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왕산 동남쪽의 어제와 오늘

허창무 주주통신원l승인2016.02.03l수정2016.02.17 17: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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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왕산 동남쪽의 어제와 오늘

창의문으로 내려오다 보면 동남쪽으로 청운동(淸雲洞)이 자리 잡고 있다. 청풍계(淸風溪)라는 계곡과 백운동(白雲洞)이라는 지명이 합쳐져 현재의 청운동이 되었다. 사시사철 맑은 바람이 불고, 맑은 물이 흐르는 청풍계와 함께 흰 구름이 떠도는 백운동의 수려한 자연환경에서 유래된 지명이다. 조선 때 백운동은 도성에서 5대 명승지로 꼽혔던 곳이다. 지금은 별로 눈에 차지 않는 주택들이 들어차 옛날의 명성을 떠올릴 수가 없다. 다만 겸재가 그린 「백운동도(白雲洞圖)」를 통해 그 당시의 모습을 살필 수 있을 뿐이다.

▲ 겸재정선의 백운동

인왕산 수성동 계곡(서울특별시 기념물 제31호)

인왕산 남쪽 기슭의 첫 번째 계곡이다. 청계천 지류의 발원지로서 커다란 바위 사이로 흐르는 물소리가 그윽하고, 흐르는 물이 아름다워 수성동(水聲洞)이라는 이름이 붙었다. 수성동은 서울의 대표적인 경승지로서 조선 후기 문예활동의 중심지이기도 했다. 겸재 정선은 「수성동」이라는 그림을 남겼는데, 그 그림에 나오는 돌다리 기린교(麒麟橋)가 인상적이다. 기린교를 건너 세 사람의 선비와 동자 하나가 걸어가는 모양이 한가롭다. 이 다리는 도성 안에서 유일하게 원위치에 원형으로 보존되어 그 의미가 크다.

▲ 겸재정선의 수성동

「송석원시사(松石園詩社)」는 중인 계층 문인들이 중심이 되어 결성한 시사(詩社)로서 수성동과 그 주변에서 자주 시회(詩會)를 열었다. 송석원(松石園)은 옥계시사(玉溪詩社)의 맹주 천수경(千壽慶, 1758-1818)이 살던 집터이다. 지금 옥인동 일대이다. 천수경과 함께 송석원시사에서 활동했던 박윤묵은 「송석원기(松石園記)」에서 이렇게 썼다.

“송석원은 옥류동의 북쪽에 있다. 푸르게 우거지고 서리서리 얽힌 소나무가 벼랑을 따라서 둥글게 줄지어 있어서 그 깊이를 헤아리기 어렵다. 또 높이 몇 길쯤 되는 바위가 우뚝하게 벽처럼 서 있어서 바라보는 사람들로 하여금 더욱 사랑스럽게 한다. 천수경 노인이 그 자리에 오두막을 짓고 스스로 호를 송석(松石)이라 하였다. 두건을 벗어 이마를 내놓고 소나무를 어루만지며 옷을 풀어 헤치고 바위를 베개 삼아 누웠다. 날마다 문인제자들과 더불어 시를 읊조리며 느긋하게 노닐다가 장차 늙어죽을 듯이 하였다. 이것은 좋아하는 바를 돈독하게 한다고 말할 만하다.”

▲ 수성동계곡 기린교

수성동의 지형과 경관은 1971년 이 자리에 옥인시범아파트를 지으면서 심각하게 훼손되었으나, 2010년 서울시에서 아파트를 철거하고 옛 모습에 가깝게 정비했다.

▲ 수성동계곡에 선 필자

박노수 가옥(종로구립미술관, 서울특별시 문화재자료 제1호)

박노수 가옥은 통인시장을 지나서 서촌골목길을 올라가면 나오는 수성동계곡 오르막길 어귀에 있다. 순종황제의 처삼촌이고 친일파인 윤덕영(1873-1940)이 1938년 딸에게 지어준 2층 벽돌집으로 1930년대 호화주택의 양식을 잘 보여준다. 이 가옥의 특징은 한국, 중국, 서양식 건물양식이 한데 섞여 있다는데 있다. 1층은 온돌방과 마루, 2층은 마루방구조이고, 3개의 벽난로가 설치되어있다. 현관은 포치를 설치하여 아늑한 느낌을 주며, 지붕은 서까래를 노출한 단순 박공지붕으로 장식적인 요소와 단순함이 어우러져 독특한 분위기를 자아낸다. 1972년부터는 박노수 화백이 거주하며 작품 활동을 하던 집인데, 박 화백 사후 2011년 종로구에서 건물과 소장품 1천여 점을 기증받아 종로구립미술관으로 개관했다.

▲ 박노수가옥

박노수는 충남 연기 출신으로 서울대 회화과를 졸업하고 청전 이상범, 근원 김용준, 월전 장우성을 사사했다. 1955년 국전에서의 대통령상 수상을 비롯하여 대한민국예술원상 등 수많은 상을 휩쓸었고, 대한민국은관문화훈장을 수훈했다. 이화여대(1956-62), 서울대(1962-82)에서 교수를 지냈고, 국전초대작가, 심사위원, 운영위원을 역임했다. 1983년에는 대한민국예술원회원으로 선정되었다.

그의 화풍은 전통적인 화제를 취하면서도 간결한 운필과 강렬한 색감, 대담한 터치 등의 독자적인 화풍을 구축하여 전통 속에 현대적 미감을 구현한 작가로 높이 평가되고 있다.

글 허창무 주주통신원/ 사진 이동구 에디터

편집 : 박효삼 객원편집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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