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김태평 주주통신원

교학(敎學, 學文, 問學)은 왜 하는가? 즐겁고 기쁘게 살기 위해서이다. 보람되고 알차게 살기 위해서이다. 배운 조그만 지식으로 남을 비판하고 비난하기 위해서가 아니다. 아는 것만큼 포용하고 수용하기 위해서이다. 교학의 그릇이 커졌으면 많은 것을 담아야 한다. 생사문제가 아닌 별 것도 아닌 것을 왈가왈부하는 등 논쟁거리를 양상하기 위한 것은 더욱 아니다. 가족간, 이웃간, 만물간 화목하게 사는 이상의 무슨 가치가 또 있겠는가? 우리의 삶은 그 자체가 진리인 것이다. 교학을 통해 작은 것이라도 깨달았으면 그를 바탕으로 타물(他物)들과 잘 어울려 살기 위해서이다.

교학은 만물의 존재이유를 깨닫고 인간으로서의 품격과 격조를 갖춤으로써 인류를 비롯한 만물들과 조화롭고 평화롭게 살기 위함이다. 자신만이 아닌 상생과 공생을 넘어 화생을 통한 모든 생명체들의 독립적이고 자유로운 삶을 보장하기 위함이다. 인본주의 등 인간중심을 뛰어넘어 만물중심의 만물주의를 지향할 수 있는 토대를 갖추는데, 학문(學文)과 문학(問學)의 근본취지가 있을 것이다. 인간만이 이 우주와 지구의 주인이 아니기 때문이다. 즉 교학의 최종 목적과 목표는 홍익인간(弘益人間)이상의 홍익만물(弘益萬物)이 아닐까? 그러므로 오늘도 교학에 게으름이 없다.

김태평  tpkkim@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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