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 도산선생님...

흥사단 단우 입단문답 일례

 

 흥사단을 알기 위해선 단우의 입단문답(入團問答)을 경험하는 것이 가장 좋으나, 직접 경험할 수 없는 사람은 그 일례를 읽어보는 것도 좋다. 1920년 어느 날, 상해 모이명로의 흥사단 단소에는 상해에서 상당히 저명한 갑(甲)씨의 입단문답이 있어 많은 사람들의 관심과 흥미가 컸다. 그중엔 이미 입단한 이도 있었다. 이번 문답은 동아시아에서 처음인 관계로 흥사단역사에도 중요한 날이었다. 문답위원은 도산이었고 양자 사이엔 작은 탁자를 두고 마주 앉았다. 위원은 흥사단의 격식에 맞춰 어깨에 황색과 적색을 합한 단대(團帶)를 메었다. 여기서 황색은 무실(務實)로 참됨을, 적색은 역행(力行)으로 힘을, 백색은 충의(忠義)로 절개를, 청색은 용감(勇敢)으로 의지를 상징했다. 나누면 4색이지만 핵심은 황·홍 2색이었다. 무실과 역행은 참됨과 굳센 힘이다. 도산께서 문답 전에 말씀했다.

 “이제 우리는 나라를 찾기 위해 나라를 구할 이론과 방법을 토론하고자 하니, 묻는 자나 대답하는 자나 다 터럭만큼의 거짓도 없는 참됨으로 문답에 임해야 할 것이요. 이제 우리는 저마다 가진 신앙에 따라 기도합시다. ”이렇게 말씀함은 종파(宗派)를 떠나 민족의 신성한 단결을 강조함이요, 동시에 양심에 꺼리는 거짓된 예(禮)를 행하지 않기 위함이었다. 불교인은 심경(心經)을, 기독교인은 주기도문을 그 외는 누구나 자신의 믿음에 따라 자기의 참된 심경으로 묻고 답할 힘을 달라고 빌고 다짐한 것이었다.

각자 기도가 끝나자 도산은 문답을 시작하였다.

 

문: 甲군, 그대는 흥사단에 입단하기를 원하시오?

답: 예, 나는 흥사단에 입단하기를 원합니다.

 

문: 왜 입단을 원하지요?

답: 우리나라의 독립을 회복하고 민족영원의 창성을 구하려면 흥사단주의로 갈 수밖에 없다고 믿기 때문입니다.

 

문: 왜 그렇게 생각하시오?

답: 우리는 힘이 없어서 나라가 망하였으니, 나라를 흥하게 하려면 힘을 길러야 하겠기에 그렇습니다.

 

문: 힘이란 무엇이오?

답: 한 사람 한 사람의 건전한 인격과 그 건전한 인격들로 된 신성한 단결입니다.

 

문: 나라의 힘이라면 부력(富力)과 병력(兵力)일 텐데, 어찌하여 그대는 부력과 병력은 말하지 아니하고 건전한 인격과 신성한 단결을 힘이라고 생각하시오?

답: 건전한 인격과 신성한 단결이 없이는 부력도 병력도 생길 수가 없기 때문입니다.

 

문: 왜 그렇지요? 농업과 상공업이 발달하면 부력은 저절로 생길 것이요, 대포와 군함만 있으면 병력은 저절로 생기지 않겠소?

답: 국민이 건전한 인격과 신성한 단결이 없이는 농업이나 상업이나 공업도 발전할 수 없고, 또 대포와 군함이 있어도 그것을 제대로 쓸 사람이 없을 것입니다.

 

문: 국민이 농업·상업·공업의 지식과 기술을 잘 배우고, 또 대포와 군함을 쓰는 재주를 잘 배우면 그것이 힘이 되지 아니하겠소?

답: 네, 그렇습니다.

 

문: 그러면 지식과 기술만 배우면 그만이지, 인격이니 단결이니 하는 것은 무슨 소용이 있단 말이오?

답: 인격이 건전치 못한 사람의 지식과 기술은 나라의 이익을 위하여서 쓰이지 아니하고, 오히려 나라에 해롭게 쓰이는 일이 많았습니다.

 

문: 그런 실례가 있소?

답: 을사오적칠적(五賊七賊)은 다 무식한 자가 아니라, 유식하고 유능한 자들이었습니다.

 

문: 그러면 지식과 기능과 인격과는 어떠한 관계가 있다고 생각하오?

답: 지식과 기능은 인격의 3요소 중의 하나입니다.

 

문: 인격의 3요소는 무엇 무엇입니까?

답: 덕(德)과 체(體) 그리고 지(智)입니다.

 

문: 덕이란 무엇이오?

답: 도덕(道德)입니다.

 

문: 도덕이란 무엇이오?

답: 도(道)란 사람이 마땅히 좇아갈 길이요, 덕(德)이란 그 길을 걸어감으로, 즉 실천함으로 생기는 정의(情意)의 경향과 궤도, 다시 말하면 옳은 길을 즐겨가는 버릇과 힘입니다.

 

문: 그러면 그 덕의 중심이 되는 것, 근본이 되고 기초가 되는 것이 무엇이라고 甲군은 믿으시오?

답: 참이라고 나는 믿습니다.

 

문: 참이란 무엇이오?

답: 거짓이 없다는 것입니다.

 

문: 거짓이란 무엇이오?

답: 거짓말과 속이는 행실입니다.

 

문: 거짓이 어찌하여 옳지 못한 것이오?

답: 도(道)에 어긋나기 때문입니다.

 

문: 거짓이 어찌해서 도에 어긋나지오?

답: 거짓이 도에 어긋나는 줄은 누구나 제 양심에 비춰보면 알 것입니다.

 

문: 그렇소. 누구나 제 양심에 물어보면 거짓이 옳지 않다는 것을 알지요. 그렇지만 거짓이 있어서 안 될 이유는 무엇인가요?

답: 거짓말을 하거나 남을 속이면 남이 나를 믿어주지 않기 때문이지요.

 

문: 남이 甲군을 믿어주지 아니하면 어찌해서 아니 되오?

답: 남이 나를 믿지 않으면 아무 것도 할 수 없습니다. 신용이 없이 무엇을 하겠습니까?

 

문: 신용이 없이 할 수 없는 일을 어디 한 번 꼽아보시오?

답: 첫째로 장사가 안 됩니다.

 

문: 신용 없는 사람은 장사가 안 되오?

답: 신용 없는 장사에게 누가 자본을 대고 물건을 대 주겠습니까? 또 신용 없는 사람의 가게에서 누가 물건을 사겠습니까?

 

문: 그러면 신용은 상업에 있어 필수이겠구려!

답: 절대로 필요합니다. 신용은 상업의 생명이라 하겠지요.

 

문: 공업은 어떠할까요. 신용 없이 공업은 될까요?

답: 상업과 마찬가지라고 생각합니다. 신용 없는 공장의 제품은 상품가치가 없습니다.

 

문: 공장이 있자면 무슨 요건이 있겠소?

답: 첫째는 공장주인, 즉 경영자가 거짓 없는 인격자가 되어야 하겠습니다.

 

문: 그 다음에는?

답: 기술자가 참된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문: 공장 주인과 기술자만 참된 사람이면 그 공장은 신용 있는 공장이 되겠습니까?

답: 그렇습니다.

 

문: 직공은 거짓되어도 상관이 없겠소?

답: 직공이 속이면 안 되지요.

 

문: 그러면 경영자와 기술자와 직공이 다 참되어야 그 공장이 신용 있는 공장이 되겠소 그려?

답: 그렇습니다. 그 중에 하나만 거짓되어도 그 공장의 제품은 믿을 수가 없습니다.

 

문: 甲군은 어느 나라 제품을 안심하고 사시오?

답: 독일 것, 미국 것입니다.

 

문: 우리나라 제품은 신용 못 하시오?

답: (쓴웃음을 지으며) 신용 못 합니다.

 

문: 어떤 나라의 상공업이 신용을 못 받고서 그 나라가 부(富)할 수 있겠소?

답: 상공업에 신용 없이는 그 나라가 부할 수 없습니다.

 

문: 우리나라에도 상공업이 필요하다고 생각하시오?

답: 상공업의 진흥이 없이는 우리나라가 부할 수 없습니다.

 

문: 상공업의 능력이 없이 우리나라가 독립국가가 될 수 있을까요?

답: 평생 외국 사람의 시장밖에 못 될 것입니다.

 

문: 그러면 우리나라의 상공업을 발전시키는 길은 무엇이오?

답: (웃으며) 무실(務實)운동이오. 2000만 민족이 참된 사람이 되는 일입니다.

 

문: 우리나라는 농업국이지요?

답: 그렇습니다.

 

문: 농업이야 무실을 안 하기로 안 되겠소? 농민은 거짓이 있어도 상관이 없겠지요?

답: 농민은 천지자연(天地自然)을 상대하니, 천지자연이 어찌 거짓이 있으며, 사람의 거짓에 속겠습니까? 거름 아닌 것을 거름이라고 주면 곡식은 속지 않습니다.

 

문: 옳은 말씀이오. 그뿐 아니라 장차 우리는 농업도 세계 시장을 상대로 하여야겠고, 세계시장에서 한국 사람이 만든 것이라면 곡식이나 과실이나 축산이나 채소나 계란이나 의심 없이, 에누리 없이 안심하고 기쁘게 사주도록 되어야 우리 농촌이 부할 것입니다. 마치 영국 사람이 정말(丁抹:덴마크) 것을 안심하고 환영하는 것처럼 우리 농산품이 환영을 받게 되어야 비로소 우리는 부한 나라가 될 것입니다.

답: 동감이오.

 

문: 그런데 우리 민족은 안으로 서로 믿고, 밖으로도 남의 믿음을 받는다고 생각하시오? 그렇지 못하다고 생각하시오?

답: 안으로도 서로 믿지 못하고, 밖으로도 남의 믿음을 받지 못하고 있습니다.

 

문: 무엇을 보고 그렇게 단정하시오?

답: 사실이 그런 걸요.

 

문: 사실이라니? 무슨 사실을 보고, 우리 민족은 안으로 서로 믿지도 못하고, 밖으로 남의 믿음도 못 받는다고 생각하시오?

답: (말이 막힌다. 주위에서 방청하는 사람들도 눈이 휘둥그레진다.)

 

문: 이것이라고 얼른 내어놓을 확실한 사실의 증거도 없이 어떻게 우리 민족이 안으로 서로를 못 믿고, 밖으로도 남의 믿음도 받지 못하는 민족이라고, 다시 말하면 거짓된 민족이라고 단언하시오?

 

그리하고 도산은 10분간 휴식을 선언했다.

 

이는 휴식하는 동안에 문답하는 이나 방청하는 이나 다 잘 생각하여볼 기회를 갖자는 것이었다. 휴식 후 문답은 다시 시작되었다.

 

문: 우리 민족이 거짓이 많아 서로도 못 믿고, 남의 믿음도 못 받는다는 사실을 생각해보셨소?

답: 단결 안 되는 것이 그 한 실례가 아닌가 생각합니다.

 

문: 어찌해서?

답: 민중이 지도자를 안 믿고, 지도자끼리 서로를 안 믿고, 민중끼리 서로를 안 믿고 단결이 될 리가 없다고 생각합니다.

 

문: 우리나라가 망하기 전에 백성이 정부를 믿었소?

답: 안 믿었습니다.

 

문: 왜 안 믿었을까요?

답: 대신이나 수령 방백(守令方伯)이나 다 제 욕심만 채우고, 나라와 백성을 생각하지 아니하였기 때문입니다.

 

문: 그것이야 이기심(利己心)이지 왜 거짓이오?

답: 나라 일을 합네 하면서 제 일을 하니 거짓입니다.

 

문: 그렇게 정부 관리들이 다 거짓을 하였고, 그렇기 때문에 백성이 믿지 아니하였다는 것은 무엇으로 아시오?

답: 만일 관리들이 거짓이 없었고 백성들이 나라를 믿었다면, 나라가 이렇게 망할 리가 없습니다.

 

문: 나라가 망한 것은 다 거짓 때문이라고 생각하시오?

답: 이전에는 그렇게 생각하지 아니하였는데 이 <문답> 중에 그렇다고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문: 참이 큰 덕이요, 거짓이 큰 악이겠지마는, 그 때문에 국가의 흥망까지 가겠소?

답: <중용(中庸)>에 이르기를, 성자(誠者)는 천지도야(天之道也)요, 성지자(誠之者)는 인지도야(人之道也)라 하였습니다. 또 불성(不誠)이면 무물(無物)이라 하였으니, 성(誠)이란 참이요, 천지가 참으로 유지되어가니, 한 번 참이 깨어지면 천지는 직각에 부서지리라고 생각합니다. 모든 별들이 궤도를 갑네 하고 딴 길을 가고, 시서(時序)가 어그러져 봄이 되는 척하고 겨울이 돼버리면 천지는 파괴가 되고 혼란이 오리라고 생각합니다. 나라도 그와 같아서 모든 벼슬아치와 모든 백성이 다 참을 지키는 동안 결코 망하지 아니할 것이나, 그와 반대로 그중에 어느 하나가 참을 버리고 거짓의 길로 간다면, 벌써 그 나라는 어지러워진다고 생각합니다.

 

문: 옳소! 옳소! 그러면 우리나라를 참 나라로 만드는 길은 무엇이오?

답: 거짓을 버리는 것입니다.

 

문: 거짓을 버린다는 것은 실제로는 어떻게 하는 것을 말하오?

답: 거짓말을 뚝 끊고, 모든 거짓된 것을 일체 버리는 것입니다.

 

문: 누가?

답: 우리 민족이 다.

 

문: 우리 민족이 2000만이 넘는데 어떻게 그들이 모두 거짓을 버릴 수가 있겠소? 또 누가 그들더러 거짓을 버리라고 명령은 하며, 그 명령을 듣기는 누가 듣겠소?

답: 어려운 일이지요. 그러나 해야지요.

 

문: 어떻게? 무슨 방법으로? 누가?

답: (오랜 시간 말이 막힌다.)

 

문: (말없이 쳐다보고 있다.)

답: 이제 깨달았소.

 

문: 말씀하시오.

답: 내가 해야겠소. 내가 거짓을 버리고 참 사람이 되어야겠소!

 

문: 甲군이?

답: 네!

 

문: 甲군이 혼자서 오늘부터 거짓을 버리고 참사람이 된단 말씀이오?

답: 네, 그밖에 길이 없다고 생각합니다.

 

문: 그것이 확실하겠소? 조금도 의심이 없소?

답: 나 하나가 거짓을 버리고 참사람이 되기도 극히 어려운 일이지만, 그래도 내 말을 가장 잘 들을 사람은 나밖에는 없다고 생각합니다.

 

문: 음~ 그러면 甲군은 이제부터 거짓을 버리고, 모든 거짓을 버리고 참으로, 오직 참으로 나갈 것을 결심하시오?

답: 예, 결심합니다.

 

문: 얼마 동안이나 힘을 쓰면 甲군이 완전한 참사람이 되어 티끌만한 거짓도 없어지리라고 생각하오?

답: 완전히 거짓이 없고 참되게 되면 그것은 성인의 자리니, 평생을 힘써도 어렵겠으나 불가능은 아니라고 믿습니다.

 

문: 甲군은 우리 민족 2,000만이 모두 성인의 자리에 이르기를 바라오?

답: 그렇습니다.

 

문: 그러나 그것은 백년하청을 기다리는 것이 아니겠소?

답: 최후·최고의 목표가 성인의 자리지, 거기에 이르는 도중에는 여러 단계가 있을 것이요마는, 목표에 가까워 가면 갈수록 우리 민족의 힘은 커질 것입니다.

 

문: 그러면 우리가 완전한 자주독립국가를 지니고 남만 못하지 아니하게 살아가려면, 최저 얼마만한 단계까지 우리가 참되게 되어야 하겠소? 너무 고원(高遠)한 이상은 일반 백성에게는 망양(望洋)의 느낌을 주오.

답: 쉽게 말하면, 영국 사람만큼 참되게 되면 영국만큼 우리나라를 만들 수 있다고 믿습니다.

 

문: 꼭 그렇게 믿으시오?

답: 그렇게 믿어집니다.

 

문: 의심 없소?

답: 추호도 의심 없습니다. 그러나 이것은 이 자리에서 깨달은 생각입니다.

 

문: 이상에서 한 甲군의 말씀은 다 나와 동감이오. 나는 甲군과 나와 또 우리 흥사단 단우와 이 문제에 대하여 생각이 같은 것을 대단히 기뻐하오. 그렇지마는 이 모양으로 한 사람 한 사람이 저 혼자만을 고쳐가서는, 어느 천 년에 우리 민족이 거짓이 없고 참된 민족이 되겠소? 일은 급한데, 독립은 어서 바삐 해야겠는데... 甲군, 이렇게 한 사람 한 사람 고쳐가는 방법보다 더 빠른 묘한 방법은 없겠소? 얼른, 직닥직닥 우리나라가 독립도 되고 부강도 될 방법은 없겠소? 만일 그런 묘한 방법이 있다 하면 흥사단과 같이 완만한 방법을 취할 필요가 없을 것이오. 甲군은 흥사단 약법을 다 읽으셨소?

답: 예.

 

문: 다 외우셨소?

답: 예.

 

문: 조목마다 다 깊이 생각해보셨소?

답: 예, 깊이 생각해보느라고 하였으나, 오늘 문답을 받아보고야 비로소 흥사단의 뜻이 얼마나 깊은지 알아지는 것 같습니다. 사실 이처럼 깊은 줄은 몰랐었습니다. 나는 약법을 외우기까지 하였으니 흥사단을 잘 안다고 믿고 있었는데, 오늘 문답을 하여보니 내가 흥사단을 안 것은 피상(皮相)뿐이었다는 것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문: 예를 들면 어떤 것이오?

답: 나라가 망한 근본 원인이 거짓에 있다는 것 같은 것입니다.

 

문: 또?

답: 나라가 망한 책임자도 나요, 나라를 일으키는 책임자도 나라는 것 같은 것입니다.

 

문: 그렇게 생각하시오?

답: 예, 그렇게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문: 어찌하여서 나라가 망한 책임자가 甲군이오? 甲군은 이완용도 아니요, 이용구도 아니지 않소.

답: 이완용·이용구로 하여금 그러한 일을 하게 한 것은 나입니다.

 

문: 어찌하여서?

답: 그들로 하여금 나라를 팔게 한 것이 우리 국민이니, 나를 뺀 국민이 어디 있겠습니까? 그런데 나는 일본을 원망하고, 이완용을 원망하고, 우리 국민의 무기력함을 원망하고, 심지어 우리 조상까지 원망하였으나, 일찍 한 번도 나 자신을 원망한 일은 없었습니다. 마치 모든 망국(亡國)의 죄는 다 남에게 있고, 나 하나만이 무죄한 피해자인 것처럼 생각하고 있었으니, 이것이 책임 전가가 아니고 무엇이겠습니까? 이것이 어리석은 일이 아니고 무엇입니까?

 

문: 책임 전가, 책임 전가, 좋은 말씀이오. 그런데 甲군이 나라를 일으키는 책임자라는 것은?

답: 내가 참사람이 되고, 내가 애국자가 되고, 내가 평생 광복을 위하여 일하는 자가 되면 반드시 광복은 오리라고 믿습니다. 이것은 이 자리에서 생긴 생각이지만, 이 자리에서 깨달아진 것이지, 이 자리에서 얼핏 생각난 것은 아닙니다. 진리이니까, 진리를 보았으니까요.

 

문: 우리나라의 주인이 누구요?

답: (잠깐 주저하다가) 대한민국 임시정부입니다.

 

문: 대한민국 임시정부의 주인은 누구요?

답: 대통령 이승만(李承晩)입니다.

※대한민국 임시정부 수립: 1919년 4월 13일 상해. 임시의정원 의장 이동녕, 국무총리 이승만(李承晩), 내무총장 안창호(安昌浩), 외무총장 김규식(金奎植), 법무총장 이시영(李始榮), 재무총장 최재형(崔在亨), 군무총장 이동휘(李東輝), 교통총장 문창범(文昌範).

 

문: 대통령 이승만의 주인은 누구요?

답: 대한국민, 우리 2000만 민족입니다.

 

문: 대한국민, 우리 2000만 민족은 누구요?

답: 우리들 모두입니다.

 

문: 우리들 모두란 누구요? 대한국민아 나서라! 하고 하느님께서 부르신다면 ‘예’하고 나설 자가 누구요?”

답: (한참 말이 막힌다.)

 

문: 나는 나 ‘안창호’라고 대답하오.

답: (놀라서 도산을 바라본다. 그제야 깨달은 듯이) 예, 나 甲!甲!甲!이요.

 

문: 그렇소. 우리 대한 사람은 남자나 여자나 저마다 다 대한국민이요, 저마다 다 대한의 주인이요, 대한민국 임시정부의 주인이요, 이승만 대통령은 우리가 뽑아서 우리의 대표로 우리의 지도자로 내세웠소. 우리는 그에게 이러한 법률에 의하여 이러한 일을 하여달라고 부탁하였고, 그는 그러하마고 서약하였소. 그 ‘우리’라는 것은 곧 나요, 우리라는 말이 심히 좋은 말이거니와, 이 말을 책임 전가나 책임 회피에 이용하는 것은 비겁한 일이요, 책임에 대하여서는 내 것이라 하고, 영광에 대하여서는 우리 것이라 하는 것이 도덕에 맞는 언행(言行)이오. 그러면 甲군, 대통령이 내게 복종할 것이오. 내가 대통령에게 복종할 것이오? 대통령이 높소, 내가 높소?

답: 대통령은 우리의 법과 우리의 여론에 복종하고, 나는 대통령의 명령과 지도에 복종합니다. ‘우리’일 적에 ‘우리’는 대통령보다 높고, ‘나’일 적에 ‘나’는 대통령보다 낮다고 생각합니다. 우리의 대통령으로는 우리가 감시하고, 내 대통령으로는 내가 애경(愛敬)하오.

 

문: 甲군이 흥사단에 입단하기를 원하시니, 흥사단의 주인은 누구요?

답: 나요.

 

문: 흥사단이 잘되지 아니할 때에 그 책임자가 누구요?

답: 나요.

 

문: 분명히 그렇소?

답: 분명히 그렇다고 생각합니다. 내가 나 할 일, 내가 할 수 있는 모든 일을 다 하고도 흥사단이 잘 안 된다면 몰라도.

 

문: 그때에는 다른 사람의 잘못이라고 책임을 돌리겠소?

답: 제 힘을 다 쓴 이상에야 어찌하겠습니까?

 

문: 甲군이 있는 힘을 다하여도 흥사단이 망할 수 있겠소?

답: 나 혼자 어찌해요? 다른 단우들이 다 떨어져 나간다면 할 수 없다고 생각합니다.

 

문: 그렇다면 흥망의 주인이 다른 단우들이지 甲군 자신은 아니란 말이구려!

답: (대단히 거북한 모양으로) 그러면 어찌하면 좋겠습니까?

 

문: 甲군이 분명히 흥사단의 주인일 것 같으면 할 도리가 있지 아니하겠소?

답: (그제야) 예, 내가 있는 동안 흥사단은 없어지지 아니할 것이오.

 

문: 어떻게?

답: 나 혼자 흥사단을 맡아가겠습니다.

 

문: 혼자서 무슨 단체요?

답: 가는 동지는 보내고 새 동지를 맞아들이지요.

 

문: 새 동지를 못 얻으면?

답: 못 얻을 리가 없다고 생각합니다.

 

문: 어찌해서?

답: 흥사단의 주의가 진리니까. 또 내가 표본이 되니까. 또 우리나라, 우리 민족이 멸망할 수 없으니까.

 

문: 진리면 반드시 따를 자가 있을까?

답: 진리를 찾는 자는 언제나 반드시 있다고 믿습니다. 구불도자 궁겁부진(求佛道者 窮劫不盡)이라고 하였소.

 

문: 동감이오. 진리는 반드시 따르는 자가 있고, 정의(正義)는 반드시 이루는 날이 있다고 나는 믿소.

답: 나도 그것을 믿습니다.

 

문: 우리나라의 독립과 우리 민족의 번영도 甲군과 나와 하려고만 하면 반드시 이루어질 날이 있다고 나는 믿는데, 甲군은 어떻게 생각하오?

답: 나도 믿습니다.

 

문: 너도 믿고 나도 믿자. 너도 일하고 나도 일하자. 너도 주인이 되고 나도 주인이 되자. 공(功)은 ‘우리’에게로 돌리고 책임은 ‘내’게로 돌리자. 이 길밖에는 우리나라, 우리 민족을 구원할 길이 없다고 믿어서 우리가 흥사단으로 모였는데, 甲군은 어떻게 생각하시오?

답: 나도 그러한 한 사람 되려고 결심합니다.

 

문: 수양의 목표를 어디다 두시오?

답: 터럭 끝만 한 거짓도 없는 인격자가 되는 데 목표를 둡니까?

 

문: 터럭 끝만큼 거짓도 없는 지경에 도달한다면 성인(聖人)이 아니겠소?

답: 성인지경까지를 목표로 삼고 나가겠습니다.

 

문: 만일 甲군 자신이나 또는 동지 중에 거짓을 다 떼어버리지 못한 때에 어찌하겠소?

답: 떼려떼려 하는 노력만 계속하면 동지로 보겠습니다.

 

문: 거짓 없는 참 인격이 되면 우리 수양은 끝난 것일까요? 거짓 없는 것 이외에 또 힘쓸 것이 있다고 보시오?

답: 무실(務實)이 중심이거니와, 역행(力行)·충의(忠義)·용감(勇敢)의 정신도 수양하여야 비로소 완전한 인격이 되겠습니다.

 

문: 역행이란 무슨 뜻이오?

답: 행에 힘을 쓴단 뜻입니다.

 

문: 행은 왜 힘써야 합니까.

답: 아무리 옳은 것을 알더라도 행함이 없으면, 아니 아는 것과 다름이 없습니다.

 

문: 우리 민족은 역행하는 민족이오?

답: 역행이 부족하다고 봅니다.

 

문: 무엇을 보고 우리 민족이 역행이 부족하다고 생각하시오?

답: 역행이 있었으면 무엇이나 이뤄진 것이 있었을 터인데 아무 남은 것이 없으니, 역행이 부족하였다고 생각합니다.

 

문: 우리 민족이 충군(忠君)·애국(愛國)의 이치를 알았던가요?

답: 알았습니다.

 

문: 우리 민족이 충군·애국을 하였던가요?

답: 충군·애국을 알기는 저마다 알았어도 그것을 행한 사람은 극소수라고 생각합니다.

 

문: 역행의 반대가 무엇인가요?

답: 공상(空想)과 공론(空論)이오.

 

문: 우리 민족이 공상과 공론을 많이 하였나요?

답: 이조의 모든 ‘당쟁’은 공론에서 온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문: 甲군, 그대는 역행가요? 공론가요?

답: 나도 역행보다 공론이 많았습니다.

 

문: 예를 들면?

답: 몸이 약하니 체육을 힘써야 되겠다 하면서도 실행을 못하고, 내 몸과 거처를 정결하게 정제하게 하여야 되겠다고 하면서도 그것을 못 하였습니다.

 

문: 이로부터는 어찌할 생각이오?

답: 이로부터 한 가지 한 가지 옳다고 생각하는 것은 실행을 하려고 합니다.

 

문: 옳은 줄 알면서도 실행 못 한 것이 없게 되자면, 甲군은 몇 해나 수양을 해야 된다고 생각하시오?

답: 이미 이뤄진 악습을 떼어버리고 새로운 좋은 습관, 즉 덕을 쌓는 것은 평생의 사업이라고 생각합니다.

 

문: 평생에 수양만 하고 일은 언제 하려오?

답: 수양한다는 마음을 잃지 아니하면, 일상생활의 모든 행실이 모두 다 수양이오. 수양은 따로 하고, 수양이 끝난 뒤에 나라 일을 한다고는 생각지 아니합니다.

 

문: 수양만은 나라 일이 못 될까?

답: 저 혼자 수양만 한다는 것이야, 저 개인의 일이지 무슨 나라 일이 되겠습니까?

 

문: 우리 민족 중에 잘 수양한 건전한 인격 하나가 있는 것과 없는 것이 우리 민족의 힘에 얼마나 상관이 될까?

답: 우리 민족 중에 참으로 건전한 인격이 하나만 있어도, 그만큼 우리 민족의 힘이 늘었다고 생각합니다.

 

문: 어떤 모양으로?

답: 첫째, 건전한 인격을 가진 사람은 저 맡은 직분을 잘하겠으니 그만큼 큰 힘이 될 것이요, 둘째로, 그러한 건전한 인격자는 여러 사람의 숭앙을 받아서 큰 지도자가 되겠으니 민족의 힘이 크게 늘 것이요, 셋째는, 한 건전한 인격이 본이 되어 여러 사람이 그 감화로 본을 받겠으니 민족의 큰 힘이라고 생각합니다.

 

문: 지금 예수교인이 얼마나 되오?

답: 전 세계를 다 치면 각 교파를 다 합해서 수억(數億)이 된다고 합니다.

 

문: 이 수억은 최초에 몇 사람에서 시작되었소?

답: 예수 한 분에서 시작되었습니다.

 

문: 우리 민족은 몇 명이나 되오?

답: 대개 2,000만이라고 합니다.

 

문: 2,000만 우리 민족을 모두 ‘무실·역행’ 하는 민족으로 변화할 수 있겠소?

답: 있다고 믿습니다.

 

문: 어떠한 방법으로?

답: 내가 한 건전한 인격자가 됨으로 가능합니다.

 

문: 확실히 그렇다고 믿으시오?

답: 조금도 의심 없습니다. 꼭 되리라고 믿고, 안될 일은 없다고 믿습니다.

 

문: 그렇지마는 甲군이 중간에 마음이 변하여버리면 어찌하오? 그리되면 건전인격의 본이 끊어지고 말지 않겠소?

답: 나는 중간에 변하리라고는 생각하지 않습니다.

 

문: 甲군은 변하지 않더라도 만일 甲군이 세상을 떠난다면, 그때에는 건전 인격의 본이 없어지고 그 운동이 끊어지지 아니하겠소? 그런 일이 없게 하려면 어떻게 하여야 좋겠소?

답: 내가 죽으면 다른 동지가 있지요.

 

문: 그 동지도 죽으면?

답: 또 다른 동지가 있겠지요.

 

문: 확실히 동지가 끊어지지 않게 하는 확실한 방법이 필요하지 않을까요?

답: 확실히 동지가 끊어지지 아니할 확실한 방법이 필요합니다.

 

문: 왜 그것이 필요할까요?

답: 흥사단의 사상과 방법이 아니고는 우리 민족이 재생 부흥할 길이 없으니까요.

 

문: 그러면 흥사단의 사상과 실천 방법이 결코 끊어지지 아니하도록 그것을 영구화(永久化)하는 방법이 무엇이겠소?

답: 책으로 써놓는 것일까요?

 

문: 그렇소, 책으로 써놓는 것이 한 방법이오. 모든 책은 인류의 모든 선인들의 좋은 생각을 우리에게 전하는 보물이오. 흥사단의 생각도 책으로 전하여야 하지요. 그러나 그 밖에 다른 방법은 없을까요?

답: 출판하는 이외에 강연·담화 등이 있겠지요.

 

문: 그것도 다 어떤 생각을 전하는 방법이오. 그 밖에 또 무엇일까요?

답: 신문, 잡지…….

 

문: 그 신문, 잡지, 연극, 영화도 다 그 방법이겠지요. 그 밖에는 없을까요, 어떤 사상을 널리 펴고 또 영구하게 하는 방법이?

답: 몸소 실행으로, 생활로 실천하는 선전이 가장 유력할 것 같습니다.

 

문: 옳소! 백(百)의 논설(論說)보다 일(一)의 실물(實物)이 더 유효하지요. ‘무실·역행’하는 한 사람이 ‘무실·역행’을 말하는 100사람보다 더 감화력이 있습니다. 그러나 그 밖에는 다른 방법이 없겠소?

답: 동지가 한데 뭉쳐 단결하는 것일까요?

 

문: 단결이 왜 좋을까요?

답: 자연인(自然人)은 수명이 짧아도 단결의 수명은 기니까.

 

문: 甲군은 우리나라에 수명 긴 단결을 보신 일이 있소?

답: 생각이 나지 않습니다.

 

문: 3년 가는 동사(同事) 없다는 것이 우리나라 속담이오. 우리나라에서는 아직 3년 이상을 계속한 단결이 없습니다. 그러니 그런 단결을 어떻게 믿겠소?

답: 그러니까 흥사단에서는 신성단결(神聖團結)이라고 하였나요?

 

문: 그렇소, 우리는 변치 않고 깨어지지 않는 단결이란 뜻으로 ‘신성단결’이라고 이름을 지었소. 단결이 변치 않고 깨어지지 아니하려면 무슨 조건이 있어야 한다고 생각하시오?

답: 첫째로 단결의 주지가 의(義)나 이(理)에 맞아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문: 우리 흥사단은 이(利)를 목적으로 하는 단결이오, 의(義)를 목적으로 하는 단결이오?

답: 흥사단은 의를 목적으로 하는 단결이라고 생각합니다.

 

문: 의란 무엇이오?

답: 옳은 일이란 뜻이오.

 

문: 옳은 일이란 무엇이오?

답: 양심에 어그러지지 않는 일이란 뜻입니다.

 

문: 양심에 어그러지지 않는 일이란 어떤 일이오?

답: 선(善)과 정의(正義)란 뜻이오.

 

문: 선과 정의란 무슨 뜻이오?

답: 저 한 몸의 욕심대로 하지 아니하고 남을 위해서 하는 것을 ‘선’이요, ‘정의’라고 합니다.

 

문: 왜 저를 위하는 것은 옳지 아니하고 남을 위하는 것이 옳소?

답: (말이 막힌다.)

 

문: 대관절 甲군이 가장 일생의 소원으로 삼는 것이 무엇이오?

답: 우리 민족의 부흥입니다.

 

문: 왜 우리 민족의 부흥으로 소원을 삼으시오? 개인의 성공과 행복도 있겠고, 또 세계 인류 전체를 위해서 일하는 것도 있겠는데, 甲군은 왜 하필 편협하게 조선 민족의 부흥만을 원하시오?

답: 왜 하필 내가 조선 민족만을 사랑하는지 생각해본 일이 없습니다. 그저 내가 내 몸을 사랑하는 모양으로 본능적으로 조선민족을 사랑합니다.

 

문: 甲군은 어느 나라 사람이오?

답: 대한나라 사람이오.

 

문: 대한은 벌써 망하고 없지 않소?

답: 그래도 나는 대한나라 백성이오.

 

문: 세계에서 가장 영광스러운 나라가 어느 나라요?

답: 영국, 미국, 이러한 나라들입니다.

 

문: 甲군은 왜 영국 사람이 안 되시오?

답: 그것은 될 수 없습니다. 그야말로 운명입니다.

 

문: 甲군은 지금 영국 사람이나 미국 사람이 될 수 있다면, 대한 사람을 탈퇴하여서라도 되기를 원하오?

답: 될 수도 없거니와 그것을 원하지도 아니합니다.

 

문: 왜?

답: 나는 대한사람이니까. 내 조상들이 대한나라에 살았고 대한사람으로 죽어서 대한나라 흙에 묻혔으니까요. 내가 대한의 비와 이슬을 받아서 나고, 자라고, 대한에 친척과 친우가 있고, 대한 말을 하고 대한 글을 쓰는, 나는 대한사람이니까요.

 

문: 우리 민족이 다 천한데 甲군 혼자서 귀할 수 있겠소?

답: 없습니다.

 

문: 甲군을 사랑하여서 甲군의 말을 듣고 甲군의 도움을 바라는 이가 누구요?

답: 조선민족입니다.

 

문: 그러면 甲군의 평생소원, 평생사업이 무엇이오?

답: 우리 민족이 잘살게 되도록 힘쓰는 일이오.

 

문: 甲군이 의인(義人)이라면 어떠한 일을 하는 사람이 되어야 하겠소?

답: 우리민족이 잘살게 되도록 하는 일에 평생을 바치면 나는 의인이 될 것입니다.

 

문: 甲군이 의인이 아니라는 말을 어떠한 경우에 듣겠소?

답: 내가 민족이 잘살게 할 일을 헐거나 또는 민족이 잘살게 되는데 아무 상관없는 일로 일생을 보낸다면 나는 의인이 아니라고 할 것입니다.

 

문: 그러면 다시 묻겠소. 흥사단은 의를 목적으로 하는 단결이라 하니, 의란 무엇인가요?

답: 이제야 분명하여졌습니다. 의란 민족을 위하는 일입니다.

 

문: 불의(不義)란 무엇이오?

답: 불의란 민족을 해치는 일, 또는 민족을 위하지 아니하는 일입니다.

 

문: 의와 불의를 그렇게만 생각하면 너무 천박(淺薄)하지 아니하오? 선악이니, 정사(正邪)니, 의니 불의니 하면 좀 더 높고, 깊은 철학적 의의가 있지 아니하겠소?

답: 나는 아까까지는 그렇게 생각하였는데 지금 깨닫고 보니 우리 민족을 위하는 것은 선(善)이요, 정(正)이요, 의(義)요, 그와 반대로, 우리 민족을 해하거나 또는 우리 민족을 위하지 아니하는 일은 악(惡)이요, 사(邪)요, 불의(不義)라고 생각합니다.

 

문: 조금도 의심 없이 분명히 그렇게 믿으시오?

답: 추호의 의심도 없이 확실히 그러하다고 믿습니다.

 

문: 그러면 다른 민족이나 세계 인류는 무시하는 것이 안 되겠소? 제 민족만 사랑하고 제 민족만 위한다는 것이 너무 민족 이기주의에서 침략주의가 되지 않겠소?

답: 나는 그렇게 생각하지 아니합니다. 나 한 몸이 건전 인격이 되는 것이 곧 우리 민족 전체의 힘이 되고 복이 되는 것과 같이, 우리 민족의 나라를 선(善)의 나라, 정의의 나라로 완성하는 것이 곧 세계 인류의 복이라고 생각해요. 어떤 민족이 그 물욕(物慾)과 권력욕(權力慾)을 내버려 둘 때에만 침략주의가 되는 것이지, 이 사사로운 욕심이 없으면 그 나라가 부강하게 되면 될수록 인류의 복이 되지 결코 화가 되지 아니한다고 믿어요. 우리는 우리 민족의 나라를 이러한 나라로 만들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문: 동감이오. 그렇지마는 우리와 같이 이렇게 독립도 없고 부력도 없고, 또 아까 우리가 토론하여서 서로 공명(共鳴)한 바와 같이 거짓이 많고, 실행이 적고, 또 단결력도 없고 한 약소민족이 그러한 훌륭한 나라를 건설할 수가 있을까요? 그것 또한 공상·공론이 아닐까요? 우리마저 공상·공론을 하는 무리가 아닐까요?

답: 우리 민족은 현상으로 보면 과연 극약(極弱)·극빈(極貧)·극천(極賤) 그리고 아마 극우(極愚)한 민족일 것이오. 그러나 우리 중에 흥사단 사상이 발생하고 또 실행되기 시작하였으니 반드시 우리 목적, 즉 우리 민족을 세계에 가장 무실·역행·충의·용감하고, 가장 덕과 지와 체가 우수하고, 가장 부(富)와 문화가 뛰어난 민족을 만드는 일이, 반드시 실현되리라고 믿습니다.

 

문: 누가 그 일을 하겠소?

답: 흥사단이.

 

문: 흥사단은 누가?

답: 내가, 그리고 우리 동지가.

 

문: 甲군이 흥사단의 중심인물이 되겠소? 그런 자신이 있소?

답: 내가 흥사단의 중심인물이 되고 안 되는 것은 나의 인격 여하와 동지들의 내게 대한 신임 여하에 달렸지마는, 나 혼자만 남는 한이 있다 하더라도 흥사단은 지켜갈 것이니, 내가 흥사단의 주인인 것은 변할 리가 없습니다.

 

문: (만족한 듯이 고개를 끄덕끄덕한다.) 왜 甲군 혼자서 우리나라를 부흥시키지 아니하고 흥사단에 들어와서 하려고 하시오? 남이 만들어 놓은 단체에 甲군만한 명사(名士)가 이 모양으로 입단 문답을 하고 들어온다는 것이 체면이 손상되지 않겠소?

답: 부끄러운 말씀이지마는 미상불 그런 생각도 있었소.

 

문: 그런데 왜 입단을 하려고 하시오?

답: 이 일은 혼자는 못할 일이오, 여럿이 뭉쳐서야 할 일이기 때문입니다.

 

문: 혼자서는 안 될까요?

답: 안 됩니다.

 

문: 甲군이 평생을 몸으로 모범이 되어서 힘쓰면 그만이지 단결은 하여서 무엇 하오?

답: 아까 말씀대로 개인의 생명은 한이 있기 때문입니다.

 

문: 단결을 이뤄서 하면 무슨 이익이 있을까요?

답: 첫째로 수명이 무한히 길 수 있습니다.

 

문: 또 무슨 이익이 있을까요?

답: 여럿이 한 목적으로 일을 하니까 큰 힘을 낼 수가 있습니다.

 

문: 큰 힘? 큰 힘은 무엇에 쓰자는 것이오?

답: 작은 일이면 작은 힘으로 되지마는 큰일은 큰 힘으로만 되니까요.

 

문: 꼭 그런가요? 꼭 그렇다고 믿으시오?

답: 꼭 그렇다고 믿습니다.

 

문: 기회만 잘 만나고 계략과 수단만 좋으면 작은 힘으로 큰일을 할 수 있을 것이 아니요?

답: 기회나 수단이 작은 힘을 크게 하는 힘이 있지마는 원체 작은 힘으로는 아무리 기회나 계략이나 수단이 좋더라도 어떤 한도 이상의 힘을 증가할 수는 없습니다.

 

문: 사람의 힘을 크게 하는 법이 무엇이오?

답: 지식과 기계를 쓰면 큰 힘을 낼 수가 있습니다.

 

문: 또 무슨 방법이 있소?

답: 여러 사람의 힘을 모으는 것이오.

 

문: 여러 사람의 힘을 모으는 방법은 무엇이오?

답: 단결이오.

 

문: 세상에는 어떠한 단결이 있소?

답: 종교 단체도 있고, 정치 단체도 있고, 문화 단체도 있고, 또 혁명 단체도 있고...

 

문: 또 무슨 단체가 있나요?

답: 큰 자본의 힘을 내기 위하여서는 각종 회사도 있고...

 

문: 또 무슨 단체가 있소?

답: 군대도 한 단체요, 국가도 한 단체겠지요.

 

문: 기독교회라는 단체가 없이, 기독교가 1900여 년이나 내려오고 또 이만큼 많은 신자를 가지고 이 만큼 큰 사업을 할 수가 있었을까요?

답: 없었겠습니다.

 

문: 중국 인구가 4억이나 되는데 지금은 비록 쇠하여졌지마는 그래도 세계에서 문화가 높은 유력한 민족이오. 그런데 국가의 조직 없이 이 민족이 이만한 문화를 가지고 4,000년간 이만큼 계속하고 번창할 수 있었을까요?

답: 국가라는 조직이 없었다면 문화도 생기지 못하였으려니와 생존도 유지하지 못하였으리라고 생각합니다.

 

문: 우리 민족은 국가 없이 문화와 생명을 보존할 수 있다고 생각하오?

답: 국가 없이는 민족도 멸망한다고 생각합니다. 지구상에 국가 없이 창성하는 민족은 하나도 없습니다.

 

문: 그런데 우리는 나라가 없구려!

답: 망국민이 된 지 어언간 10년이나 되었소.

 

문: 언제나 우리에게 다시 나라가 있으리라고 생각하시오?

답: 우리에게 독립국민이 될 실력이 생긴 때에야, 우리에게 독립된 국가가 있으리라고 생각합니다.

 

문: 그러면 이번 독립운동은 허사란 말이오?

답: 허사는 아니지요. 동포가 흘린 한 방울 피도 헛되이 되는 일은 없다고 믿습니다.

 

문: 그러면 이번 독립운동의 소득은 무엇이라고 보시나요?

답: 첫째로 민족의식을 각성시켰고, 둘째로 독립의 의사를 내외에 표명하였고, 셋째로 실력이 없이는 아무리 좋은 기회가 있더라도 쓸데없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문: 그러니 우리 민족에게 독립의 실력이 언제나 생기오?

답: 100년, 1000년이 걸리더라도 독립의 실력이 생기는 날이 독립이 완성되는 날이라고 생각할 수밖에 없습니다.

 

문: 그날이 너무 오래 걸린다면 동포들이 낙심하지 않겠소?

답: 확실한 희망과 확실한 방법만 믿으면 낙심이 안 되리라고 생각합니다. 더욱이 조금씩 우리의 힘이 늘어가는 것이 눈에 보이면 동포들의 희망이 더욱 커지리라고 믿습니다.

 

문: 우리에게 완전한 독립의 영광의 날이 저절로 올 수 있으리라고 생각하시오?

답: 저절로는 올 수 없지요. 우리가 그날이 오게 하도록 힘을 써야만 올 것입니다.

 

문: 어떻게 힘을 쓰는 것이 우리에게 독립의 영광의 날이 오게 하는 길이 되겠소?

답: 흥사단을 힘 있게 하는 일이오.

 

문: 그까짓 흥사단, 1개의 작은 단체에 국가흥망의 운명이 달릴 수가 있겠소. 게다가 흥사단은 정치단체도 아니요, 독립운동 하는 혁명단체도 아니고, 아직 100명 내외의 단우를 가진 수양단체에 불과하거를, 이 흥사단이 그처럼 우리민족의 운명을 좌우할 수가 있겠소?

답: 글쎄요, 그렇게도 생각이 됩니다마는, 그래도 그 길밖에는 다른 길이 없는 것 같아요. 역시 한 사람씩 한 사람씩 완전한 국민이 되도록 수양하면서 그 사람들이 굳게 단결하여서 전 국민을 다, 건전한 국민이 되도록 힘쓰는 길밖에는 없을 것 같습니다.

 

문: 동감이오. 우리들도 그렇게 믿고 이 흥사단을 조직하였소. 지금 그대가 단결이란 말씀을 하였으니 단결이라는 것이 그렇게 필요하겠소?

답: 필요합니다.

 

문: 얼마나?

답: 절대로 필요합니다.

 

문: 왜, 그다지 절대로 필요하오?

답: 큰일은 큰 힘으로야 만 할 수 있고, 큰 힘은 큰 단결에서만 생기므로...

 

문: 우리 흥사단이라는 단결이 할 일은 무엇인가요?

답: 우리 민족 전도대업(前途大業)의 기초를 준비함이라고 약법에 써있지요.

 

문: 전도대업이란 무엇인가요?

답: 힘 있고 영광 있는 독립국가를 완성하는 일이오.

 

문: 기초란 무엇인가요?

답: 기초란 터와 주추란 말입니다.

 

문: 터와 주추가 무엇에 필요한가요?

답: 집을 짓는 데 필요하지요.

 

문: 기초 없이는 집을 못 짓나요?

답: 기초 없는 집이 어디 있겠습니까?

 

문: 나라의 기초는 무엇인가요?

답: 국토와 국민이오.

 

문: 우리나라에는 국토와 국민이 있소, 없소?

답: 국토는 다른 나라의 영토가 되었고, 국민은 다른 나라의 노예가 되었습니다.

 

문: 무슨 이유로 우리 국토와 우리 국민이 제 나라를 잃고 남의 노예가 되었소?

답: 나라를 지킬 육·해군의 병력이 없어서 그렇게 되었습니다.

 

문: 왜 병력이 없었나요?

답: 경제력이 없는 까닭이오.

 

문: 왜 경제력이 없었소?

답: 산업이 발달되지 못하여서...

 

문: 왜 산업이 발달되지 못하였소?

답: 자연 과학이 발달되지 못하여서...

 

문: 자연 과학은 왜 발달되지 못하였소?

답: 교육이 없어서...

 

문: 왜 교육이 없었소?

답: 국가에서 교육시설을 아니 하고 교육 장려를 아니 하여서입니다.

 

문: 왜 교육에 힘을 안 썼소?

답: 정치가 나빠서입니다.

 

문: 정치가 왜 나빴소?

답: 정치가들이 나빠서입니다.

 

문: 정치가가 나쁘다는 것은 어떤 것을 이름이오?

답; 정치가가 나라 일을 생각하지 아니하고, 사리사욕을 앞세웠기 때문입니다.

 

문: 정치가가 왜 나라 일을 생각하지 아니하고 사리사욕을 앞세웠소?

답: 당파 싸움을 하느라 그랬습니다.

 

문: 당파 싸움은 왜 하였소?

답: 제가 정권을 잡으려고...

 

문: 정권은 무엇 하러 잡으려고 욕심을 내오? 나라를 위하여서? 저를 위하여서?

답: 나라 일을 위하여서 하는 당파 싸움이면 나라가 망할 수 없겠지마는, 저와 제 당파만을 위하는 것이기 때문에 나라가 망했지요. 정권을 탐내는 목적이 적의 당파를 섬멸하고 국가를 자파의 낭중물(囊中物)로 만들려고 하는 데 있었으므로 나라가 망하였습니다.

 

문: 우리나라에 그런 싸움이 있었던가요?

답: 있었지요. 조선 500년 역사가 사사로운 당파싸움의 역사니까요.

 

문: 어디 그 대강을 말해보시오.

답: 조선 초기에는 불교에 대한 유교의 파쟁이니, 이것은 세종(世宗)·세조(世祖) 때에 격렬하다가 중종(中宗)·명종(明宗) 때에 이르러 유교의 독천(獨擅)으로 끝을 막아버리고, 이 파쟁으로 약해진 국력이 임진왜란과 병자호란을 이끌어 넣은바 되었고, 중종 때부터 이른바 사화(士禍)란 것으로 발단한, 같은 유교도(儒敎徒)끼리 동서(東西)·노소(老少)·남북(南北)의 추한 투쟁은 조선 500년을 끝내 막아버리고 말았습니다. 그들은 오직 당쟁에만 눈이 뻘게서 교육도, 산업도, 치산치수(治山治水)도, 군비도 다 돌아보지 아니하고, 오직 반대되는 적을 죽이고 저를 보존하기에 눈이 뻘갰을 뿐이지요.

 

문: 조선말에는 당쟁이 없었던가요?”

답: 있었지요. 갑신(甲申)에는 김옥균(金玉均) 등의 독립당과 민(閔)씨 일족의 사대당(事大黨)이 싸웠고, 또 청일전쟁 당시에는 친일파와 친청파, 러일전쟁 당시에는 친일파와 친러파가 있습니다.

 

문: 망국이 된 뒤에는 당쟁이 없었나요?

답: 불행하게도 있었다고 봅니다.

 

문: 어떤 당쟁이 있었소?

답: 같은 애국자 중에도 기호파(畿湖派)니, 서북파(西北派)니, 교남파(橋南派)니 하는 알력이 있고 또 개인영수(個人領袖)를 중심으로 수야파(誰也派), 모야파(某也派) 하는 불화가 있는 것같이 생각됩니다.

 

문: 甲군, 어떻게 생각하오? 당파라는 것이 하나도 없기를 바라오?

답: 당파가 하나도 없고 국민 전체가 한 당이 되는 것이 이상이겠지만, 주의(主義)와 정견(政見)을 달리하는 당파일진댄 있어도 좋을뿐더러, 또 그러한 당파면 있는 것이 서로 자극하여 이익도 되리라고 믿습니다.

 

문: 그러면 甲군은 어떠한 당파를 배격하시오?

답: 주의를 중심으로 하지 아니하고, 이해(利害)를 중심으로 한 당파는 소인(小人)의 당파요, 혹은 지방감정 혹은 계급감정을 이용하여서 민중의 열등감정(劣等感情)인 편벽(偏僻)과 증오(憎惡)와 질투(嫉妬)의 감정을 도발케 하여, 제 이해와 불합하는 딴 사람, 딴 당을 중상·모해하는 그러한 당파는 다 악당(惡黨)이오, 또 비록 주의를 중심으로 한 당파라 하더라도 그 실현방법이 목적을 위하여서는 수단을 아니 가린다 하는 것 같은 것도 옳지 아니한 당파라고 생각합니다.

 

문: 그렇게 폐해(弊害) 많은 당파일진댄 차라리 없는 것이 좋지 않겠소? 아무 당에도 아니 들면 그 싸움에 섞이지 아니할 것 아니요? 甲군은 그런데 왜 흥사단이라는 당에 가입하려 하시오?

답: 아무 당에 아니 들면 내 신세는 편하지요. 그러나 그것은 독선기신(獨善其身)이 아니오?

 

문: 독선기신은 옳지 아니한가요?

답: 저마다 독선기신을 하려 들면 광복사업은 못합니다.

 

문: 왜?

답: 광복 사업은 대사업이오. 대사업을 하는 데는 큰 힘이 필요하고 큰 힘을 내는 길은 많은 동지를 모아서 큰 단결을 짓는 것이 필요하기 때문에 옳은 주의로 옳은 동지를 많이 모아서 속히 큰 단결을 만드는 것이 광복의 대업을 하는 유일한 길이라고 믿습니다.

 

문: 옳은 주의의 큰 단결이 없으면 어떠한 결과가 생길까요?

답: 옳지 아니한 주의의 천하가 되리라고 생각합니다.

 

문: 옳은 주의의 단결이 있었다면 우리나라가 망하지 아니할 수 있었겠소?

답: 그렇습니다.

 

문: 흥사단은 정치단체가 아니요, 일개 수양단체인데, 일개 수양단체 따위가 아무리 크기로 어떻게 광복사업을 성취하고 또 옳은 정치를 할 수가 있겠소?

답: 수양한 건전한 인격자가 많이 생기면 그들이 정치가도 되고 교육가도 되고 실업가도 되어서 건전한 국가를 이룰 수 있다고 믿습니다. 건전한 국민이 많은 나라에서는 부정한 개인이나 당파가 쓰일 일이 없을 것이니, 국민을 건전하게 하는 것이 국가를 건전케 하는 기초라고 믿습니다.

 

문: 그러하더라도 흥사단을 수양 겸 정치단체로 하는 것이 좋지 아니할까요. 수양이란 청소년이나 할 것이지 점잖은 신사·숙녀가 수양단체에 가입한다는 것이 체면상 어떠할까요?

답: 수양이 다 끝난 사람이란 있을 수 없습니다. 평생을 수양하더라도 오히려 족하지 못하다고 생각합니다. 만일 나는 점잖은 사람이니 수양단체에 가입하는 것이 체면상 좋지 못하다고 생각하는 이가 있다고 하면, 그는 증상만(增上慢)이오. 그야말로 크게 수양할 필요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문: 甲군이 흥사단에 들어오는 것은 甲군 개인만의 수양을 위해서요, 또는 甲군도 수양하고 남도 수양하게 하겠다는 뜻이오?

답: 내가 수양 단체인 흥사단에 들려고 하는 것은 첫째로 내가 수양하고, 둘째로 남도 수양케 하려는 뜻입니다.

 

문: 甲군이 흥사단에 들어오는 것이 어찌하여서 남도 수양케 하는 일이 되오?

답: 내가 흥사단우가 되어 흥사단 표를 붙이고 다님으로 나를 아는 사람도 흥사단에 들어올 마음이 생기게 됩니다.

 

문: 그것뿐일까요?

답: 내가 세상에 좋은 사람이 됨으로 흥사단의 이름이 빛나서 많은 사람을 흥사단으로 끌어들일 수 있으니까.

 

문: 그것뿐일까요?

답: 내가 입단함으로 흥사단이 그만큼 커지고 힘 있게 되므로...

 

문: 그것뿐일까요?

답: 흥사단에서 하는 여덟 가지 사업을 하여서 널리 동포에게 수양의 길을 주므로...

 

문: 甲군이 입단을 아니 하면 흥사단이 유지가 못 되고 8대 사업이 실현되지 못하겠소?

답: 그야 나 하나 없더라도 흥사단은 유지되고 8대 사업이 실현되겠지요.

 

문: 그럴까요?

답: 예.

 

문: 甲군 하나 물러나더라도 우리나라가 광복이 되겠소?

답: 예, 나 하나가 무엇 이길래...

 

문: 2,000만 동포가 저마다 그렇게 생각하면 나라가 어찌 되겠소?

답: (쓴웃음을 짓는다.)

 

문: 그것이 가장 중요한 점이라고 나는 생각하는데, 甲군 생각은 어떻소?

답: 나는 겸손한 뜻으로 그렇게 말을 하였습니다.

 

문: 어찌하여서 그것이 겸손이 되오? 무거운 짐을 끄는데 나야 안 끌면 어떠랴 하고 뒤에 물러서는 것이 겸손이겠소, 회피이겠소?

답: 회피입니다.

 

문: 남더러만 무거운 짐을 끌라 하고 가만히 있는 것이 죄겠소, 죄가 아니겠소?

답: 죄입니다.

 

문: 저는 힘이 없노라 하여서 함께 달려들어 무거운 짐을 끌지 아니하고, 도리어 끄는 다른 사람을 잘 끄네 못 끄네 하고 시비하면 어떻겠소?

답: 그것은 더 고약합니다.

 

문: 나라 일도 마찬가지 아니요?

답: 그렇게 말씀을 듣고 보니 그렇습니다.

 

문: 지금 우리나라에서 나라 일을 하고 있는 사람이 많소, 아니하고 남의 시비만 하는 사람이 많소?

답: 저는 아무 것도 아니하면서 하는 사람의 시비를 하는 사람이 많은 것 같습니다.

 

문: 그러기로 당사자 아닌 사람이야, 나라 일을 하고 싶은들 어떻게 하겠소? 부재기위(不在其位)하여 부모기정(不謀其政)이라 하였으니, 제 책임도 아닌 일에 저마다 나서서 참견을 하면 일이 될까요?

답: 그래도 안 되지요.

 

문: 그러면 어찌한단 말이오? 가만히 있지도 말라, 참견도 말라, 그러면 어찌하면 좋소?

답: 남이 하는 일에는 참견을 말고 제가 할 일만 하면 되지요.

 

문: 제가 할 일이라면 무엇이겠소? 무엇이 우리 서민으로, 나라를 위하여서, 제가 할 일이겠소?

답: 첫째로는 제 직업에 전력을 다하는 것이겠지요.

 

문: 제 직업에 전력을 다하는 것이 나라 일이 되겠소?

답: 2,000만이 저마다 제 직업에 전력을 다하기만 하면 우리나라는 부강하여지리라고 생각합니다.

 

문: 농사나 장사나 공장(工匠) 같은 일이라도 제 직업만 잘하면 나라가 부강할까요?

답: 그렇다고 생각합니다.

 

문: 그렇다면 애국운동이니 독립운동이니 정치니 다 필요가 없지 아니하오? 저마다 제 직업만 다하여 나라가 잘된다면야...

답: 국민 각 개인이 다 제 직업을 잘할 만한 개인이 되게 하고, 그 개인들이 안심하고 저마다 제 직업을 잘하도록 하는 것이, 그렇게 지도하고 그렇게 제도를 만들어놓는 것이 애국 운동이요, 정치운동이라고 생각합니다. 그것이 정치의 목적이요, 국가의 목적이라고 생각합니다.

 

문: 그러면 甲군은 흥사단이 모든 운동의 중심이요, 기초라고 생각하시오?

답: 그렇게 생각합니다. 흥사단 운동이 없이는 다른 모든 운동이 다 되지 아니하리라고 생각합니다. 그러므로 흥사단 운동에 성공하는 것이 곧 광복이요, 독립완성이요, 민족영원의 복락의 근원이라고 믿습니다.

 

문: 흥사단 운동이 그처럼 중요할까요?

답: 그렇다고 믿습니다.

 

문: 영국이나 미국은 흥사단 없이도 나라가 잘되어 가는데 왜 우리나라에만 흥사단 운동이 필요할까요?

답: 우리 민족이 영국이나 미국 민족보다도 거짓과 공론이 많고 단체 생활의 훈련이 부족하므로 영국이나 미국 사람이 안 하는 한 과정을 더 공부할 필요가 있는 것입니다. 기초 공부가 없이 아무리 영국·미국을 따르려 하여도 안 되리라고 생각합니다.

 

문: 영국·미국 사람과 우리와는 무엇이 다른가요? 피부와 머리털과 모양 말고 도덕적으로 그들이 우리보다 나은 것이 무엇이라고 생각하시오?

답: 나는 영국과 미국에 가본 일도 없고 영·미인과 많이 교제해본 일도 없어서 자신 있는 말을 할 자격이 없습니다.

 

문: 그렇더라도 혹은 역사나 문학을 통하여, 혹은 신문을 통하여 상식적으로 영·미인의 장점·단점에 대하여서 생각해보신 일이 있을 것이니 그것을 말씀해보시오. 현재 세계에서 영·미인이 가장 우월한 지위를 차지하고 있으니 그것이 우연일 리가 없소. 반드시 우월한 지위를 차지할 우월한 국민성과 우월한 수양과 노력이 있기 때문이라고 생각합니다. 왜 그런고 하니 세상만사, 우주의 모든 현상은 다 정확한 인과 관계의 지배를 받는 것이므로, 영·미인이 탁월한 지위를 가진 것이나, 우리 민족이 빈천한 처지에 있는 것이나, 다 인과 관계지 결코 우연이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잘사는 남과 못사는 우리를 비교하면, 우리의 진로가 분명해지리라고 생각합니다. 甲군은 어떻게 생각하시오?

답: 나도 그렇다고 생각합니다. 모든 것이 다 인과요, 우연이 아니라는 말씀은 더욱 진리라고 생각합니다.

 

문: 우리 동포들이 인과를 믿나요?

답: 자연계의 인과는 안 믿는 사람이 없으면서도, 사람 일의 인과는 잘 믿지 않는 것 같습니다.

 

문: 무엇을 보고 그렇게 말하시오?

답: 가령, 벼를 심으면 벼를 거두고, 또 거름을 준 벼는 안 준 벼보다 많이 나고, 김을 세 벌을 맨 논은 두 벌을 맨 데보다 소출이 많다는 것은 누구나 알면서도 남은 잘사는데 저는 못사는 것 같은 것을, 그러한 원인에서 오는 필연적인 결과라고 생각하지 아니하고, 운수니 요행이니 하여 남이 잘된 것은 요행, 제가 못 된 것은 운이 좋지 못한 것이라고 생각하니, 이것이 인과를 무시하는 생각입니다.

 

문: 나도 동감이오. 인과를 안 믿는 사람의 특색이 무엇인가요?

답: 인과(因果)를 안 믿는 사람의 특색은 첫째로, 제가 당하는 일의 책임이 제게 있다고 아니 하고 혹은 하늘에, 혹은 세상에 원망을 돌리는 것이오.

 

문: 인과를 믿는 사람의 특색은 어떠한가요?

답: 제가 받는 것은 다 제가 지은 일의 필연적인 대가요 갚음이라고 알기 때문에, 제게 불행이 있을 때에는 제 마음과 제 행실을 반성하고 검토하여서, 지금 받는 불행의 원인이 어디 있는가를 알아내어서, 그것을 고치거나 제거하기를 힘쓰는 것입니다.

 

문: 인과를 믿으면 숙명론자(宿命論者)가 되지 않겠소? 모든 것이 다 팔자요 운명이라 하여서 그만 단념하고 낙심해버리지 아니할까요? 만일 전 국민이 다 그런 생각을 가진다면 큰일인데...

답: 인과를 믿는 사람은 현재 받는 불행에 대하여서는 제 책임으로 알기 때문에 불원천 불우인(不怨天 不尤人)하고 단념하지마는, 장래에 대하여서는 자신 있는 희망을 가지기 때문에 결코 낙심하는 일이 없습니다. 왜 그러냐 하면, 장래를 만드는 것이 내가 하는 일이니까, 내가 지금부터 짓는 원인이 장래의 결과를 결정할 것이니까, 인과를 안 믿는 사람이 도리어 자포자기하고, 하늘과 사람을 원망하여서 바란다면 요행만을 바라니, 자신도 희망도 없다고 생각합니다.

 

문: 흥사단은 인과를 믿는다고 보시오, 안 믿는다고 보시오?

답: 흥사단은 인과의 원리 위에 섰다고 봅니다.

 

문: 어찌해서?

답: 우리가 4대 정신으로 3대 수련을 하여서, 저마다 건전한 인격을 이루고 또 일심으로 화합하여서 신성한 단결을 이루면, 필연적으로 민족 전도의 대업이 실현될 것을 믿으므로.

 

문: 우리 민족의 전도에 대하여서는 불안이나 의심이 없소?

답: 없습니다. 우리가 내가 하기만 하면 우리 민족은 반드시 잘살게 되지, 잘 못살게 될 수는 없다고 생각해요. 천지간에 인과의 이법(理法)이 있는 동안 우리의 희망과 신념은 변동할 리도, 실패할 리도 없다고 믿습니다.

 

문: 꼭 그렇게 믿으시오?

답: 조금도 의심이 없습니다.

 

문: 이제 아까 문제로 돌아갑시다. 영·미인과 우리의 차이가 무엇이라고 생각하시오?

답: 이제 대답할 수 있습니다. 영·미인은 인과를 믿는데 우리는 그것을 안 믿고, 영·미인은 저 스스로가 제 생활과 제 나라의 주인이라고 믿습니다. 따라서 자신을 책임자로 자처하는데 우리는 제 생활의 행(幸)·불행도, 국가의 흥망도 저는 말고 다른 누가 주인이요, 책임자인 것같이 생각하고 있습니다. 이것이 근본적 차이인 것 같습니다.”

 

문: 옳소, 꼭 그대로요. 민주주의란 것은 백성 저마다가 그 나라의 주인이란 말이오. 가령 어떤 집이 하나 있고, 그 집에 주인도 있고 나그네나 고용인이 있다고 하면, 그들에게 주는 차이가 있을까요?

답: 주인은 그 집이 제 집이므로 그것을 사랑하고 아끼고 언제나 그것을 생각하고, 그것을 잘 되게 하기 위하여 힘쓸 것이지만, 나그네나 고용인은 그것이 제 집이 아니기 때문에 제가 편안할 것만 생각하지, 그 집 생각은 안 할 것입니다.

 

문: 우리 2,000만 민족에는 우리나라의 주인으로 자처하는 이가 많은가요? 나그네나 고용인으로 자처하는 이가 많은가요?

답: 제 집을 아끼고 사랑하듯이 제 나라를 아끼고 사랑하고, 제 집이 잘되기 위하여 힘 드는 줄 모르고 일하듯이, 제 나라를 위하여서 정성과 힘을 다하는 사람이 주인이라면, 우리 민족 중에는 주인이 극히 적다고 생각합니다.

 

문: 이완용은 삼천리강토를 제 집으로 생각하고 2,000만 민족과 그 천만대 후손을 제 식구로 생각하였을까요? 이완용은 제가 한국의 주인이라고 생각하였을까요?

답: 제가 주인이라고 생각하였던들, 이완용은 결코 합병조약에 도장을 찍지 않았을 것입니다. 만일 일본 사람이 이완용의 집과 논밭과 자녀를 일본사람에게 바치는 도장을 찍으라 하였다면, 아마 그는 죽어도 안 찍었을 것입니다. 그는 “아마 그의 황제의 나라 또 2,000만 민족의 나라를 팔아서, 제 집 하나만은 잘살 수 있으리라고 착각하였기 때문에, 합병조약에 도장을 찍었다고 생각합니다. 마치 고용인이 주인집 재산을 팔아서 제 재산을 만드는 심리와 같았으리라고 생각합니다.

 

문: 우리나라에는 나라를 팔아먹을 사람이 이완용하나뿐일까요?

답: 나라를 제 것으로 알고, 제가 나라의 주인으로 알지 아니하는 사람은 누구나 이완용이와 같은 모양으로 나라를 팔아먹을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문: 이완용이 한번 나라를 팔아먹은 뒤에는, 다시 나라를 파는 사람이 없나요, 아직도 있나요?

답: 작은 규모로 나라를 팔아먹는 일은 날마다 수없이 있다고 생각합니다.

 

문: 예를 들면 어떤 일이오?

답: 상해 거리에서 중국사람 인력거꾼에게 찻값을 적게 주어, 우리나라 사람을 원망케 하는 것도 매국적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는 우리 민족 전체를 미워할 것입니다.

 

문: 흥사단 운동이 필요하다는 것에 대하여서는 우리들의 의견이 일치되었소. 이 운동은 언제까지나 계속할 필요가 있다고 생각하시오?

답: 광복대업(光復大業)이 이루어지기까지라고 생각합니다.

 

문: 독립이 된 뒤에는 흥사단이 필요 없을까요?

답: 독립이 된 뒤에는 민족의 정도를 더욱더 높여서, 언제나 국가의 영광을 유지하여 가기 위하여서는 이러한 운동이 영구히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문: 흥사단은 정권 잡기를 목적으로 삼는다고 생각하시오?

답: 흥사단은 정권과는 상관이 없다고 생각합니다. 언제까지나 수양 단체로 있어야 된다고 생각합니다.

 

문: 흥사단이 정권을 잡으면 더욱 흥사단주의를 행하기가 편하고 유력하지 아니할까요?

답: 흥사단주의로 수양한 사람들이 정권을 잡는 것은 좋으나, 흥사단 자체가 정권을 잡으면 흥사단에 대하여 적(敵)이 생기리라고 생각합니다.

 

문: 흥사단이 힘이 커져 모든 적을 다 눌러버리면 좋지 않을까요?

답: 그렇게 되면 흥사단은 정쟁(政爭)하는 단체가 되어서 수양 단체의 본색을 잃어버릴 것입니다.

 

문: 흥사단이 수양 단체의 본색을 잃어버리면 어찌 해서 안 될까요?

답: 국민을 수양하는 것이 국민의 생명이요, 정치보다도 수양이 근본이 됩니다.

 

문: 옳은 말씀이오. 정치에는 소장(消長)이 있지마는 수양에는 소장이 있어서는 안 되겠소. 그러므로 흥사단은 영원히 수양 단체로 갈 것이라고 우리는 믿는데, 甲군의 의견은 어떠시오?

답: 나도 동감입니다.

 

문: 흥사단의 사업은 무엇이오?

답: 흥사단 자체를 영원히 유지하는 것이 최대의 사업이오. 그러고는 약법에 있는 대로 강습소·강연회·서적 출판부·도서 종람소·간이 박물원·체육장·구락부·학교 등입니다.

 

문: 이러한 사업은 왜 필요할까요?

답: 전 민족에게 덕·체·지 3육을 수양할 기회를 주기 위하여서 필요합니다.

 

문: 이런 사업은 몇 군데나 시설하였으면 좋겠소?

답: 도서 출판 같은 것은 중앙에 한 곳이면 그만이겠지마는 기타의 것은 많아야겠습니다.

 

문: 많으면 얼마나 많아야 하겠소?

답: 많을수록 좋지요.

 

문: 한 고을에 하나씩이면 좋겠소?

답: (놀란다.)

 

문: 한 면에 하나씩 강습소·강연회장·도서 종람소·간이 박물원·체육장·구락부·학교가 있으면 충분할까요?

답: (더욱 놀라면서) 나는 그렇게 많게는 생각하지 못하였습니다.

 

문: 한 동리에 하나씩 이러한 시설이 있어야 하지 않겠소? 그래야 우리 동포 전부가 남자나 여자나 다 문명한 백성이 되지 않겠소?

답: 그렇겠습니다. 그렇지마는 그것은 하도 엄청나서...

 

문: 동리마다 이러한 시설이 없이 우리 민족이 세계에 일등 가는 문명한 민족이 될 수 있을까요?

답: 말씀을 듣고 보니 그만한 시설은 동리마다 있고서야 최고 문화를 가진 민족이 되겠습니다. 그러나 나는 약법을 읽을 때에 이 8대 사업이란 것이 그처럼 중요하고 대규모인 줄은 몰랐었습니다.

 

문: 우리나라에 동리가 몇이나 될까요?

답: 219군, 약 2500면, 매 면마다 10개 부락으로 쳐서 약 2만 5000부락, 그 밖에 수백의 도시가 있습니다.

 

문: (고개를 끄덕끄덕한다.)

답: (혼잣말 모양으로) 회관(會館)이 2만 5000, 도서관이 2만 5000, 박물관·체육장이 2만 5000…….

 

문: 이런 사업을 하자면 사람이 얼마나 들까요?

답: 수만 명 들겠습니다.

 

문: 돈은 얼마나 들겠소?

답: 수억만 원 들겠습니다.

 

문: 흥사단이 할 사업도 작지 아니합니까?

답: 한량이 없이 큽니다.

 

문: 甲군은 이런 사업을 다하기로 결심하시오?

답: 결심합니다.

 

문: 甲군은 이 사업을 위하여 무엇을 바치겠소?

답: 전 생명과 전 재산을 다 바치겠습니다.

 

이상으로 흥사단 단우의 입단을 위한 목적과 사업에 관한 문답이 끝났다.

 

편집 : 박효삼 부에디터

김태평 주주통신원  tpkkim@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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