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겨레 실크로드 문화 답사(29)]

“고양이에게 생선을 맡겼네” 지난 4월 문화재 보존활동을 한다는 한 문화재보호단체 대표가 문화재 수백 점을 도굴해 팔아오다 경찰에 입건되었습니다. 그는 지난 10년간 경북지역의 통일신라와 조선시대 가마터에서 문화재 233점을 불법으로 도굴해 팔아넘긴 혐의를 받고 있습니다. 그는 2005년 영리단체인 ‘문화재지킴이’를 설립하고 버젓이 국가로부터 연간 1천여만 원씩, 5년간 5천300여만 원을 지원받았습니다. 또한 그는 문화재지킴이 활동으로 2012년 행안부 장관상을 받기도 했습니다.

실크로드 예술 문화의 보고 막고굴에 왕원록(1849-1931)이라는 사람이 살고 있었습니다. 그는 호북성(후베이성)에서 군졸로 있다가 이를 그만두고 돈황으로 옮겨와 막고굴에 정착해 이곳을 찾는 이들을 위해 기도를 해주며 생계를 이어나갔습니다.

그러던 어느날 인부들과 16호굴을 청소하던 중 벽면이 갈라진 걸 보고 이상하게 여겨 두드리고 무너뜨려보니 작은 문 안에 사방 3미터 정도의 방이 있었고, 거기엔 5만여 점의 경전, 문서, 그림이 쌓여있었습니다. 이것들은 대부분 기원전 4세기에서 11세기 것들입니다. 1900년 봄의 일입니다. 이 방을 17호굴, 일명 '장경동(藏經洞)'이라 부릅니다. ‘(수많은) 경전이 보관된 굴’ 정도의 뜻이겠네요.

왕원록은 이 많은 유물들이 가치 있다 여겨 지방 관리들에게 발견 사실을 알렸으나 아무도 관심을 갖는 이가 없었습니다. 이 와중에 막고굴에서 엄청난 양의 고문서가 발견되었다는 소식은 여기저기로 퍼져나갔습니다.

당시 영국과 러시아는 중앙아시아에서 패권을 다투고 있던 중이었습니다. 제국의 힘을 등에 업고 탐험가들이 활개쳤는데 이들 귀에 이 이야기가 들어갔습니다. 이들은 앞을 다투어 막고굴로 향했습니다. ‘막고굴 3대 도굴꾼’이 탄생하는 순간이었습니다.

막고굴 장경동에서 고문서를 조사하고 있는
펠리오 모습

러시아의 지질학자 오브루체프, 영국의 고고학자 오렐 스타인, 프랑스의 동양학자 폴 펠리오. 말이 ‘학자’지 어리버리한 지방 스님을 현혹해서 그냥 집어가다시피 한 도둑들이었습니다.

막고굴 장경동에 가장 먼저 온 사람은 오브루체프였습니다. 1905년 그는 왕원록에게 러시아제 등잔용 기름, 구리주발, 양초를 건네주고 장경동의 고문서들을 얻어갔습니다.

1907년 오렐 스타인은 1만 점이 넘는 고문서와 불교그림을 헐값에 사 가져갔습니다.

다음 해에는 한학에 밝은 프랑스의 폴 펠리오(1878-1945)가 와서 중요한 문서 1만 점을 입수해서 프랑스국립도서관으로 가져갔습니다.

‘세기의 도굴’, 그 중심엔 도사 왕원록이 있었습니다. 그는 중국 정부가 뒤늦게 막고굴 고문서를 모두 이관해 간 뒤에도 대량의 고문서를 숨겨두고 미국, 일본 등 외국인들에게 팔아넘겼습니다.

​현재 돈황 고문서는 런던에 약 1만 점, 파리에 5000~6000점, 북경에 약 1만 점, 레닌그라드에 약 1만 점, 일본에 1000점으로 총 4만 점이 남아있습니다. 이중 혜초 스님의 인도 여행기 <왕오천축국전>은 펠리오 선생 덕에 지금도 프랑스 국립도서관에서 눈물을 흘리며 고향땅을 바라보고 있습니다.

(이 여행기는 이동구 팀장이 주주, 독자와 함께 한겨레 테마여행 <실크로드 문화답사>를 다녀온 후 지난 해 9월부터 페이스북과 개인 블로그에 실었던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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