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겨레 실크로드 문화 답사(33)]

{‘종이대란’선거 강타}. 1995년 4월 9일치 <한겨레신문> 1면 머리기사 제목입니다. 기사의 첫 문장은 이렇게 시작합니다. ‘4개 동시선거로 치러질 오는 6월 지자체 선거에서 폭발적인 각종 선거홍보 인쇄물 수요에 비해 용지와 인쇄시설이 턱없이 모자라 종이 부족과 인쇄난이 정치문제로 번질 조짐을 보이고 있다.(후략)’.

도지사와 시장·군수 선거, 도의원과 시·군의원 선거가 한꺼번에 진행된 첫 해로 후보자가 갑자기 많아지면서 생긴 해프닝입니다. 종이가 부족해 정치문제로 비화된다?? 불과 19년 전 일입니다.

인터넷이 등장하기 전 종이는 권력자들의 사랑을 독차지했습니다. 이런 증거 중의 하나로 조선시대 조정의 소식을 전하던 <조보(朝報)>가 있습니다. 조보는 지금의 청와대 비서실격인 승정원에서 냈습니다. 주요 내용은 정부의 결정, 지시와 공지사항, 왕의 통치 방침을 담은 글, 주요기관 보직, 승진, 해임, 부고 등 인사 관련 기사가 실렸습니다.

날씨나 강우량, 사건사고와 희귀한 일을 다룬 기사도 있습니다. ‘네 발과 네 개의 날개를 가진 병아리의 출현’, ‘큰 우박이 내려 날아가는 새와 사람을 죽인 사건’ 같은 기사가 그 예입니다. 인목대비(1584-1632)가 공주를 낳자 ‘분발(호외)’을 내기도 했답니다.

조보는 지금으로 말하면 매일 발행되는 ‘신문+관보’ 짬뽕 간행물이었습니다. 편집국장은 승정원 캡 도승지가 아니라 ‘임금’이었습니다. 임금은 조보에 실을 내용과 실어선 안 되는 내용을 직접 지시하기도 했습니다. 꼭 필요한 부수만큼만 붓으로 베껴 써 발행(필사)했습니다.

조보는 전, 현직 고급 관리들에게만 제한적으로 배포되었습니다. 철저하게 최고위층만 공유하는 고급정보라는 말입니다. 그러니 양반과 사대부, 하급관리나 상인들은 당연히 볼 수 없었지요.

후한시대 조달청장 채륜(蔡倫)은 이전까지 거칠고 조잡했던 제지술을 획기적으로 개선한 식물섬유의 종이를 개발해냈습니다. 그 후 약 600여년이 지났을 때쯤 실크로드를 통해 중국과 서역의 교역이 시작되었고 종이가 이때 서역으로 전해진 것으로 <구당서>(945)는 기록하고 있습니다.

종이가 유럽에 이른 것은 약 12세기경입니다. 종이는 특별한 권력자들만이 소유할 수 있었습니다. 당시 성경책 한 권의 가치는 작은 농장 하나 값이었다고 합니다. 교회와 사제 이외에 성경을 직접 볼 수 있는 이는 없었습니다.

그러나 300여 년이 지난 1454년 <쿠텐베르크 성경>을 시작으로 다량의 성경이 인쇄 출판 되었습니다. 하나님 말씀은 이제 시민들의 것이 되었습니다. 성경의 내용을 직접 눈으로 확인한 시민들은 교회와 사제가 틀렸다는 사실도 알아냈습니다. 중세유럽의 종교개혁은 그렇게 시작되었습니다.

<조보>의 월 구독료가 4냥이었다고 하니 요즘 돈으로 약 30만 원 정도될 거 같습니다. ‘세상을 보는 정직한 눈’, 오직 진실만을 보도하려 애쓰는 신뢰도 1위 신문 <한겨레>의 월 구독료가 18000원이니 조보의 16분의 1 가격이군요. ㅠㅠ~

(이 여행기는 이동구 팀장이 주주, 독자와 함께 한겨레 테마여행 <실크로드 문화답사>를 다녀온 후 지난 해 9월부터 페이스북과 개인 블로그에 실었던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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