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잊혀지는 우리 것] 이상직 주주통신원

빗돌[碑]란 어떤 일이나 그 자취를 뒷날 오래도록 전하기 위해 나무, 돌, 쇠붙이 따위에 글을 새겨 세워놓은 것을 말합니다. 우리나라에는 대부분 돌비가 많은데 빗돌의 형태는 고구려 돌비인 광개토왕릉비(廣開土王陵碑, 414년, 중국 길림성 집안시 태왕향)처럼 처음엔 돌기둥 모양들이었으나, 통일신라시대에 와서는 중국의 영향을 받아 비몸돌(碑身)과 거북 모양의 비받침(龜趺) 그리고 비머릿돌(首)을 갖춘 전형적인 형식이 되었지요.

빗돌 부분 이름들을 보면 비몸돌 앞면은 비양(碑陽), 뒷면은 비음(碑陰)이라 했고, 비몸돌의 위 또는 비머릿돌의 가운데에 빗돌 이름을 새기는데 이를 제액(題額) 또는 전액(篆額)이라 불렀습니다.

빗돌 종류를 보면 내용에 따라 묘비(墓碑) 탑비(塔碑) 사묘비(祠廟碑, 신주나 영정을 모신 건물에 세운 비) 사적비(事蹟碑, 어떤 사건이나 사업에 관련된 사실이나 자취를 기록한 ) 유허비(遺墟碑, 한 인물의 자취를 기리기 위해 세워두는 비) 송덕비(頌德碑, 공덕을 기리는 비) 따위로 나뉩니다.

임금 무덤 앞에 세운 왕릉비(王陵碑), 절의 부도탑비(浮屠塔碑, 스님의 사리나 유골을 모신 비), 임금이 국경을 돌아본 뒤에 세운 척경비(拓境碑)와 순수비(巡狩碑)도 있습니다.

빗돌은 사건이 일어난 당시나 그와 비슷한 때에 세워 역사적으로 중요한 사료이며, 빗돌 형태와 빗돌에 새겨진 비문 따위는 미술사 연구는 물론 문자학, 서예학 등 여러 분야에 귀중한 연구 자료로 활용되고 있지요.

현재 충주고구려비(忠州高句麗碑, 5세기, 충북 충주시, 국보 제205호)와 창녕 신라 진흥왕 척경비(昌寧新羅眞興王拓境碑, 561년, 경남 창녕군, 국보 제33호), 단양신라적성비(丹陽新羅赤城碑, 6세기, 충북 단양군, 국보 제198호) 등은 그 중요성을 인정받아 국보로 지정되어 있습니다.

이상직  ysanglee@naver.com

한겨레신문 주주 되기
한겨레:온 필진 되기
한겨레:온에 기사 올리는 요령

저작권자 © 한겨레:온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