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겨레 테마여행 : 강응천과 이스탄불에 가다 2

한겨레테마여행l승인2016.06.07l수정2016.06.09 19: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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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자 주] 이 글은 지난 2015년 10월 31일부터 11월 11일까지 12일간 진행되었던 <그리스 터키 문화기행-유럽 문명의 뿌리를 찾아서>의 동행 강사 강응천선생 답사기를 편집한 것이다.

2015년 11월 2일 (월)

카리예 박물관

고넨 호텔에서 E5 도로를 타고 14킬로미터쯤 달리면 정교회 성당의 정수를 보여주는 카리예 박물관이 나온다. 200평 남짓한 넓이로 성 소피아에 비하면 아담하지만, 비잔틴 후기 미술의 정수를 보여주는 벽화와 모자이크가 압권이다.

카리예는 근교의 시골을 뜻하는 그리스어 코라(Χώρᾳ)의 발음이 변한 말이다. 이곳은 4세기 콘스탄티누스 대제가 성 밖에 지은 수도원 단지의 일부로, ‘시골의 성 구세주 성당’으로 불렸다. 테오도시우스 2세가 새로 성을 쌓으면서 성안에 편입되었지만 ‘시골’이란 이름은 떼어내지 않았다. 성당 입구 회랑(나르텍스)의 모자이크에는 예수가 ‘산 자들의 땅(ἡ Χώρα των ζώντων)’, 마리아가 ‘품을 수 없는 것을 품은 자(ἡ Χώρα του Ἀχωρήτου)’로 묘사되어 있는데, 거기 쓰인 Χώρα가 ‘시골’과 동음이의어이기 때문이다.

이 성당은 11세기에 다시 세워지고 14세기에 중수되었다. 1453년 콘스탄티노플 함락 후 오스만 제국은 이를 모스크로 고치고 네 개의 미나레를 세웠다. 미나레는 지금도 남아 있지만 본 건물은 1948년 이후 14세기 성당의 모습으로 복원해 박물관으로 공개했다.

박물관은 여느 정교회처럼 서쪽의 회랑과 동쪽의 본당(나오스)으로 이루어져 있고, 남쪽에는 14세기 증축된 부속 성당이 자리 잡고 있다. 회랑은 외부와 내부 두 공간으로 나뉘어 있으므로 전체적으로는 네 부분인 셈이다.

그 네 부분에는 각각 특징적인 벽화와 모자이크가 조성되어 있는데, 특히 예수의 부활과 최후의 심판을 다룬 부속 성당 모자이크가 걸작이다. 또 내부 회랑에는 14세기 중수의 주역인 테오도레 메토키테스가 예수에게 성당을 바치는 장면이 묘사되어 있어 박물관의 오랜 역사를 시각적으로 증명한다.

박물관의 현관 격인 외부 회랑은 태어나면서부터 일련의 기적을 행하기에 이르는 예수의 일생을 보여준다. 내부 회랑은 예수의 가계와 더불어 마리아의 일생을, 본당은 마리아의 안식을 보여준다. 그리고 부속 성당으로 들어가면 아담과 이브를 데리고 지옥을 박차며 나오는 예수와 최후의 심판이 박진감 넘치게 표현되어 있다.

루멜리 히사르

▲ 루멜리히사르는 술탄 메흐메트 2세가 보스포러스 해협 근처에 건설한 요새이다

소 주둥이 구역을 떠나 갈라타교를 건너면 신시가지가 펼쳐진다. 보스포루스 해협 서안을 따라 북동진하다 보면 돌마바흐체 궁전을 지나 이스탄불의 청담동이라 부를 만한 고급 주택가와 상점가가 도열해 있다. 조금 더 가면 해협의 중간쯤 되는 곳에 메흐메트 2세가 동로마 제국을 고립시키기 위해 건설한 요새 루멜리 히사르가 나온다.

‘루멜리’는 오스만 제국의 유럽 지역 영토를 의미하고 ‘히사르’는 요새란 뜻이다. 척 봐도 흑해 쪽에서 콘스탄티노플 성채 쪽으로 내려오는 선박들을 단속하기 딱 좋은 곳이다. 메흐메트는 1452년 석공 1만 명과 인부 1만 명을 동원해 139일 만에 이곳을 지어 놓고, 다시 1년 만에 콘스탄티노플을 함락했다.

요새에 오르면 푸른 바다, 날렵한 술탄 메흐메트 대교, 우람한 성채가 어울려 절묘한 한 폭의 풍경화가 펼쳐진다. 매년 여름 음악회 등을 망라한 루멜리 페스티발이 이곳에서 열린다. 사람을 더 많이 죽이기에 적합한 군사적 요충지는 사람에게 더 많은 생기를 불어 넣는 축제의 관점에서도 더없이 적합하고 아름다운 곳이다.

땅에 가라앉은 궁전

루멜리 히사르를 나와 점심 식사를 한 뒤 소 주둥이 구역으로 갔다. 술탄 아흐메트 광장 바로 북쪽에 작은 극장 입구처럼 생긴 곳이 있는데, 그 안으로 들어가면 영화보다 더 영화 같은 장관이 펼쳐진다.

동로마 제국의 지하 물 저장소였던 예레바탄 사라이(‘땅에 가라앉은 궁전’)이다.

황실에 수도 공급을 원활히 하기 위해 콘스탄티누스 대제 때 공사를 시작해 유스티니아누스 1세 때인 532년까지 진행되었다. 오스만 제국 시절 폐쇄되었던 것을 1987년 진흙과 노폐물을 제거하는 작업을 거쳐 복원했다. 신전에서 뽑아 온 336개의 기둥이 떠받치고 있는 지하 궁전은 바닥에 고여 있는 물만 아니라면 지상의 대성당을 방불케 한다. 가장 인상적인 기둥은 메두사의 머리를 거꾸로 박아 놓은 것으로, 가만히 쳐다보고 있으면 그 기둥이 돌인지 내가 돌인지 헷갈릴 만큼 강렬하다.

007 영화의 세트로 쓰이기도 했고 이스탄불 예술 비엔날레 기간 동안에는 시청각 시설로 쓰이기도 한다는데, 가보지 않았어도 그 광경이 눈에 선하다.

그랜드 바자

▲ 그랜드 바자

예레바탄 사라이에서 서쪽으로 약 1킬로미터 떨어진 곳에 세계에서 가장 크고 오래된 실내 시장의 하나로 꼽히는 그랜드 바자가 있다. 콘스탄티노플 함락 직후인 1461년에 완공되어 500년이 훌쩍 넘는 역사를 자랑하는 이스탄불의 대표적 관광지이다. 터키에서는 지붕을 덮은 시장이라는 뜻의 카팔리자르시(Kapalıçarş)나 큰 시장이라는 뜻의 뷔위크 자르시(Büyük Çarşı)로 부른다.

귀금속, 의류, 조명, 도자기 등 상품별로 분류된 61개의 아케이드에 3000개가 넘는 상점이 들어차 있고, 일하는 사람만 2만 6000명에 달한다. 2014년 미국 잡지 <트레블+레저>가 세계의 관광지 가운데 가장 많은 사람이 방문하는 곳으로 꼽았다. 당시 1년 방문객이 9125만 명으로 집계되었으니 쉬는 날(일요일과 은행 휴무일)을 빼고도 하루 평균 30만 명가량이 운집한다는 얘기다.

아닌 게 아니라 시장 서쪽 누루오스만('오스만의 빛') 모스크 앞에 앉아 입구를 바라보면 독일, 미국, 중국 등 곳곳에서 온 단체 관광객이 끝도 없이 밀려든다. 테러범들이 이곳을 노린다면 정말 엄청난 사고가 날 게 틀림없다. 그런데 흥미로운 것은 그렇게 홍수를 이루는 관광객 중에 상품을 사 들고 나오는 사람은 별로 보이지 않는다는 것이다.

탁심 광장

▲ 탁심 광장의 야경. 이곳은 이스탄불에서 유동인구가 가장 많은 곳이며 쇼핑과 상업 중심지이다

다시 갈라타교를 타고 신시가지로 넘어가 한식으로 저녁을 먹고, 7시 반경 번화가에 둘러싸인 탁심 광장으로 갔다. 돌마바흐체 궁전 뒤 언덕에 자리 잡은 이 광장은 오스만 제국 시절 도시 북쪽의 수도 공급원으로 조성되었다. 도시 곳곳에 물을 분배하는 곳이라 이름도 분배를 뜻하는 ‘탁심(Taksim)’으로 지어졌다.

이스탄불 시민의 정치 집회 장소로 애용되어 오면서 크고 작은 유혈 사태도 끊이지 않았다. 1977년 노동절에 35명의 좌익 시위자들이 정체불명 집단의 총기 난사에 희생된 사건은 ‘탁심 광장의 대학살’로 불리며 이 광장에 오명을 안겨주었다. 2010년 10월 31일에는 쿠르드족 민병대의 자폭 테러로 32명이 부상당한 일도 있었다. 지금은 경찰이 24시간 순찰을 돌며 대부분의 정치 집회를 금지하고 있다.

광장 주변 거리를 산책하는 것으로 하루를 마무리했다. 터키 최대 번화가 중 하나일텐데도 샤넬, 구찌, 입센로랑 등 세계 주요 도시를 점령하고 있는 유수의 브랜드가 눈에 잘 띄지 않았다. 그 배경이 무엇이든 이스탄불 시민은 소비의 개성과 주체성을 누리며 살아가는 셈이다.

>> <제2부 그리스 종주>로 이어집니다.

글/사진 강응천 역사저술가 및 출판기획자, 인문기획집단 문사철 대표 

편집 : 박효삼 편집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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