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케치] 최성수 주주통신원

녹음의 계절이요 젊음의 계절인 5월 어느 토요일 오전 10시경, 주엽역에서 전철을 탔다. 어떤 할아버지가 폐지류를 손수레에 가득 싣고 탔다. 시발역에서 두 번째 역이기에 좌석이 많이 비어있다. 내가 앉은 자리 건너편에 그 할아버지가 앉는다. 그런데 그 할아버지. 끈을 풀고 바닥에 폐지를 늘어놓는다. 먼지가 나고 지저분하게 느껴져 자리를 옮길까 하다 그냥 그대로 앉았다. 할아버지는 폐지를 다시 묶는다. 묶는 동작이 어설프다. 한참동안 주섬주섬 묶더니 다시 손수레에 동여맨다. 그리고 눈을 감는다. 마른기침을 한다. 입술이 자주 실룩인다. 여든 살은 넘어 보인다.

경복궁역에 이르니 그 할아버지는 일어나 손수레를 잡고 서있다. 내리나보다 했는데 내리지 않는다. 안국역을 지나도 내리지 않는다. 종로3가역에서 내릴 준비를 한다. 세 정거장 전부터 내릴 준비를 한 것인가? 한 학생이 할아버지 손수레 뒤를 잡아준다. 할아버지는 전철에서 내려 비틀거리며 1호선 갈아타는 곳으로 가고 있다. 나도 같은 방향이기에 뒤를 따라 천천히 걸어갔다.

에스컬레이터 앞에 도달했다. 그런데 에스컬레이터 입구에는 짐을 끌고 탈 수 없게 가운데에 장애막대가 서있다. 할아버지가 난감해 하며 주위를 살펴본다. 나는 얼른 에스컬레이터에 올라 입구 쪽을 향하여 섰다. 할아버지의 손수레 밑을 잡고 들어 올렸다. 그러나 할아버지와 수레 드는 타이밍이 맞지 않았다. 에스컬레이터는 기다려 주질 않고 올라갔다. 나는 앞으로 엎어지고 말았다. 에스컬레이터는 계속 위로 올라가고 있었다.

에스컬레이터 반대방향으로 엎어져 끌려 올라가는 흰머리 할배를 보고 어! 어! 하는 소리가 들렸다. 나도 놀랬다. 당황했다. 어리벙벙했다. 그러나 정신을 가다듬고 일어섰다. 올라오는 에스컬레이터 계단을 뛰어 내려갔다. 맨 아래까지 정신없이 뛰어 내려갔다. 다시 손수레 바닥 손잡이를 잡고 들어올렸다. 할아버지도 손수레를 잡고 에스컬레이터에 올랐다.

잠시 걸으며 물어 보았다.

“이거 얼마정도 받으세요?”

“2천원. 종각에 가는데, 에~ 폐기물에 갖다 주는 거야.”

그러는 순간 전차가 도착했다. 전차 타는 것을 도와주었다. 전차 문이 닫혔다. 그가 환히 웃으며 손을 흔들어 주었다.

그간 까마득히 잊고 지낸 2011년도 일이 떠올랐다. 파주노인종합복지관에서 ‘노후생활설계사’로 1년 동안 봉사한 일이다. 경기도청 산하 ‘경기실버아카데미’에서 5주간 교육을 받고 노후생활설계를 지도해 주는 역할이었다.

교육받은 내용은 다양했다. 시니어창업, 노인일자리 지원, 기초노령연금, 자살상담 등 노인정책과 제도. 높은 이상과 꿈을 가지고 임하라고 교육받았지만 현장에서 직면한 가장 큰 이슈는 취업이었다. 일하고 그 대가로 살아가게 해 달라는 것이다.

한 생명보험사에서 교육담당으로 30년간 근무했던 79세 할아버지도, 퇴직금을 사기당한데다 설상가상으로 아들은 이혼 당하고 딸은 식당운영하다 망해 올 데 갈 데 없어 찜질방을 전전하는 76세 할아버지도 있었다. 재일교포가 고국이 그리워 퇴직하고 찾아왔으나 한국에서 결혼한 마누라가 돈을 빼돌리고 버림받은 78세 할아버지도 있었다.

모두들 일자리를 원하였다. 그러나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실버인력뱅크’나 ‘일자리지원센터’를 소개해 주는 것뿐이었다. 그런데 그 곳에는 이 할아버지들에게 줄 일자리가 없다. 노동력이 충분이 있으면서 일자리가 필요한 사람들이 줄을 서 있기 때문이다.

2천원! 껌 두통 값! 그 2천원을 벌기 위하여 할아버지는 포장박스나 종이조각을 모으려 며칠인가 돌아다녔을 것이다. 그리고 그걸 끌고 종각까지 가고 있다. 일산에도 폐품 수집상이 있는데 왜 종각까지 가는 것일까? 일산보다는 종각의 고물상이 몇 백 원이라도 더 주는가. 그렇다면 그 몇 100원을 더 받기 위하여 전철을 한 시간이나 타고, 비틀거리며 손수레를 끌고, 위험을 무릅쓰고 에스컬레이터를 타고 또 전철을 바꿔 타면서 종각까지 가는 것인가.

파주노인복지관의 일을 회상하며 저 할아버지를 생각해 본다. 자장면 반 그릇도 안 되지만 그 2천원을 벌기 위하여 포기하지 않고 놀지도 않으며 위험도 무릅쓰고 손수레를 끌고 있는 것은 생명의 끈질김, 삶의 위대한 모습을 보여주는 것 같아 머리가 숙여진다.

최성수  choiss305@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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