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에는 처음에 대만에 와서 놀란 세 가지를 말해보고자 합니다.

첫째로 처우떠우푸(臭豆腐)입니다.

1984년 11월 처음 대만 공항에 내린 날은 추적추적 비가 내리는, 반길 이 하나 없는 낯선 이국이었습니다. 차창 밖 건물은 우중충하고 뭐 하나 대한민국 서울보다 나을 것 없어 보였습니다.

차츰 반바지에 샌들이 익숙해지고, 먹는 것도 견딜만해지는데 후각을 고통스럽게 하는 처우떠우푸(臭豆腐)만은 용서가 안 됩니다. 삭힌 두부를 길거리에서 파는데 10미터 이상에서도 감지가 됩니다. 아무리 그 냄새와 친해지려 30년을 노력해도, 습관적으로 숨을 멈추고 빠르게 지나갑니다. 자기들도 안 좋은 냄새라는 臭(취)를 쓰기에 그걸 어떻게 먹느냐고 했더니 아주 의아한 표정으로 향기롭다고 하더군요. 이름도 香豆腐(향두부)로 바꿔야 마땅하다고....

당시 한국에서 비구니스님이 왔습니다. 마침 文化大(문화대) 한국어과 여학생이 그 스님을 모시고 자기 딴에는 큰 대접을 한다고 길거리에서 이 처우떠우푸를 스님께 드렸습니다. 난감한 비구니 스님 그 처우떠우푸를 입안에 물고 삼키지도 못하고 뱉지도 못하고..... 나를 만나서야 하소연을 하는데, 그 여학생 그때까지도 뭔 잘못(?)을 저질렀는지 모르고 있더군요.

둘째로 담배인심입니다..

설을 낀 겨울 방학 때, 高雄에 사는 대학원 친구 米建國의 초대를 받아 여러 날 함께 지냈습니다. 지금은 대만 철학회 회장이며 東吳(동오)대학 교수로 재직 중입니다. 당시 米建國과 누나 둘은 담배를 안 피우고, 부모님과 매형은 담배를 피웠습니다.

친구 집에 도착하였는데 머리가 하얀 아버님이 담배 한 대를 뽑아 건네주시더군요. 여자 분들은 좀 이해불가겠지만, 손 위 형은 물론이고, 군대의 나이 어린 선임 앞에서도 가리고 피워야 했던 담배 예절이 몸에 배어있는데 언감생심 맞담배질???

생각을 해보니 윗사람 앞에서는 담배를 피우지 말라는 어떤 도덕적, 종교적 금기도 없는 것 아닌가 생각합니다. 어느 나라 헌법이나 법률로도 규제를 않더군요. 그렇다고 우리가 다른 민족보다 더 금욕적이고 윗사람을 더 공경해서 그런 것도 아닌데, 인간성이 어떻고, 위아래 모르는 불상놈에서 싸가지가 있네 없네 그러다 칼부림도 발생합니다.

대만에서는 담배인심이 참 좋습니다. 함께 좋아하는 음식을 나눠 먹는다고나 할까요? 금연을 한지도 15년 가까이 되어서 요즘은 어떤지 모르지만, 어쨌든 아버지가 아들에게 담배를 건네고 스스럼없이 피우는 모습을 보고, 나도 부담 없이 누구하고도 함께 담배를 피웠지요.

제도나 관습 규율 등은 장식과도 같더군요. 적당하면 아름답고 모두를 편하게 하지만 지나치면 장식을 또 장식하는 짐이 되고, 구속이 되고, 나중에는 자신도 모르게 사고의 노예가 되고 마는!

셋째로 삐후입니다.

내가 다녔던 東海(동해)대학은 캠퍼스가 아름다운 공원과 같아서 주말에는 많은 사람들이 들어와 결혼사진 촬영도 하고 사극 촬영도 하곤 했지만, 벽이고 천장이고 기어 다니는 작은 도마뱀인 삐후(壁虎)와 못 사귀고 있었습니다. 대담한 척 하려고 해도 징그러움에 소름 돋기 일쑤!

하루는 같은 대학원 여학생에게 삐후 이야기를 했더니, “얼마나 귀여운데!!!”

현재 거주하는 집은 친구 아버님이 작년 돌아가실 때까지 사시던 집입니다. 지은 지 50여년 여기저기 크고 작은 구멍들이 세월과 함께 늘어나고 밤만 되면 삐후는 제집인양 침실 거실 부엌 등에 무시로 드나듭니다. 연말에 분양받은 집으로 이사를 하기까지는 지인들을 오라고 하지 못하는 이유이지요.

신라가 삼국을 통일해가던 시기에 젊은 승려 원효와 의상이 당나라로 유학을 떠납니다. 쉽지 않은 여정에서 하루는 고분에서 잠을 자야했습니다.

한 밤중에 갈증을 느낀 원효는 머리맡에 있는 물그릇을 들어 달게 마시고 또 잠을 잡니다. 다음날 그 그릇이 해골임을 알고 바로 깨달음을 얻었습니다. 萬物一切唯心造!(만물일체유심조) 모든 것이 마음의 조화로구나!

깨달음을 얻은 원효는 그 길로 돌아와 당시 귀족들만의 종교였던 불교를 대중불교로 만들었습니다. 단박에 반야의 경지에 들어선 원효!

아... 아직까지도 나는 왜 一切唯心造의 깨달음을 못 얻는 걸까?

삐후는 원래 그대로인데 싫어하고 좋아하는 것은 내 탓인가? 삐후 탓인가?

누군가는 향기롭고 맛있어하는 음식을 싫어하고 혐오하는 나는 또 누구인가? 깨달음의 길은 아득하기만 합니다.

* 참고로 : 중국에서는 一切唯心在로 씁니다.

편집 : 박효삼 편집위원

김동호 주주통신원  donghokim01@daum.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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