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화권에서 가끔 논쟁거리로 언급되는 대표적인 이야기는 다음 세가지다.

1. 한국 사람들은 왜 공자를 한국인이라고 주장하는가?

2. 왜 일본인은 중국인의 후예라고 인정을 하는데 한국인들은 부정하느냐?

3. 단오가 중국명절인데 왜 한국 거라고 먼저 유네스코 인류무형문화유산에 등재를 했느냐?

한번은 말이 별로 없는 친구가 맥주 몇 잔을 마시더니 언성을 높이며 따지던 이야기입니다.

1번은 모 교수가 저서에서 “산동에서 태어난 공자는 상(은)나라 후손으로, 周(주)나라에 패한 유민이 산동을 거쳐 한국에 정착한 우리 민족과 같다!“고 주장한 내용이 알려지면서 논쟁거리가 되었습니다.

이런 주장은 한단고기에서도 언급하는 내용으로, 비록 지금은 이렇게 쪼그라지고 갈라진 민족이지만 원래는 중국을 지배했던 위대한 민족임을 내세우고자 하지만, 언어학이나 골상학으로 보면 거리가 먼 이야기입니다. 역으로 우리 민족이 상의 후예라면 단일민족이란 말도 없어져야 되고, 우리가 중국인임을 스스로 인정해야 됩니다. 우리 스스로에 대한 자긍심을 버리고 정신 및 문화사대주의에 빠지게 되지요.

2번은 진시황이 3,000명의 동남동녀를 파견하여 불로초를 구해오라고 하였는데 그 때 일본으로 넘어가 정착한 일부 사람들이 일본인이라는 이야기입니다. 그래서 3,000명이 모조리 일본에 가서 자식들을 낳아도 2,200년 만에 1억 5천의 인구를 만들 수 없다고 이야기해줬지요. 3,000명이 모두가 대만에 왔다고 해도 믿지 않을 이야기입니다.

2005년 강릉 단오제가 유네스코 무형문화유산으로 등재가 되자 중국에서 난리가 났지요. 중국문화대혁명 당시 악습으로 타도해야할 구태였었던 단오절. 한국이 자기들 명절마저 빼앗아 갔다고 난리를 피우더니, 부리나케 2008년 추석과 단오절을 국가 공휴일로 지정하였습니다.

단오의 기원

端午(단오)는 우리가 아는 伍子胥(오자서)나 屈原(굴원)의 고사 훨씬 전부터 揚子江(양자강, 중국에선 대부분 ‘장강‘이라고 부름) 이남 지역에서 여러 액막이 행사와 함께 전해오던 풍속이 점점 변형이 되고 발전을 했습니다.

端午(단오)는 初五(초오)의 개념으로 초닷새라는 의미입니다. 음력 5월을 惡月(악월)이라 칭하고, 5일은 또한 惡日(악일)이며 양과 양이 합친 극양일로 5월 5일은 모든 일을 피하고 집집마다 귀신 쫒기 행사를 했습니다. 대표적으로 쑥을 베어 만든 다발을 대문에 걸기도 하고요. 5월 5일에 애를 낳는 건 금기중의 금기였습니다. 애가 커서 문 높이를 넘어서면 아버지를 해친다고 합니다(옛날에 지은 집에서 이마를 수시로 부딪혀보지 못한 사람들은 이해가 잘 안되겠지만).

전국시대 중국 초나라에서 5월 5일에 한 아이가 태어나서 죽이라고 했는데 어머니가 몰래 키웁니다. 자식이 40여명이었고 어머니가 좀 천한 출신 성분이어서 어떻게 컸는지도 몰랐나 봐요. 나중에 아버지가 알고 노발대발하자 아들이 그 연유를 묻습니다. 아버지가 네가 커서 문 높이를 넘어서면 나를 해칠 것이라고 하자, 그럼 문 높이를 키우라고 합니다. 그 아이가 나중에 맹상군이 됩니다.

맹상군 이후 약 1,200년이 지나 통일신라에서 왕의 서자로 5월 5일 궁예가 태어납니다. 다 아시다시피 궁예를 죽이라는 명을 거역하고 강보에 싸인 아기를 유모에게 던졌는데 그만 한쪽 눈을 실명하지요. 뒤에 궁예는 후고구려 왕이 되고 통일신라는 망합니다.

伍子胥(오자서)기원설

▲ 사진출처 : https://zh.wikipedia.org/wiki/伍子胥

伍子胥(오자서)는 춘추시대에 초나라에서 태어나 오나라로 도망가서 활동한 장수입니다. 오왕 합려를 도와 초를 치고, 합려의 아들 구천을 도와 월을 정벌하여 춘추 오패를 차지하게 합니다. 적국인 월의 이간질과 늙은 영웅이 부담스럽던 구천은 칼을 내려 오자서에게 자결을 하라고 합니다. 5월 5일 오자서가 독기어린 저주를 퍼붓고 자결을 하자, 화가 난 구천은 무덤도 만들지 않고 가죽 주머니에 시체를 넣고 강에 던지라고 합니다.

그 이후 5월 5일 마다 오자서를 제사지내는 풍습이 생겼다고 전해집니다.

屈原(굴원)기원설

▲ 사진출처 : https://zh.wikipedia.org/wiki/屈原

오자서 이후 약 200년이 지나 전국시대 초나라에 왕족이며 시인이고 정치가인 굴원이 등장합니다. 굴원은 초 회왕의 신임을 얻어 국사를 논하고, 법률을 제정하였으며 대외 업무를 관장합니다. 제나라와 연합하여 진(후에 천하통일)에 대항을 하여야 한다고 주장합니다.

진나라에서 회왕을 초청하자 굴원은 반대를 하지만, 회왕은 아들의 말을 듣고 진나라에 들어갔다가 억류되어 병사를 하고 맙니다. 아들이 왕위를 잇고 백성들의 신망이 높은 굴원은 간신들의 모함을 받아 추방이 됩니다.

상심한 굴원은 돌을 품에 안고 멱라강에 투신합니다. 5월 5일이지요. 백성들은 물고기들이 시체를 훼손할까 두려워 부리나케 배를 저어 가서, 강 속에 댓잎으로 싼 밥을 던집니다. 그리고 50여년 후에 초나라도 망하지요.

중화권에서는 이제 거의 다 이 굴원기원설로 통일이 되어가고 있습니다.

여기에서 유래된 댓잎에 찹쌀밥을 삼각 김밥처럼 싼 것을 쫑즈(粽子,종자)라고 합니다.

▲ 쫑즈를 싸는 댓잎은 전년도 7월에서 10월 사이에 채취를 하여 저장 보관을 한 것 입니다. 각 집안마다 다양한 종류의 쫑즈를 만들었지만 지금은 대부분 상업적으로 만들어 팝니다. 개인적으로 고기를 넣은 쫑즈를 좋아하지 않아서 5곡 쫑즈를 샀습니다.

중국 북방에서는 좁은 갈대 잎을 몇 장 겹쳐서 싸기도 했답니다. 중국 남쪽이나 대만에서 먹는 쫑즈는 이파리가 넓고 부드러운 麻竹(마죽)이나 桂竹(계죽) 이파리를 사용합니다. 주로 찹쌀에다가 돼지고기나 땅콩 기타 여러 가지 곡물을 넣어서 물에 삼거나 증기로 쪄서 만듭니다.

장강의 영향인지 남쪽 사람들은 자신들을 용의 후예(龍的傳人)라는 말을 즐겨 사용합니다. 그래서 용에게 5월 초닷새 재물로 만들었던 쫑즈가 오랜 역사와 더불어 스토리가 풍부해지고 완성도도 높아졌습니다.

중화권에서 쫑즈와 더불어 단오절에 빼놓을 수 없는 행사가 용선 경주입니다. 화롱저우(劃龍舟(획용주)-용머리를 한 배를 타고 하는 경주. 劃(획)은 노를 젓다는 뜻)는 혹은 롱저우싸이(龍舟賽-용주새. 賽는 경기의 뜻)라고 하는데, 굴원의 시신을 훼손하지 않게 배를 빨리 저어가서 쫑즈를 던져주던 고사에서 유래하여 지금은 매년 대만각지와 홍콩에서 국제용선경주등 크고 작은 행사가 단오에 많이 행해지고 있습니다.

▲ 용선 경주

창포에 머리를 감고 광한루에서 그네를 타다 사랑을 키운 춘향이, 김홍도의 씨름, 모두 한국 단오의 풍습입니다. 천여 년을 내려온 강릉 단오제에 가보지 못한 아쉬움이 큽니다.

편집 : 박효삼 부에디터

김동호 주주통신원  donghokim01@daum.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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