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김태평 주주통신원

버스를 타고 출근했다. 금주 두 번째다. 파릇한 초중고생들 그리고 많은 사람들의 냄새가 좋다. 오늘도 맑은 가을 하늘과 함께 즐거운 하루가 될 것 같다. 시장골목과 대중교통은 사람냄새가 난다. 그래서 삶이 무료하고 짜증날 때는 대중교통을 이용하여 시장에 간다. 복잡하고 다소 너저분하지만 오히려 마음이 편하다. 잘 정리정돈 되고 너무 깨끗해도 어색하고 불편함은 필자만일까?

정복 입은 문지기와 최첨단 보안장치로 무장한 권세가들의 호화주택에 비견된다. 그곳에는 소외감과 기계적인 차가움이 있다. 저렇게 격리된 소굴에서 그들은 무슨 재미로 살아갈까? 가지지 못하고 누리지 못한 못난이의 푸념일까? 시장과 대중교통에는 푸근하고 따뜻한 정감이 있다. 필자와 비슷한 그들이 편안하고 그들과 하나 되어 물건...을 흥정함이 좋다.

혼잡한 시내버스에서 생긴 일이다. 필자는 버스 중간 창 측에 앉았고, 옆에는 연배가 비슷한 초로의 아저씨가 앉았다. 의복과 외모가 다소 초췌했지만 오히려 편안했다. 요즘은 동석자에게 마음이 쓰인다. 동석자와 인사하고 세상얘기를 나누는 것은 옛날이야기다. 스마트폰과 이어폰이 넘지 못할 담장이 되어버린 것이다. 세월을 먹다보니 특히 젊은 여성들 곁에 앉기가 거북하다. 여러 사회적인 현상으로 그들의 눈치가 보이기 때문이다. 몇 정거장을 지나니 서있는 사람이 많아졌는데, 짐을 든 사람은 서 있기도 곤란하였다.

▲ 출처 : 한겨레. 혼잡한 시내버스 내부. 배려가 필요한 곳이지만 반드시 그렇지만은 않더라.

큰 쇼핑백을 든 아가씨가 통로에서 안절부절 못하고 있었다. 들고 있기가 거북한 쇼핑백을 옆 좌석 아저씨 곁에 두고 막 일어서는데…. 아저씨가 아무 말 없이 쇼핑백을 덥석 안아 들었다. 아마 딸 같아서 짐을 들어주려는 것 같았다. 바로 그때 이를 본 아가씨가 버스 안의 모든 사람들이 다 들릴 정도의 큰 목소리로

“안 돼요!”하고 비명을 질렀다. 필자도 깜짝 놀라 가슴이 덜컹하였고… 당황한 아저씨는 기어가는 목소리로 더듬거렸다.
“…들어 주려고…”
아가씨는 더 큰 소리로
“안 돼요! 싫어요! 그냥 놔두세요!”라고 소리친다.

아가씨는 아저씨가 안고 있는 쇼핑백을 뺏으려고 움켜쥐었고, 아저씨는 잡고 있던 쇼핑백을 미처 놓지 못해서… 실랑이 하는 사이 쇼핑백은 반쯤 찢어졌다. 버스 안 모든 사람들의 시선이 집중 되었고, 옆에 있던 필자도 어색함과 황당함에 얼굴이 붉어졌다.

“곤란한 지고… 어허~ 이를 어찌하나~” 아저씨는 말도 못하고… 아가씨는 찢어진 쇼핑백을 비좁은 바닥에 다시 놓고, 그 옆에 서서 갔다. 찢겨진 쇼핑백 사이로 가득 찬 반찬통들이 부끄러운 모습을 드러냈고, 반찬통들도 안타까워하는 듯 했다. 버스 안은 잠시 침묵이 흘렀다. 집에 온 후 배려를 다음과 같이 정리해 보았다.

배려는 자기 생각대로 하는 게 아냐
자신이 좋다고 상대도 좋은 게 아냐
자신이 싫다고 상대도 싫은 게 아냐
배려는 상대의 바람대로 하는 거야

논어 안연(顏淵)편에 “출문여견대빈(出門如見大賓) 사민여승대제(使民如承大祭) : 대문을 나서면 만인을 귀빈을 대하듯 하고 백성을 부릴 때는 큰 제사를 모시듯 하며, 기소불욕(己所不欲) 물시어인(勿施於人) : 자기가 원하지 않는 것은 남에게 베풀지 마라. 재방무원(在邦無怨) 재가무원(在家無怨): 그리하면 온 나라의 원망이 없어질 것이요 가내의 원망도 사라질 것이다.”

마태복음 7장 12절에 “So in everything, do to others what you would have them do to you, for this sums up the Law and the Prophets. : 그러므로 만사에 있어서, 너희가 그들에게서 대접받기를 원하는 바대로 그들을 대접하라. 이것이 율법이요 선지자의 말씀이니라.”

배려는 자신의 입장에서가 아니라 상대의 입장에서 해야 한다. 자신이 좋다고 상대도 좋은 것이 아니고, 자신이 싫다고 상대도 싫은 것이 아니다. 주는 사람은 기쁠 수 있지만 받는 사람은 슬플 수 있다. 사람과 상황에 따라 달라지는 것이다. 좋아하는 것을 해주는 것보다, 싫어하는 것을 해주지 않는 것이 더 중요하다. 일반적으로 배려는 자신이 손해보고 불편을 감수하는 것이지만, 반드시 그렇지만은 않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삶은 참으로 단순하면서도 복잡하다.

김태평  tpkkim@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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