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르포] 김선태 주주통신원

도라산 역을 출발하여서 도라전망대로 향했다. 이 도라전망대는 해발 155m의 낮으막한 산이지만, 신라 마지막 임금 경순왕의 슬픈 사연에서 생긴 이름이 도라산이라는데, 통일의 한이 가장 많이 서린 곳이기도 하다. 경순왕은 이곳에서 남동쪽을 바라보며 눈물을 흘렸다는데, 이제는 대부분의 실향민들이 북쪽을 행해서 절을 하고, 북쪽을 바라보면 한 숨을 쉬는 곳이 되고 말았으니 역사의 아이러니가 아닐지?

나는 이곳에 자주 온 경험이 있으므로 먼저 올라가서 전망대로 가지 않고 망원경이 있는 곳으로 갔다. 천 원짜리 하나를 동전으로 바꾸어서 망원경에 집어넣고 오른쪽 한 눈으로 북쪽 지역을 살펴보다가 대상물이 잡히면 한쪽에 카메라를 들이대고 찍어 보았다. 예전에 미니카메라는 망원경 렌즈 안에 카메라 렌즈가 다 들어가서 사진이 꽤 선명하기 찍혔었는데, 오늘은 내가 쓰는 카메라의 렌즈가 망원경의 렌즈보다 더 커서 사진이 잡히지 않았다 3,4장을 연거푸 실패를 하고 포기하고 눈으로라도 보자고 하였지만 그 동안에 동전의 효력이 다 떨어져서 근만 깜박 가버리고 말았다.

더 이상 보고 싶지도 않고 육안으로 보나 망원경을 쓰나 큰 차가 없는 것 같아서 그냥 육안으로 보이는 대로 사진을 찍어 두고 올라갔다.

여기에서 우리 해설사님은 좀 더 자세한 안내를 위해서 망배단에서 그리고 가장 잘 보이는 곳을 찾아가면서 열심히 설명을 해주셨다. 북쪽의 기정마을과 대성동의 국기게양대 모습도 이야기 하고, 이곳에서 농사짓는 모습이 그렇게 비교가 된다는 이야기도 해주었다.

내가 가본 대성동 마을에서는 바로 이웃한 기정마을이 그렇게 환하게 보였었는데, 날씨가 약간의 해무 같은 것이 끼어서 어슴프레하게 시야를 가리고 있어서 환한 모습을 볼 수가 없었다.

이곳에서 바라본 국기게양대는 두고두고 이야깃거리가 되곤 한다. 서로 지지 않으려고 더 높이기를 계속하다보니 세계에서 가장 높은 국기게양대를 만들고 만 이곳, 그 높은 게양대에 걸린 국기는 세계에서 가장 큰 국기가 아닐까 싶다. 그렇게 경쟁만 하던 두 나라 아니 우리민족의 두 갈래가 언제쯤 다시 뭉쳐서 서로 손잡고 살 수 있게 될지?

하긴 우리를 둘러싸고 있는 열강들은 결코 우리나라가 통일이 되기를 바라지 않는다는 엄연한 국제 질서 속에서 과연 그런 날이 어기는 할 것인지?

예전에는 이곳에서 바라보이는 들판 가운데 서서북쪽 약 3,400m 거리쯤에 임진각에 전시된 기관차 “철마는 달리고 싶다”라고 표시된 그 기관차가 있었는데 싶었다. 도라산 전망대에 오면 이 기관차 이야기가 가장 실감이 나고 전쟁의 흔적으로 남아 있는 것이었는데, 이젠 임진각으로 가고 없으니, 그 대신에 개성시내와 개성공단 같은 평화의 상징들이 더 각광을 받고 있는 셈이다.

여기서 바라보면 개성공단이 훤히 보이고 개성시내의 일부도 보이는 곳이다. 이렇게 가까운 곳에 고향을 두고 못가는 사람들은 이곳에 오면 얼마나 그립고 가고 싶을까 생각하니, 88올림픽 무렵에 추석 조상묘찾기 운동으로 이곳 도라산과 다른 OP 사이의 한 곳을 찾아서 커다란 상석이 있다는 국군의 제보를 따라 지뢰탐지기를 앞세우고 찾아들어갔던 적이 있었다.

그 때 이곳이 비무장지대가 아니고 일반 산이었더라면 분명 그 상석을 기계를 동원하여서 뒤집어서 글씨를 확인하였더라면 그 묘소의 주인공을 찾았을 텐데 싶었던 기억이 새롭다.

나는 조선조 초기 이방원의 왕자의 난에서 공신으로 작위를 받으신 조상님의 산소를 찾기 위해서 오가면서도 그런 애틋함이 남아 있는데, 자신이 나고 자란 고향을 찾지 못하는 실향민, 그리고 아직도 일가친척들이 살고 있는 고향을 남기고 떠나온 실향민들의 마음이야 오죽할까 싶어졌다.

각자가 자기 자신과 이곳의 사연을 가지고 바라볼 북녘 땅, 그리고 아직도 심각한 경제난과 압제 하에서 신음하는 북녘의 동포들이 하루 빨리 자유스런 생활을 보장 받고 마음 놓고 찾아다니면서 오랜 단절의 아픔을 씻어줄 그날이 와주었으면 싶은 것이 우리 모두의 마음일 것이다.

어슴프레 보이는 북녘 땅을 바라보면서 오늘 이 행사에 참여한 모든 분들의 마음속에는 어서 빨리 평화통일의 그날이 오기를 바라는 마음 하나로 뭉쳐져 있을 것이라 믿으니 다들 더 정다워 보이는 것이었다.

떨어지지 않는 발길을 돌려 내려오면서 자꾸만 뒤돌아 보이는 것은 북녘 땅의 동포들의 비참한 생활상이 너무 많이 알려져 있어서 그들의 고생스런 모습을 남기고 떠나야 하는 마음 같은 것이리라.

김선태  ksuntae@empa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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