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88년 한겨레 초대 임시주주총회 의장 이돈명 변호사

조선대 총장, 법무법인 덕수 대표변호사, 천주교 인권위원회 이사장, 상지학원 이사장, 민족화해협력범국민협의회 상임의장, 민주헌법쟁취 국민운동본부 공동대표,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모임 고문, 가톨릭 정의평화위원회 회장…. 고 이돈명(1922~2011년)  변호사는 ‘인권 변호사의 대부’이자 한국 민주화운동사 그 자체였다. 

1987년 10월 한겨레신문 창간 발기인으로 참여한 이래 <한겨레>가 무사히 뿌리를 내리는 데도 큰몫을 해주었다. 특히 1988년 9월10일 ‘한겨레신문 지령 100호’를 기념해 열린 첫 임시주주총회에서 의장을 맡았다. 그날 오후 2시30분 서울 정동 유관순기념관에서 열린 임시주총은 3000여명의 주주가 한자리에 모여 그 자체로 장관을 이뤘다.

▲ 사진: 한겨레 자료사진. 1988년 9월 19일 한겨레 첫 임시주주총회가 서울 중구 정동 유관순기념관에서 열렸다.

그런데 이 전례없는 국내 최대 규모 주총을 앞두고 한겨레신문 이사회와 창간위원회(위원장 한승헌)는 누가 의장을 맡아 진행할 것인지 고민했다. 신문사 안에 주총 전문가는 물론, 경험자도 전혀 없었기 때문이다. 나를 포함해 주식관리실 직원 누구도 주총에 참석해 본 적이 없었다. 송건호 대표이사·이돈명 상임이사·한승헌 창간위원장 중에 누가 의장을 할 것인지를 두고 몇 차례 회의를 했다. 최종 결론은 이돈명 변호사가 맡기로 결정이 났다. 그런데 또 다른 문제가 있었다. 앞서 88년 8월12일 교수들의 직선으로 조선대 총장에 선출된 이 변호사는 9월6일 제8대 총장으로 문교부 승인을 받기까지 학내 갈등으로 골치를 앓고 있었다. 

▲ 사진출처: 고 이돈명 변호사. 민주화운동기념사업회

주식관리실로서는 참 난감했다. 바빠서 만나기조차 어려운 분에게 주총 의장을 요청하라니…. 광주의 조선대 총장실로 수차례 전화한 끝에 다행히 허락은 받았다. 하지만 이 변호사 역시 ‘의장으로서 어떻게 사회를 봐야 하느냐’고 되물었다. ‘일단 제가 준비해 놓겠습니다’라고 말씀을 드렸다. 이사회에서는 ‘그 분이 다 알아서 하실 것’이라고 믿고 있었다. 참 책임성 없는 말이었다.

그렇게 결국 모든 주총 준비는 내몫이 됐다. 맨처음 ‘임시주총를 열어야 한다’는 조영호 기획이사의 얘기에, ‘지령 100호를 기념해서 하면 좋겠다’는 의견을 낸 책임이었다. 주총을 한달 정도를 남겨 놓고 매일 상장사협의회도 찾아가보고 방법을 모색해 보았지만 참 아득했다. 어찌됐든 주총 매뉴얼을 만들고 진행 방식을 정리했다. 맞는 건지 틀린 건지 모르지만, 마침 상장사협의회에서 근무했던 후배의 도움으로 ‘비상장회사에서 이렇게 하면 상법상 하자가 없을 것’이란 자문을 받고 밀어부치기로 했다. 

그런데 역시나 이 변호사를 도저히 만날 수가 없었다.  주총 1주일을 앞둔 9월3일 밤,  광주에서 올라오는대로 서울 종로에 있던 이 변호사의 자택에서 만나기로 가까스로 약속을 했다. 주식관리실의 태광훈·이근영 사우와 함께 자택 부근에서 기다렸다. 예정했던 10시가 훨씬 지난 11시30분에야  응접실에서 심야 구수회의를 할 수 있었다.

나는 ‘임시주주총회 회의 진행 매뉴얼’을 보여드리며 설명을 하기 시작했다. “지금부터 한겨레신문 정관 제○장 ○조에 의해 성원이 되었으므로 한겨레신문 임시주주총회 개회를 선언합니다.(의사봉 탕·탕·탕 3번) 의안마다 이렇게 하십시오.” 
그런데 갑자기 이 변호사가 특유의 호탕한 웃음을 터뜨렸다. 기가 막히다는 표정이었다. 순간, 내가 설명을 잘못하고 있는가? 하는 생각에 말을 중단했다. 어찌할 바를 모르고 있는데 한참 뒤 이렇게 말씀을 했다.

“아니, 내가 지금 전두환이란 말이야! 전두환이가 뭘 알고 대통령 했겠어, 이건 독재지! 독재야! 한겨레식 독재란 말이야” 
“뭐가 독재란 뜻인지요?”
“한겨레 주총이면 주주들 의견을 최대한 반영해서 결정을 해야지, 이렇게 의장이 방망이나 두둘기면 되겠어?”
할 말이 없었다. 주총의 원만한 진행을 위해 만든 매뉴얼이 그리 독재적이라니, 그럼 일주일밖에 남지 않은 주총의 민주적 안건 처리를 하려면 어떻게 해야 되는 건지, 눈 앞이 캄캄했다. 눈치만 살피다가 겨우 이렇게 답을 했다. 
“이건 참고만 하시고 마음대로 진행하십시오, 단지 주총이 너무 오래 걸리면 뒤이어 프레스센터에서 진행할 ‘한겨레신문 지령 100호 기념식’에 차질이 생기니 적당한 시간에 끝내 주십시오.” 
그러자 또 기가 막히다는 표정으로 “아니 주주가 우선이지, 기념식이 중요하냐”고 했다.

이미 날을 넘겨 새벽 1시. 의안은 매뉴얼을 참조해 진행하되, 주주들의 의견은 최대로 들어주고 담당 이사들이 성실하게 답변을 해주도록 하기로 마무리가 됐다.
그나마 다행이었다. 유신독재에 맞서 구속자들을 서슴없이 변호를 해주던 어르신답게 역시 대범하게 숨통을 터주니, 천만 다행이었다. 큰절이라도 하고 싶었지만 ‘감사합니다’만 연발하고 물러났다. 밖에서는 태광훈·이근영 두 사우가 내내 기다리고 있었다. 셋은 안도의 소주 한잔을 나눈 뒤 다시 사무실로 들어가서 철야 작업을 했다.

드디어 주총의 날! 아침부터 현장에 나가 펼침막이며, 총회 자료며, 주주들에게 나눠줄 타올이며, 장로교청년회 문화선교팀의 노래극 리허설이며, 후배 정서영과 20여명이 10여일간 밤새워 작업해놓은 걸개 그림까지 모든 준비를 마쳤다. 낮 12시부터 주주들이 오기 시작했다. 접수처의 자원봉사자들도 준비한대로 질서있게 진행을 하고 있었다. 

구석에서 한숨 돌리고 있는데 이 변호사, 아니 임시주총 의장님이 찾으셨다. 가슴이 철렁했다. 주총 진행하는 동안 단상 앞에서 자리를 뜨지 말고, 손짓하면 올라와서 도와달라는 당부였다. 하지만 의장님은 주총 내내 한 번도 나를 부르지 않았다. 거침없는 진행으로, 역사적인 한겨레신문 첫 주총은 물 흐르듯 빛나고 있었다. 마침 옆에 앉아 있던 포항제철(현 포스코) 홍보이사와 관계자들도 정말 멋지다며 감탄했다. 이돈명 변호사는 한겨레신문을 빛낸 위대한 인물이셨다.

편집: 김경애 편집위원, 이동구 에디터

박준철 한겨레 사우회원/중부투데이사장  jcp3331@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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