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회 '한경희통일평화상' 시상식이 29일 저녁 7시 서울 중구 프레스센터(매화홀)에서 故 한경희 여사 가족 등 100여 명이 참석한 가운데 열렸다.

'한경희통일평화상'은 1982년 안기부가 조작한 ‘송씨일가 간첩사건’의 총책으로 누명을 썼던 고 한경희 여사의 명예를 회복하고 그 삶을 기리며 더 이상 그런 아픔이 이 땅 위에 일어나지 않기를 바라는 마음에서, 故 한경희 여사의 아들로 간첩 누명을 썼던 송기수와 그 가족이 기금을 내어 제정하고 성공회대학교와 평화박물관에게 운영을 맡겼다.

제1회 '한경희통일평화상' 심사위원회는 지난 15일 시민사회운동 현장 활동가인 이요상씨를 초대 수상자로 뽑았다.

[수상 소감 전문보기] http://www.hanion.co.kr/news/articleView.html?idxno=2773
[관련기사 보기] http://www.hani.co.kr/arti/society/media/735259.html

이해동 평화박물관 대표는 인사말씀으로 “이 상은 민족적 양심과 동족애의 뜻이 담긴 상”이며 “분단으로 말미암은 민족사의 아픔이 서려있고 민족통일의 열망과 평화에의 갈망이 깃들어 있다.”고 말했다.

▲ 이해동 평화박물관 대표의 인사말씀

이어 한홍구 성공회대 민주자료관 관장의 '송씨일가 간첩사건과 고 한경희여사'에 대한 동영상 강연이 있었다. 일본 유학까지 한 인텔리 여성인 고 한경희 여사가 월북한 남편으로 인해 빨갱이 아내로 어떤 고단한 삶을 살았고, 77년 사망한지 5년 지나 전두환 정권의 고문에 의해 무덤에서 간첩 총책이 되고, 자식까지 간첩으로 조작되고, 대법원에서 유죄로 형이 확정되었으나 2009년 재심에서 무죄가 선고되었던 과정을 상세히 설명하였다.

▲ 한홍구 추모강연(송씨 일가 사건과 한경희 여사)

고광헌 전 한겨레 사장이자 '한경희통일평화상' 심사위원은 “현장에서 직접 몸으로 뛰는 시민활동자 중에서 뽑는 것이 그 취지에 맞는다고 생각하여 2008년 촛불집회 이후 9여 년 동안 여러 시민운동 현장에서 열정적인 참여와 헌신으로 새로운 시민의 등장을 알린 이요상씨를 수상자로 선정했다”고 말했다.

▲ 고광헌 전 한겨레사장의 심사경위와 선정이유 발표

이어 이요상 주주는 수상소감에서 “고 한경희 여사님 가족들에게 위로와 감사를 드라고 고 한경희 여사님의 영전에 애도를 표한다.”며, “ 이 상은 이름 없는 수많은 시민활동가와 함께 받는 상이며, 앞으로도 우리 사회 곳곳의 위대한 시민들과 함께 세상을 바꿔나가는데 매진하겠다.“고 말했다.

▲ 신인령(전 이화여대 총장, 한경희통일평화상 심사위원회 위원장)의 시상

 

▲ 이요상주주의 수상 소감 발표

이정구 성공회대학교 총장은 축사를 통해 “한겨레주주통신원으로 주류 언론사들이 담아내지 않는 평화와 인권을 위한 시민단체의 목소리를 전달하는 역할을 해왔다.”며 “한 어머니나 주부로 머물지 않고 한 사회의 시민으로서 이웃과 소통하고 나눔과 섬김의 실천을 보여준 이요상님께 감사드린다.”고 말했다.

▲ 이정구 성공회대 총장의 축사

김태동 성균관대 명예교수는 “이 사회에 천사가 있다면 요요천사(이요상 닉네임)라고 생각한다.”며 “요요천사를 4년 전 알게 되었는데 자신을 시민활동으로 이끈 길잡이”라고 하였다. “요요천사는 매일 아침마다 ’오늘의 시민사회 일정‘을 SNS에 올리는 것뿐만 아니라 직접 현장을 찾아가는 천사인데 아픈 몸을 이끌고 무리하게 다니지는 말아 달라.”고 당부했다.

▲ 김태동 성균관대 명예교수의 축사

마지막으로 고 한경희 여사의 막내아들인 송기수씨는 “어머님의 흔적을 어떻게든 남겨야 한다고 마음먹고, 이 땅에서 고통당하는 수많은 한경희를 위하여 어머님의 이름으로 눈물을 닦아 드리기 위해서 이 상을 제정했다."며 “시민활동가 중에 수상자를 선정한 것이 족집게 선정이라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 송기수 유가족 인사 말씀

송기수씨는 “어머님의 사진, 어머니와 대화를 담은 초등학교의 일기도 전부 정부에서 압수해갔고, 무죄판결 후에도 증거물이 다 폐기되었다면 돌려주지 않았다”며 어머님과의 추억이 담긴 기록물이 얼마 없는 것을 아쉬워하며, 초등학교 3학년 시절 엄마와 함께 겪었던 일을 회고하면서 눈물을 보였다.

하루는 엄마와 함께 새벽에 기차를 타러 음성역에 갔는데 2-3명의 남자들이 다가왔다. 엄마는 그들과 한참을 옥신각신 하더니, 사이다와 건빵을 사주면서 역에서 꼼짝 말고 기다리라고 하고는 그 남자들을 따라갔다. 엄마는 아무리 기다려도 오지 않았다. 혼자 역에 앉아 애타는 마음으로 엄마를 기다렸다. 해가 뉘엿뉘엿 넘어가려 할 때 엄마가 오셨다. 엄마는 기차에 타서 나를 꼭 끌어 안고 눈물을 흘리셨다. 엄마는 10시간 동안 누군가에게 시달리다 오셨던 것이다. 그 때 이후로 건빵과 사이다, 충북선만 보면 엄마 생각에 마음이 아프다고 했다.

송기수씨는 “이 상은 통일이 되는 그날까지 자식인 두 남매가 맡아서 20~30년 이어갈 것이다”고 말했다. 또한 “이 상과 별개로, 소방대원 중 의인을 선정하여 300만원을 시상할 것이다”고 하여 큰 박수를 받았다.

관련기사 :“무덤에서도 잠 못 든 어머니 넋 기려 ‘한경희상’ 드립니다.” http://www.hani.co.kr/arti/society/society_general/734104.html

이어 이요상 수상자과 송기수 가족과 축하객들은 이 나라의 민주주의와 정의를 위한 한 마음으로 기념사진을 촬영하고 시상식을 마쳤다.

행사 동영상 기사 보기 : http://www.hanion.co.kr/news/articleView.html?idxno=2780

‘송씨 일가 간첩단’ 사건이란 : 10.26 사건으로 권력 내부에서 위상이 실추된 중앙정보부는 국가안전기획부(안기부)로 이름을 바꾸고 옛 영화를 되찾기 위해 여러 간첩 사건을 조작했다. 그 대표적인 사건이 1982년 9월 10일 발표된 서울-충북 거점 고정간첩단 사건(송씨 일가 간첩단 사건)이다. 안기부는 ‘한경희는 정계, 송지섭은 군사, 송기준은 산업계, 송기섭은 공무원 층, 한광수. 송기복은 학원 등에 침투케 하여 국가기밀을 수집 보고하는 등 25년 간 고정간첩단으로 장기 암약했다’고 발표했으나, 정작 공소장 어디에도 이런 사실은 나오지 않는다.

1심에서 이들은, 기소 내용은 모두 안기부의 고문에 의해 조작된 것이라고 주장했으나 1심재판부는 공소장 내용을 그대로 인용하여 사형 2명 등 중형을 선고했고, 2심은 사형을 징역 25년으로 감경했으나 여전히 중형을 선고했다. 대법원에서는 유일한 증거인 자백이 불법구금에 의한 것이라며 무죄를 선고했다. 그러나 파기환송심은 ‘상급심은 하급심을 기속한다’는 법원조직법 원칙을 무시하고 이례적으로 하급심이 상급심을 치받아 유죄를 선고했다. 대법원이 다시 무죄를 선고했지만 서울고법의 재파기환송심은 또 다시 유죄를 선고했고 세 번째 대법원에서 열린 재재파기환송심에서 유죄로 형이 확정되었다.

공안사건으로는 드물게 총 7차례의 재판이 진행되어 ‘핑퐁재판’으로 많은 논란을 빚었으며, 이 사건은 2007년 국정원 과거사위원회의 재조사에서 조작된 것으로 규명되었고 2009년 재심에서 무죄가 선고되었다. (출처 : 제1회 한경희통일평화상 자료집)

사진 : 권용동 주주통신원, 동영상 : 박효삼 편집위원

편집 : 이동구 에디터

김미경 부에디터  mkyoung60@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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