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잊혀지는 우리 것] 이상직 주주통신원

고려 공민왕 때 충신 모은(茅隱) 이오(李午) 선생은 고려가 망하자 제현들과 함께 두문동(杜門洞)에 들어가 결의를 하고 함안으로 내려와 산인면에 고려동을 짓고 은거했던 분입니다. 선생은 자신이 끝까지 고려왕조의 유민임을 나타내기 위해 담 밖은 신왕조인 조선의 영토이지만 담 안은 고려유민의 거주지인 고려동임을 선언했으며 고려동 앞의 고려 밭과 논에서 나오는 곡식을 먹고 지냈지요. 물론 이런 신념을 지녔기에 조선 태조의 조정에서 여러 번 불렀으나 벼슬길에 나아가지 않았습니다.

“나라를 잃은 백성의 묘비에 무슨 말을 쓰겠는가, 내가 죽으면 할 수 없이 담장 밖에 장사할 것인즉 혹 조선의 땅에 묘비를 세울 경우 내 이름은 물론이고 글자 한 자 새기지 말라”고 남겨 자손들은 묘비에 글자가 없는 백비(白碑)를 세웠습니다. 또 아들 개지(介智)에게 경계하기를 “너 또한 고려왕조의 유민이니 어찌 신왕조에 벼슬할 수 있겠는가. 내가 죽은 뒤에 절대 신왕조에서 내려주는 관명은 사용하지 말고 또 내 신주도 고려동을 떠나 다른 곳으로 옮겨서는 안 된다”고 할 정도로 고려와의 의리를 소중하게 여겼습니다.

모은 이오 선생이 살던 고려동은 지금도 경남 함안군 산인면 모곡리에 고려동유적지 (高麗洞遺蹟址)로 남아 있으며 (경상남도 기념물 제56호, 1982.8.2 지정) 후손들은 19대 600여 년에 이르는 동안 이곳을 떠나지 않고 살고 있습니다. 현재 마을 안에는 고려동학비, 고려동담장, 고려종택, 자미단, 고려전답 3,000여 평, 자미정, 율간정, 복정들이 남아 있으며 후손들은 선조의 유지를 받들어 벼슬길에 나아가지 않고 올곧게 살아가고 있습니다.

이상직  ysanglee@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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