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잊혀지는 우리 것] 이상직 주주통신원

조선시대 도(道) 이름은 행정구역 가운데 인구가 많은 두 목의 이름 앞 자를 따서 불렀습니다. 그때 충청도 가운데 인구가 많은 목 가운데 충주가 으뜸이었고, 청주가 그 다음이었습니다. 그래서 충청도가 된 것이지요. 그렇게 충청도였던 것이 불미스러운 일로 인해 잠시 이름이 바뀐 적이 있었습니다.

첫째는 충주 가흥창에서 근무하는 모영하 등 4명이 충주의 세곡 5천 석을 물에 불려 팔아 이익을 취한 일이 어영청에 들켜 모두 처형된 사건이 있었습니다. 또 충주목의 유석주라는 자가 가을에 걷어 들인 환곡을 팔아먹으니 봄에 충주 백성들이 씨앗을 구하지 못해 한 해 농사를 짓지 못하게 되었습니다. 이 탓에 먹을 것이 없게 된 충주 백성들은 굶어죽거나 다른 지방으로 떠나갈 수밖에 없었지요. 범인 유석주는 체포되어 탐관오리로 처형되었습니다.

이 두 사건이 조정이 보고되자 이조는 “죄인이 살던 곳이라 하여 충주목사를 충원현감으로 강등하고 인구 셋째인 공주를 앞에다 붙여 충청도를 공청도로 부르게 되었지요. 정3품 목사가 다스리던 고을이 종5품 현감의 근무지로 강등되었으니 고을 백성의 권리는 줄고 의무는 늘어나게 되었습니다.

또 죄인 고을이라는 불명예가 늘 따라다니니 백성들의 어려움은 이루 말할 수 없었지만 반면 공주목은 경사가 났지요. 그 뒤 법으로 정해진 강등기간 10년이 지나 다시 충원현은 충주목이 되고 공청도는 충청도로 원상회복이 되어 오늘에 이릅니다. 듣고보니 흥미롭지요?

이상직  ysanglee@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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