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잊혀지는 우리 것] 이상직 주주통신원

“죽을 날이 가까워지자 날로 몸과 맘이 쇠약해졌으니 본직과 겸대직을 속히 면하게 해 주소서.” 이는 조선 중기의 문신인 이경석(1595-1671)이 67살의 나이로 현종임금(1662)에게 올린 상소문입니다. 그러나 임금은 상소문을 훑어보고 허락하지 않습니다. 그만큼 이경석은 현종 임금의 총애를 받았는데 그는 정묘호란이 일어나자 체찰사로 강원도 지방의 군사모집과 군량미 조달에 힘쓰는 등 정치 일선에서 대활약을 한 인물입니다. 뿐만 아니라 1641년 소현세자의 스승으로 중국 심양에 함께 가지만 1년간 봉황성(鳳凰城)에 구금생활을 하게 됩니다.

귀국한 뒤에는 대사헌·이조판서 따위를 거쳐 1649년(효종 즉위)에는 영의정 자리에 오르게 되지만 김자점의 밀고로 조정의 북벌 계획이 청나라에 알려져 효종이 추궁을 당하게 되자, 영의정인 자신에게 모든 책임이 있다고 주장하여 백마산성(白馬山城)에 위리안치 됩니다. 그 뒤 풀려나 영중추부사 등을 지낸 뒤 기로소(耆老所)에 들어갑니다. 조선시대에는 70살이 넘는 신하에게 공경의 뜻으로 나라에서 지팡이[杖]와 의자[궤]와 가마 따위를 내리는 풍습이 있었습니다.

이경석도 하사품을 받게 되는데 현종 9년(1668) 11월 임금이 당시 원로대신이었던 이경석에게 공경의 뜻으로 내린 궤 1점과 장 4점 그리고 이를 받는 장면을 그린 그림 1점 등 총 6점의 유물이 전해 내려와 세간의 관심을 끕니다.

궤장을 내릴 때에는 반드시 잔치를 열었는데 의정부의 동서반을 비롯한 대신들을 참석하게 하고 예문관이 작성한 교서를 낭독하게 하였지요. 지금 당시의 유물이 경기도박물관에 <이경석 궤장 및 사궤장 연회도 화첩>이란 이름으로 (보물 제930호) 보관 전시되고 있습니다.

이상직  ysanglee@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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