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치원에 적응하다.

아들 유치원의 한 반 학생 수는 약 15-17명 정도이었고 담임선생님 한분과 보조선생님 한분이 계셨는데 보조선생님은 매번 수업에 들어오지는 않았다.

아들 수업에 처음 들어간 날은 나에게는 첫날이었지만, 수업은 이미 보름 정도 지난 상태였다. 보름 정도 지났기에 초기 정착이 끝났을 거라고 예상한 나의 생각은 완전히 빗나갔다. 남자 아이 2명이 심각한 수준으로 수업을 방해해서 교실은 난장판이 되었다 말았다 했다. 예전 한국 유치원에서 아들의 수업방해 행동과는 비교가 되지 않았다. 그 두 아이가 다른 아이들을 괴롭히며 날뛰기 시작하면 수업은 제대로 진행되지 않았다.

이 두 아이 중 한 명(가명 타미)은 미국에 온지 얼마 안 되는지 아니면 언어발달이 안된 건지 영어를 한마디도 못하는 아이였다. 영어만 못하면 다행인데.. 타미는 공부시간에 돌아다니는 것은 기본이고, 가만히 앉아서 지시사항을 따르고 있는 아이들 머리를 때리고, 교재를 빼앗고, 이상한 소리를 지르고, 사람들과 눈도 마주치지 않으면서 날뛰는 아이였다. 다른 아이(가명 제이)는 타미보다는 약하기는 하지만 비슷하게 아이들을 괴롭혔다. 제이는 영어로 의사소통이 되어 선생님이 그럭저럭 말로 다룰 수 있었으나 타미는 선생님과 전혀 소통이 되지 않았다. 정말 통제하기 어려운 아이였다.

보조선생님이 수업에 들어오시면 타미를 전담했고, 담임선생님은 제이를 살살 달래가면서 수업을 진행하셨다. 그런데 보조선생님이 수업에 안 들어오거나, 다른 아이를 돕는다거나 하면 교실은 순식간에 엉망진창이 됐다. 타미는 책상 위로 뛰어 다니며 아이들을 괴롭히고 제이는 덩달아 타미를 따라 돌아다녔다. 선생님은 계속 타미와 제이에게 자리에 앉으라고 소리를 지르다가 수업시간이 다 지나갔다. 아이 둘의 괴성과 폭력, 선생님의 고성으로 몇몇 아이들은 울기도 했고 대부분 다른 아이들은 놀라 아무 것도 못하고 멍하니 있기 일쑤였다.

점심을 먹으려고 줄을 설 때조차도 전쟁터 같았다. 두 아이가 다른 아이들을 밀고 잡아당기고 때리고 하면서 괴롭히기 때문에 여기저기서 선생님께 ‘쟤가 때린다.' '쟤가 어떻게 했다.’하며 계속 일렀다. 나는 속으로 ‘와~~ 미국 유치원 교육이 이런 건가? 아들이 안 간다고 할 만하구나. 며칠 동안 견딘 것만 해도 장하네.’라고 생각했다. 누가 놀자고 툭툭 치며 건드리는 것도 싫어하는 아들인데, 저런 폭력적 상황이라면 단 하루도 견디기 힘들었으리라.

그런 수업을 보고 나니, 유치원에 보내고 싶은 생각이 없어졌다. 첫날 수업을 마치고 집에 와서 아들에게 유치원을 쉬고 싶으면 쉬어도 된다고 했다. 그런데 아들은 유치원에 계속 가고 싶다고 했다. 이상한 일이었다. 할 수 없이 그 난장판 수업에 매일 가야했다. 수업에 들어가서 내가 하는 일은 아들 바로 옆에 앉아서 선생님의 지시사항을 알려주는 것이었다. 나도 다 알아듣지 못해서 대충 눈치로 알려주었다.

유치원에서 본 아들의 행동은 별로 특이한 것이 없었다. 선생님들도 그냥 제2외국어 권에서 온 영어로 의사소통이 안 되는 아이로 보는 것 같았다. 그렇게 아들 바로 옆에서 한 달을 지냈다. 한 달 정도 지나고 나니 나보다 선생님 지시사항을 더 잘 알아듣는 것 같았다.

대인관계도 달라지기 시작했다. 한국 유치원에서는 아들이 혼자서 놀았다고 했는데 다른 아이들과도 조금씩 어울리기 시작했다. 아이들은(유치원부터 초등 6학년까지) 점심식사 후 선생님이 점심식사를 할 약 2-30분 동안, 놀이터가 있는 운동장에서 놀았다. 아들은 처음에 내 옆에 앉아서 아이들이 노는 걸 그냥 지켜보기만 했다. 좀 지나자 놀이터에 가서 놀기 시작했고, 좀 더 지나자 다른 아이들과 웃으며 노는 모습이 보였다. 점심시간이 끝나고 줄을 서라는 선생님 지시사항이 들리면 신이 나서 달려가 맨 앞에 줄을 서기도 했다.

그래서 조금씩 떨어져야겠다고 생각했다. 수업시간에는 바로 옆이 아니라 뒤에서 아들을 지켜보았다. 보조선생님이 들어오지 않는 시간이면 통제 불가 타미를 데리고 뒤에 가서 꼭 안아주었다. 귀에다 대고 아주 작게 한국동요를 불러주거나, one, two, three~~~를 속삭여주었다. 그러면 타미는 가끔 발버둥을 치며 내 품에서 빠져나가려고도 했지만, 키득키득 웃으며 내 품에 안겨 가만히 있기도 했다. 아들은 그런 나를 힐끗 쳐다보기만 했지 자신의 옆으로 오라고 요구하지 않았다.

한번은 음악수업에 들어갔을 때였다. 아들은 어려서부터 노래를 좋아하고 잘했다. 누나보다 청각적 예민성이 더 발달한 것 같았다. 처음 들은 노래도 다음에 다시 듣게 되면 언제 어디서 나온 곡이라고 정확히 알아맞혔다. 수업에 들어가 보니 아들은 역시 박자와 음정을 정확하게 맞추면서 노래를 빨리 따라했다. 즐거워 보였다. 어느 날, 음악선생님께서 오시더니 “당신 아들은 오케이입니다. 문제가 없습니다. 하지만 타미는 오케이가 아닙니다. 저 아이는 우리가 다루지 못할 겁니다.” 라고 했다.

한국에서 자폐증후군을 가진 것 같다는 소리까지 들었는데, 한 달 이상을 지켜본 선생님께서 ‘아들은 문제없다.’고 하니 그동안 말도 안 통해서 누구와 이야기도 못 나누고, 점심도 굶어가며 학교에서 지냈던 일들이 생각났다. 왠지 모를 서러움에 목이 메어 어떤 말도 못하고 눈물을 글썽이며 그저 ‘Thank you’만 서너번 했다.

아들은 그렇게 서서히 적응했다. 처음에는 아들 바로 옆에서, 그 다음은 뒤에서, 그 다음은 마지막 수업 전에 먼저 나오고 아들은 그렇게 좋아하는 스쿨버스를 타고 집에 왔다. 그 다음은 점심시간 전에 먼저 학교를 나왔다. 약 두 달 반이 지나자 아침에 스쿨버스를 타고 혼자 가겠다고 했다. 엄마 없이 유치원생활을 할 수 있게 된 것이다. 다른 아이들은 99% 엄마 없이도 스스로 적응하겠지만 그렇게 엄마랑 적응한 것이 별 것도 아니겠지만 나는 그렇게 적응해준 아들이 고맙고 사랑스러웠다. 나도 드디어 다른 엄마들처럼 스쿨버스를 타는 아들에게 당당히 ‘바이바이’를 할 수 있게 되었고, 스쿨버스에서 내리는 아들을 두 팔을 크게 벌려 맞이할 수 있게 된 것이다.

아들 유치원 수업에 들어가면서 알게 된 것 몇 가지가 있다. 미국에서는 유치원 과정에서 'Sorry'와 'Thank you'를 철저히 교육시킨다는 것이다. 특히 'Sorry'는 아주 중요한 단어였다. 제이나 타미가 아이들을 때리면 ‘Sorry'할 때까지 기다렸다. 타미는 전혀 말이 안 통하는 아이니까 선생님도 포기하셨지만 제이는 ’Sorry'할 때까지 ‘생각하는 의자’에 앉혀 두고 계속 ‘Sorry' 할 것인지 물었다. 그 아이가 ’Sorry' 하면 다음 단계로 넘어갔다. 수업 진도를 나가지 못해도 ’Sorry' 하는 것이 먼저였다. 점차 수업은 안정되어 갔고, 아이들은 수시로 ’Sorry'라고 말하면서 스스로 상황을 해결해갔다.

미국에 가자마자 아는 한국인이 실제 있었던 일이라고 하면서 이런 말을 해준 적이 있다. 한국사람이 문을 열고 나가려는데 먼저 문을 열고 나간 미국사람이 문을 잡고 기다려 주었다. 한국사람이 그냥 쓱 나가니까 미국사람이 이렇게 물었다고 했다. “Where is Thank you?" 미국 사람은 조그만 일에도 'Thank you'가 습관적으로 나온다. 이것이 바로 유치원에서부터 받은 교육이다. ’Sorry'와 'Thank you'는 사회생활에서 문제해결의 키워드가 되는 것이다.

또 한 가지는 ‘Line up(줄서기)'이다. 미국 유치원은 한 교실에서 모든 수업을 다 하지 않는다. 예체능, 수학, 과학수업 등은 이동수업을 한다. 이럴 때 무조건 'Line up' 해야 한다. 점심 먹으러 식당에 갈 때도 ‘Line up', 먹고 들어올 때도 ‘Line up' 한다. 새치기 하는 학생이 있으면 선생님께 말하다. 그럼 맨 뒤로 가야한다. 어느 곳에서나 ‘Line up'으로 스스로 질서를 잡아가는데 익숙한 미국인들.. 어린 시절의 철저한 ‘Line up' 교육 때문일 거다.

세 번째로 무슨 문제가 발생하면 아이들이 직접 처리하지 않는다. 무조건 선생님께 말한다. 한국으로 치면 고자질인데 미국에서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다. ‘쟤가 때려서 나도 때렸다.’라는 자가응징은 용납되지 않는다. ‘쟤가 때리면 선생님께 알려야 한다.’가 정답이다. 아이들은 선생님이 해결해줄 때까지 참고 기다린다. 학교에서 발생한 모든 문제는 선생님이 해결해 준다고 믿기 때문이다. 한국하고 무척 다르다.

마지막으로, 처음에 아이들은 타미에 대하여 무수히 선생님께 말했지만 점점 선생님께 말하는 것이 줄어들었다. 아이들도 서서히 알아가게 된 것이다. 타미는 자신과 다른 아이라는 것을.... 선생님도 어쩔 수 없는 아이라는 것을... 나중에 아이들은 타미의 행동을 많이 봐주고 참았다. 타미는 결국 유치원을 그만 두었지만 그동안 타미를 대하는 아이들의 태도는 진일보했다. 뭐랄까? 아이들에게서 약자에 대한 너그러움을 보았다고나 할까?

편집 : 박효삼 편집위원

김미경 부에디터  mkyoung60@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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