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름보다 꽃이 앙증맞은 큰개불알풀
식물 중에는 이름을 부르기 좀 거북한 것들이 더러 있다. 큰개불알풀도 그 중 하나이리라. 그러나 꽃은 그 이름과는 전혀 딴판으로 앙증맞다. 이 예쁜 꽃을 처음 대면하는 사람치고 왜 큰개불알풀이란 해괴한 이름을 갖게 되었을까 의아해 하지 않을 사람이 있을까? 별다른 봄꽃들을 볼 수 없는 이른 봄 양지바른 길섶에 무리지어 피어 있는 모습은 참으로 장관이다. 땅바닥에 낮게 깔린 초록의 잎 위로 연한 코발트빛 화관을 일제히 펼친 모습을 보면 와! 하는 탄성이 절로 난다.
큰개불알풀이란 국명은 식물체가 개불알풀보다 큰 데서 유래한다. 개불알풀은 우리나라 초기 분류학자 정태현이 쓴 한국식물도감(1956)에서 그 이름을 찾아볼 수 있다. 개불알풀은 큰개불알풀보다는 꽃이 훨씬 더 작고 꽃 색이 연한 붉은빛이 도는 흰색이라서 눈에 잘 띄지도 않는다. 한편 정태현보다 먼저 박만규는 우리나라식물명감(1949)에서 개불알풀을 ‘봄까치꽃’이라 명명하고, 한국쌍자엽식물지(초본편, 1974)에서는 중국명 그대로 ‘지금(地錦)’이라 했다. 땅에 비단처럼 곱게 깔려 있다는 뜻의 ‘지금(地錦)’보다는 까치가 반가운 손님이 올 것을 미리 알려 주듯 봄이 오고 있음을 알리는 꽃이란 뜻의 ‘봄까치꽃’이 참 좋다. 우리 고유어로 조어(造語)되어 있음은 물론 우리 민족의 정서까지 깔려 있어 훨씬 정감이 가기 때문이다. 그런데 왜 굳이 ‘개불알풀’이란 이름이 후대에 일반화되었을까?
내가 처음 이 식물을 만났을 때 앙증맞을 정도로 예쁜 이 풀꽃을 왜 큰개불알풀이라 했는지 도무지 수긍이 가지 않았는데 그 연유가 일본명에 있음을 나중에야 알았다. 일본에서는 열매가 개의 불알과 비슷하다 하여 이 풀꽃을 ‘イヌノフグリ(이누노후구리, 犬の陰囊)’라 부른다. 우리말로 곧 ‘개불알’이다. 큰개불알풀 역시 식물체가 개불알풀보다 크다 하여 ‘オオイヌノフグリ(오이누노후구리, 大犬の陰囊)’, 곧 ‘큰개불알’에서 연유한다. 이런 이유 때문일까, 북한에서는 큰개불알풀을 ‘왕지금꼬리풀’이라 부른다. 큰개불알풀의 중국명 ‘왕지금(王地錦)’과 개불알풀의 영명 ‘Field Speedwell’에서 따온 ‘꼬리풀’을 합성한 말이다. 식물명에서도 일제의 잔재를 철저히 청산한 북한의 언어정책을 엿볼 수 있다. 우리나라에서도 개불알풀을 일찍이 ‘봄까치꽃’이라 했으니 큰개불알풀도 ‘큰봄까치꽃’이라 부르고 이를 일반화했으면 좋았을 걸 하는 아쉬움이 남는다.
큰개불알풀을 학명으로는 ‘Veronica persica Poir.’라 한다. 속명 ‘Veronica’는 성경에 나오는 성녀 ‘베로니카’에서 온 것이다. 종소명 ‘persica’는 원산지나 자생지가 ‘페르시아’란 뜻이다. 물론 ‘Poir.’는 이 식물의 학명을 처음 명명한 사람이다. 속명 ‘Veronica’는 현대 식물분류학의 기초를 확립한 린네가 최초로 명명한 것인데 왜 그랬을까? 성녀 베로니카는 누구인가? 예수가 가시관을 쓰고 피땀을 흘리며 형장으로 끌려가는 모습을 보고 애처로워 수건으로 얼굴을 닦아 드린 바로 그 여자다. 그런데 베로니카의 이 수건에는 기적처럼 예수의 얼굴이 찍혀 있었다. 린네는 큰개불알풀의 꽃 속에서 예수의 얼굴 형상이 비치는 것을 본 것이다. 그러니 이 꽃이야말로 예수의 얼굴이 박힌 성녀 베로니카의 수건과 같은 꽃이라고 생각했다. 학명을 풀어 보면 페르시아 지방에 나는데 꽃 속에 예수의 얼굴이 어리어 바로 그 베로니카의 수건이 연상되는 풀꽃이란 뜻이다. 듣기조차 거북한 큰개불알풀이라는 이름과는 달리 얼마나 성스러운 느낌마저 주는가?
큰개불알풀은 원산지가 유럽, 서아시아, 아프리카인데 광복 이전에 우리나라 남쪽지방에 들어온 것으로 추정된다. 지금은 중부지방까지 영역을 넓혀 다소 습기가 있고 햇볕이 잘 드는 길가나 빈터, 특히 천변에서 흔하게 만나볼 수 있는 현삼과의 두해살이풀이다. 우리나라 현삼과 ‘개불알풀속(Veronica)’ 식물에는 개불알풀 종류 이외에 문모초, 방패꽃, 물칭개나물 종류, 꼬리풀 종류 등 약 20여 종이 분포한다. ‘개불알풀’ 돌림의 형제뻘 되는 ‘큰개불알풀, 눈개불알풀, 좀개불알풀, 선개불알풀’은 모두 고향이 외국인 귀화식물인데 비해 특이하게 ‘개불알풀’만 유독 우리나라 자생종이다.
큰개불알풀의 줄기는 길이가 15~30cm인데 옆으로 낮게 기면서 끝이 솟아오른다. 아래쪽 잎은 마주나지만 위쪽은 어긋난다. 잎몸은 길이 1~2cm의 세모꼴 계란형인데 잎가장자리에 서너 쌍의 톱니가 있다. 꽃은 3월부터 9월에 이르기까지 잎겨드랑이에서 1개씩 핀다. 꽃자루는 길이 1~4cm로 가늘다. 꽃받침은 4개, 화관은 연한 코발트색으로 지름이 8mm 정도이며 열편이 4개이다. 그 중 앞쪽의 것 1개는 다소 작다. 삭과(蒴果)는 크기가 길이 5mm, 폭 10mm, 거꿀심장형이고 납작하다. 가장자리에는 긴 털이 있고 8~15개의 씨가 들어 있다.
큰개불알풀의 꽃을 찬찬히 들여다본 적이 있는가? 화관 열편에는 진한 코발트빛 선이 중앙을 향해 여러 개 나 있고, 화관 가운데에는 2개의 수술과 1개의 암술이 있다. 이러한 꽃의 구조는 우연일까? 나름의 고도의 전략이 있어서다. 이 선은 꿀을 찾는 곤충을 꿀샘으로 직행시키기 위한 가이드라인 역할을 한다. 왜 암술은 수술보다 길까? 딴꽃가루받이를 위한 전략이다. 가이드라인을 타고 착륙한 곤충은 길게 나온 암술을 먼저 스치지 않고는 꿀샘에 들어갈 수 없을 것이다. 이미 다른 꽃에서 꿀을 먹고 온 곤충은 다른 큰개불알풀의 수술에서 유전자가 다른 꽃가루를 묻혀 왔을 것이다. 건강한 자손을 위해 사람이 근친혼을 피하듯 식물도 가급적 제꽃가루받이를 피하고 딴꽃가루받이를 선호한다. 그래야 자손의 유전자가 다양해져 나쁜 환경에서도 잘 살아 남을 수 있기 때문이다.
참고 : <풀들의 전략> 이나가키 히데히로 저, 최성현 번역, 도솔 오두막
편집: 양성숙 편집위원, 김미경 부에디터
한겨레신문 주주 되기
한겨레:온 필진 되기
한겨레:온에 기사 올리는 요령
감사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