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중의 3無

▲ 도심에 있는 절입니다. 절보다도 더 많이 볼 수 있는 곳이 宮이라고 쓰여 있는 사원입니다. 민간인들에게는 불교와 도교의 구분이 명확하지 않고, 실생활에서는 도교의 영향이 더 크게 느껴집니다.

본격적으로 대만 이야기를 하기 전에 먼저 중국에 대한 이야기를 해보고자 합니다.

중국은 대약진 운동과 문화대혁명으로 완전히 망가졌습니다. 모든 학자들이 중국을 우습게 여겼지요. 하지만 1970년대 초 세상을 떠난 역사학계의 거두 토인비만은 종이호랑이라고 불리던 중국이 세계국가로 발전할 것을 예견하였습니다.

숱한 외침과 내란으로 흥망성쇠를 반복하면서도 중국이란 나라가 수천 년을 이어온 원동력을 저는 역사와 문화에서 찾아봅니다.

중국에는 이런 역사적인 인물이 있습니다. 

관포지교란 말 들어보셨지요. 관중과 포숙의 우정을 일컫는 말입니다. 여기에 나오는 관중과 포숙이란 인물을 말해볼까 합니다. 

어려서부터 친구였던 둘은 함께 장사를 했는데 관중이 그 이익을 다 취해도 포숙은 관중을 탓하지 않습니다. 후에 서로 다른 왕자를 모시고 왕권을 다투다 포숙이 섬긴 왕자가 관중이 모신 형을 죽이고 왕위에 오릅니다. 이 싸움에서 관중은 세 번이나 패퇴를 하고 다른 나라로 도망을 가서 목숨을 부지해도 포숙은 그를 비웃지 않습니다.

그런 관중을 포숙은 자기가 모신 환공에게 재상으로 천거를 합니다. 관중의 허물이란 돌보지 않으면 안 될 노모가 있기 때문에 생긴 것이라고 두둔을 하지요.

제가 관중을 언급하는 이유는, 관중의 됨됨이를 논하려는 것이 아니라 군웅이 할거하던 춘추전국시대에, 제나라 환공을 최초의 패자로 만든 그의 가르침을 함께 음미하고자 함입니다.

관중은 관자라는 존칭으로도 불리는 사람으로 공자보다도 170여년 앞서 기원전 725년에 태어났습니다.

상(은)나라를 무너뜨리고 주를 건국한 무왕은 개국 공신들을 제후로 삼아 지역을 다스리게 합니다. 강태공으로 알려진 태공망 여상이 제후로 봉해진 곳이 바로 제나라입니다.

몇 백 년이 흘러가면서 군권이 없는 주나라 황실은 유명무실해지고 각 지역의 제후들이 야심을 드러내기 시작합니다.

특히 형을 죽이고 등극한 제나라 환공이 막강해진 군사력으로 각 제후들을 장악하고 싶어 합니다. 각 제후국들을 일대일로 싸우면 모두 격파할 수 있겠는데 이들이 연합하면 이길 수는 없겠고, 그래서 재상감으로 관중을 천거 받았지요.

처음 두 사람이 대면하여 환공이 묻습니다.

“내가 모든 제후국들을 누르고 패권을 차지하려고 하는데 그 방법을 알려 달라! “고 합니다.

당시 환공은 힘이 약한 나라의 땅 일부를 은근슬쩍 차지하고 있었습니다. 관중은 무릇 얻고자 하면 먼저 주라고 합니다. 강제로 빼앗은 땅도 내줘야 다른 제후들의 신뢰를 얻는다고 주장하지요.

관중이 환공에게 천하를 얻고자 하면 3가지를 없애고 마음을 얻으라며 제시한 3無입니다.

첫째, 무탐(無貪) : 욕심을 없애라. 모든 다툼과 갈등은 욕심에서 비롯되니 결국 작은 것을 탐하면 큰 것을 잃게 된다.

둘째, 무분(無忿) : 화를 내지 마라. 당장은 화를 내면 아랫사람들이 두려워 듣는 척 하지만 언젠가는 적이 되어 등에 비수를 꽂게 된다.

셋째, 무급(無急) : 급하게 서두르지 마라. 윗사람이 서두르면 아랫사람은 허둥지둥 정신이 없고, 그 아랫사람은 이유도 모르고 우왕좌왕 일을 그르치게 된다. 더구나 잘잘못을 아랫사람에게 전가하면 누가 윗사람을 위해 충성을 다하겠는가?

관중을 재상에 등용하여 부국강병을 꾀한 환공은 결국 춘추시대 최초의 패자가 될 수 있었습니다.

한 때는 신의 반열에 올랐던 공자도 노나라의 재상이 되어 정치적 실험을 하지만 성공을 거두지 못했지요.

관중의 이러한 가르침은 지금도 중국인의 기질 속에 면면히 이어져 내려오고 있음을 느낍니다.

이 3無와 유사한 내용을 불교에서도 설하고 있습니다.

위진 남북조 시대에 전래되어 중국인들의 의식에 큰 영향을 끼치고 있는 불교에서, 인간을 부처의 경지에 이르지 못하도록 번뇌를 일으키게 하는 독소가 셋이 있는데(3毒) 이를 탐,진,치라고 합니다.

貪(욕심)은 본능적 욕구를 포함한 욕심이요, 瞋(성냄)은 자기 뜻과 다를 때 일어나는 증오심이나 노여움이고, 癡(어리석음)는 탐과 진에 가려서 사리분별에 어두운 것을 이릅니다.

비록 시대와 장소가 다른 오늘날에도 여전히 유효한 가르침은 아닐는지요?

인간의 욕심은 바다로도 메울 수 없다고 합니다. 지금 이 순간 힘들고 불행하고 분노에 가슴이 답답하시다면 잠시 욕심을 내려놓아보시지요. 어쩌면 번뇌와 불행의 빗장을 푸는 열쇠가 이 탐심이 아닐까요?

올해 대학에 들어간 하나뿐인 딸이 이 글을 읽고, 탐심 많은 사람이 성공할 사람으로 보이게 하지 말고, 화를 잘 내는 사람을 박력 있는 멋진 사람으로 착각하게 하지 말며, 성질 급한 사람을 확실한 사람인줄 오판하지 않게 구분하는 지혜가 생기길 바랍니다.

기왕 바라는 김에 내 딸 하나만을 목숨처럼 아끼겠다고 말하는 사람보다, 나와 내 가족이 다소 힘들어 진다해도 보이지 않는 다른 누군가를 불편하지 않게 배려해줄 수 있는 그런 사람이 진실한 사람이라고 말해주겠습니다.

대만 사람들이 살아가는 모습을 이야기하려다 보니 이런저런 중국의 역사도 이야기 하고 싶어 약간 옆길로 샜습니다. 3편에서는 대만에 와서 처음으로 느꼈던 문화적 충격에 대하여 이야기 해볼까 합니다. 그럼 3편에서 만나요. 

편집 : 박효삼 편집위원

김동호 주주통신원  donghokim01@daum.net

한겨레신문 주주 되기
한겨레:온 필진 되기
한겨레:온에 기사 올리는 요령

저작권자 © 한겨레:온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