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강댐 건설계획으로 수장될 뻔한 동강할미꽃

봄기운이 완연하다. 온갖 봄꽃들이 한꺼번에 만발한다. 매화, 산수유 꽃이 핀게 엊그제 같은데 개나리, 백목련, 살구꽃에 이어 벚꽃, 진달래가 한창이다. 우리네 세월은 하수상(何殊常)하여 봄 같지 않건만 계절은 그야말로 만화방창 호시절이 도래했다. 뒤뜰에 나가봐도 좋고, 동네 빈터나 길섶을 느릿느릿 걸으며 자세를 낮추고 눈길을 주어 보시라. 파릇파릇 돋아나는 새싹과 함께 별꽃, 벼룩이자리, 큰개불알풀, 봄맞이 등 작은 풀꽃들, 온갖 제비꽃 종류들이 꽃잔치를 벌인다. 양지바른 뒷동산에라도 올라가 보면 양지꽃, 조개나물, 할미꽃 한두 개체쯤은 으레 만날 수 있으리라. 할미꽃과 함께 떠오르는 동강할미꽃, 석회암 절벽 바위틈에 뿌리를 내리고 동강 물줄기를 굽어보며 피어 있는 보랏빛 동강할미꽃은 지금도 눈앞에 선연하다.

▲ 석회암 바위틈에 뿌리 내린 동강할미꽃

지질학자의 연구에 의하면 동강 유역의 현재 지형은 4억 5000만 년 전에 바다가 융기하여 형성된 석회암층인데, 약 2억 년 전에 단층운동과 습곡운동의 영향으로 형성되었다고 한다. 현재에도 하천운동으로 인한 퇴적작용과 침식작용 등이 계속 진행되고 있어 이 유역 일대에 동굴과 기암절벽이 많다. 사람들의 접근이 쉽지 않은 지형적 특성으로 인해 생태계 역시 잘 보존되어 있다. 수달과 같은 멸종위기 포유류와 어름치, 쉬리 등의 담수어류, 솔부엉이, 원앙, 흰꼬리독수리, 까막딱따구리 등의 조류 등 희귀동물도 많이 서식한다. 뿐만 아니라 백부자, 참골담초 등의 멸종위기야생식물과 동강고랭이, 동강할미꽃과 같은 한국특산식물도 자생한다. 한 마디로 생물종다양성이 여느 지역보다 풍부한 생태계의 보고라 할 만하다.

그런데 자연경관이 뛰어나고 생물종다양성이 풍부한 동강 유역이 한때 수장될 뻔한 위기가 있었다. 1993년 영월 일대 읍내의 절반 이상이 물에 잠긴 대홍수가 발생했다. 이에 정부에서는 동강댐 건설계획을 세우고 1996년부터 2002년까지 사업 기간을 정해 댐건설 사업을 시작하였다. 그러나 환경단체와 지역 주민들의 끈질긴 반대와 동강댐타당성 검토를 위한 공동조사단의 최종 연구 결과를 받아들여 김대중 정부에서는 2000년 6월 건설계획을 백지화하였다. 동강할미꽃을 비롯한 식물들은 동물들과는 달리 꼼짝없이 수장될 뻔한 위기를 가까스로 모면한 것이다. 그 이후 환경부에서는 평창군과 영월군의 동강 일대를 생태계보존지역으로 지정하여 보호하고 있다. 정선군에서는 동강할미꽃을 정선군을 상징하는 꽃으로 지정하고, 동강할미꽃마을 귤암리에서는 올해로 열 번째 동강할미꽃 축제를 열어 꽃을 좋아하는 사람들을 불러들인다.

▲ 꽃이 풍성한 동강할미꽃

그러나 동강할미꽃으로 세상에 알려지기까지는 그리 오래되지 않는다. 동강 지역에 사는 사람들은 이 꽃을 우리가 무덤가에서 흔히 만나보는 것과 같은 그냥 ‘할미꽃’으로 알고 그렇게 불렀다. 그러던 것이 1998년 야생화 사진작가 김정명 씨가 동강 유역 생태사진을 찍다가 이른 봄에 이 꽃을 발견하고 사진에 담아 “한국의 야생화”라는 꽃달력을 만들어 세상에 소개한다. 이를 본 식물분류학자 이영노 박사는 본격적인 연구를 거듭한 결과 우리나라 신종으로 결론을 내고 한국식물도감(1996)에 ‘동강할미꽃’이란 이름으로 등재하여 처음 소개한다. 물론 ‘동강할미꽃’이란 국명은 자생지인 ‘동강’과 “뒷동산의 할미꽃 / 호호백발 할미꽃 젊어서도 할미꽃 / 늙어서도 할미꽃”과 같은 우리 전래동요 속에 나오는 것처럼 꽃이 필 때 꽃대 끝에 달린 꽃이 허리 굽은 할미처럼 아래쪽을 보고 있는 속성과 꽃이 지고 나서 긴 암술대가 달려 있는 모양이 마치 백발노인 같은 데서 유래한 국명 ‘할미꽃’을 합성한 말이다. 아울러 이영노·이창복 박사가 2000년에 우리나라 식물분류학회지에 ‘Pulsatilla tongkangensis Y. N. Lee & T. C. Lee’라는 학명으로 기재하여 정당공표함으로써 세계 식물학계에 알려졌다. 또한 기본종인 동강할미꽃 이외에 여러 가지 형질의 특성을 중시하여 ‘겹동강할미꽃, 긴동강할미꽃, 흰동강할미꽃, 분홍동강할미꽃’ 등을 품종으로 잇달아 기재하였다. 속명 ‘Pulsatilla’는 ‘치다, 울다’의 뜻인 라틴어 ‘pulso’에서 온 것인데 꽃의 생김새가 종(鐘) 모양과 비슷한 데서 유래한 것이다. 종소명 ‘tongkangensis’ 는 ‘동강에서 나는’의 뜻으로 자생지를 밝힌 것이다.

▲ 품종 분홍동강할미꽃

우리나라에 분포하는 미나리아재빗과의 할미꽃속(Pulsatilla)에는 분홍할미꽃, 노랑할미꽃, 산할미꽃, 할미꽃, 동강할미꽃, 가는잎할미꽃 등 7가지 종류가 있다. 제주도에 분포하는 기본종 가는잎할미꽃은 변종인 할미꽃에 비해 모인꽃싸개가 더 가늘게 갈라지고, 꽃 색깔이 더 어두운 자색을 띤다. 잎처럼 보이는 꽃받침이 보다 짧고 분홍색인 분홍할미꽃과 키가 작고 털이 적은 산할미꽃은 북부지방에 분포하기 때문에 남쪽에서는 볼 수 없다.

▲ 꽃이 필 때 허리 굽은 할미꽃

동강할미꽃은 보통의 할미꽃과는 많이 다르다. 양지바른 무덤가에서 흔하게 만나는 할미꽃은 보통 붉은 자주색이며 홑으로 핀다. 그러나 동강할미꽃은 붉은 자주색 이외에도 청보라빛, 연분홍색, 드물게는 흰색 등 색깔이 다양하며 더러 겹으로 피는 것도 있다. 뿐만 아니라 보통의 할미꽃은 줄기 끝에 달린 꽃이 처음 필 때 아래쪽을 향하는 것과는 달리 동강할미꽃은 위쪽이나 옆쪽을 향해 핀다. 일반적으로 할미꽃은 암술과 수술의 수가 많은 것이 특징인데 동강할미꽃은 보통의 할미꽃보다 암술과 수술의 수가 상대적으로 적은 것도 다른 특징이다.

▲ 옆을 향해 피는 동강할미꽃

할미꽃은 우리 전래동요나 전래동화에도 등장할 정도로 우리 민족의 정서가 배어 있다. 고려 때 김부식이 지은《삼국사기》에는 신라 신문왕 때 설총이 지었다는 화왕계(花王戒)가 실려 있다. 꽃의 제왕 모란이 아첨을 잘하는 미인 장미와 화왕의 잘못된 일을 고치도록 충간을 서슴지 않는 백두옹(白頭翁) 사이에서 누구를 택할 것인가 주저하는 것을 보고 백두옹이 왕을 질책하였다는 내용이다. 백두옹은 머리가 하얗게 센 늙은이란 뜻으로 곧 할미꽃을 의인화한 것이다. 바야흐로 우리는 총선을 눈앞에 두고 있다. 꽃 중의 우두머리 모란 가까이에는 아첨을 일삼는 장미들만 득시글거리는 난세다. 모름지기 충간을 서슴지 않는 백두옹 할미꽃이 그리운 세상이다.

 

▲ 백두산 연길에서 만난 분홍할미꽃

편집 : 김미경 부에디터

이호균 주주통신원  lee1228hg@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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