 느꼈습니다. 그래도 예전엔 이 정도로 험악하지는 않았는데 이 사회의 분열이 참 암담합니다."
 

그런데 어제 뉴스를 보니 이들의 발언을 용인하고 부추기는 한 세력이 노골적으로 커밍아웃해버렸다.

바로 새누리당.

새누리당은 24일 탈북자 출신의 정성산 뮤지컬감독 겸 NK문화재단 대표(46)를 새누리당 기획위원에 임명했다. 이 사람은 지난 6일 일베와 그 유사집단들이 세월호 유가족과 시민들의 단식을 조롱하는 뜻으로 벌인 ‘먹거리 집회’에서 자신의 뮤지컬 <평양마리아> 초대 티켓을 뿌리고 치킨과 맥주를 나눠주며 일베들을 독려하기도 했던 인물이라고 한다.

그것뿐이 아니다. 그는 새누리당 기획위원에 임명된 후 자신의 트위터에 “오늘 새누리당 전략기획위원회 위원으로 위촉되었습니다. 좌좀소굴로 변한 대한민국 문화계 종북척결 정책을 많이 반영하도록 노력하겠습니다. 박근혜 대통령님의 문화융성은 문화종북좌좀 척결정신이 바탕이 되어야합니다”라고 했다.

여기서 ‘좌좀’이란 ‘좌익빨갱이좀비’의 줄임말이라 한다. 그가 말한 ‘좌좀‘은 누구일까? “진중권, 조국, 세 번 이혼한 공지영 따위들을 믿고 정치적, 문화 언론, 어젠다를 디자인하는 새민연 박영선이나, 아직도 선전선동으로 대한민국의 전복을 꿈꾸는 황석영, 백낙청 따위들”이라고 했다. 한마디로 ‘증오막말’의 풍년시대다.

증오가 뚝뚝 묻어나오는 그의 막말을 보면서 떠오르는 한 인물이 있다. 바로 국정원 직원 ‘좌익효수.’ ‘좌익효수’는 그 섬뜩한 닉네임 이상 가는 충격적인 막말을 인터넷에 쏟아낸 인간이다. 국정원 댓글 사건의 시작인 국정원 직원 김하영이라고도 한다. 정말 여자가 여자에게 저런 막말을 할 수 있을까?

정신상태가 정상은 아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 정도다. 그래도 대학 교육받은 국정원 직원인데 설마하는 생각은 지워야 할 듯싶다. 일베충에 버금가는 아니 그 이상 가는 ‘특급 일베충’으로 보인다. 맨 아래 캡쳐 사진은 좌익효수’가 남긴 그나마 살기가 덜한 댓글모음이다.

그런데 이 ‘좌익효수’는 박그네 정권의 특급 비호를 받고 있는 듯하다. 우선 국정원은 김하영 씨의 변호사 비용 수천 만원을 예산에서 지원했다. 후에 국정원 직원들의 모금으로 모두 갚았다며 지원한 예산이 없다고 했지만 전 국정원장 남재준은 김하영의 행위가 ‘개인적 일탈 행위’라면서 국가 예산을 빌려 쓰게 한 것이다.

그리고 작년 7월 국정원은 ‘좌익효수’가 국정원 직원이 아니라고 발뺌했다. 이후 검찰은 ‘좌익효수’가 국정원 직원 김하영으로 밝혀졌음에도 조사를 미적거리면서 이행하지 않았다. 여론이 나빠지자 검찰은 ‘좌익효수’를 지난 3월에 소환해서 기소할 방침이라고 했다. 하지만 3개월을 뒤로 미루다 6월에 소환해서 조사했다. 그리고 현재까지 기소하지 않고 있다. 서울중앙지방검찰청 관계자는 9월 12일 “조만간 기소하게 될 것이며 어떤 법을 적용할지 아직 결론을 내리지 못했다”고 말했다 한다.

일베의 폭식행위를 국민의 86.6%가 반대한다는데, 그런 일베를 독려한 인물을 발탁한 새누리당. 일베에 버금가는 활동을 한 국정원 직원 ‘좌익효수’를 미적거리며 봐주고 있는 국정원과 검찰. 국민은 전혀 눈에 들어오지 않는 한 몸통의 이명박그네 정권이다. 결국 이 정권이 일베류의 활동을 용인해주고 심지어 독려해주고 있는 것이다.

그런 정권을 믿고 일부 일베 청년들은 광주의 유가족을 넘어서 세월호 유가족의 아픔을 막말로 조롱하고 그들의 가슴을 후벼 판다. 일부의 50-80대 노인들은 거리낌 없이 ‘빨갱이’소리를 떠들어내고 '총으로 쏴 죽여도 마땅하다고’ 떠들어댄다. 심지어 어제는 ‘서북청년단’을 재건하겠다는 한 극우 단체가 세월호 리본을 자르겠다고 막무가내로 돌진한 사건도 벌어졌다. 4.3 민중학살 하수인 서북청년단을 재건한다니…

자신의 삶과 세상을 돌아보며 느긋하게 관조하는 장노년기의 덕목을 권유하기는커녕, 상식과 예의와 측은지심을 버리고 충동적인 막말과 폭력적 행위를 일삼도록 부추기는 정권. 한창 팔팔한 청년들의 시간을 생산적이고 긍정적이고 공감적인 삶에 투여하도록 권유하기는커녕, 타인을 조롱하고 비난하고 지역을 가르고 약자를 짓밟은 데 사용하도록 권유하는 정권. 그리고 이 정권의 악행을 비호하고 감싸는 쓰레기 언론. 통틀어 이명박그네 정권이 만든 부끄러운 우리 사회의 자화상이다.

정권이 바뀌면 좀 달라질까? 언론이 정신을 차릴까? 길들여진 일베류의 어르신들과 청년들의 생각이 바뀌게 될까? 자본이 정신을 차려 노동의 가치를 깨달을까? 이 더러운 사회가 정화되기 위해선 무엇이 필요할까? 과거 역사를 볼 때 모든 정화에는 깨끗한 ‘피’가 요구되었다.

지금 우린 300명의 순수한 피가 희생되었는데, 또 어디서 무슨 피가 얼마나 더 필요할까? 이제 더 이상의 ‘피’ 는 필요치 않았으면 한다. 어느 정도 끈질긴 기다림의 시간만으로도 정화가 되었으면 막연하고도 순진한 희망을 가져본다. 지치지 말고, 끈 놓지 말고 조금씩이라도 뚜벅뚜벅.

 

김미경  mkyoung60@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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