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좀처럼 잠이 오지 않는다. 자다가도 깬다. 걱정거리가 있어서가 아니다. 설렘 때문이다. 무슨 말이냐고. 한겨레에 몸담은 이래 꿈꿔온 일이 그 결실을 맺고 있다는 이야기다. 시작이 반이니까. 언로의 암흑기에 시민의 목소리 <한겨레>를 잉태한 국민주주들이 오랜 잠에서 깨어나 한겨레와 우리사회에 대한 열정과 사랑을 뿜어내기 시작했다. 

지난 12일 한겨레 주주통신원회 전국위원장이기도 한 이요상 (가칭)종로시민사랑방 창립추진위원장은 <한겨레:온>을 통해 한겨레와 국민주주들, 그리고 시민사회를 연결할 구심점이 되기 위해 ‘(가칭)종로시민사랑방’을 연다고 밝혔다. 한겨레 주주들이 한겨레와 시민사회를 연결하는 메신저로 나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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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의 의지는 한겨레와 시민사회가 유기적으로 결합되어야 비로소 우리 사회를 바꿀 수 있는 힘을 갖게 된다는 메시지를 담고 있다. 난 이 일을 한겨레 창간에 버금가는 큰 시도이자 87년 6.10항쟁에 이어 시민이 주체로 서는, 더 나아가 대항권력의 전략화를 모색하는 의미있는 시도라고 여긴다. 

김대중, 노무현 민주정부 10년은 능력 있는 정치 리더십을 발굴하지 못 했고, 시민의 주체적 역량은 생기지 못했다. 하기야 절대권력에 맞선 프랑스의 부르주아 혁명은 1789년 대혁명, 1848년 2월 혁명을 거쳐야 했고 1946년이 돼서야 겨우 여성참정권이 인정되었다는 사실을 상기하면 우리는 아직 몇 번의 변혁을 더 겪어야 할지도 모르겠다.

잘못된 과거사도 제대로 정리하지 못한 채 10년 민주정권을 돈독 오른 기득권자들에게 넘겨주고 제도권 정치는 더 이상 시민에게 희망을 주지 못 했다. 자연은 경기부양의 재료가 되었고, 아이들은 탐욕사회의 희생양이 되었으며, 정치는 팥 없는 찐빵이 되었고, 언론은 사실을 픽션으로 둔갑시켰다. 밀레니엄 폭죽이 터진지 벌써 16년 지났다. 뉴욕에서, 베이징에서, 베를린에서, 서울 종로에서 새천년 카운트다운을 외친 수백만 군중들은 ‘시민의 시대’를 기원했을까.

▲ 사진: 지난해 5월 10일, 11일 전북 정읍시 송참봉 조선마을 앞마당에서 전국에서 모인 시민들의 신만민공동회가 열렸다.

시민의 권력이란 무엇인가? 독일 사회학자이자 <위험사회>(1986)의 저자인 울리히 벡(Ulrich Beck, 1944-2015)은 정치가 의회나 정부, 정당 차원을 넘어서 이루어지고 있는 글로벌 디지털 사회에서는 일부 엘리트와 조직이 아닌 ‘세계시민’이 변화의 주체임을 말하고 있다. 세계시민의 대항권력의 지향점은 공동체와 개인의 조화, 인류보편가치와 만난다. 의회는 시민에게 신뢰를 주지 못하고 “표만 찍으라!”하니 시민은 체제를 의심한다. 87년에도 그랬다. 의심은 행동을 수반한다는 것이 역사적 교훈이다. 마틴 루터 킹 주니어(1929-1968)는 말했다. ‘억압하는 자가 자발적으로 자유를 허용하는 일은 없다. 억압 받는 자가 끈질기게 요구하지 않으면 안 된다.’ 

헤겔은 자신의 법철학에서 시민을 ‘사적 이익만을 추구하는 불완전한 사회적 존재’로 보았고, 마르크스는 ‘사적 이익을 추구할 생산수단을 소유하는 개인들의 집단(부르주아)’으로 규정했다. 그러면 30~40대 넥타이부대와 대학생들이 주도한 1987년 6월 항쟁 같은 일은 어떻게 설명할 것인가? 그들은 이익이나 선동에 좌우되는 군중이 아니었다. 그들은 대항권력을 내재화한 조용한 다수였다. 

최근 시민이 직접 정치에 뛰어드는 사건들이 있다. 배우 겸 시민운동가인 문성근씨는 ‘시민의 날개’라는 시민 참여 정치플랫폼을 준비중이다. 노무현 전 대통령을 사랑하는 시민들이 모여 협동조합 <바보주막>을 선보여 문화경제적인 활동을 시작했다. 지난해 5월 전북 정읍 황토현에서는 전국 58개 시민사회단체와 활동가들이 동학농민운동의 정신을 계승하여 행동할 것을 결의하는 ‘2015 신(新) 만민공동회’가 처음 열리기도 했다.

2016년이 열리자마자 ‘87년 시민’이 귀환했다. ‘국민행복시대’를 연다던 정권의 독선과 탐욕은 멈출 줄 모르고, 시민을 위한다는 대안정당은 찾아보기 어렵다. 대통령 직선제, 헌법재판소 설치, 국민주 언론 <한겨레>라는 결실을 이룬 이들이 다시 일어선 이유일 것이다. 

이들에게 큰 기대를 건다. 내가 만난 이들은 27년 전과 같은 우리 사회의 정의와 한겨레에 대한 뜨거운 열정과 사랑을 보여주었다. 하지만 그때와 다른 것이 있다. 풍부한 지식과 능력, 여기에 삶의 지혜도 갖췄다. 이들이 한겨레와 시민사회를 연결하는데 앞장서겠단다. 그것이 한겨레도 시민사회도 함께 사는 길이란다. 이제 종로는 세종로, 청계천, 서울광장의 주체적인 시민들의 아지트이자 한겨레와 연결하는 허브가 될 것이다. 

▲ 사진: 서울 성북동 시민사람방에 걸려있는 깃발 

신영복 선생이 15일 별세하셨다. 그는 “역사의 변화는 쉽게 진행되는 것이 아니니 과정 자체를 아름답고 자부심 있게, 즐거운 것으로 만들라”고 조언했다. 3월 초면 문을 여는 종로시민사랑방은 문화공간이자 즐겁게 어울리는 회식공간이란다. 그래 천천히 멀리 보며 함께 걸어가면 좋겠다. 진달래 활짝 핀 3월, 시민의 공간, 대항권력의 산실, 종로시민사랑방에서 만나 막걸리 한잔 하자.

이동구 에디터  donggu@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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