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칠나무는 쌍떡잎식물 산형화목 두릅나무과의 상록교목으로 원산지는 한국이며 주로 남해안 섬 지방에 자생하는 식물이다.

▲ 황칠나무

높이는 15m에 달하고 잎은 어긋어긋 달걀모양의 피침형이다. 6월에 연한 황록색 꽃이 피고 산형(繖形) 꽃차례로 가지 끝에 피고 열매는 핵과(核果)로 타원형이며 10월에 검게 익는다. 수피에 상처를 내어 노란 액체가 나오는 것을 황칠이라 하며 가구의 도료 등으로 쓰인다.

▲ 촹칠나무(사진출처 : 완도군청 http://www.wando.go.kr/administration/news/news_data?mode=view&idx=72358)

완도에는 천연기념물로 지정된 황칠나무가 있다. 1994년 1월 31일 천연기념물 제 154호로 지정된 이 나무는 보길도 정자리에서 약 200여m 떨어진 곳에 있다. 밑둥둘레 137cm, 가슴높이둘레 102cm, 높이 15m의 큰 나무다.

▲ 황칠나무(사진출처 : 완도군청 / http://www.wando.go.kr/administration/news/news_data?mode=view&idx=113749)

완도가 황칠나무의 주 산지였음을 말해주는 기록이 있다. 국역왕조실록 다산시문집 제4권 시(詩)편에 <황칠>이라는 제목의 시가 있다. 그 내용인 즉

황칠

궁복산에 가득한 황칠나무를 그대 보지 않았던가

깨끗한 금빛 액체 반짝반짝 윤이 나지         

껍질 벋기고 즙 받기를 옻칠 받듯 하는데

아름드리 나무래야 겨우 한잔 넘친다

상자에다 칠을 하면 옻칠 정도가 아니어서

잘 익은 치자로는 어림도 없다하네

글씨 쓰는 경황으로는 더더욱 좋아서

납지고 양각이고 그 앞에선 쪽 못 쓴다네

그 나무 명성이 온 천하에 알려지고

박물군자도 더러더러 그 이름을 기억하지

공물로 지정되어 해마다 실려가고

징구하는 아전들 농간도 막을 길 없어

지방인들 그 나무를 악목이라 이름하고

도끼 들고 몰래 와서 찍었다네

지난봄에 성상이 공납 면제하였더니

영릉복유 되었다니 이 얼마나 상서인가

바람 불고 비 맞으면 등걸에서 싹이 돋고

가지가지 죽죽 뻗어 푸르름 어우러지리

* 영릉복유 : 없어졌다고 하는 것이 다시 생겨남을 말함

이 시의 내용으로 보아서도 완도에는 아주 많은 황칠나무가 있었음을 알 수 있다. 그러나 이 나무로 인하여 백성들은 많은 어려움도 있었음을 우리는 알아야 할 것이다. 같은 책 10장에 있는 탐진어가(耽津漁歌)에는 다음과 같은 이러한 구절이 있다.

궁복포(가리포) 앞에는 나무가 배에 가득 (궁복포전시만선,弓福浦前柴滿船),

황장목 한 그루면 그 값이 천금이라네(황장일수천전,黃腸一樹値千錢)

이 시에서 보면 황장목이 나온다. 황장목은 천금의 가치가 있는 나무로 옛날 임금의 관을 만드는데 사용하였다고 한다. 이렇듯 완도에는 귀한 나무들이 많이 있었으나 이제는 멸종위기에 직면해 있다. 이제라도 보호하고 육성해야 할 것이다. 혹시라도 뜰에다 심고 싶어서 파오는 일만은 하지 말아야할 것이다.

옛부터 사람들은 완도를 궁복포, 궁복산이라 불렀다. 궁복(弓福)이란 뜻은 장보고가 활을 잘 쏘아서 어릴 때 붙여진 이름이라고는 한다. 삼국사기의 기록을 보면 당나라 시인 두목의 번천문집을 인용하면서 분명 장보고라고 기록하고 있다. 장보고란 이름을 붙이지 않고 왜 궁복이란 이름이 붙었는지 알 수 없지만, 장보고를 억지로 죽게 만들었기 때문에 그렇게 한 것이 아닌가 생각한다. 죄명은 있는데 죄상이 없다고 한 후학들의 기록을 보면 아마도 폄하하기 위해 그렇게 기록하였을 것이다다.                              

국역왕조실록 해동역사26권 물산지(物産志) 1 죽목류(竹木類) 편에는 황칠에 대해 다음과 같이 기록하고 있다.

《통전(通典)》에서는 황칠(黃漆) : 백제의 서남쪽 바다에 세 개의 섬이 있는데, 여기에서 황칠 나무가 난다. 나무는 소종수(小棕樹)와 비슷한데, 더 크다. 6월에 즙을 채취해서 기물에다 칠을 하면, 마치 황금과 같아서 사람들의 눈을 부시게 한다.

《계림지(鷄林志)》에서는 황칠은 지금 강진(康津)의 가리포도(加里浦島,)에서 생산되는데, 가리포도는 예전에 이른바 완도(莞島)이다. 우리나라의 온 성(城) 가운데 오직 이 섬에서만 황칠이 난다.

《고려도경》에서는 황칠은 섬에서 나는데 6월에 칼로 찔러서 즙을 채취한다. 색깔이 마치 금과 같으며, 햇볕에 쬐면 마른다. 본디 백제에서 나는 것인데, 지금 절강(浙江) 사람들이 신라칠(新羅漆)이라고 부른다. 고려의 나주도(羅州道)에서는 황칠이 나는데, 토산물로 진공(進貢)한다.

이렇게 좋은 칠을 얻으려고 백성들을 몰아붙여 혹사를 당했는데 이를 견디다 못해 밤에 황칠나무를 베어 없애버리기도 했다고 전한다.

편집 : 김미경 편집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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