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겨레 실크로드 문화 답사(8)]

인천공항에서 3시간. 직항 전세기편으로 도착한 난주(란저우)는 감숙성의 성도로 황하(黃河)가 도심을 관통하고 실크로드 본도 진입의 시발점입니다. 감숙성은 중국과 북방 흉노의 오랜 싸움터였습니다. 그도 그럴 것이 이 지역은 한나라의 수도 서안에서 서역으로 통하는 길이 경부고속도로처럼 쫘~악 나 있기 때문입니다. 한의 입장에서는 서역 진출로로, 흉노는 중국 침략의 전투로로 중요한 곳이었습니다.

이 길이 어떤 길이냐고요? 이 길은 ‘하서주랑’ 또는 ‘하서회랑’이라고 합니다. 황하강 서북쪽으로 길게 난 평평한 복도 같은 길. 정확히 말해 길이는 오초령에서 옥문관까지 약 1000km, 폭은 수km에서 100km에 이르는 좁고 긴 평지입니다. 아래쪽엔 만년설 기련산맥이, 위로는 고비사막이 버티고 있으니 장건도 흉노도 이 길을 택할 수밖에 없었겠죠.

하서주랑에는 중국과 흉노의 전쟁사를 증명하는 작은 군사방어 도시들이 있으니 이를 ‘하서사군(河西四郡)’이라고 합니다. 이곳이 한겨레 테마여행팀이 가는 답사의 핵심구간입니다. '하서사군(河西四郡)'은 한무제가 설치했습니다. 그 사연을 잠깐 들여다볼까요?

한무제가 북방의 흉노를 견제하려고 돈황의 월지국과 동맹을 맺으려던 즈음 흉노는 초원 지역에서 최초의 대제국을 건설했습니다. 흉노의 왕(선우)은 그들이 정복한 서쪽의 월지에는 우현왕을 두었고, 동쪽에는 좌현왕를 두어 통치했습니다. 한편 한무제는 흉노에게 사로잡혀 소식이 끊긴 장건을 무작정 기다리지 않고 흉노족을 기습하려 했습니다. 하지만 이 계획은 발각 되었고 흉노는 이를 이유로 보복에 나서 대규모로 한나라 국경을 침략했습니다. 그러던 중 한무제의 처조카 ‘곽거병(BC140-BC117)’이 수많은 전투에서 흉노를 물리치고 승리하니 나이 스무살에 군 총수 대장군 바로 밑의 표기장군에 올랐습니다.

전쟁에 참패했다는 소식에 흉노 왕(선우)는 화가 잔뜩 나 우현왕(혼야왕)을 내치려하자 그는 이를 눈치 채고 자신의 군사들을 데리고 한나라에 투항해버렸습니다. 당시 우현왕의 통치 지역이 무위, 장액, 주천, 돈황이었으니 이 네 곳이 한나라로 통째로 넘어간 것입니다. 한무제는 이곳에 한나라 백성을 이주시켜 군을 설치했고, 그래서 ‘하서 4군’입니다. 하서주랑을 장악했으니 중국은 흉노를 더 세게 밀어붙여 고비사막 위로 쫓아냈고 본격적으로 서역과 교류를 시작했습니다. 이 교통로가 ‘실크로드’입니다.

휴~ 서론이 참 길었습니다. 자~ 이제 장건과 함께 난주에서 돈황까지 1098km의 여정, ‘하서주랑’으로 들어가 볼까요?

(이 여행기는 이동구 팀장이 주주, 독자와 함께 한겨레 테마여행 <실크로드 문화답사>를 다녀온 후 지난 해 9월부터 페이스북과 개인 블로그에 실었던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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