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소엔 남의 얼굴만 보다가 어느 날 우연히 거울에서 내 얼굴을 보니 물어보고 싶었다. 거울에서 내 얼굴을 보았지만, 그 또한 바른 내 얼굴이 아니었다. 반대로 보였다. 흔히 자신을 알 지 못한다고 질책하나, 얼굴도 바로 볼 수 없거늘 어찌 맘과 정신까지 알겠는가? 모르는 게 당연하지. 내 오른쪽 귀는 거울 속의 왼쪽 귀, 내 오른쪽 눈은 거울 속의 왼쪽 눈. 하지만 바른 내 얼굴을 보지 못함이 다행일지 모르겠다. 때로는 거울 속에 비친 반대모습처럼 생각도 반대로 하고 생활도 반대로 해야 하나? 얼굴과 대화를 시작한다.

“얼굴아~ 반가워! 진짜 너의 모습은 언제야?”

“응~ 반가워! 근데 무슨 말이지?”

“너의 표정이 변덕이 심해서... 너도 너 자신을 잘 모르니?”

“맞아, 그렇기는 해. 서구의 한 철학자가 ‘너 자신을 알라’로 유명세를 탔지만, 이는 남에게 한 말이 아니라 자신에게 한 말일 거야. 아무리 자신을 알려고 해도 알 수 없었기에 스스로에게 말한 독백이고 역설이겠지. 만약 인간이 자신을 속속들이 알아버리면 살기 어렵지 않을까? 자신을 알게 되면 자신이 얼마나 더럽고 치사하며, 음흉하고 간사함, 옹졸함과 구차함을 알게 될 것이고, 도저히 그 부끄러움을 견딜 수 없기 때문에... 본향으로 떠나지 않을까? 자신을 모르기에 우리는 매순간을 태연자약하게 살아갈 수 있지 않을까? 자신을 모른다는 것은 행운이고 축복일 거야”

“맞아... 하지만 그를 인정한다 해도 평소 얼굴을 보면 헷갈릴 때가 많아, 어떻게 대할지도 모르겠고...”

“이해는 가는데, 너무 복잡하게 생각하지 마. 그냥 보이는 대로 보고 그렇거니 해. 네가 생각되는 대로 해도 괜찮아”

“그러려고 해도 자꾸 다른 생각이 든단 말이야...”

“그이의 얼굴보고 어떻게 생각해도 무관해. 그렇다고 뭐 확 달라지는 게 없어. 순간일 뿐이고 그냥 그렇게 흘러가니까. 너무 걱정하거나 염려하지 마. 세상이 다 그렇고 그렇잖아. 네가 어떤 생각을 하든지 큰 문제는 일어나지 않아. 한 사람에 의해 천지개벽은 없어. 잠시의 폭풍우로 그칠 뿐이지. 단, 행동은 조금 조심하는 게 좋아. 그리고 그냥 그렇게 있는 대로 살아가는 거야”

“알겠어~ 그렇지만...”

“너의 마음과 생각이 가는대로 몸도 따라가는 게 좋아. 기분 좋으면 미소를 짓고, 그 보다 더 좋고 재미있으면 크게 웃고, 그 보다 더 좋고 즐거우면 박장대소하고, 그 보다 더 좋고 신나면 춤추며 웃고, 그 보다 더 좋으면 온 몸으로 울어버리는 거야. 때로는 자신을 주체하지 못할 정도로 웃고 춤추며 우는 것도 괜찮아. 참지 말고 꾸미지 마. 체면 따위에 구속되지 마. 하지만 가능하면 밝은 얼굴이 좋겠지? 그게 네가 말하는 진짜 얼굴모습일지도 몰라”

“그래서 태어나면 울고, 죽어도 우는 것일까?”

“그렇지, 진짜는 눈으로도 볼 수 없고, 귀로 들을 수도 없고, 맘으로 느낄 수도 없어. 그러므로 울 수밖에... 진짜는 알 수 없으니 알려고 하지 않는 게 좋아. 괜히 심사만 뒤틀려. 진실(진짜)이라면 오직 살아 있는 생명체는 반드시 죽는다는 것뿐이지 않을까? 죽는 날까지 너의 방식대로 잘살아! 가능하면 진위와 시비를 가리지 말고. 안녕!”

편집 : 김미경 부에디터

김태평 주주통신원  tpkkim@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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