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치원에 가기를 거부하다.

1997년 8월 Bronx에 도착했다. 왜 하필 Bronx란 말인가? Bronx는 뉴욕의 5개 자치구 중 하나로 북부에 있는, 좋지 못한 평을 가진 지역이다. 미국행을 선뜻 결정하지 못한 이유 중 하나도 이 지역이 마피아가 꽉 잡고 있으면서 범죄가 들끓는 곳이라는 소문을 들어서도 그랬다. 하지만 남편은 자신이 일하기로 한 대학교 주변은 마피아가 보호하는 지역이라서 Bronx에서 제일 안전한 지역이라고 나를 설득했다. 가보니 진짜 그랬다. 주로 이태리 사람들이 모여 살았고, 꽃을 가꾸는 예쁜 정원을 가진 개인주택이 즐비하고 군데군데 작은 성당도 있었다. 팰함파크라는 큰 공원도 가까이 있어 산책만으로도 기분이 상쾌해지는 동네였다.

그런데 그 대학교에서 걸어서 10분 정도 걸리는 남편이 얻어 놓은 집을 가보니 기가 탁 막혔다. 밤에 가보고 새로 수리해서 깨끗하다는 생각에 내부만 보고 1층의 2베드룸을 3개월 치 월세를 선납하고 계약을 했다는데.... 앞에서 보면 예쁘고 단정한 집인데, 안방하고 부엌 창문을 열면 내다보이는 뒷마당에는 시멘트로 땅을 포장하고 높은 쇠울타리가 둘러져있는 거대한 개집이 있었다. 5마리의 대형 개가 2층 주인집 층계를 내려와 1층 뒷마당을 왔다 갔다 하면서 살았다. 밤에도 2층에서 우당탕탕 뛰어다녀 자다가 깨는 것도 문제지만 1층에 내려와 똥오줌을 싼다는 것이 더 문제였다. 안방 창문과 부엌 창문에서 보면 한 무더기 개똥이 여기저기 있었다. 하루 종일 커튼을 치고 살았고 청소한답시고 얼마나 락스를 뿌려대는지 냄새가 나서 창문을 열 수가 없었다. 남편이 항의하니 주인이 2마리만 2층 집에서 키우고 3마리는 딴 곳에 보낼 거라고 했지만, 주인은 이를 지키지 않았다. 주인에게 약속 위반을 따지며 나가겠다고 했지만 선납기간 돈은 다른 사람이 계약을 하면 돌려주겠다고 했다. 하지만 누가 그런 집에 세를 오겠는가? 돈이 아까워 석 달을 참고 살아야 했다. 얼마나 스트레스를 받았는지 괜히 왔다는 생각까지 들었다. 잠자리가 예민한 나는 밤에 자다가 개 뛰는 소리에 깜짝 놀라 잠도 잘 못자서 하루 종일 피곤하고 우울하기까지 했다. 톡톡히 초기 정착의 고달픔을 치러야만했다

미국에 도착한 후 열흘 정도 만에 아들은 첫 미국공립학교 킨더가든(이하 유치원)에 가게 되었다. 그런데 딸은 걸어서 5분 거리의 집 앞에 있는 학교에 배정을 받았는데 아들은 그 학교 유치원은 정원이 다 차서 스쿨버스를 타고 가야하는 학교에 배정이 되었다.

등교 첫날이 되었다. 솔직히 걱정이 많이 되었다. 매번 새로운 시작을 하는 것이 힘겹기만 한 아들이 또 울면 어쩌지? 그럴 때는 기다려달라고 하고는 달래서라도 태워야하나? 아니면 그냥 태우지 말아야 하나? 그럼 결석하는 건데 말도 안 통하는데 누구에게 뭐라고 말하지? 그런 저런 걱정 끝에 남편에게 함께 가자고 했다.

스쿨버스 타는 곳에 가니 아이들이 줄을 서 있었다. 아들도 줄을 서라고 하니 잘 따라 섰다. 스쿨버스가 왔다. 그런데 우리가 놀란 것은 스쿨버스가 오자 아들은 뒤도 안돌아보고 버스를 탄 것이다. 그리고 창가 자리에 앉아 신나게 손을 흔들며 “안녕” 한 것이다. 남편과 나는 눈이 휘둥그레져서 아니 이게 어쩐 일인가~ 했다.  우리 둘이 내린 결론은 ‘스쿨버스’ 이었다. 아들이 늘 갖고 노는 미니카 중에서 노란 스쿨버스를 제일 좋아했기 때문이었다.

둘째 날도 아들은 별 투정 없이 스쿨버스에 탔는데 첫날처럼 신이 난 표정은 아니었다. 세 번째 날도 스쿨버스에 타긴 탔는데 좌석에 앉아 있는 모습을 보니 얼굴이 확 굳어져 있었다. 웃지도 않았다. 네 번째 날에는 타기 전에 좀 칭얼대며 타지 않으려 했다. 그래도 어찌 어찌 달래서 억지로 탔는데 유치원에 갔다 와서는 유치원이 싫다고 했다. 처음이라 또 그런가보다 생각하고는 왜 그런지 묻지도 않았다.

다섯 째 날도 유치원 가자고 하니 손을 잡고 따라 나와 줄까지 잘 섰다. 그런데 버스 탈 차례가 오자 버스 문의 손잡이를 잡고는 더 이상은 들어가지 않겠다고 버티며 울었다. 계속 다른 아이들을 기다리게 할 수 없어서 다른 아이들을 먼저 태우고 마지막에 다시 태워 보내려고 하니 계속 울었다. 할 수 없이 스쿨버스를 그냥 보냈다. 그 다음 며칠 동안 아들은 스쿨버스 타는 것을 계속 거부했다. 아침마다 유치원에 가겠다고 집을 나서기는 했으나 스쿨버스 타는 차례가 오면 나에게 얼굴을 파묻고 울며 싫다고 고개를 저었다. 억지로 태우려 하면 발버둥을 쳤다. 매일 울고불고 하는 아들을 데리고 버스 타는데 나가 서있는 것이 창피하기도 하고, 저렇게 싫어하는데 억지로 보낼 수 없다고 생각하고는 그냥 집에서 엄마랑 놀면서 편하게 있자고 생각했다.

며칠 동안 집에서 아들과 지냈다. 아들은 스쿨버스가 오는 시간만 되면 밖에 나가서 물끄러미 버스를 쳐다봤다. 버스를 타고 유치원에 가는 아이들이 부러운 듯 했다. 하루 종일 아이와 집에 있는 것은 쉽지 않았다. 개똥과 락스 때문에도 집에 있기 싫었다. 하루는 아이에게 엄마가 같이 유치원에 가주면 가겠냐고 물었다. 아들은 간다고 했다. 학교에 문의했더니 수업시간 중 교실에서 엄마와 아이가 함께 머물러도 되지만 스쿨버스는 함께 못 타고 개인차로 와야 한다고 했다. 그 다음날부터 나는 아들과 같이 유치원에 등교하기 시작했다. 영어도 안 되면서 유치원 수업에 들어가는 것도 부담이 되었지만 하루 종일 전쟁하듯 개들이 뛰어다니고 개똥이 보이는 집에서 열 받아가며 있는 것이 더 스트레스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교실에 처음 들어간 날, 정말 깜짝 놀랐다. 왜 아들이 학교에 가지 않겠다고 하는지 바로 알았다. 그야말로 엉망진창이었다. 선생님은 계속 고성을 질러댔고 아이들은 선생님 말을 안 듣고 날뛰었다. 아니 이게 정말 미국 선진교육이란 말인가?

<다음에 계속>

편집 : 박효삼 편집위원

김미경 부에디터  mkyoung60@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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