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는 불자는 아니지만 절을 좋아합니다. 절은 그 산에서 가장 좋은 자리를 차지하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전망이 아주 좋거나, 알토란같은 위치를 차지하고 있는 절들이 많습니다. 집을 나와 걸어서 한 시간 반 정도 가면 원통사(圓通寺)란 절이 있습니다. 원통사도 북한산에서 전망이 최고라 할 정도로 좋은 자리에 있습니다. 신라시대에 지어진 천년 넘은 고찰입니다. 圓通(원통)이란 말은 ‘내 마음과 관세음보살이 두루 통한다.’라는 의미라고 합니다. 그래 그런지 오래된 절에는 우러나오는 어떤 심오함이 느껴집니다. 조용한 경내에선 발걸음도 조심스러워지고 말도 속삭이듯 하게 됩니다. 손은 저절로 가슴에 모아지며 마음도 경건해집니다. 그래서 자주 가게 되나 봅니다.

▲ 원통사를 지켜주고 있는 듯 한 기암괴석

 

▲ 원통보전

 

▲ 원통사 경내에서 보면 멀리 수락산, 불암산까지 보입니다. 작년 가을에 찍었습니다.

몇 년 전 봄에는 그 유명한 구인사에 가보았습니다. 예전에 소백산을 오르다가 한번 지나간 적이 있는데 산행에 몰두해서 그런가? 그 절이 그렇게 독특한 줄 몰랐습니다.

구인사를 보여드리기 먼저 부안의 내소사와 김제의 금산사를 보여드리고자 합니다. 

전라북도 부안군에 있는 내소사도 천년이 넘은 고찰입니다. 내소사는 4개의 보물문화재가 있을 정도로 자랑스러운 문화유산입니다. 능가산 관음봉과 어우러진 절의 기운이 그렇게 편안할 수가 없습니다. 또 절 입구에서부터 이어지는 전나무 숲의 향기는 발길을 오래 잡아두곤 합니다. 나중에 더 늙어서 내소사 근처에서 살아볼까 하는 생각까지 해보게 하는 절입니다.

▲ 전나무 숲길

절 입구에서 전나무 숲길을 지나면 보일 듯 말 듯 천왕문이 조용히 절을 지키고 있습니다.  

▲ 천왕문

능가산의 관음봉이 내소사를 둘러싸고 있습니다. 굉장히 여성적인 산세로 내소사를 포근하고 아늑하게 감싸고 있다는 생각이 들 정도로 정말 잘 어울립니다.  

▲ 능가산

단청이 칠해지지 않는 대웅보전입니다. 대웅보전은 못 하나 쓰지 않고 나무를 깎아 서로 교합하여 만들었다 합니다. 보물문화재입니다. 은은한 나무 향이 풍기는 듯 합니다.

▲ 대웅보전

대웅보전의 꽃문양의 문살입니다. 문살은 문짝에 창호지를 바르는데 뼈가 되는 나무입니다. 보통 격자무늬이지만 특별히 연꽃, 국화꽃, 해바라기꽃 문양으로 장식을 했습니다. 하나하나가 장인이 땀과 정성을 들여 조각한 작품 같습니다.

▲ 내소사 꽃문양 문살

이런 집에서 살라고 하면 얼마나 좋을까요?

▲ 요사채

내소사 경내에 있는 큰 당산나무가 있습니다. 1000년 넘은 내소사와 함께 세월을 간직한 나무이지요. 불교와 당산나무... 어울릴 것 같지 않으면서도 잘 어울립니다. 서로를 내치지 않고 감싸 안으며 천년의 세월을 함께 했으니 아마 서로에게 도가 텄을 듯싶습니다.

▲ 내소사 경내 당산나무

다음에는 몇 년 전 가을에 다녀온 전북 김제 모악(母岳)산의 금산사를 보여드리고자 합니다. 금산사도 백제시대에 창건된 천년 고찰입니다. 임진왜란 때 승병활동의 중심지 역할을 해서 정유재란 때 그 보복으로 건물이 완전히 전소되었다가 재건되었습니다. 부속된 암자가 40여개에 이르는 대찰이고 정신적인 힘이 있는 절이라서 굉장히 웅장할 줄 알았는데 미륵전을 제외하고는 아주 푸근한 절이었습니다. '모악산'이란 이름이 정상에 아기를 안고 있는 어머니의 모습을 닮은 큰 바위가 있어 그리 정해졌다 해서 그런가~ 절도 어머니같은 푸근함이 느껴졌습니다.

금산사의 미륵전입니다. 3층으로 된 목조건물로 아주 보기 드문 법당이라고 할 수 있지요.

▲ 금산사의 미륵전

미륵전 앞에 핀 산사나무입니다. 그 많은 붉은 열매를 맺고자 자신의 몸과 피를 내어준 산사나무가 엄마 같습니다.

▲ 산사나무

수백 년 동안 미륵전과 함께 사계절을 맞이한 금산사의 산사나무에서 내소사의 당산나무의 모습을 봅니다. 우리가 감히 따라갈 수 없는 생명의 끈질김과 고귀함, 그리고 경외심마저 느끼게 합니다.

▲ 산사나무

제가 참 좋아하는 사진입니다. 호젓한 늦가을 분위기를 한껏 느끼게 하는 산사입니다.

▲ 금산사 경내
▲ 금산사 경내

늦가을의 붉은 단풍나무와 노란 은행나무가 큰 법당 마당을 가운데 두고 멀리 떨어져 서로를 바라보고 있습니다. 서로 무심한 듯... 유심한 듯... 친구처럼 보입니다. 몇 년을 그리 살면 소곤소곤 이야기도 나눌 것 같습니다.

▲ 금산사 경내 단풍나무
▲ 금산사 경내 은행나무

이제 구인사의 모습을 보여드리고자 합니다.

물론 원통사나 내소사, 금산사 같은 유서 깊은 사찰과 50년 막 넘은 구인사를 비교한다는 것이 좀 무리가 되기도 하겠지만 너무도 다른 모습이라 함께 보고자 합니다. 구인사는 어마어마하다는 표현이 딱 맞습니다. 그 큰 규모에서 양적 성장을 위주로 급하게 살아가는 한국이 보이는 것 같습니다. 한국에서 몇년을 살다 간 외국학생이 한국산업에 대해 이런 말을 했던 것이 생각납니다. "only Quantity, not Quality". 

이런 느낌이 드는 것은 저만이 아닌 듯합니다. 구인사를 올라가는데 앞서 가는 60대 아저씨 두 분이 이런 대화를 나누며 올라갑니다.

A 아저씨 : 야... 너 이렇게 큰 절 봤냐? 

B 아저씨 : 그러게 말이다. 무쟈게 크네

A 아저씨 : 야... 근데 이렇게 크니까 어째 절 같지 않다.

B 아저씨 : 그래.. 나도 그렇다.. 좀 그렇다

일주문과 천왕문의 모습입니다.

▲ 일주문

 

▲ 천왕문

어마어마한 항아리 단지 입니다. 천태종 총본산이니 워낙 오가는 신도들이 많겠지요?

▲ 항아리 단지

5층 법당 위에 부처님을 크게 모신 설법보전이 있습니다. 구인사의 대다수의 건물은 나무로 지어진 것 같지 않습니다. 제 눈에는 절의 기본 구조나 장식 등이 시멘트로 지어진 것으로 보입니다. 어두운 시멘트 색깔 때문에 그랬을까요? 유난히 단청의 색깔이 화려하고 강합니다. 설법보전의 문들도 단청 색깔에 맞추려니 색깔이 아주 진합니다. 제가 좋아하는 내소사의 소박한 대웅전과는 너무도 다른 모습입니다.

▲ 5층 법당
▲ 설법보전
▲ 설법보전

구인사의 가장 높은 곳에 위치하고 있는 법당인 대조사전이라고 합니다. 구인사는 대한불교 천태종의 총본산이며, 초대종정은 상월원각 대조사님입니다. 이 대조사님을 모신 법당을 대조사전이라고 합니다. 금산사와 같은 3층 법당인데요. 저는 시멘트 구조물로 보았는데 대조사전을 찾아보니. 목조건축물이라 나오네요. 금색을 주색으로 하여 번쩍번쩍합니다.  어마어마하게 큰 대조사님께서 부처님같이 앉아 계십니다. 사진을 찍지 못하게 해서 찍지 못했습니다.

▲ 대조사전

대조사전의 위용에 놀라 왔다 갔다 하는 저를 보고 어떤 아주머님께서 다가오셨습니다.

“구인사에 자주 오시나요?”

“두 번째입니다.”

“자주 와서 기도를 하세요. 소원은 딱 한 가지만 정해놓고 하세요. 대조사전에서 기도를 하면 들어주신답니다.”

잠시 제 소원이 뭘까 생각해보았습니다. 저는 소원도 없는 사람이었나 봅니다.

▲ 새로 짓는 법당

몇 년 전에 찍은 새로 짓는 법당입니다. 지금은 화려한 단청을 입었겠지요. 일단은 이렇게 시멘트로 기둥이며 서까래를 만드는 것 같습니다. 어떤 법당이 될지 모르지만 근대 건축물 같이 느껴집니다. 무지무지하게 큽니다.

그래도 계곡 아래 쪽 오래된 작은 절중에서 적어도 3개는 나무로 지어진 절 같았습니다. 멀리서 볼 때도 단청과 나무가 잘 어우러졌습니다. 하지만 크기가 큰 절들은 다 시멘트로 급속 건축한 것 같다는 생각이 듭니다. 최근 50년 동안 300만 명이상의 사람들이 천태종 신도가 되었다고 하니 바쁘긴 하겠지요. 짧은 시간 안에 대형으로 빨리 지어야 하니, 시멘트로 뚝딱 올릴 수밖에 없었겠지요. 그래서인지 오랜 기간 풍상에 시달리면서 쌓여지는 세월의 내공이 느껴지지 않았습니다. 이해가 가긴 가면서도 아쉬움이 많이 남는 구인사였습니다.

괭이눈입니다. 색깔이 정말 곱지요? 소백산의 작은 계곡 하나를 완전히 점령해버린 인공건축물이 제 아무리 뽐을 내어도, 구인사 맨 꼭대기 산등성이에서 자연은 여전히 제 몫을 하며 그 향기를 이어가고 있습니다.

편집 : 박효삼 부에디터

김미경 편집위원  mkyoung60@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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