술은 사람을 즐겁고 행복하게 하지만 괴롭고 슬프게 하기도 한다. 사람에 따라 처지에 따라 그럴 것이다. 술은 몸과 맘을 위로하는데 그를 만나 그 자초지종을 알아본다.
나그네: 술씨! 안녕?
술씨: 음~ 그대는 누구신가? 나를 반갑게 대하는 걸 보니 뭘 좀 아시는 분 같은데... 아시듯이 나야 늘~ 안녕하지.
나그네: 난, 널 참으로~ 좋아하는 사람이지. 그런데 술씨에게 뭐 좀 물어볼 게 있어.
술씨: 그게 뭔데? 뭐가 그렇게 궁금하지?
나그네: 넌, 어디서 무엇 하러 여기 왔니?
술씨: 어라! 뭐라는 거야~ 호기심인가? 난 말이야, 신(神)의 나라에서 왔지. 난 곡신(穀神)이야. 왜 왔냐고? 불쌍한 너희를 구제하러 왔지.
나그네: 어? 너도 신이란 말이냐? 무슨 신이 그렇게 많아? 사람들이 웃겠다 얘~. 네가 신이라니, 참 별의별 신도 다 있구나? 더구나 우릴 구제하러 왔다고?
술씨: 무슨 소리야? 신다운 신인 나를 몰라보다니 섭섭하다 섭섭해. 별 것도 아닌 것을 신이라고 모시고 난리더니. 난, 인간 너희들에게 참으로 유익하고 필요한 신이야. 난 익신(益神)이고 덕신(德臣)이라고! 나로 인해 너희들이 살맛나지 않나?
나그네: 그것 참! 그렇기는 하지만, 네가 익신과 덕신이라는 것은 조금 글쎄다~ 아무튼 재미있네. 그런데 너를 신이라고 인정한다 해도, 일부 사람들은 너를 독신(毒神)이라 하지 않을까?
술씨: 어리석은 자들의 우매한 소리야. 그들에겐 그럴 수도 있지. 하지만 난 분명히 인간들에게 축복과 행운의 신이라고. 세상을 세상답게 살아가는 사람일수록 그렇다는 것을 잘 알 거야
나그네: 알았어, 알았다고? 네가 축복의 신이라~. 그런데 여기는 왜 온 거야?
술씨: 앞에서 언급했잖아. 불쌍한 인간, 너희들을 구제하러 왔다니까? 넌 아직 경험하지 못했나?
나그네: 오~ 우리 인간을 구제하러 왔다고? 네가? 대단해~ 일단 감사.
술씨: 그렇게 말만 하지 말고, 나를 한 번 마셔봐. 나를 너 몸에 섞어 보란 말이야. 그럼 바로 알게 될 걸. 네가 너희를 어떻게 구제하는지, 그리고 얼마나 즐겁고 흥겹게 하는지를.
나그네: 너 때문에 괴로운 사람도 있는데? 그들은 어떻게 하지?
술씨: 그럴 수도 있지. 그럴 거야. 하지만 삶을 삶답게 사는 자에겐 그런 일은 없어. 과하게 미련한 탓이지
나그네: 야! 그런데 너를 어찌 과하게 마시지 않을 수 있어? 어렵지 어려워. 아마 불가능할 걸
술씨: 그 또한 어리석은 자들의 핑계일 뿐이지. 그래서 나를 술이라 부르는지 몰라. 그냥 마시면 난 술술 넘어가. 통제불가야. 하지만 누구도 책임은 못 져. 아무나 즐겁고 흥나는 세상을 만날 수는 없지. 나를 가까이 하는 자에게 축복과 흥이 함께하는데 말이야. 다만 절제는 좀 할 수 있어야지.
나그네: 그럼 술도 마실 자격이 있단 말이야?
술씨: 그럼~그렇고말고. 나를 마시면 행복하고 즐거워지는데, 그 정도는 돼야지. 난, 너희들이 그렇게 원하는 천국도 다녀오게 할 수 있어. 그런데 어찌 그냥 가능하겠어. 그 정도 값은 지불야지. 너희들이 그렇게 아끼고 좋아하는 황금은 아니지만, 주의 정도는 해야지 않나?
나그네: 맞아. 너의 말을 듣고 보니, 네가 대단한 신인 것 같기는 해. 아직 긴가민가 하지만. 절제력을 갖고 술 너를 마시면, 행복과 천국으로 가는 길잡이 신이다 이거지?
술씨: 그렇다고 볼 수 있지. 잠시지만. 이젠 조금 알겠어? 사실 행복과 천국이 일상이 되어버리면 무의미해. 또한 금방 익숙해져 버리고, 그렇게 되면 그 또한 지루하고 따분해져. 그러면 더 이상 행복과 축복이 아니게 되지. 그래서 내가 잠깐 다녀오게 하는 거야. 아무리 좋은 것도 오래 지속되면 느낌이 없어지고 덤덤해지잖아. 필요할 땐 언제든지 나를 찾아와. 기꺼이 행복과 천국으로 모셔다 줄게.
나그네: 술신! 알겠어. 인정할게. 그런데 부탁이 하나 있어. 신이라고 너무 뻐기지 말고, 인간 위에 군림하지 마. 난 신들에게 질렸어. 많기도 많은 신들이 ‘해라마라, 가라마라, 찬양하고 칭송하라, 내 말 따르라. 안하고 안 따르면 벌준다’라는 겁박으로 우리를 너무 옥죄고 있어. 이건 참다운 신들이 하는 행태는 아닌 것 같아. 술신! 너만큼은 그러지 마. 신들도 구태를 벗고 개혁해야해.
술씨: 오케이! 못된 자들이 신의 이름을 빌어 지들의 권익을 챙기는 게 아닐까? 참다운 신은 그렇지 않을걸. 넌 나를 조금 알잖아. 난 그런 신이 아니야. 걱정하지 마. 필요할 때 부담 없이 찾아 와. 행복과 천국을 선사할게. 하지만 너무 자주 오면 곤란해. 그것을 잊지 마. 약간의 절제가 꼭 필요하거든.
나그네: 알았어. 가끔 너를 찾을게. 그리고 적당하고 알맞게 마시도록 노력할 게. 그러면 행복의 나라와 천국을 잠시 다녀올 수 있겠지? 고맙고 감사!”
술씨: 너~ 생각보다 똑똑하네. 너 정도면 나를 마실 자격이 돼.
나그네: 오늘 ‘몇 잔 쭉~ 들이켜고 천국 좀 다녀올까? 이런 날, 어찌 술을 마시지 않을 수 있겠어’ 술! 넌 참 좋은 친구야! 감사 또 감사.
- 술 -
술술 넘어가는 네가 없다면
답답한 이 세상 어이 견디리
우정이 좋다고들 말들 하지만
너 만한 우정 찾을 수도 맺을 수 없더라
너와 몸을 섞어 하나 되니
산천이 돌고 땅이 흐르더구나
여기로다! 여기야
행복도 천국도
너와 함께 하는 여기에 있도다
편집 : 김미경 편집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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