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교를 멀리하고 싶어하는 아이

4학년이 되면서 남자아이들은 더 거칠어지는 것 같았다. 아들은 아직도 마음이 여린 어린아이 모습 그대로인데 다른 아이들은 사춘기가 왔는지 마구 변해갔다. 이상한 성적인 멘트도 서슴없이 썼고 욕도 심하게 했다. 욕 한번 할 줄 모르고, 방어주먹 한번 날릴 줄 모르고, 말싸움에서도 상대가 되지 않는 아들은 그런 거친 아이들에게 점점 더 지쳐가는 것 같았다. 소원이 학교 가지 않는 것이고 방학이 되기만을 손꼽아 기다렸다. 방학이 되면 하루하루 줄어들어가는 날짜를 셌다. 오죽하면 초등학교는 졸업하겠지만 중학교를 가지 않겠다고 했을까? 중학교를 가지 않고도 나중에 커서 뭣을 할 수 있는지 물었을까?

그런 갑갑한 시기를 지내고 있던 어느 날, 베란다에 서서 하교하는 아이들을 보고 있었는데 기가 딱 막히는 장면을 보게 되었다. 아들이 맨 앞에 가고 뒤에 두 명의 아이들이 따라오는데, 그 중 한 아이가 아들이 등에 맨 가방을 발로 세게 차는 것이었다. 그런데 아들은 앞으로 확 밀려가면서도 뒤도 안돌아보고 그냥 걸어갔다. 아들이 그렇게 걸어가니까 그 아이는 몇 번 더 세게 아들의 가방을 발로 찼다. 아들은 그 힘에 밀려 심하게 앞으로 고꾸라질 뻔하면서도 뒤로 돌아 항의 비슷한 맞대응을 하지 않았다. 그냥 ‘나 잡아 잡슈’ 하는 것 같았다. 한두 번 당한 일이 아닌 듯 보였다. 가만히 보니 발로 찬 아이는 율이 같았다. 너무 놀라 아들이 집에 들어올 때까지 숨을 제대로 쉴 수가 없었다.

아들은 인생 다 산 아이처럼 기가 팍 죽어서 들어왔다. 그러고는 아무 말도 안했다. 아들이 아무 말도 안하는데 내가 먼저 이야기를 꺼내기 힘들었다. 시간을 두고 있다가 아들에게 내가 본 이야기를 했다. 아들은 눈물을 뚝뚝 흘리면서 그 동안 율이가 4학년 들어와 다시 괴롭힌 이야기를 해주었다. 우리는 부둥켜안고 같이 울었다. 친구라서 율이의 괴롭힘을 말하고 싶지 않다고 했다. 율이 어머님께 말하지도 말고 그냥 전학을 가고 싶다고 했다. 혁이에게 당한 경험이 있어서 율이 어머님께 말해도 소용이 없을 거라 생각하는 것 같았다. 아들을 설득했다. 이건 피해서는 안 되는 일이고 어른이 도와주어야 하는 일이라고 했다. 그리고 율이가 그런 행동을 고치도록 도와주어야 하는 것도 어른이 몫이라고 했다. 한참 이야기 끝에 아들은 나의 도움을 허락했다.

율이 집으로 전화를 했다. 율이 어머님께 내가 본 모습을 이야기 하고 율이를 우리 집에 좀 보내달라고 했다. 율이 어머님은 율이를 보내기 꺼려하시며 이 핑계 저 핑계 대셨다. 나는 왜 그랬는지 직접 물어봐야 하니 보내달라고 계속 요구했다. 지속적인 요구에 율이 어머님도 몹시 당황한 것 같았다. 아버님과 의논하고 보내준다고 했다. 율이 아버님을 길 가다 본 적이 있었는데 아버님과 얽히고 싶지 않았다. 혁이처럼 부모가 아이를 체벌하는 것으로 끝내고 싶지 않았다. 그래서 그렇다면 지금 바로 학교로 찾아가 선생님과 의논하겠다고 했더니 결국 율이를 보내주었다.

율이가 겁에 질려 눈이 둥그레져서 우리 집에 왔다. 하교 길에 아들을 발로 찼는데 왜 그랬는지 물었다. 어이없게도 율이는 재미로 찼다고, 장난이라고 했다. 나는 화가 많이 났다. 그동안 욱이를 많이 때린 것을 알고 있다고 이야기 하고, 그동안 아들을 어떻게 괴롭혔는지 종이에 다 쓰라고 했다. 만약 자세히 쓰지 않으면 함께 교장선생님을 찾아가서 오늘 본 이야기부터 그동안 욱이를 괴롭힌 이야기를 다 하겠다고 했다. 율이는 내 말에 잔뜩 겁을 먹은 것 같았다. 율이는 하나라도 놓치면 교장선생님께 가야할 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는지 번호를 매겨가면서 생각하고 또 생각하면서 썼는데 아이들 공책 1장이 넘었다. 겁 많은 아들은 방안에 들어가 몸은 숨기고 고개만 살짝 내밀고는 우리를 지켜보았다. 나중에 왜 숨었냐고 물었더니 그렇게 말하는 엄마가 무서웠다고...

율이가 쓴 내용을 보고나니 더 기가 막혔다. 이렇게 괴롭힘을 당하면서도 엄마에게는 말 한마디 하지 않고, 혼자서 감당한 아들을 생각하니 마음이 더 아팠다. 이를 악물고 눈물을 참았다. 아들을 불러 율이가 쓴 내용을 보여주면서 더 괴롭힌 것은 없는지 물었다. 아들은 제대로 읽지도 않고 ‘무조건 맞다’ 고 했다. 그 상황이 괴로워 빨리 끝나기만을 바라는 것 같았다. 그래서 율이에게 자신이 쓴 내용이 맞다는 확인 사인을 하라고 했다. 그리고 각서를 한 장 받았다. “앞으로 또 괴롭히면 교장선생님께 확인 사인한 글을 가지고 함께 찾아간다. 앞으로 이런 행동을 하지 않으면 이전에 괴롭힌 행동은 없는 일로 하겠다.”고 썼다. 세 사람이 사인을 했다. 율이가 괴롭힌 내용과 각서를 복사해서 원본은 내가 갖고 복사본은 율이에게 주어 어머님께 보여드리라고 하고는 보냈다.

율이도 그렇게 혼난 적은 없었으리라. 그리고 율이 어머님도 무척 놀랐으리라. 율이가 집에 도착하기 전에 전화를 했다. 있었던 내용에 대하여 율이 어머님께 말씀드렸고 2장의 복사본을 보냈으니 꼭 읽어보시라고 했다. 율이 어머님은 그렇냐고만 하셨다. 율이 어머님은 이후에도 혁이 어머님같이 어떤 사과도 하지 않았다. 나중에 오히려 현이 엄마에게 ‘욱이 엄마가 참 별나다’라는 말만 했다고 들었다. 율이 엄마는 사과를 안했지만 율이는 바로 그 다음날부터 믿기 어려울 정도로 아들에게 친절하게 대했다. 아들의 눈치를 볼 정도였다. 혁이보다 성격이 좋은 아이였던 것 같다. 율이는 4학년 2학기에 축구부가 있는 초등학교로 전학을 가서 축구에 전념했다. 그 이후 우리가 서울로 이사를 올 때까지, 주말이면 둘이는 가끔 만나 아파트 운동장에서 축구를 하며 잘 놀았다.

몇 년 전까지도 아들은 율이와 싸이월드에서 만났다. 안부를 묻고 서로 만나자고 했다. 하지만 직접 만난 적은 없다. 나는 아직도 율이를 생각하면 마음이 불편한데, 아들은 어떨까? 그토록 잔인하게 괴롭힌 아이였는데 아들은 지난 일을 정말 다 깨끗하게 용서한 걸까? 그래서 대화를 나눌 수 있을까? 얼마 전에 살던 그 아파트를 차로 지나가면서 율이 생각이 나서 율이가 어떻게 변했는지 궁금하다고 했다. 그랬더니 아들이 이랬다.

"엄마, 옛날 일은 다 잊어. 나는 용서했는데 엄마가 왜 그래? 그리고 나 이젠 아니잖아." 부끄럽게도 아들의 마음이 나보다 넓다.

이런 저런 이유로 아들 4학년 2학기 가을에 서울로 이사를 하게 되었다. 아들도 나도 그 학교에 미련이 없었다. 이사 가기  1주 전 토요일에 아들 생일파티 겸 이별파티를 해주었는데 깜짝 놀랐다. 우리 집에 초대받아 온 아이들로 거실에 앉을 자리가 부족했다. 여자아이들이 더 많았다. 그동안 친구들에 대해 별로 이야기 하질 않아 여전히 외톨이인줄 알았는데... 나도 모르는 사이에 친구관계를 형성했나? 아니면 아들이 떠난다고 하니 친구들이 마지막이라고 생각해서 다 와준 건가? 이제야 친구들이 아들의 좋은 점을 알게 되었나? 이거 이사하기로 결정한 것이 잘못 아닌가? 이런 저런 생각이 들어 아들에게 다시 물었더니 아들은 단호히 전학 가는 것이 더 좋다고 했다.

그렇게 또래 아이들의 폭력으로 무척 고단했던 서울근교 생활을 마치고, 우리는 다시 서울 생활을 시작하게 되었다.

▲ 여린 아들을 무척 아껴주셨던 관장님, 사범님과 함께 이사하기 전 찍은 기념사진. 아들은 태권도시범단에도 들었다. 사실 시범단 들기에 실력이 부족했는데 자신감을 갖도록 특별 배려를 해주셨다. 태권도를 즐기게 도와주어 현재의 체력과 체구를 갖게 해주신 두 분께 늘 감사한 마음을 갖고 있다.

<계속>

편집 : 박효삼 편집위원

김미경 부에디터  mkyoung60@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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