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번 울었다 하면 세상을 놀라게 한다.

飛則沖天, 鳴必驚人(비즉충천, 명필경인)

중국에는 서에서 동으로 흐르는 커다란 강이 두 개가 있습니다. 북쪽에는 중화문명의 발상지를 이루는 황하가 굽이굽이 흘러 발해만으로 해서 황해로 빠져나갑니다. 고대 중국 역사는 대부분 황하를 끼고 이어져 내려옵니다. 주나라가 대표적이지요.

춘추 오패의 제나라와 진나라가 황하 유역이라면 초나라 오나라 월나라는 남쪽 양자강(장강)유역입니다. 그중에서도 대표적인 강국이 초나라입니다. 지금의 동정호 북쪽에 자리 잡은 제후국으로 진시황에게 멸망을 당하기까지 춘추전국시대의 대표적인 강국이지요. 진시황이 죽고 우리 모두 익숙한 이름 항우가 또 초나라를 이어갑니다.

초나라는 중원에서 멀리 떨어진 남쪽에 자리를 잡았고 생김새도 달라서인지 남쪽 오랑캐로 업신여김을 당하였습니다. 그러다보니 스스로 제후국으로 안주하지 않고 틈만 나면 북쪽으로 치고 올라가려고 하였고, 유왕 이후 이미 이빨이 빠져서 허수아비로 전락한 주 왕실은 안중에도 두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그런지 일찍부터 스스로 왕이라 칭하였습니다. 그 중에서 세 번째 패자가 된 장왕 이야기입니다.

수백 년 또는 수천 년의 역사가 권력의 무상함을 끊임없이 이야기해줍니다. 그럼에도 어리석은 인간들은 지금 이 순간에도 이익과 권력 앞에서 부모와 자식이 반목을 하고 형제가 살육을 하기도 합니다. 또한 영원한 친구도 적도 없지요. 진나라 문공이 도망 다니던 시기에 초나라에 들려 성왕으로부터 엄청난 환대를 받았지요. 후에 귀국하여 두 번째 패자가 되었고, 당연히 주변국과 합종연횡을 하며 전쟁을 치룹니다. 그러다 보니 강대국인 초와 진이 부딪혔고, 은혜를 베풀었던 진나라 문공에게 성왕의 군대는 대패를 합니다.

성왕은 그 와중에도 태자인 아들 상신을 폐하고 어린 아들 직에게 왕위를 물려주려고 하지요. 이를 눈치 챈 아들 상신에게 역으로 포위되어 붙잡힙니다. 자살을 강요하는 태자에게 마지막으로 곰발바닥요리를 부탁합니다. 시간을 벌려는 꼼수에 거절을 당하고 결국 스스로 목숨을 끊지요. 상신이 왕위에 올라 목왕이 되고, 진나라에 복수를 하려고 준비를 하다 일찍 죽고 맙니다.

▲ 초나라 장왕 상

목왕의 아들이 뒤를 이어 어린 나이에 왕이 되었으니 바로 장왕입니다. 왕의 길은 평탄치 못했습니다. 다른 공자 섭이 모반을 하여 장왕을 가둡니다. 후에 섭이 살해당하면서 풀려나 수도로 돌아옵니다. 장왕은 즉위한 후 3년 동안 주야로 주색에 빠져 정사는 아랑곳하지 않습니다. 그리고 전국에 ‘간언하는 자는 죽인다.’고 포고를 내렸습니다.

나라의 기강은 무너지고 간신들이 득실대며, 초나라는 주변 나라들의 창고나 다름이 없게 되었지요. 어느 날 오거가 양쪽 무릎에 여자를 하나씩 끼고 있는 장왕을 찾았습니다. 감히 간언은 못하고 오거가 수수께끼를 냅니다.  “명산에 커다란 새가 한 마리 살고 있는데 3년 동안 날지도 울지도 않습니다. 이 새는 무슨 새입니까?(‘不飛不鳴’이란 고사성어의 유래)”.  장왕: “그 새는 한번 날면 하늘을 뚫고, 한번 울면 인간을 반드시 놀라게 할 것이다.(飛則沖天, 鳴必驚人. 비즉충천, 명필경인) 무슨 뜻인지 알았으니 물러가라.” 一鳴驚人(일명경인)이란 성어의 유래이지요.

그 후에도 몇 달이 지나도록 더욱 방탕해진 생활을 이어가자 대부 소종이 목숨을 내놓고 간언을 합니다. “어차피 망할 나라! 제가 죽어 대왕이 정신을 차린다면 기꺼이 죽겠습니다. 제가 이 자리에서 죽으면 충신으로 역사에 이름을 남길 것이고, 대왕은 폭군으로 기록될 것입니다.” 그러자 장왕은 그동안의 방탕한 생활을 접고 오거와 소종에게 정무를 맡깁니다. 3년 동안 나라를 어지럽힌 간신 수백 명을 주살하고 새로운 인재를 등용하여 나라를 부강하게 만들었습니다.

▲ 유머와 경륜으로 주군을 보필한 청렴의 대명사 손숙오(출처 네이버 지식백과)

흔히 충신과 재상을 혼동합니다. 어리석고 혼미한 군주일수록 자신의 가려운 곳을 긁어주는 간신들을 가까이 두려 합니다. 대부분 실패한 군주들의 전형입니다. 오거와 소종은 충신은 될지언정 명재상의 그릇은 아닙니다. 장왕이 재상에 앉힌 손숙오는 관중에 비견되는 명재상이면서 백성의 편에서 좀 더 어진 정책을 폅니다. 그릇이 큰 장왕과 잘 맞았지요.

▲ 초나라가 패자의 위치에 있을 때의 영토

莊王葬馬(장왕장마)

장왕에게는 애지중지하는 말이 한 필 있었습니다. 이 말은 일반 백성은 물론 사대부보다도 더 특별한 대우를 받았지요. 장왕은 이 말에게 자수를 놓은 옷을 입히고, 잘사는 집에서나 감히 먹을 수 있는 대추와 건포를 먹였으며 호사스럽기 그지없는 방에 재웠습니다. 총애가 지나치다보니 그만 비만으로 죽고 맙니다. 그러자 왕은 신하들에게 사대부의 예를 갖추어 상을 치르고 관과 곽을 갖추어 안장을 하라고 명합니다. 이에 대신들은 왕이 자기들을 모욕하고 있다며 불만을 표시하자 “말의 장례에 대하여 논하는 자는 처형을 하겠다.”고 영을 내립니다.

우맹(優孟)이란 사람이 이 소식을 듣고 뛰어 들어와 대성통곡을 합니다. 장왕이 놀라 연유를 묻자, “죽은 말은 대왕이 아끼는 말입니다. 우리 당당한 초나라는 땅도 넓고 물산도 풍족하여 없는 게 없습니다. 어찌 쪼잔 하게 사대부의 예로 하시려합니까? 대왕께서는 마땅히 군왕의 예로서 안장을 하십시오! 그리하면 많은 제후들이 대왕께서는 신하와 백성은 업신여기고 말은 귀히 여김을 알게 될 것입니다.” 이 말을 들은 장왕은 자신의 영을 거두고 안장을 취소합니다.

絶纓之宴(절영지연)

장왕이 원정을 나간 사이 벼슬이 깎여 불만을 품은 투월초가 반란을 일으킵니다. 이 난을 평정하고 공을 세운 부하들을 위로하려고 큰 잔치를 열었습니다. 총애하는 비빈 허희와 맥희에게 술을 따르게 하였는데 갑자기 바람이 강하게 불어 촛불이 다 꺼졌지요. 순간 허희의 날카로운 음성이 들렸습니다. “대왕! 누가 내 손목을 잡아서 그 자의 갓끈을 잡아챘으니 불을 키고 욕보인 자를 처벌하소서!”  그러자 장왕이 명을 내렸습니다. “불을 켜지 마라. 이 자리는 경들을 위해 과인이 베푼 연회이니 거추장스런 갓끈은 모두 끊어버리고 질펀하게 마셔보자. 갓끈을 끊지 않은 자는 과인의 뜻을 거역하는 걸로 알겠다.”

3년이 지난 후에 문공 이후 패자의 위치에 있던 진과 전쟁을 하게 됩니다. 이 때 장수 한명이 죽음을 무릅쓰고 5번 교전에 5번 모두 최선봉에 서서 용감무쌍 적군을 격퇴시켜 진과의 전쟁을 승리로 이끕니다. 그리하여 장왕이 새로운 패자의 지위를 차지하지요.

장왕이 그가 누구인지 묻자, 예전에 연회에서 왕이 총애하는 여자를 욕보인 죄인이라며, 그때의 은혜를 갚기 위해 죽음을 각오하고 적진에 뛰어들었다고 합니다. 장왕이 상과 큰 벼슬을 내렸으나 죄인의 몸이라며 사양하고, 그래도 벼슬을 내리자 홀연히 사라졌다고 합니다.(‘絶纓之宴,절영지연’ 혹은 ‘絶纓之會,절영지회’라는 고사성어의 유래. 우리나라에서 모 의원이 허물을 덮자는 의미로 이 말을 썼다가 욕을 먹었지요.)

앞서 패자로 군림하던 진나라는 문공 사후 두 아들이 왕위를 이었고, 손자인 경공 때에 실정을 거듭하다 결국 권력을 상실하고 대부들의 손에 좌지우지 됩니다.

초나라 역시 패자가 된 장왕의 뒤를 이어 아들 공왕이 왕위를 이었으나 전쟁에서 한쪽 눈을 잃게 됩니다. 공왕에겐 아들이 다섯이 있었는데, 장자 영왕이 왕위를 이었고, 원정을 나간 사이에 동생들이 반란을 일으킵니다. 영왕은 죽고, 둘째가 왕위에 앉았지만 다섯째인 막내의 음모에 빠져 두 형이 자살을 하게 됩니다. 그렇게 자리에 오른 막내가 초나라 평왕이지요. 이 평왕이 오자서에 의해 죽어서도 매질을 당하는 '굴묘편시'의 그 평왕입니다.

천하의 패권을 장악한 권력도 삼대를 넘기지 못한다는 실증이기도 합니다. 산이 높으면 골 또한 깊고, 밝음이 강하면 어둠 또한 진합니다. 언제나 오르막만 있지는 않기에 오를 때 내리막을 대비한다면 후세에도 평안을 구할 수 있지요.

재상 손숙오가 아들에게 남긴 유언으로 글을 마치려합니다.. “내가 죽거든 대왕이 많은 땅을 하사하고 관직을 내릴 것이다. 모두 물리치고 아무도 거들떠보지 않는 침구(寢邱)를 봉지로 달라고 해라!” 후에 전쟁의 참화 속에서도 손숙오의 후손들은 대를 이어 번성합니다.

편집 : 박효삼 부에디터

김동호 주주통신원  donghokim01@daum.net

한겨레신문 주주 되기
한겨레:온 필진 되기
한겨레:온에 기사 올리는 요령

저작권자 © 한겨레:온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