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냥 종이가 아니라 모든 것을 만들 수 있는 우리의 한지

 

원주한지테마파크에서 마지막 꼭지로 준비한 것이 한지로 만든 조상들의 생활용품들에 관한 것이다. 흔히 종이하면 책을 만드는 것이라는 생각부터 한다. 문서가 되고 그것들이 모여서 책으로 탄생을 하는 것이 종이의 운명이라는 것이다.

그러나 우리 조상들은 이 귀한 한지를 참으로 다양하게 이용하였다는 것을 알 수 있는 곳이 바로 이 한지테마파크이다.

한지의 이용에 대한 전시품도 크게 네 가지로 나누어서 볼 수 있다.

책이나 글씨를 쓰는 종이로 이용하는 것, 종이를 끈으로 만들어서 이용한 것, 종이를 다른 것이 붙여서 새로운 용도로 변형 시켜서 이용한 것, 그리고 마지막으로 종이를 뭉쳐서 찰흙처럼 만들어서 공예품이나 인형 등을 만드는 방법이 그것이다.

본래 종이의 쓰임인 글씨를 쓰거나 책으로 출판이 된 것들이 있다. 특히 오래 되어도 가장 잘 보존이 되는 종이가 바로 한지이기 때문에 수백 년 이상이나 되는 기간 동안 그 형체를 유지한 것들은 역사를 가진 물건이 되는 것이다. 다라니경 같은 것이 오랜 세월을 이겨낸 것은 오직 우리 전통 한지였기에 가능한 일이고, 세계적인 문화유산으로 지정된 것으로 자랑할만한 일이다.

우리 조상들이 한지를 쓰는데 많은 이야기들이 있다. 우리가 사는 동네 이웃에 있는 세검정(洗劍亭)은 말 그대로 <칼을 씻는 정자>가 아니라 칼보다 무서운 붓을 씻는 아니 붓글씨를 씻는 장소였다는 것이 정설이다. 다시 말해서 궁궐에서 썼던 사초들을 정리하고 나서 이곳에서 물로 씻어서 글씨를 완전히 지워버렸다는 것이다.

다시 말해서 기록을 완전히 지우는 작업을 한 것이다. 그렇게 하여 다시 하얀 종이로 돌아온 한지에 무엇을 어떻게 하여서 재활용을 하였었는지에 대한 기록은 찾을 길이 없지만 하여튼 사초를 씻는 장소였음은 틀림이 없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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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렇게 썼다가 지워버린 종이도 있지만 종이를 말아서 끈 대신으로 책을 매는데 도 이용했다. 선비들은 시간이 나면 이 종이끈을 만드는 것을 즐겼다고 한다,

이렇게 만들어진 종이끈<지승:紙繩>은 우리 생활이 필요한 여러 가지 물건을 만드는데 이용이 되었다. 내가 발령을 받은 1964년 무렵만 하여도 요즘처럼 실로 만든 책사<끈>를 따로 파는 것이 없었다. 그래서 얇은 종이<먹지를 대고 두 세장을 한꺼번에 쓰기도 하던 당시의 정식 공문서 용지>를 몇 조각으로 길게 찢어서 한쪽에서 부터 돌려가면서 돌돌 말아서 길게 끈을 만들었다. 바로 이 종이끈으로 서류철을 묶곤 하였다.

그런데 여기 한지테마파크에서 보니 이 종이 끈으로 만든 지승공예 제품이 생각지도 못할 만큼 다양하고 상당한 수준의 공예품으로도 손색이 없는 것들이 보이는 것이다. 

지승으로 만든 망사 저고리, 미투리, 벙거지, 머리띠, 멍석, 망태기, 방석, 독, 항아리 도무지 못 만드는 것이 무엇이었을까 싶을 만큼 다양하다. 믿기지 않을 만큼 정교한 망사 저고리는 아무리 보아도 지승으로 만든 제품이라고 보기가 어렵다. 물론 저 지승제품들은 물에 약하기 마련이지만, 약간 젖는다고 그냥 풀어져 없어진다면 지금까지 저렇게 전해지지 않았을 것이다.

세번째의 이용법으로는 다른 물건에 붙여서 만든 제품들이다. 종이함, 독, 항아리 같은 것들을 볼 수 있다. 요즘에 종이공예라면 상당부분이 종이판을 이용하여 함 같은 것들을 만드는 것에 주를 차지하고 있는데, 앞으로 이런 여러 가지 방법이 활용이 되고 개발이 되었으면 좋겠다.

우리 조상들은 대나무 그릇에 종이를 발라서 요즘 우리가 쓰는 플라스틱 그릇처럼 이용을 하였으니 참으로 지혜롭지 않는가? 대나무로 엮어서 만든 항아리 모양의 그릇에 종이를 바르고 또 발라서 기름을 먹이면 요즘 플라스틱 그릇에 비교 되지 않을 만큼 가벼우면서도 단단하고 물이 새지 않는 멋진 그릇으로 재탄생을 하는 것이다. 

이렇게 이용하는 방법 중에 하나가 종이판을 만들어서 쓴 것이다. 종이를 여러겹 발라서 두꺼운 판지를 만들어서 필요한 물품을 만드는 것이다. 갓을 넣는 갓집, 작은 필통, 붓을 넣어두는 붓통, 같은 것들을 이런 종이로 만든 판지를 이용한 것이다.

마지막으로 보이는 작품들은 한지를 뭉쳐서 종이찰흙처럼 이용하여 만든 공예품으로 한 때 우리나라 한지 공예를 세계에 널리 알린 김영희의 한지 인형 같은 경우가 이 부문이다.

특히 여기에 보인 작품은 원주라는 지역 특성을 살려서 [치악산]의 전설을 종이 인형으로 표현하여 전시하므로 원주도 알리고 치악산관광을 선전하기도 하는 이중의 효과를 거둔 셈이다.

전시장에서는 한지들을 팔고 있었는데, 우리가 생각지 못하였던 아름다운 색조와 모양, 무늬가 있는 한지까지 다양한 제품들이 관광객을 유혹하고 있었다.

전시장을 떠나서야 생각을 하니, 우리 동창 중에서 문인화를 하거나 서예를 하는 친구들이 많은데 몇 장 사다 줄 걸 하는 생각이 들었지만 이미 늦어 버렸다. 미련이 앞장을 서는가 보다. 기행문을 쓰려는 욕심이 어딜 가나 있어, 좀 더 살피고 사진 한 장이라도 더 찍자고 덤비다 보니 늘 관광지에서 기념품을 사는 걸 잊는다. 나는 늘 이런 실수를 하곤 해서 탈이다.

편집 : 김미경 부에디터

김선태 주주통신원  ksuntae@empa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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