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문화공간 온'에서 만났다. '문화공간 온'은 한겨레주주와 독자, 일반 국민 누구나를 위한 문화의 공간이며, 열린 사랑방으로 서울 종로에 있다. 이 날은 개업을 4일 앞둔 5월 13일 12시 30분이었다. <한겨레신문발전연대>와 '문화공간 온'의 무궁한 발전을 예시하듯 창밖은 따사로운 햇볕이 골고루 내려앉았고, 실내의 분위기는 아늑했다.

임대표의 첫인상은 다소 날카로웠지만, 대담을 나눌수록 따뜻한 내면을 드러냈다. 그러나 사회의 부조리와 정권의 부정을 성토할 때는 어느덧 투사의 면모를 유감없이 보여주기도 했다. 그는 만년투사가 될 수밖에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다음은 <한겨레신문발전연대>의 제반 현안에 대한 대담의 내용이다. 

문 1: <한겨레신문발전연대>에 대해 소개해 달라.

답: <한겨레신문발전연대>의 창립일은 2000년 3월 1일이다. 창립목적은 한겨레신문 주주와 독자를 규합하여 민주주의 발전과 민족통일을 위한 애국심 고취하는데 있다. 이러한 창립취지는 결국 국가 발전에 일익을 담당하고자 하는 것이다. 또 한편으로는 회원 상호간의 친목을 도모하여 이와 같은 취지를 면면히 이어가는 것이다.

전체 회원의 수는 약 1천여 명이며, 상시 회원 수는 50여 명이다. 우리들은 너나없이 한겨레신문을 애독하는 진보성향의 주주 및 독자들로 월 1회 정기모임을 가지며, 회비를 갹출하여 50%는 뒤풀이 식사비용으로 지불한다. 나머지 50%는 적립해 민주주의를 위해 헌신하거나 투쟁하는 단체 또는 개인을 후원하는 데 쓴다. 이를테면 <한겨레통일문화재단>을 비롯한 <통일운동단체> 등에 북한 동포를 돕도록 일정액을 매년 정기적으로 후원한다. 세월호 사건이 난 2014년에는 보수신문에서 왜곡보도 하는 것을 막기 위하여 진보언론에 더 많은 힘을 실어주기도 했다.

우리 단체는 한겨레와 협력과 비판을 병행함으로써 잘하는 일에는 칭찬을 하고, 잘 못하는 부분은 채찍질 하여 궁극적으로는 한겨레신문의 발전에 미력이나마 힘을 보태고자 한다. 

문 2: 대표가 살아온 인생을 소개해 달라.

답: 나는 전라남도 보성군 벌교의 한 빈농에서 5남매 중 막내로 태어났다. 광주송원고등학교에 다녔는데, 내가 고교 2학년 때인 1980년 5월 18일 광주민주항쟁이 터졌다. 그 당시 광주시민들의 처절한 혈투현장을 보며 내 인생이 새로운 전환점을 맞았다. 그때 나도 민주항쟁에 참여하였는데, 5.18항쟁 당시 시민동료들과 함께 현재 기아자동차 공장이 있는 광천동에서 도청 앞 광장까지 시내버스에 동승하여 진격했다. 우리들은 진압군의 빗발치는 총탄을 받으면서 죽음의 고비를 수 차 겪었다. 말하자면 나는 광주민주항쟁으로 인해 불의에 저항하는 인생관과 사회관을 터득하게 되었다. 그 후 5월 27일까지 열흘간 광주에서 피신생활을 할 때는 먹을 것이 없어서 고생했다. 그러던 중 길거리에 버려진 자전거를 주워 타고 광주를 빠져나와 고향 벌교까지 장장 8시간을 주행했다. 광주시 외곽에서부터는 길가에서 만나는 시민들로부터 광주시내에 거주하는 자제 또는 친인척들의 안부를 묻는 애타는 표정을 보면서 나 또한 울컥거리는 마음을 자제할 수가 없었다. 나는 그들의 물음에 내가 아는 한 하나하나 소상한 답변을 해주었다. 천신만고 끝에 고향집에 도착하여 부모님과 상면한 후에야 나는 비로소 안도의 눈물을 흘렸다. 광주민주항쟁은 나에게 일생일대의 체험이었고, 그로 인하여 나는 내 인생의 좌표를 설정했다고 할 수 있다.

그 후 나는 부산으로 가서 서슬 퍼런 당국의 색출작업에 3개월 정도 피신생활을 하다가 잠잠해진 기미가 보이자 상경했다. 서울에서는 누나 댁에서 기거하며 낮에는 공장에 다니고, 밤에는 야학을 하면서 교통안전관리자자격증 등을 취득했다. 한편으로 정서 함양에도 게을리 하지 않아 민중의 저항의식을 고취하는 노래동아리에 참여하여 활동했다.

20대 후반에는 한라건설, 케이티(KT) 등에서도 종사했고, 30대에는 사회의 부정과 비리를 그냥 볼 수 없어 적극적으로 시민운동, 이를테면 참여연대며 경실련 등에 참여하기 시작했다. 40대에는 자영업에 착수했다. 케이블방송 CF 제작에 착수한 후 지금까지 동일 업종에 종사하며, 한때는 상당한 부를 축적하고, 종업원도 12명까지 고용할 정도로 사업을 확장한 적도 있었다. 

문 3 : 임 대표가 한겨레신문과 인연을 맺은 사연을 소개해 달라.

답 : 부정과 비리가 만연된 사회에서 보수재벌언론이 이 사회를 호도하고 있을 때, 송건호 초대사장께서 누구로부터 어떤 간섭과 압력도 받지 않는 오로지 국민만을 위한 신문을 창설한다고 선포했다. 나는 어려운 가운데서도 사재를 희사하여 주주에 참여하였다. 

문 4 : 한겨레연대활동의 어려운 점은?

답 : 발전연대활동에 가장 어려운 점은 회원을 규합하는 일이다. 둘째는 회원들이 한겨레신문기사에 대한 불만을 토로할 때 상당한 압박을 받고 있다. 세 번째는 창간 당시 정열에 불탔던 동료 주주들이 작고하거나, 노쇠해져서 인간관계가 소원해질 때와 인간적 슬픔을 느끼며, 이를 대신할 젊은 층은 확보하기가 어려워지는 점이다. 

문 5 : 회원들이 임 대표에게 바라는 바는 무엇인가?

답 : 한겨레신문이 창간정신을 잃지 말고, 비리와 부정에 깊이 젖어있는 친일후예들과 독재정권 하에서 성장한 소위 사회지도층의 각성을 촉구하는데 내가 앞장서줄 것을 끊임없이 요구하고 있다. 

문 6 : 한겨레에 대한 회원들의 인식은 어떤가? (장점과 단점을 나눠 전해달라)

답 : 회원들은 한겨레가 민주화 실현이라든가, 그에 따른 야당으로의 정권교체, 그리고 평화적인 남북관계를 이룩하는데 획기적인 공헌을 한 점은 장점으로 본다. 반면 사회 저변의 문제점을 파헤치는데 한겨레신문이 인적 물적 한계점을 보이는 점은 안타깝게 생각한다. 특히 젊은 새내기 기자들이 창간정신에 투철하지 못한 점을 볼 때는 초창기 주주회원들로서는 섭섭한 마음을 금할 수가 없다. 

문 7 : 시민사회와 함께 하는 노력은 어떤 식으로 하는지?

답 : 첫째는 온라인 서명운동에 참여하며, 둘째는 시민연대운동으로서는 현장에 출동하여 동료들과 함께 시위운동을 한다. 셋째 시민운동을 뒷받침할 수 있도록 모금운동 및 후원활동에 적국 동참하고 있다.

문 8 : 시민사회와 교류하면서 그들이 한겨레를 어떻게 본다고 생각하는가?

답 : 시민운동단체가 한겨레를 보는 시각은 한겨레의 존재이유를 절감하면서도 한겨레가 잘 할 때는 칭찬하는데 인색한데 반하여, 조금이라도 자기들 성에 차지 않거나 불만족스러운 기사를 볼 때는 가차 없는 질책을 하는 점이다. 예를 들면 역사교과서 국정화반대운동이 한창일 때, 교육부의 광고를 경향신문에는 싣지 않았는데, 한겨레신문에는 게재된 점을 보고 진보진영에서 무조건 비판과 질책을 서슴치 않았다. 

문 9 : 한겨레에 하고 싶은 말은?

답 : 한겨레신문은 다른 언론과 달리 앞으로 언제까지나 창간정신을 잃지 말아야 하며, 상식이 통하지 않는 독재 권력에 맞서 어두운 밤의 등불이 되어줄 것, 또한 이 사회의 부조리를 추방하고 공정사회를 이룩하는데 첨병이 되어줄 것 등이 한겨레의 존재이유라고 본다. 

문 10. 시민사회에 하고 싶은 말은?

답 : 시민의 마음을 얻도록 시민밀착형 운동으로 발전해야한다. 

문 11 : 한겨레 주주와 시민이 주도하여 만드는 ‘문화공간 온’이 오는 17일 개점한다. 그에 대한 소감은? 또 ‘문화공간 온’에 바라는 점이 있다면?

답 : 시민단체회원과 일반시민들이 집중적이고 심도 있는 토론광장이 되었으면 좋겠다. 그렇게 하는 것이 또한 한겨레정신을 구현하는 첩경을 찾는 길이다.

문 12 : 향후 <한겨레신문발전연대>의 활동계획은 무엇인가?

답 : 첫째 정기 회비를 납부하고, 정기 후원에 참여할 수 있는 진성 회원을 현재의 두 배인 100여명으로 배가하는 운동을 전개하는 일이다. 둘째 절독 또는 잠재 독자를 일깨워 다시 돌아오도록 전력을 기울일 것이다. 매년 100여 독자 증원 목표를 세울 것이다. 셋째 사회활동과 지방역사유적지 탐방 등을 통해 그 지역민들에게 한겨레신문의 장점을 홍보할 것이다. 

문 13 : 기타 회장의 바람은 무엇인가?

답 : 한겨레신문이 남북문제를 가장 우선하여 통일을 준비하는데 선봉이 되는 신문이 될 것. 그러기 위하여 구호에 그치지 말고 실사구시 하는 언론이 될 것.

끝으로 한겨레 발전연대를 이끌어오면서 가장 보람 있게 생각하는 것은 2009년 5월 23일 역대 대통령 중에서 가장 서민적이고 국민과 함께 했던 노무현대통령을 잃었을 때, 슬픔을 억누를 수 없었다. 그 슬픔을 극복하고자 시청 앞 광장에서 시민들에게 ‘노무현 대통령의 죽음을 헛되이 하지 맙시다.’ 라고 메가폰을 들고 구호를 외쳤던 일이다. 그때 시민들이 우리들에게 호응하여 길거리 현장에서 무려 200부에 달하는 구독신청을 했던 일이다.

대담을 끝내면서 가슴이 뿌듯했다. 한겨레와 한겨레를 사랑하는 주주와 독자들의 사회기여를 생각했다. 여러모로 고마웠다. 우리나라는 아주 더디게 천천히 변하고 있다. 때론 뒷걸음치지만 국민들은 이제 더 이상 우매하지 않다. 이 느린 변화가 분명 희망으로 상승되고 있음을 지난 총선에서 보았다. 한겨레가 영원하듯 우리들 마음 또한 정의를 위한 불변의 역사를 쓸 것이다.

대담장소 : 종로 「문화공간 온:」 일시 : 2016년 5월 13일

대담자 : 허창무

편집 : 이미진 편집위원

허창무 주주통신원  sdm3477@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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