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남기씨를 위한 미사는 계속되고 있다.

▲ 초록 바람개비의 움직임이 초록 밀밭 나부낌처럼 느꺼진다. 농부 백남기님이 일어나시면 좋아하실까?

지난 6일, 설 연휴 첫날 한겨레신문에 허재현 기자의 백남기님 따님 인터뷰가 크게 실렸다.

관련기사 : 미국 기자가 깜짝 놀랐어요, 진짜 사과 못 받았냐고 / http://www.hani.co.kr/arti/society/society_general/729613.html

이 기사를 보니 바쁜 설날 전이지만 서울대병원 앞에서 드리는 미사에 발걸음이 간다. 그가 쓰러진지 석 달이 되어 가지만 국가는 아무런 말이 없다. 분명 경찰이 저지른 폭력임에도 책임을 지겠다고 나서는 사람이 없다. 자신이 저지르고도 버티고 뭉개는 국가는 참 뻔뻔하다. 아니 뻔뻔한 것을 넘어서, 이 국가의 대국민인식이 참으로 위험하다.

설 연휴 기간 내내 서울대병원 앞 4시 미사는 여전히 진행된다. 2월 6일에는 사회사목 유경촌주교께서 미사를 집전했다. 14분 이상의 신부님이 참석하셨고 많은 수녀님과 신자들이 참석해서 자리가 모자랐다. 유주교님의 강론말씀을 옮겨 본다.

▲ 2월 6일 미사에서 유경촌 사회사목주교님.

쓰러지신 지 85일째 의식을 회복하지 못하고 계신 백남기님과 그 가족을 위하여 미사를 드리고 싶다. 고통 앞에 좌절하지 않고 고통이 커도 신앙 안에서 용기와 희망을 잃지 않도록 위로하고 싶다.

백남기님은 가톨릭농민회원이다. 왜 그에게 이런 일이 생겼을까? 백남기님이 물대포에 맞아 쓰러져 사경을 헤매고 있는 것을 보면서 십자가에 못 박힌 예수님이 생각났다. 죄 없지만 십자가에 못 박혀 인류를 구원하고 자신을 하느님께 봉헌한 예수님을 묵상하게 한다.

우리 사회에서 개개인이 존중받는 사회가 되도록 백남기님이 온몸으로 기도하고 있다고 생각한다. 사람이 그렇게 짐짝처럼 다루어져서는 안 된다. 사람의 존엄함이 존중받지 못한 실상을 백남기님이 온몸으로 고발하고 있다.

올해 쌀값이 폭락했다. 그런데 시장개방까지 한다고 한다. 밥쌀 수입만이라도 막아달라고 했으나 정부는 들어주지 않았다. 그런 절박함으로 서울에 왔고 지금 저렇게 누워 있다. 자신의 고통과 희생으로 농촌의 현실을 고발하기 위하여, 개선하기 위하여 자신을 바치며 온몸으로 말하고 있다.

정부는 석 달이 다되도록 사과 한마디 없다. 개인 간에도 이런 경우 사과를 하는 것이 인지상정이다. 하지만 정부는 책임지려하지 않는다.

백남기님이 당신의 고통을 바치며 온몸으로 기도하고 있다고 생각하면 위로가 될 수 있지만 가족의 고통은 무엇인가? 백남기님은 젊은 시절부터 민주화운동과 농민운동에 한평생 바친 분이다. 한때는 수도자의 길도 가신 분이다. 일생을 통해서 하느님을 향한 준비된 삶을 사셨다. 백남기님 평생에 걸쳐 이런 고통을 준비하신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가족들도 그런 준비된 삶을 함께 하는 것이라 생각했으면 한다.

주님은 일찍이 바오로와 그의 동료들이 박해를 이겨낼 수 있는 힘을 주셨듯이, 저희에게도 이런 위기를 이겨낼 수 있는 힘을 주시고, 백남기 임마누엘 또한 이 위기를 이겨낼 힘을 달라고 기도하자. 다시는 공권력에 의해 인간이 존중받지 못하는 일이 없도록, 모든 불의와 어지러움, 시끄러움, 진정한 평화를 깨는 세상 모든 것을 이길 수 있도록 한마음 한뜻으로 간절히 기도하자.

▲ 2월 6일 미사에서 신자들 / 살인진압 책임자 강신명 경찰청장 파면이라는 현수막이 강렬하다

 

▲ 한 수녀회에서 미사에 참여한 신자, 시민들을 위해 뜨끈뜨끈한 어묵탕을 준비해주셨다.

 

2월 7일에도 백남기님의 쾌유와 민주주의 회복을 위한 미사는 열렸다. 설 바로 전날이라 그런지 3분의 신부님이 참석하셨다. 이영선신부님이 집전 강론하셨다.

▲ 2월 7일의 조촐한 미사

말이 필요 없는 세상 같다. 무슨 말을 해야 하는데 말이 없다. 말을 해야 마음을 움직이고 사람을 낚을 수 있는데 도대체 말이 없는 세상이다.

예수님이 베드로의 마음과 몸도 낚을 수 있었던 것은 모든 것을 버렸을 때 가능한 일이었다. 박대통령이 자신의 직무수행을 잘 했으면 좋겠다. 박대통령의 마음을 사고 싶다. 마음을 얻게 하고 싶다. 어떻게 하면 마음을 얻을 수 있을까? 이에 대해 생각하다 보니 어떤 분이 보내주었던 참회록이 기억난다.

<참회록>

'하늘에 계신...' 이라면서 세상에 빠져 있었습니다. '우리...' 라고 하면서 나 혼자만을 위해 살았고, '아버지의 이름을 거룩하게 하시며...‘ 라고 하면서 내 이름을 빛내기 위해 살아왔음을 고백합니다. '아버지의 나라가 오게 하시며...' 라고 기도하면서 물질 만능의 나라를 원했던 나였음을 고백합니다. '아버지의 뜻이 하늘에서와 같이 땅에서도 이루어지게 하소서...'라고 기도하면서 내 뜻대로 되기를 원했던 삶을 살아 왔습니다. '오늘 우리에게 일용할 양식을 주시고...'라고 기도하면서 죽을 때까지 먹을 양식을 쌓아두려고 부도덕하게 살아왔습니다. '우리가 우리에게 잘못한 사람을 용서하여 준 것 같이...'라고 기도하면서 누구에겐가 앙심을 품고 있었습니다. '악에서 구하소서... '라고 기도하면서 악을 보고도 아무런 양심의 소리를 듣지 않고 살아 왔습니다. '아 멘...' 하면서 주님의 기도를 진정 나의 기도로 바치지 않았음을 고백합니다.

정보가 가득한 사회에서 그 정보가 주는 내 삶을 바꾸라는 요구에는 대답하기 쉽지 않다. 사제란 제 2의 그리스도다. 삶 전체 안에서 그리스도의 삶을 재현해야한다. 구유의 예수님처럼 굶주리는 사람이 되어야하고, 십자자에 못 박히는 사람이 되어야 하고 성체성사로 그리스도처럼 먹히는 사람이 되어야 한다. 이런 삶을 두려워하지 않을 때 사람의 마음도 얻게 되는 것이라 생각한다.

▲ 2월 7일 미사

허재현 기자의 기사 중 백남기씨가 쓰러지기 전후의 과정을 지켜봤던 '공무원신문’의 김상호 기자가 유엔에서 찾아온 '키아이' 보고관에게 증언한 내용을 보면 이렇다.

“농민들이 상여(시위 물품)를 가져왔어요. 물대포가 직사해서 상여를 부숴버렸어요. 경찰은 마치 슈팅게임(shooting game)을 하는 듯했어요. 목표물이 보이면 사람이든 물건이든 하나하나 조준해서 쏘았어요. 물을 뿌린 게(spraying) 아니에요. 그날 현장에 살수차가 네 대 있었는데 백남기씨를 쏜 살수차는 유독 수압이 셌어요. 백남기씨의 얼굴을 향해 쐈어요.”

이 기사처럼 '조준사격 물대포'에 맞아 이를 온몸으로 고발하고 있는 백남기씨를 보면서 이런 생각이 들었다.

국가가 국민 개개인의 삶보다 자본의 위력을 택할 때 용산참사 같은 사건이 일어난다. 국가가 노동자를 소모품 취급할 때 쌍용자동차, 스타케미칼, 콜트콜텍과 같은 해고가 일어난다. 국가가 국민의 권리를 국가의 소유로 생각할 때 밀양송전탑, 강정마을과 같은 일이 벌어진다. 국가가 국민의 목숨을 하찮게 여길 때, 아이들의 생명을 바다속에 버리는 세월호 같은 일도 일어난다. 드디어 국가는 국민에게 적대감을 갖고 직접 행동으로 옮긴다. 국민을 물대포로 조준하여 죽음에 이르게 할 수 있는 일도 마다않는 국가가 되는 것이다. 이 모두 국가권력의 남용이고, 오용이며, 악용이다.

개인도 자신의 권리를 잘못 사용하게 되면 사회로부터 제재를 받는다. 자신의 권력을 무소불위로 휘두르는 정권은 누가 제재하나? 그 권력을 제어할 기능이 없는 정권은 어떻게 되나? 히틀러 나찌 정권, 구소련의 공산당 정권 등이 대표적인 이런 전제정권이다. 이런 정권은 결국 국민을 고통 속에 빠뜨리고 국가를 존재위기에 처하게 한다. 수많은 역사가 이를 증명한다. 하지만 여전히 독재적 권력에 중독된 지배자에 의해 이런 정권은 계속 나타나고 사라진다. 그 지배자의 말로는 대부분 비참한 죽음이다. 그들은 왜 역사 속에서 교훈을 얻지 못할까? 그들은 왜 자신을 성찰할 기회를 놓치곤 하는 것일까? 그들의 삶의 방식을 바꾸라는 수많은 요구에 그들이 귀기울이게 하는 방법이 정말 죽음 밖에 없는 것일까?

▲ 종이학의 기적을 기원하며.....

사진 일부 : 양성숙 객원편집위원

김미경 부에디터  mkyoung60@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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