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도 지나치면 오히려 독이 된다.

성을 배제한 순수한 사랑을 플라토닉 러브라고 합니다. 그리고 신의 영역에서 가능한 절대적이고 무한한 사랑을 AGAPE라고 하지요. 아가페에 대한 설명에서 어머니가 아기에게 젖을 물린 사진과 함께 조건도 보상도 바라지 않는 헌신적인 사랑이란 감동적인 글이 아직도 생각이 납니다.

얼마 전에 도시설계 박사와 대만제일국립공원 컨띵(懇丁,간정)에 다녀왔습니다. 앞으로 늘어나는 한국인 관광객들을 대비해서 간단한 한국어 및 한국인들의 식습관 등에 대해서 두 시간 반 강의를 해달라는 부탁을 받았지요.

중국 여기저기 여행을 다니신 분들은 유적지마다 한국어 번역물들 보면서 몹시 당혹스러우시죠? 중국어를 모르면 이해가 안 되는 한글 번역입니다. 공원 쪽에서 요청한 글을 한글로 번역해준 인연으로 컨띵공원에 다녀왔습니다.

국립공원지구 안에 헝춘(恒春,항춘)이란 마을에 들렸습니다. 지역특산품인 양파를 이용해 다양한 제품을 만들어 유명해진 제과제빵집을 방문했지요.

▲ 대만 컨띵국립제일공원 지구 내 헝춘(恒春,항춘) 마을 요지에 있는 유명제과제빵점. 洋蔥田(양총전)

그 제빵점에서 지금은 우리나라에서 거의 사라진 단어인 '남존여비'란 이야기를 많이 들었습니다. '남존여비'란 말은 의미도 싫었지만 단어 자체는 더 싫었지요. 마치 남자는 주인이고 여자는 노예, 노비라는 느낌이 들어서요.

다행히 대만에선 '重男輕女(중남경녀)'란 단어를 사용하는데 같은 뜻이라도 어감이 훨씬 부드럽습니다. 아들을 중시하고 딸을 경시한다고 해석이 되네요. 특히 시골지역으로 갈수록 한국보다 덜하지 않았답니다. 아들 공부시키려고 딸들은 희생시키고, 누나들은 남동생 잘 돌봐야 한다는 말을 항상 듣고 자랐답니다. 지금도 재산은 거의 아들들에게 물려준다고 하네요. 물론 법으로는 균등분할이지만 관습이 아직도 우선을 합니다.

洋蔥田(양총전) 여사장의 아버지는 어머니의 아들에 대한 지독한 편애나 사회적인 분위기와는 달리 딸을 존중해줬고, 어떤 일이나 항상 지지해주었습니다. 그런 아버지가 8년 전에 돌아가셨을 때, 아버지의 죽음 앞에서 몹시 견디기 힘들었답니다.

주체할 수 없는 눈물이 나와서, 아예 밤이고 낮이고 양파를 썰었답니다. 누가 찾아와도 자연스럽게 보이려고. 그렇게 썬 양파로 이것저것 요리도 하며 얼마를 지나니 마음도 점점 치유가 되었답니다.

너무 많이 썬 양파는 처치곤란으로 엿처럼 고았더니 달콤한 쨈이 되었고, 그렇게 탄생한 제품이 '양총수(洋蔥酥,Onion Cake )'입니다. 한국에도 식품전람회에 참가 전시를 하였답니다. 지금은 대만의 명품이 되었고요.

▲ 장쟈펀(張嘉芬,장가분)사장이 양파를 이용해 직접 개발한 다양한 제품을 손님에게 팔고 있습니다.

아버지가 초창기에 오토바이 정비소를 크게 해서 많은 부를 축적했습니다. 아버지가 남긴 그 건물에서 아들이 제과점을 열었는데 망하고 그 건물은 다른 사람에게 넘어갔답니다.

이 여사장이 아버지에 대한 그리움과 유산을 찾고자 다시 비싸게 그 건물을 인수해서 자신이 개발한 양파를 이용한 다양한 제품을 만들어 판매를 하며 오늘에 이르렀습니다. 위층에는 어머님이 사시고, 아들만을 편애하는 어머니와 공무원인 남편(지금은 은퇴를 하고 부인의 사업을 도움)이 사이가 안 좋아서 자기들 가족이 따로 나가서 산답니다.

다음날 점심초대를 해서 나갔습니다. 남동생이 하는 음식점이 맛있다고 찾아갔는데 12시가 넘었는데도 문을 안 열어 다른 일식집에 가서 식사를 했습니다.

어머니의 편애 속에 쉰이 넘은 동생이 장가도 안가고 있다고 하기에, 한국의 모 미모의 여기수와 어머니 그리고 남동생과 관련되어 보도된 내용을 이야기해줬더니 자기네와 복사판이랍니다.

過猶不及!

사전적인 의미는 '정도가 지나침은 미치지 못한 것과 같다.'이지만 좀 더 적극적으로 해석을 해서, 정도가 지나치면 오히려 부족함만 못하다는 뜻으로 사용을 하지요.

과유불급은 공자님 말씀입니다. 내친김에 한 발 더 나아가면 이 말은 유학의 정수인 중용(中庸)으로 이어지는데, 지나치거나 모자람이 없는 상태를 中이라 하고 불변적인 항상성을 庸이라 하지요.

불교에서는 석가모니가 깨달음을 얻고 처음 설한 법이 중도(中道)입니다. 양쪽 극단을 버리고 심신의 조화를 얻는 중도에 서야만 진실한 깨달음의 도가 있다고 말합니다. 선과 악, 명과 암처럼 눈에 보이는 색에 치우치면 본질인 공을 볼 수가 없습니다.

유사한 개념으로 서양에선 변증법이 있지요. 헤겔은 정명제에는 반드시 모순을 내포하기에 반명제가 따르고, 거기에서 합명제가 도출된다고 합니다.(정반합)

어쩌면 이 모두는 내가 지금 보고, 알고, 믿고 있는 모든 것들이 다 옳다고 할 수 없으니 그만 우기고 끝없이 하나하나 지워나가라는 가르침이 아닐까요?

예전에 밤 열시가 넘어 서울역 어느 지하도에 무심코 들어갔다가 악취에 놀라 숨을 멈추고 지나갔습니다. 노숙자들이 누워있는 지하도였습니다.

대낮에 일본 긴자 거리에서 종이박스를 집삼아 쉬고 있던 거지.

중국에서 형식적으로 걸친 옷 사이로 덜렁거리며 걸어가던 거지.

그들이 살아가는 방법은 구걸 혹은 동냥이지요. 우린 그들을 거지나 동냥아치라고 부르고 가까이 하지 않습니다. 그들에게 도움을 주는 선한 사람들도 많이 있지만 더러움과 악취 때문에 대부분은 멀리 피합니다. 거지들은 어떤 노력이나 대가를 지불하겠다는 생각이 없이 그냥 달라고 합니다. 대부분 주면 먹고 안주면 굶다가 생을 일찍 마감하지요.

부모님들! 아들 딸 몹시 사랑하지요. 어떤 대가나 보답을 바래서가 아니어도 주는 것만으로 행복합니다. 혹시 이런 관계가 자식의 삶을 그르칠 수 있다고 생각해보시지 않았는지요? 어려서부터 어떤 노력도 없이 떼거리만 피우면 뭐든지 얻을 수 있다고 교육을 시키고 있지는 않는지요? 아들이 졸업을 하고 군대를 다녀오고 결혼을 하기까지 한 번도 기회를 줘보지도 않고 독립을 못한다고 한탄을 하지는 않는지요?

아마도 대부분은 믿고 기다리지 못하는 부모들의 조급함과 물질적 혜택을 사랑으로 착각하는데서 오는 잘못이 오늘날 캥거루족을 양산하거나 자식들을 잠재적인 노숙자로 만들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함께 갔던 도시설계 전문가가 여러 곳에 조수들이 있는데 대만은 남자들보다 여자들이 훨씬 일을 잘한다고. 다는 아니지만 남자들은 하나하나 지적을 해줘도 일이 진행이 안 된다고 한탄을 합니다.

그래서 그럴까요? 대만의 차이잉원(蔡英文,채영문) 총통도 아시아에서 유일하게 부모나 남편의 후광 없이 최고지도자로 오른 인물이라고 합니다.

▲ 좌측:장쟈펀(張嘉芬,장가분) 洋蔥田사장 / 우측: 판수민(范淑敏,범숙민) 도시계획 박사.

우리나라에서도 이런 여성 최고지도자가 나오게 하려면 우리 딸들을 조금 더 구박을 해야겠습니다! 사랑이란 이름으로!

편집 : 박효삼 편집위원

김동호 주주통신원  donghokim01@daum.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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