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와 닮은 아들: 유전의 힘

이번엔 심각한 이야기를 잠시 접어두고 아들과 나의 닮은 점에 대해 이야기해보고자 한다. 아들과 나는 성격이 많이 닮았다. 지금은 아들이 나보다 훨 유한 성격으로 바뀌었지만, 사교성이 없는 것이나, 곧이곧대로 하는 것이나, 살짝 얼띤 것이 닮았다. 그런데 정말 빼도 박도 못하게 닮은꼴이 있다.  

첫째로 치열 구조에서 나타난 유전의 힘이다.

나는 양쪽으로 송곳니가 덧니 형태로 나있어 웃다가 살짝 입을 다물면 입술이 양쪽 송곳니를 채 가리지 못하고 뾰쪽하게 남게 된다. 그래 어려서 아이들이 ‘드라큘라’라고 놀리기도 했다. 지금도 웃다가 어쩌다 그렇게 되면 식구들이 소름끼친다고 질색을 한다. 특히 밤에는....

나는 이런 송곳니와 삐쭉빼쭉한 아랫니가 내 잘못으로 생긴 줄 알았다. 어려서 겁이 아주 많았던 나는 이 뽑는 것을 굉장히 무서워했다. 유치가 흔들려서 빠지기 일보직전으로 덜렁덜렁할 때까지, 새 이가 유치 밑에서 나올 때까지 안 뽑고 버텼다. 엄마가 실을 매서 뽑아주려고 하면, 실을 꼭 잡고 내가 뽑는다고 하면서 울고 불며 엄마 진을 다 빼놓았다. 오죽하면 너무나 화가 난 엄마가 쥐가 우글우글한 깜깜한 광에 가두고는 반쯤 떨어져 나간 이를 뽑고 나올 때까지 문을 안 열어 주셨을까? 이렇게 거의 모든 이를 뽑는데 시기를 놓쳤다.

그래서 이를 제 때 제 때 뽑지 않아서 이가 이 모양으로 생겼구나 하고 내 탓으로 돌렸다. 그러다 조금 더 커서는 내 입이 좀 작은 편이기 때문에 혹 이가 날 공간이 부족해서 삐쭉 빼쭉 난 것이 아닌가도 생각했다.

아이 둘을 키우면서 곱고 반듯한 이를 만들어 주고 싶어서 치과에 뻔질나게 들락거렸다. 특히 큰 아이가 나를 닮아 입이 작은 편이라서 더 신경을 써주었다. 다행히 큰 애는 이가 고르게 났다

헌데 의외로 입 크기도 적당한 아들이 덧니가 나는 것이 아닌가? 정말 제 때 이를 다 빼주었는데도 불구하고 나보다 심하지는 않지만 살짝 양쪽 송곳니가 올라와 있다. 아랫니도 살짝 울퉁불퉁. 그때서야 알았다. '아~~~ 내 이는 유전이구나....' 그러고 생각해보니 아버지도 내 남동생도 한쪽 이가 덧니였다. 아들은 덧니 때문에 살짝 귀여워 보인다. 남자는 귀엽기 보다는 좀 터프하게 보여야 한다는 나의 보수적인 고정관념이 문제긴 하지만.. 여하튼 남자 덧니는 왠지...

괴상한 행동을 공유한 아들과 나

좀 창피한 고백이지만 나는 모자라 보이는 행동을 무의식 상태에서 하곤 한다. 뭔가 손을 움직이는 행동에 열중하면. 혀를 꼭 오른 쪽으로 몰리게 해서 질겅질겅 씹는 버릇이다. 자판을 두드릴 때, 가위질할 때, 바느질을 할 때, 뜨개질 할 때, 설거지를 할 때도 그렇다. 이 행동을 의식하면 바로 혀가 정상의 위치에 자동으로 돌아오는데, 순간적으로 의식을 하지 않으면 또 바로 혀가 돌아간다. 지금 자판을 두드리는 순간순간에도 열심히 혀를 씹고 있다. 학창시절에는 껌 뱉으라는 지적도 많이 받았다. 껌을 씹지 않았다고 아무리 이야기를 해도 선생님은 내가 껌을 삼키고는 거짓말을 한다고 생각하며 더 혼을 냈다. 

아버지도 가위질이나 못질하실 때 입이 비뚤어지며 혀를 씹으셨다. 엄마는 아버지의 그 모습을 싫어하셨다. 바보 같아 보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하필이면 너는 그것을 쏙 빼닮았냐며, 너는 아버지보다 더 심하다고 하시며 고쳐주려고 애쓰셨다. 그런 행동을 할 때마다 깜짝 놀라게 소리를 치시거나, 내입을 톡 톡 때리곤 하셨다. 그렇지만 이 행동은 나의 의지로 되는 것이 아니라서 아무리 지적을 해도 고쳐지지 않아 어느 날 엄마가 포기하셨다. 사실 내 남동생도 나보다 심하지는 않지만 살짝 그런 행동을 한다. 아버지의 유전자는 남동생보다 나에게서 더 세게 발현되지 않았나 싶다.

그런데 어느 날 아들이 바로 그 멍청해 보이는 행동을 갑자기 하는 것이 아닌가. 아들이 초등학교 1학년 때, 플레이스테이션 리모컨을 움직이면서 혀를 씹는 것을 보고 깜짝 놀랐다. 그 전에는 한 번도 본 적이 없는 행동인데 초등학교 1학년 때 발현이 되었던 것이다.

“아이고 하필이면 닮을 것이 없어서 그런 것을 닮았담.” 하고 속상해 했지만. 한편으로는 이렇게 생각했다. '웬만해선 쉽게 볼 수 없는, 정말로 괴상한 행동을 하는 너는 틀림없는 내 아들이구나. 병원에서 바뀐 아이는 절대로 아니구나.' 가끔 엄마들은 신생아 바뀜에 대한 생각도 한다. 하도 세상이 어지러워서... 미안... 아들;;;

이런 행동을 가진 아들에게 내가 도와줄 수 있는 것이 무엇인가? 아무 것도 없다. 단지 학년이 바뀔 때마다 선생님께 이런 편지를 쓰는 것 밖에...

“선생님!! 욱이는 이상한 버릇이 있습니다. 손으로 뭔가를 열중해서 하면 혀를 씹습니다. 간혹 아이들이 껌을 씹는다고 이르는 경우가 있을 겁니다. 꼭 껌 씹는 것처럼 보이거든요. 껌 씹는 것이 아니고 혀를 씹는 겁니다. 저를 닮아 그렇습니다. 잘 부탁드립니다.”

처음엔 편지보다는 직접 찾아가서 말씀드렸지만, 나중엔 참 마주보고 말하기 민망해서 편지로 보냈다. 이런 편지를 보면 선생님들은 얼마나 웃길까? 나는 창피하고 속상한데...

초등학교 때까지는 담임선생님이 수업을 전담하니까 이런 편지가 먹혔지만 중학교 때부터는 먹히지 않았다. 과목별로 선생님이 다르기 때문에 많이 지적도 받았다. 그럴 때 마다 아이는 아무리 설명해도 선생님이 안 믿는다고 속상해 했다.

이렇게 치열구조에서도 유전의 힘이 발휘하고, 혀를 씹는 특이한 행동까지 엄마와 아들이 함께 갖고 있으니 자식에 관한 어떤 것에도 어찌 자식을 탓할 수 있으랴. 다 내 조상 탓이지. 이 강력한 유전인자의 신비한 힘을 우리 인간이 어찌 막겠는가. 조상이 주신 대로, 생긴 대로, 누구도 탓하지 말고, 그냥 살 수 밖에....

그래도 이런 닮음 때문에 아들과 나는 어느 부모 자식 간에도 갖지 못하는 공감을 순간적으로 하곤 한다. 둘이 뭐를 함께 할 때 혀를 씹는 것을 서로 보기도 한다. 그럼 동시에 아들은 “엄마, 혀”, 나는 “욱아, 혀” 라고 지적하고 나서 함께 낄낄 웃는 것이다.

편집 : 박효삼 부에디터

김미경 편집위원  mkyoung60@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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