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유게시판] 이상직 주주통신원

“한라산에는 예전부터 분죽(산죽)이 숲을 이루고 있는데, 잎은 크고 뾰죽하여 노죽이라고도 합니다. 분죽은 본래 꽃 피고 열매 맺지 않는데 올 3월부터 온 산의 대나무가 꽃을 피우더니 열매를 맺었는데 열매알이 보리알 같았습니다. 이때 제주도 세 고을이 몹시 가물어 보리가 흉작이라 백성들이 굶주림에 시달리고 있었습니다. 한 노인이 분죽의 열매(竹實)를 깨물어 보았습니다. 그러나 단단하여 깨지지 않자 돌로 깨보니 하얀 가루가 나왔습니다. 노인은 이 열매를 많이 따서 절구에 넣고 빻아 가루를 내어 죽을 쑤어 먹었습니다. 그로부터 세 고을 사람들일 이를 알고 대나무 열매로 이듬 해까지 목숨을 이어갔습니다.”

이는 제주목사가 조정에 한 보고입니다. 대나무의 열매가 구황식품이었던 것이지요. 《증보문헌비고(增補文獻備考)》에는 "조선 태종 때 강원도 강릉의 대령산 대나무가 열매를 맺어 그 모양이 보리와 같고 찰기가 있으며 그 맛은 수수와 같아서 동네사람들이 이것을 따서 술도 빚고 식량으로 썼다"는 기록이 있습니다.

이 내용은 이수광의 《지봉유설(芝峯類說)》에도 인용되고 있는데 "남쪽지방과 지리산에는 대나무 열매가 많이 열려 그 지방 사람들이 이것으로 밥을 지어 먹는다"고 하였지요.

우리는 대나무를 꽃도 열매도 없는 그저 줄기와 잎만 있는 나무로 압니다. 하지만 이렇게 대나무는 꽃도 피우기도 하도 열매를 맺기도 합니다. 대나무 열매는 다른말로 죽실(竹實)·죽미(竹米)·야맥(野麥)·죽실만(竹實滿)·연실(練實) 따위로 부르는데 종류에 따라서 모양이 다르지만 대개 밀알이나 보리알을 닮았습니다.

대나무는 600여 종이나 있는데 높이 1m 안팎으로 자라는 조릿대는 5~10년이면 꽃 피고 열매를 맺고, 키가 10m 정도나 자라는 솜대나 노랑 바탕에 검은빛 반점이 있는 반죽은 60~120년을 1주기로 꽃을 피지만 꽃을 피면 말라죽는 공통점이 있습니다. 이는 꽃이 피면 땅속줄기의 양분이 소모되어 다음 해에 움이 나야 할 대눈의 약 90%가 썩어 버리기 때문이라고 합니다. 대나무는 흉년에 곡식을 대신할 수 있는 귀한 나무란 걸 알 수 있습니다.

이상직  ysanglee@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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