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테오라와 테르모필레(Θερμοπύλαι)

[편집자 주] 이 글은 지난 2015년 10월 31일부터 11월11일까지 12일간 진행되었던 <그리스 터키 문화기행-유럽 문명의 뿌리를 찾아서>의 동행 강사 강응천선생의 답사기를 편집한 것이다.

2015년 11월 5일 (목)

메테오라

▲ 메테오라는 테살리아 지방에 있는 수도원 집단 혹은 그 지역을 말한다. 메테오라에는 24개의 수도원이 지형적 어려움에도 불구하고 들어섰고, 지금은 그 가운데 6개가 남아있다.

테살리아 평원 위에 우뚝 솟은 바위산들은 그 자체만으로도 장관이다. 그런데 깎아지른 바위산의 꼭대기에 사람이 지은 수도원이 자리 잡고 있다. 보지 않고는 상상하기 어려운 모습이다. 11~12세기에 수도원들이 들어서기 시작했고, 14세기 말 오스만 제국이 테살리아 평원으로 육박하자 이를 피해 20여 개의 수도원들이 바위 꼭대기에 올라앉았다. 꼭대기에서 늘어뜨린 줄사다리만이 수도원에 오르는 수단이었으므로 유사시에 줄사다리만 걷어 올리면 안전을 지킬 수 있었다. 스물네 군데였던 수도원 가운데 오늘날 남아 있는 것은 여섯 곳이다.

우리는 대부분의 관광객들처럼 그중 가장 큰 수도원인 메갈로 메테오로에 올랐다. 물론 줄사다리를 타고 오른 것은 아니고 관광객을 위해 가설된 계단을 따라 올랐다. 이곳은 관광객을 위한 박물관으로 꾸며져 있어 그리스 각지의 학교에서 체험학습으로도 많이 찾는다고 한다. 1344년 아토스 산에서 수도하던 아타나시오스 코이노비티스 신부가 신도들을 이끌고 와서 이 수도원을 창건했다. ‘공중에 매달린 곳’을 뜻하는 ‘메테오라’는 그때 코이노비티스 신부가 붙인 이름으로 전한다.

그런 곳에 있는 것만으로도 불가사의한 수도원이니 볼거리를 기대할 수 없으리라는 예상은 ‘카톨리콘’이라 불리는 중심 교회에서 완전히 깨졌다. 예수의 산상변모를 기념해 지은 이 교회는 지상에 있는 웬만한 정교회 건물에 비해 결코 작거나 초라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14세기에 처음 짓고 15, 16세기에 보완한 교회라고는 상상하기 어려웠다. 이 수도원에서 도를 닦다 숨진 목회자들의 유골들을 모셔둔 납골당도 인상적이었다.

다른 수도원 가운데 멀리서 봤을 때 가장 눈에 들어오는 것은 ‘성 삼위일체 수도원(Μονή Αγίας Τριάδος)이다. 400여 미터 바위산 위에 올라선 모습이 여간 위태로워 보이지 않으면서도 감동적이다. 메갈로 메테오로와 비슷하게 14세기 말 무렵 지어진 것으로 짐작된다. 이 수도원이 유독 눈에 띄는 한 가지 이유는 영화 <007 유어 아이스 온리 (For Your Eyes Only)>(1981)에 나왔다는 것이리라.

테르모필레(Θερμοπύλαι)

그리스가 괴조 모양의 터키에 갈가리 뜯긴 모양이라고 할 때 뜯어진 조각은 크게 세 개이다. 본토와 이어진 아티카 반도, 그 동쪽에 누워 있는 에비아 섬, 그리고 서쪽으로 아티카와 간당간당하게 이어져 있는 펠로폰네소스 반도.

본토에서 아티카 반도로 넘어가는 지점에 테르모필레(‘뜨거운 문’)라는 해안 협곡 지대가 있다. 내륙 쪽으로는 이티(Οίτη) 산, 파르나소스 산 등 험준한 산악지대가 이어지기 때문에 이곳은 예로부터 남쪽의 아테네로 가기 위해 통과해야 하는 관문이었다. 그런데 이 지역은 유황 온천이 발달해 기분 나쁜 냄새와 함께 증기가 올라온다. ‘뜨거운 문’은 그래서 생긴 이름이다.

사람들은 테르모필레를 그리스 신화의 지옥인 하데스로 가는 관문으로도 여겼다. 이곳이 그처럼 하데스의 관문 노릇을 톡톡히 한 역사적 사건이 있었으니, 영화 <300>의 배경이 된 제2차 페르시아 전쟁이다. 우리가 메테오라에서 160킬로미터를 달려 이곳을 찾은 것도 그러한 역사의 흔적 때문이었다.

300

▲ 테르모필레에는 스파르타의 왕 레오니다스의 동상이 있다. 발밑에는 '와서 가져가라(Μολὼν λαβέ)'가 새겨져 있다.

기원전 480년 페르시아의 크세르크세스 1세는 육해군을 거느리고 그리스를 침공했다. 제1차 페르시아 전쟁 때 마라톤 전투에서 패퇴한지 10년 만이었다. 그리스 연합군은 테르모필레에서 육군을 막고, 아르테미시온 해협(아티카 반도와 에비아 섬 사이의 에우리포스 해협)에서 함대를 막기로 했다.

7000여 명의 그리스 연합군은 테르모필레를 봉쇄하고 최소 9만 명에 이르는 페르시아 대군을 막아섰다. 선발대가 무너지고 포위당하자 스파르타 왕 레오니다스는 스파르타인 300명, 테스피아이인 700명, 테베인 400명, 기타 수백 명의 정예병으로 결사대를 꾸렸다. 그들이 압도적인 페르시아 군과 맞서다 전멸하다시피 한 최후의 전투가 영화 <300>의 내용이다. 영화 제목의 ‘300’은 전투의 중심에 섰던 레오니다스와 스파르타군의 숫자를 가리킨다.

테르모필레를 돌파한 크세르크세스는 거침없이 아테네로 진군했으나, 아테네 장군 테미스토클레스의 지략에 말려 아테네 서쪽 에기나 만에서 참패하고 말았다. 당시 그리스 함대가 에기나 만의 살라미스 섬에 포진하고 있었기 때문에 이 전투를 ‘살라미스 해전’이라 한다. 이로써 그리스를 정복하려는 페르시아의 야심은 최종적으로 좌절되고 말았다.

이것이 그리스다!

테르모필레에는 곳곳에 노천 유황 온천이 있다. 냄새가 코를 찌르는 진짜배기 온천인데도 그냥 동네 개천처럼 방치되어 있다. 동네 사람들이나 소문을 들은 관광객이 발품을 들여 찾을 뿐, 안내문도 없고 수건이나 가운 따위를 파는 가게도 없다. 한국에 이런 곳이 있다면 어떻게 됐을까 생각하니 별천지였다.

여기처럼 그리스의 현실을 잘 보여주는 곳도 없다. 경제위기로 나라가 망할 지경인데도 이런 노다지 자원을 ‘고이’ 내버려 두고 있는 사람들이 그리스인이다. 그 무모한 여유가 놀랍다.

테르모필레에서 산악 지대를 우회한 끝에 파르나소스 산 기슭의 고즈넉한 산골 델피(Δελφοί)에 도착, 막다른 산자락에 자리 잡은 아말리아 호텔에 짐을 풀었다.

편집 : 박효삼 부에디터

한겨레테마여행  themetour@hani.co.kr

한겨레신문 주주 되기
한겨레:온 필진 되기
한겨레:온에 기사 올리는 요령

관련기사 전체보기
저작권자 © 한겨레:온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