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6년도 제작이 되었지만 한국에서는 2013년에 개봉한 영화 <타인의 삶(Das Leben der Anderen, The Lives of Others)>은 독일 영화다.

때는 1984년, '국가안전보위성'에 속한 합법적 비밀경찰(슈타지)과 불법적인 밀고자가 판을 치던 동독에서, 도청 당하던 극작가와 도청하던 슈타지의 이야기를 그렸다. 

이 영화는 독일 감독 '플로리안 헨켈 폰 도너스마르크'의 첫 작품으로 2001년부터 4년 동안 비밀경찰과 그 피해자들을 인터뷰하여 극본 작업을 했다. 약 1년간의 촬영, 그리고 또 1년간의 편집 작업까지 6년에 걸쳐 제작된 영화다. 이런 완성도로 인해 2007년 아카데미 최우수 외국어 영화상을 수상했다. 이밖에도 2006년 유럽 영화상에서 최우수 작품상, 남우주연상, 각본상, 2006년 런던 영화상에서도 최우수 각본상을 수상했다. 특히 2006년 독일 아카데미에서는 최우수 작품상, 남우주연상, 감독상, 남우조연상, 각본상, 촬영상, 편집상까지 상당한 영역에서 상을 싹쓸이했다.

이 영화는 상영시간이 137분으로 길다. 내용이 깊고 긴 영화의 간략한 줄거리는 이러하다.

--- 독일이 통일되기 5년 전, 동독 정부는 비밀경찰인 슈타지로 하여금 국민들을 철저하게 감시한다. 슈타지 본부의 실력 있는 비밀경찰 비즐러는 오로지 국가의 존립 그리고 충성만이 그가 가진 모든 가치요, 신념이다. 사랑, 우정, 인간애 등 사적 감정은 국가를 위해서라면 버릴 수 있는 하위 가치로 보고, 국민은 감시해야하는 물적 대상으로 여긴다. 그는 결혼도 하지 않고 친구도 없이 혼자 산다.

어느 날, 그는 극작가인 드라이만을 도청하라는 임무를 받는다. 비즐러는 드라이만의 생활을 24시간 감시하면서 변해간다. 인간다운 삶, 서로 배려하고 사랑한다는 것의 충만함, 시와 음악이 주는 감동, 심지어 육체적 욕망까지.. 이전에 느끼지 못했던 억눌러 숨겨졌던 감성이 그의 마음속에서 되살아난다.

비즐러는 이 도청이 국가권력의 부당한 폭력이라는 것을 눈치 챈다. 드라이만의 약점을 잡아 그의 연인인, 여배우 크리스티나를 가로채기 위한 문화부 장관의 지시였던 것이다. 비즐러는 드라이만을 도청하던 중 드라이만이 체포될 만한 내용을 엿듣지만 거짓보고로 이를 감춰준다. 비즐러는 이미 드라이만의 삶에 매혹되어 감동하고 있었다.

동독정부의 '요주의 인물'로 감시 받던 친구의 자살에 충격을 받은 드라이만은 동독이 그토록 숨기고 싶어 하는 자살률에 대하여 서독잡지에 기고를 하고, 동독 정부는 이 기고자를 찾아 나선다. 약물 복용으로 조사를 받던 크리스티나는 갖은 협박과 신문 끝에 드라이만이 잡지 기사를 쓴 인물이라고 털어놓는다. 슈타지는 결정적인 증거인 타자기를 찾기 위해 드라이만의 아파트를 수색하지만 찾지 못한다. 비즐러가 타자기를 미리 숨겨 버렸기 때문이다.

이 과정에서 드라이만은 크리스티나가 타자기의 소재를 발설한 사실을 알게 되고, 크리스티나는 수치심과 죄책감을 견디지 못하고 달려오는 트럭에 뛰어들어 자살한다. 비즐러 역시 의도적 수사 방해라는 의심으로 강등되어 어두운 지하실에서 편지 검열하는 업무를 한다.

그로부터 약 5년 뒤, 1989년 비즐러는 베를린 장벽이 무너졌다는 이야기를 듣는다. 비즐러는 세상이 바뀔 것이라는 것을 알고 슈타지에서 사라진다.

2년 뒤, 독일은 통일이 된다. 드라이만은 통일 독일 극작가로 성공한다. 드라이만은 우연히 동독정부에서 자신을 철저히 감시했다는 이야기를 듣고 옛 슈타지 본부를 찾아간다. 자신을 감청한 보고서를 읽은 드라이만은 자신을 보호했던 비즐러의 존재를 알게 된다.

다시 2년이 흘러 비즐러는 서점에서 <선한 사람을 위한 소나타>란 드라이만의 신간소설을 본다. 예전에 드라이만이 피아노로 연주했던 바로 그 곡명과 같은 제목이다.

드라이만은 국가 사찰에 고통 받다 자살한 친구가 작곡했던 그 곡을 비통한 심정으로 연주했고, 비즐러는 이를 몰래 들으면서 처음으로 감정이입이 되어 그 애통함에 눈물을 흘렸던 것이다.

비즐러는 책 첫 장에서 '감사의 마음을 담아 'HGW XX/7'에게 바칩니다.'라는 문구를 본다.  'HGW XX/7'는 그의 슈타지 암호명이었다. 서점점원이 "선물용으로 포장해드릴까요?"라고 물으니 비즐러는 "아뇨, 이 책은 나를 위한 것입니다"라며 책을 구입한다. 그러고 자막은 올라간다. 직접 만나진 못했지만 드라이만은 비즐러에게 감사를, 비즐러는 드라이만에게 감사를 표한 것이다.

2년 전 이 영화를 보았을 때 가장 감동이 왔던 장면은 냉혹하고 악랄했던 비즐러가 드라이만의 삶을 훔쳐보면서 자신의 삶을 돌아보며 변해가는 것이었다. 이념에 사로잡혀 국가에 복종했던 그가, 모든 것의 가치를 국가에 두어 헌신했던 그가, 인간의 본성을 무시하고 경멸했던 그가.. 서서히 사라졌던 인간성을 회복하면서 눈물도 흘리고, 행여나 드라이만과 크리스티나가 잘못될까 안절부절못하는 그의 모습이 가장 감동적이었다.

하지만 지금은 다른 것이 더 생각이 난다. 대테러방지법 때문이다. 이법으로 국정원은 영장 없이도 얼마든지 합법적인 도청 즉 감청을 할 수 있게 된다. 국정원장이 '테러로 의심하면' 가능한 것이다.

1989년 통일 당시, 동독정부는 약 9만명의 공식 비밀경찰, 약 17만명의 비공식 비밀경찰(밀고자)을 두었다. 언제든지 활용가능한 도ㆍ감청요원이다. 그들을 통해 동독정부는 ‘국민들의 모든 것을 알기'로 작정했다. 반정부인사, 슈타지에 의해 지목된 '요주의 인물' 그리고 권력자의 탐욕에 의하여 희생양이 될 시민들까지, 무고에 의한 것이든 아니든 따지지 않고 직장생활, 사회생활, 가정생활까지 모두 도청했고, 어떤 국민들은 자신의 사생활을 스스로 털어놓아야만 했다. 비정상적인 국가권력이 어떻게 개인의 삶에 개입해서, 파괴하고, 결국은 죽음에까지 이르게 하는지 우리는 실제 있었던 사건들을 조합해서 만든 저 영화에서 적나라하게 보았다.

대한민국의 대테러방지법은 과연 누구를 감청하게 될까? 국가가 국민을 의심의 대상으로 보고, 혹은 '요주의 인물'로 보고 파악하려 들 때, 드러나는 국가권력의 폭력성은 길 가다 재수 없으면 걸리는 무법적 깡패의 폭력과 뭐가 다를까? 부디 동독정권의 하수인으로 전락했던 슈타지와 같은 국정원이 되지 않기를 바라지만, 국정원 댓글조작 선거개입사건, 유우성씨 간첩조작사건 등 여태껏 보여준 국정원의 모습은 슈타지의 모습에서 멀리 떨어져 있지 않다. 대한민국이 30여 년 전 공산독재국가를 따라가는 건가?

여기에 한 가지 우려되는 것이 더 있다. 지금 우리나라의 자살률은 2003년 이후 12년째 OECD 국가 중 1위다. 2014년에는 10만 명당 27.3명으로 OECD 평균 12.2명보다 2배 높았다. 1980년 동독의 자살률은 10만 명당 약 33명이었다. 그 당시 주변국보다 3배가 높았다. '요주의 인물’로 지목된 사람들은 일상을 사찰하고 범죄자로 만드는 사회에서 정상적인 삶을 영위할 수 없었다. 억울하고, 분노해서 그리고 결백을 주장하기 위해서 자살을 택했기에, 정부는 이를 극구 감추고 싶어했던 것이다. 그렇지 않아도 OECD 자살률 1위를 가지고 있는 이 척박한 나라에 ‘감시사회’까지 더해진다면 어떤 결과가 오게 될까? 안 봐도 뻔하다. '자살공화국'에 '감시공화국'이라는 오명을 안고 .. OECD 국가중 독보적인 자살률을 기록하게 될 거다. 참으로 인정하고 싶지 않고, 후손에게 너무나 부끄러운 대한민국의 모습이다.

참고기사 : 동네 내과서도 우울증 진단…자살 1위 벗을까 http://www.hani.co.kr/arti/society/health/732109.html

편집 : 이미진 편집위원

김미경 부에디터  mkyoung60@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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