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교 폭력에 노출되다

2학년이 되기 전 미국에서 이웃으로 살다가 귀국한 현이네가 우리 아파트로 이사왔다. 현이네는 그 후 6년 동안 우리와 이웃사촌으로 살았다. 아들은 거친 남자아이들보다 현이와 더 꿍짝이 맞는 것 같았다. 현이와 현이 동생과 아들 셋이 자주 놀았는데, 그 모습이 그렇게 평화로울 수가 없었다. 늘 하하호호 웃음이 끊이지 않았다. 당연히 현이는 아들의 단짝친구가 되었다.

옆길로 새서 현이 이야기를 잠깐 하자면 현이는 중학교에 들어가면서 아들과 점차 멀어졌다. 다른 중학교로 배정된 탓도 있지만 아들과 현이 둘 다 한국의 중학교 과정을 너무 힘들어했기에 서로 만날 여유가 없었다. 현이 중학교 2학년 때 현이 아빠는 안식년이 되어 미국 교환교수로 들어가게 되어 현이와 아들은 더 멀어지게 되었다. 안식년 1년을 마치고 한국에 돌아왔어야 했는데 현이는 울며불며 한국행을 거부했다. 결국 현이아빠는 기러기 아빠 신세가 되고 현이는 동생과 엄마와 함께 미국에 남았다. 이후 현이는 미국에서 최고 대학에서 생물을 전공했다. 대학을 마치고 지금 대학실험실에서 행복하게 일하며 의대 진학을 준비하고 있다. 

2학년에 올라가기 전, 학부모 상담을 통해서 두 아이를 한반에 넣었다. 똑똑하고 성격 좋은 현이는 아들과 잘 통하는 아이라서 서로에게 도움이 될 것으로 보았다. 또 담임선생님도 아들을 사랑스럽게 봐주셔서 큰 어려움이 없을 줄 알았다. 하지만 예상치 못한 일이 벌어졌다. 아들이 또래 아동에게 괴롭힘을 당하기 시작한 것이다. 가장 아들을 힘들게 한 아이가 있었는데 바로 1학년 때의 도우미, 혁이(가명)였다.

혁이는 키가 작고 마르고, 행동이 잽싸고 눈치가 아주 빠른 아이였다. 학급에서는 선생님의 심부름을 도맡아 했고, 혁이의 형은 딸과 6학년 같은 반으로 반장이면서 전교회장이었다. 혁이의 어머님은 학교운영위원회 대표라서 나에게 운영위원 참여를 권하는 등 어머님과도 서로 인사도 나누는 그런 사이였다.

혁이는 아들이 말도 떠듬떠듬하고 순하게 보여서 그런지 무척 만만하게 본 것 같았다. 아들을 부하처럼 부리려 하였다. 하지만 아들은 하기 싫은 것은 절대로 하지 않는 성격이기에 혁이가 시키는 대로 고분고분 따르지 않았다. 그러자 혁이는 욕을 심하게 하면서 슬쩍슬쩍 때리기 시작했다. 처음에는 폭력의 강도가 그리 세지 않았기에 나서기가 좀 어려웠다. 선생님과 친해서 자주 이야기를 나눴는데, 선생님도 혁이의 그런 면을 잘 모르시는 것 같아 이야기를 꺼내지 못했다. 단지 지나가는 길에 만난 혁이 어머님께 부탁 차원으로 혁이에게 주의만 주어달라고 했다. 아마 아이들 문제에 어른이 시시콜콜 개입하는 것이 유별나 보일 것이라는 생각이 들어서 그렇게 얌전히 나갔을 것이다.

하루는 아들이 하교시간보다 좀 일찍 가방도 없이 실내화만 신고 왔다. 완전히 겁에 질려 새파래져서 뛰어왔는데 얼굴엔 할퀸 자국이 3-4군데 있었다. 물을 먹여 다독이고 자초지종을 물었더니 혁이가 때려서 도망 왔다고 했다.

그날 수업이 끝난 후 청소시간에 교실 앞 층계에서 혁이가 아들에게 심부름을 시켰다. 아들은 하기 싫어 거절하니, 아들을 붙잡고 얼굴을 할퀴고 목과 어깨 사이를 깨물었다. 그래도 아들이 말을 따르지 않자 다른 아이에게 붙잡으라고 하고는 죽여 버린다고 칼을 가지러 간다며 교실로 뛰어간 사이에 도망을 쳐 집으로 왔다고 했다. 정말 놀랐다. 2학년 초등학생이 그런 말을 할 수 있을까? 믿기지 않아 아들에게 묻고 또 물었다. 아들은 약은 거짓말도 못하는 아이이기에, ‘이건 정말 아니다’ 싶어서 아들을 데리고 학교에 갔다. 선생님께 아들의 상처를 보여드렸다. 그동안 혁이가 괴롭혔던 것에 대하여 아들에게 직접 말하라고 했다. 하지만 아들은 답답할 정도로 우물거리며 말을 하지 않았다. 나중에 왜 그랬냐고 물으니 혁이가 선생님께 혼나는 것이 싫어서 말을 안했다고 했다.

나는 혁이의 전화번호를 받아가지고 와서 혁이집으로 전화를 했다. 혁이는 학원에 가고 없었다. 어머님과 통화를 했다. 혁이 어머님은 자신의 아들이 그럴 리 없다고 벌떡 뛰셨다. 혁이가 집에 오는 대로 이야기를 해보시고 전화를 달라고 했다. 8시가 넘도록 기다렸는데도 전화가 오지 않았다. 다시 전화를 걸었더니 혁이 아버님이 받았다. 그 아파트가 군인조합아파트였는데 아버님은 군인이었다. 혁이 아버님은 내 말을 끊지 않고 차분히 들어주셨고, 나도 흥분이 가라앉아서 차근차근 그동안 아들이 받은 폭력에 대하여 말씀드렸다. 아버님께서는 확인해보시겠다고 하셨다.

10시 넘어 혁이 어머니에게서 전화가 왔다. 전화를 받자마자 나에게 따졌다. “왜 내가 알아서 전화를 할 텐 데 내가 나간 사이에 전화를 했냐? 욱이 엄마가 전화를 해서 혁이가 아빠에게 반쯤 죽게 맞았다.”고 하셨다. 기가 막혔지만, 혁이가 죽게 맞았다는 말에 아무 말 못했다. 어머님은 앞으로 그런 일이 없을 것이라고 했지만 ‘미안하다’는 사과는 하지 않으셨다. 이후 아들도 혁이에게 어떤 사과도 받지 못했다. 오히려 혁이는 뒤끝이 있는 아이라서 아들이 그 학교를 떠나는 4학년 가을까지 늘 아들에게 욕을 해댔다. 아들은 화해는 엄두도 못 내고 늘 혁이를 무서워하면서 피했다. 가만있지 말고 맞대응을 해야 한다고 수차례 말을 했지만 아들은 그러질 못했다. 어려서 어린이집 선생님이 말씀하신 "아이들이 건드려도 그냥 눈만 껌북껌북 할 뿐 대응하지 않아서 욱이 별명이 '천사'예요" 이 말 그대로 아들은 컸다. 오죽하면 딸이 참지 못하고, 혁이 형에게 혁이의 폭력을 항의하고, 제 동생의 교실에 찾아가 혁이를 불러내 “내 동생 괴롭히면 가만 안 놔둔다.”고 협박까지 했을까?

3학년에 들어가면서 친구를 한명 데리고 왔다. 율이라는 아이로 현이네와 같은 동에 아래윗집으로 사는 아이였다. 처음에는 율이와 참 친하게 지냈다. 우리 집에 놀러와 큰 상자에 둘이 푹 들어가 앉아 낄낄거리며 플레이스테이션도 함께 하고, 아파트 운동장에서 공차기도 했다. 율이는 다른 아이들과 비교할 수 없게 축구를 잘해서, 아이들이 율이와 한번 공차기를 하려고 줄을 설 정도로 아주 인기있는 아이였다. 그런데 2학기가 되면서 율이가 자꾸 머리를 때린다고 했다. 아들은 머리에 손을 대는 걸 아주 질색했다. 폭력문제만큼은 아이가 해결하기가 어렵고, 일찍 개입해야 부족하나마 해결이 된다는 것을 경험한 터라 율이 엄마에게 조심스럽게 말씀드렸다. 율이 엄마도 혁이 엄마처럼 그럴 리 없다고 벌떡 뛰었다. 하지만 율이에게 주의를 주었는지 율이의 폭력은 사라졌다. 다시 율이와 그럭저럭 잘 지냈고 우리 집에 와 예전처럼 놀기까지 했다. 애구 애구 울 아들... 너그럽다고 해야 하나? 밸이 없다고 해야 하나? 아님 애들다운 것인가?

<다음 편에 계속>

편집 : 박효삼 편집위원

김미경 부에디터  mkyoung60@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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