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에서의 첫 여행 : Gatelinburg에 가다

침례 교회에 가다

저는 한국에서 7년 정도 천주교회에 다녔어요. 제가 천주교회에 다니기 시작한 것은 초등학교 3학년부터고 가끔 빠진 적도 있지만 그래도 꾸준히 다닌 편이어서 성당의 분위기에 푹 젖어 있는 편이지요.

초등학교 6학년 때 한번 친구 따라 교회에 갔는데 막 박수치고, 큰 소리로 기도하고 해서 깜짝 놀란 적이 있어요. 그 이후 교회라고 하면 뭔가 나하고는 잘 맞지 않는다고 생각했지요.

저희 Host mom께서는 Baptist(침례교인)세요. 저와 크리스천이라는 것은 같지만 예배 방식이 조금 다르지요. 제가 Tennessee에 오기 전에 이 문제로 신부님과 상담을 했어요. 신부님께서는 같은 하느님을 섬기는 것이고, 미국의 침례교회에 가는 것도 미국의 종교 문화를 체험하는 것이라고 하시면서 제가 괜찮다면 주일을 지켜서 교회에 다니라고 하셨어요. 그러나 제가 정말 다니고 싶지 않고, 천주교회를 찾아가는 것이 Host mom을 번거롭게 하는 것이 아니라면 천주교회를 찾아가라고 하셨어요.

제가 Tennessee에 온 이후로 Host mom께서는 많이 아프셔서 일요일에는 거의 집에서 쉬셨어요. 그래서 교회를 한 번도 가지 못했어요. 그 이후 좀 좋아지셔서 2월 1일 처음 교회에 갔어요.

그런데 어쩌면 좋아요. 처음 예배를 마치고 교회가 이상하다는 생각까지 들 정도예요. 저는 도저히 그 분위기에 적응이 될 것 같지 않다는 생각이 들어요.

예배 중에 갑자기 한 여자 분께서 노래를 불렀어요. 그런데 마지막에 가서는 큰소리를 지르시다가 막 우시는 거예요. 그랬더니 다른 분들도 막 따라 울었어요. 또 목사님께서는 설교를 하시는데 거의 소리를 지르는 수준으로 너무 큰소리로 빨리 말씀을 하시기 때문에 하나도 알아들을 수가 없었어요.

나중에는 각자 일어나서 말하고 싶은 것을 말하는 시간이 있었어요. Host mom께서도 말씀하셨어요. “남편이 먼저 가고 많이 힘들었는데 교회에서 많이 도와주어서 고맙다. 또 교회 식구들이 개를 너무 많이 키운다면서 줄이라고 했는데 개들을 많이 키우면서 너무 바빠서 슬픔을 생각할 시간이 없었다. 또 대녀인 Andrea가 늘 내 옆에 있어주고, 두 명의 교환 학생이 있어서 슬픔을 잊을 수 있었다. 세 명을 하느님께서 선물로 준 것이다.”라고 말씀하시면서 막 우셨어요.

저는 너무나 부끄럽고, 민망해서 고개를 들 수가 없었어요. 저도 같이 슬퍼해야 할 것 같은데, 그렇지가 못해서 어서 빨리 예배가 끝났으면 하는 생각만 있었어요. 나중에 이야기를 해보니 말타 언니도 너무 놀랐다고 해요. 언니도 천주교인이거든요.

예배가 끝나고 각자 헤어지는데 친구를 만났어요. 밴드수업을 같이 듣는 브리트니가 그 목사님 딸이었어요. 브리트니 엄마께서 수요일 날 학생모임이 있는데 오고 싶으면 차로 데리러 와 주신다고 하셔서 수요일 모임에 두 번 참석했어요. 헌데 아이들이 거의 없어요. 중고등부가 전체 5명이에요. 말타 언니와 내가 오기 전에는 3명밖에 없었던 거지요.

이런 모임을 Sunday School이라고 하는데 주로 하는 일은 교리 같은 것을 배워요. 선생님은 브리트니 어머니시구요, 아이들이 너무 없어서 재미가 좀 없는 편이예요. 다행히 2월 중순부터는 방과 후 계속 Softball 연습이 있어서 미안해하지 않고도 빠질 수 있어서 참 잘 되었다고 생각하고 있어요.

그 후로도 교회에 2번 더 갔지만 똑 같이 이상하게만 느껴지고 울고 소리치는 것은 여전히 적응이 되지 않아요. 언제나 이 분위기에 익숙하게 될까요? 헌데 Host mom께서 저희들이 힘들어하는 것을 조금 눈치 채신 것 같았어요. 물론 아프신 탓도 있지만 일요일이 되도 교회에 가자고 하지 않으셔요, 그리고 다른 곳에 갈 곳이 있으면 가라고 하셔요. 다행이지요. 하지만 저희를 하느님의 선물이라고 소개해주셨는데 좀 미안한 맘이 들어요.

미국 교회에 다니는 것을 일종의 종교 체험으로 보는 것이 맞을까요? 아니면 종교 선택의 문제로 보는 것이 맞을까요? 저와는 맞지 않고 가기 싫은 맘으로 억지로 가는 것은 부정적 문화 체험이라 생각해요. 부정적 문화 체험도 문화체험이니 해야 하는 것이라고 하시는 분도 계실지 모르겠지만, 저는 그것보다는 종교의 자유를 부르짖고 싶어요. 제가 좀 얌체(?) 같나요?

미국에서의 첫 여행 : Gatelinburg에 가다
 

2월 7일은 미국에 와서 처음으로 놀러 간 날이에요. Janet 아주머니와 David 아저씨, Morgan 오빠, 말타 언니와 나는 집에서 2시간 정도 걸리는 Gatelinburg 에 갔어요.
 
아침부터 눈이 많이 와서 갈까 말까 망설였으나 Janet 아주머니께서 결정했을 때  가야 한다고 하시면서 저희를 데리고 가주셨어요. Vicky Mom도 같이 가려고 하셨는데 바쁘셔서 가지 못하고 말았지요.
 
Gatelinburg는 동화 속에 나오는 인형들의 집 같은 것이 있는 유명한 관광지에요. 모든 가게나 영화관, 화장실 들을 동화집처럼 꾸며 놓아서 아이들의 얼을 쏙 빼앗아 가는 곳이지요.

제일 처음에 간 곳은 케이블카 타고 10분 정도 올라간 곳에 있는 실내 스키장이었어요. 스키장에서 스키를 타지는 못했어요.

▲ 케이블카 위에서 본 Gatelinburg 전경 1(눈이 와서 흐릿합니다)
▲ 케이블카 위에서 본 Gatelinburg 전경 2(눈이 와서 흐릿합니다)

 
그 다음에는 Bungee Run을 하는 곳에 갔어요. 이는 두 명이 시합을 하는 것인데 등 뒤에 무슨 장비를 차고 막 달리다가 끈이 다 되면 뒤에서 잡아당겨서 벌러덩 넘어지는 것이에요. 얼마나 멀리 갔나를 시합의 점수로 매겨서 승자를 가리는 것인데 승부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벌러덩 넘어질 때 그렇게 우습고 재미가 있어요. 허리를 붙잡고 웃었어요.

▲ 말타 언니와 내가 Bungee Run 하기 전의 준비 상태

 

▲ 벌러덩 넘어진 상태


Bungee Run를 한 다음에는 Ice Skating을 30분 정도 했어요. 저는 Skate 종류는 조금 타거든요. 말타 언니도 타 본 경험이 있는지 잘 탔어요. 그런데 이외로 Morgan 오빠가 잘 타지 못했어요. 우리는 오빠를 치면서 막 놀려 먹었답니다.
 
스케이트를 탄 후에는 수족관 구경을 가려고 했으나 Dixie Stampede에 가야할 시간이 되어서 수족관은 가지 못했어요.
 
드디어 그날의 하이라이트인 Dixie Stampede에 갔어요. 이 곳은 가운데 넓게 말이 달릴 수 있도록 모래가 깔린 트랙이 있고 2000명 정도가 앉을 수 있는 테이블이 있는 엄청나게 큰 타원 형의 실내 스타디움이에요. 앉아서 경기도 구경하면서 식사도 하는 그런 곳이지요.
 
여기서 연극 같은 것을 하는데 미국이 남북으로 갈라졌을 때 Dixie Stampede를 방문한 사람이 North와 South로 나뉘어서 각종 경기를 하는 것으로 이야기를 진행해요. 우리가 마치 예전 시대로 돌아가서 Dixie Stampede를 방문한 주인공이 되어 보는 것이지요.

▲ Dixie 아저씨와 함께


 경기는 사람이 직접 하는 것이 아니고요. North와 South로 정해진 돼지와 닭과 말이 달리기 경주를 벌이는 것이지요. 그리고 관객은 North와 South 중 하나를 택하여 내기를 하는 것이에요.
 
우리는 South 편이 되어서 ‘Go South’ 소리쳐가면서 열심히 응원했어요. 여기서 우리 편이 이기면 배지를 얻게 되지요. 배지로 뭐를 사거나 할 수 있는 것은 아니지만 그냥 이겨서 좋은 것이에요. 그런데 이 경기 나오는 말 중에는 1000만 원짜리 아주 비싼 말도 있다고 해요. 한번 자세히 봐 둘 것 그랬어요. 1000만 원짜리 말이 멋있나 Vicky mom의 말이 멋있나 말이지요.


다 끝나고 쇼핑몰에 가서 Softball 할 때 필요한 운동복도 사고 저녁도 먹고 밤 9시까지 놀다가 지쳐서 집에 왔어요. 정말 하루 종일 웃으면서 지낸 즐거운 하루였답니다.
 
이런 곳에 가는 데는 비용이 많이 들잖아요? 저는 교육 받은 대로 우리 비용은 우리가 내겠다고 했어요. 하지만 Janet 아주머니께서는 “우리가 너희들이랑 가고 싶어서 초대한 것이니까 비용은 우리가 내겠다.”고 하셨어요. 저희는 무척 미안한 마음으로 점심을 사겠다고 하고 점심을 샀지만 아직도 마음이 편치는 않아요. 너무 신세를 진 것 같은 생각이 드네요. 언젠가 갚을 날이 있겠지요?

(2004년 2월 테네시에서 쓴 글임) 

1961년 미국에서 교육문화상호교류법 (The Mutual Educational and Cultural Exchange Act)이 제정되었다. 이 법에 의거하여 교환교수, 교환연구원 그리고 교환학생(청소년, 대학생) 프로그램이 실시되고 있다. 청소년 교환학생 프로그램은 유학이 아니다. 미국공립학교에서 1년간 무료로 학교를 다니고, 자원봉사 가정에서 1년간 가족의 일원으로 지내는 프로그램이다. 이 프로그램의 목적은 영어공부가 아니라 서로의 문화를 교환하면서 상대방 국가에 대한 이해를 높이는 데 있다. 독일에서는 거의 모든 학생들에게 권장하고 있으며, 일본, 남미, 중국, 동남아 학생들이 많이 참여하고 있다. 한국 참여 학생들도 많다. 원래 비용은 무료이나 미국이나 한국이나 사립기관에 위탁 운영하고 있기 때문에 비용이 든다. [편집자 주]

편집 : 박효삼 편집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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