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6년 6월 18일(토) 경기도 가평 골짜기인 조무락골을 이번 주 목적지로 잡았다. 산행이든 여행이든 우리는 출발 당일까지도 정해놓지 않는 경우가 많다. 출발 전날 저녁쯤 후보 목적지를 몇 군데 조사해 보고 그냥 잔다. 그리고 당일 아침에 운전대를 잡고 마음이 끌리는 데로 향한다. 동행하는 사람은 언제나 "우리 어디 가는데?" "글쎄?" 우선 시동을 켜고 대략적인 동.서.남.북 방향만 잡고 출발하여 가다보면 목적지가 어느새 구체화된다.

물론 금요일 저녁이면 기본적인 필수품은 몸이 저절로 기억하여 사들고 들어온다. 막걸리 몇 병 사다가 얼려 놓고, 사발면, 커피, 고열량 초콜릿 몇 개 준비해 놓으면 기본은 끝이 난다. 당일 아침 이르면 이른 대로 늦으면 늦은 대로 눈뜨는 대로 물을 끓여 보온병에 담아 놓고, 배낭을 짊어지면 준비 끝, 길을 나서면서 물과 김밥만 사면 모든 준비는 끝이 난다. 고민해서 계획을 짜거나 미리 알아보는 일은 별로 없다. 가서 보면 알 것을 미리 알려 애쓰지 않는다. 그러다보니 종종 준비부족으로 몸이 고생하는 경우가 많고, 핀잔을 듣기 일쑤다. 그러나 모르고 갔을 때 기대감과 새롭게 만나는 것들에 감동을 받는다.

이번 "조무락골"은 이름 하나만 보고 결정한 여행이었다. 이름이 재미있는데다가 무엇인가 이야기가 담겨 있을 듯 한 기대감 또한 컸었다. 가평에서 김화, 사창방면 75번 국도를 타고 30여 km 를 달려가면 38교라는 작은 다리가 있고 이곳이 조무락골 입구이다. 여기에 차를 놓고 올라 갈 수도 있고, 여기에서 1km 정도를 1차로 비포장 길로 더 들어가면, 10여 대의 차를 댈 수 있는 개인 농가가 있다. 주차비는 3천원이다. 일단 38교에서 조무락골쪽으로 차로 들어서면 이 마지막집에 도착하기 전까지는 되돌아 갈 수가 없다. 길이 한 개 차선이라서 그렇다. 멋모르고 들어섰다가 좁은 갓길로 오르내리는 등산객들의 따가운 시선을 뒤로하고 도망치듯 올라왔는데, 그래도 유료라도 주차장이 있어 다행이었다.

그 안쪽으로 작은 운동장과 개울가 옆쪽으로 늘어선 평상에서는 벌써부터 피서객들이 백숙을 끓여가며 시원한 막걸리와 개울에 담가 놓았던 수박을 쪼개어 나누어 먹고 있다. 차를 대고 발걸음을 떼자마자 귀여운 녀석들이 우리를 격하게 반긴다. 덩치가 긴 손가락 길이만한 벌레들이 바닥과 나무에 득실댄다. 소스라치게 놀라 발을 어디에 딛어야 할지 몰라 껑충대는 동행자를 놀리며 산행 코스를 잡아 앞서 나간다.

▲ 사방이 엄지손가락만한 벌레들이다

첫 인사부터 지나치게 격한 게 오늘 산행이 어떨지 기대된다. 20여분 올라가는데 이번에는 뒤에서 비명소리가 온 산을 울린다. 바위 색과 비슷한 새끼손가락만한 새끼 뱀을 못보고 그냥 지나쳤는데, 뒤따라오며 바닥에 꿈틀거리는 게 없는지 바짝 긴장하고 뒤따라오던 동행자가 안 놓치고 본 모양이다. 새끼 뱀은 호기롭게 도망도 안가고 똬리를 틀며 대가리를 치켜세우는 것이 제법이다. 조무락골에서 총 3마리의 뱀님들과 만났는데 첫 번째 만남이었다.

▲ 첫 번째 새끼뱀과 만나다

나뭇잎들이 멀리서 보면 반짝거려 자세히 보니 백화현상으로 잎들이 새하얗게 변해 있었다. 원인은 모르겠지만 좋은 징조는 아닐듯하다. 혹시 나뭇잎들이 곤충들로부터 자기방어를 위해 그러는 것은 아닐까 ?

▲ 백화현상

지름길인 계곡 길을 택하여 오르다 보니 생물들이 역동적으로 자라나고 있었다. 이끼들도 싱싱하다.

▲ 싱그러운 이끼

가파른 등산로가 호젓하다. 뒤돌아본 풍경이 아름답다. 경기 북부 산들의 공통점은 바위는 별로 없는 육산이지만 은근히 힘들다는 것이다. 경치가 아주 뛰어난 절경은 없다. 필요한 것은 은근과 끈기뿐이다.

▲ 계곡 길

길을 가다보니 이상한 전선 같은 것이 눈에 띈다. 이런 깊은 산에 전선이 있는 것도 이상하고 별다른 보호막도 없이 노출된 상태인데다가 중간 중간 나무에 대충 묶어 놓은 것이 영 못마땅해 보인다. 얼마 안가서 그 정체를 알아냈다. 고로쇠나무에 생채기를 내어 수액을 받아 모으는 호스였던 것이다. 지금은 제철이아니라서 중간 중간 이음부분을 떼어 테이프로 막아놓았지만 제철이 되면 또다시 수액을 빨아내어 누군가의 욕심을 채울 것이리라.

▲ 고로쇠 수액을 착취하는 수탈현장

어둡고 습한 계곡길이 끝나자 발 디딤도 뽀송뽀송한 잣나무 숲이 시원하게 펼쳐진다.

▲ 잣나무 숲

잣나무들이 잘 자랐다. 들풀들도 싱그럽다는 표현밖에 할 게 없다.

▲ 시원한 등산길

 

차가 많이 막혀 네 시간이나 걸려 늦게 도착한 덕에 점심식사 때를 놓쳐 배도 고프고 숨이 턱에 차오른다. 산중턱에 자리를 깔고 앉아 소박한 늦점심을 먹는다. 얼려 놓았던 막걸리가 적당히 녹아 얼음이 아삭대는 게 그 맛이 시원하고 황홀하다.

▲ 이정표
▲ 점심 그리고 두 번째 꽃뱀과의 만남

두 번째 꽃뱀과의 만남은 그리 요란스럽지 않았다. 지가 알아서 도망가서 조용히 끝났지만, 저기 나뭇잎 아래서 숨어 간을 보다 얼른 꼬리를 감춘다. 다행이 뒤에 쳐져있던 동행자는 못 봐서 다행이었다.

▲ 울창한 나무

 

울창한 숲과 나무 그리고 때 묻지 않은 바위들은 석룡산의 장점인 듯하다.

▲ 고목과 바위

신기하게 패인 고목이 끈질기게 그 생명을 이어가고 있고 바위위에서도 그 생명은 견디어 내고 있었다.

▲ 조망이 시작되다

조망이 트이기 시작하자 이제야 산에 온 듯 가슴이 뚫린다. 오름길에 빠른 길을 택해 지름길인 계곡 길을 택하는 것은 시간이 빠듯할 때라면 모를까 여유 있게 등산을 즐기고자 할 때에는 별로 추천하고 싶지 않다. 오르막 내내 계곡에 파 묻혀 시야의 폭이 너무 제한되기 때문이다.

▲ 화악산을 뒤로하고

저 건너에 가평과 화천의 경계에 있는 1400미터가 넘는 화악산이 웅장하게 바라다 보인다. 군 생활을 화천에서 보낸 나로서는 화악산의 감회가 남다르다. 27-8년 전, 병장말년에 화악산 파견근무 때 토끼 잡던 추억이 엊그제 같다. 겨울에 눈 한 번 오면 4월이 될 때까지 눈이 녹지 않아 걸어 다니거나 헬기 아니면 접근이 불가능했던 그 시절 야전 선을 까서 올가미를 만들어 산토끼를 잡던 때가 천국 같던 시절이었던 것 같다. 오늘 그 뒤편에서 화악산을 바라본다.

화악산을 뒤로하고 석룡산 정상을 향해 길을 재촉한다. 도마치고개 이정표도 옛 기억을 되살린다. 예전에 딱딱한 군화에 통풍 안 되는 군복, 눅눅한 판초우의와 무거운 텐트 짊어지고서도 뛰어다녔던 그 길들을 고급 등산화와 방수, 발수에 탁월한 최신 소재 등산복 그리고 스틱에 의지해 다시 그 길을 걷고 있으니 기분이 이상하다.

▲ 정상이 다 와간다

석룡산 정상에 올라서니 표지석이 두 동강 나 있었다. 하나는 아예 부러진 위쪽 부분은 옆에 방치되어 있었는데 다시 살며시 올려놓으니 그런대로 봐줄만하다. 3-400여m 전에 정상표지석이 있었던 듯 한 자리에 표지석만 없어지고 그 받침대는 그대로 있었는데, 그 표지석이 이쪽으로 옮겨 온 듯하다.

▲ 석룡산 정상석

정상에서의 조망은 전혀 없다. 좁고 주변에 키 큰 나무들이 가로막고 있기 때문이다. 등산 중에 가장 짜증나는 것이 정상 바로 전에 내려갔다가 다시 올라가는 지형이다. 석룡산이 바로 그런 곳이다. 정상이다 싶었는데, 한참을 내려갔다가 다시 올라갔는데 정상 조망은 없고 허무한 표지석만 덩그러니 있는 경우다

▲ 하산 길

짧은 휴식을 마치고 하산 길로 들어선다.

▲ 왠지 든든한 나무를 어루만져주고 싶어 등을 두드리듯 ,

수백 년은 족히 넘었을 나무가 든든히 길목을 지키고 섰다. 나도 모르게 큰아들 등을 두드려주듯 어루만져주게 된다.

▲ 참봉지묘

옛날 참봉 벼슬을 한 듯 한 사람의 무덤 앞을 지키는 나무는 든든한데 오랫동안 찾는 이 없었던 듯 잡초만 무성하다. 이렇게 높은 데까지 올라와 묘를 쓴 것도 기이하다.

▲ 하산 길, 한 무리와 만나다

한 무리의 등산객들을 하산 길에 만났다.

임도와 등산로가 얽혀있는데다가 이정표가 명확히 표시되어 있지 않아서 잠시 우왕좌왕 했다.

▲ 까치수염 그리고 세 번째 구렁이와 만나다

예쁜 꽃을 찍고 있는데 3-4보 앞서 내려가던 동행자가 산이 떠나가라 고함을 치며 쓰러질듯 달려온다. 세 번째 뱀님과 만난 순간이었다. 놀란 사람 달래기보다 얼른 카메라를 돌려 사진을 찍었는데 나뭇가지 색과 비슷한 그리 크지 않은 구렁이었다. 자세히 보면 보이는데 ,,,

38다리 안내 표지판에 새들이 즐겁게 노래하고 춤춘다하여 조무락(鳥舞樂) 이라고 하였다 하나 ,이는 무조건 한자로 대입하려는 너무나도 억지스러운 해설이라 생각된다. 우리말 조무래기에서 나온 지명이 아닐까 생각해본다. 조무락골에는 조무래기 생명체들이 너무나 많이 모여 사는 곳인 듯하다.

▲ 전나무 숲이 울창하다

전나무 숲이 시원스레 쭉쭉 뻗어있다.

▲ 고로쇠 수액 채취현장-2

고로쇠 수액을 착취하는 못된 호스들이 여기저기 난무하다.

▲ 조무락계곡에 발을 담그다

조무락골의 중간쯤의 입구와 만나 산행이 마무리 된다. 개울에 시원한 물이 흐르고 산행의 피로를 시원한 물에 발을 담가 풀어본다.

석룡산에서 석룡의 모습은 찾지 못했다. 석룡산에서 꼭 보고 가야 할 곳이 호랑이가 엎드려 있는 듯 한 형상의 "복호등" 폭포라는데 보지 못한 것이 아쉽다. 이곳은 산보다는 계곡이 아름다운 코스인 것 같다.

조무락골에서의 작은 조무래기들과의 만남은 아주 강렬했고 오래 기억 될 것 같다.

▲ 한가로이 닭들은 모이를 쪼고

농갓집 마당에 닭들이 한가로이 노닐고 있다.

▲ 38다리 입구의 안내 표지판

38다리는 위도가 38도에 위치하여 삼팔교라고 불린다.

되돌아오는 길에 한가로운 전형적인 농촌의 풍경이 마음 푸근하게 한다.

▲ 한가로운 농촌 풍경 - 가평

치밀한 계획 없이 이름만 보고 떠난 가평 조무락골과 석룡산 여행은 너무나 즐거운 여행이었고 다음 한 주 동안 에너지를 충만시켜 주기에 충분한 힐링 여행이었다.

편집 : 박효삼 부에디터

김진표 주주통신원  jpkim.international@gmail.com

한겨레신문 주주 되기
한겨레:온 필진 되기
한겨레:온에 기사 올리는 요령

저작권자 © 한겨레:온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