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나라엔 왜 대표 술, 국주(國酒)가 없을까. 프랑스 와인, 독일 맥주, 영국 위스키, 일본 사께처럼 세계 명주가 없다. 박목월 시인이 '술 익는 마을마다 타는 저녁노을(나그네)', 조지훈 시인이 '술 익는 강마을의 저녁노을이여(완화삼)'라 했듯이 예로부터 전국 어디서나 집에서 제조한다는 뜻의 '가양주'를 빚어 마셨다. 대갓집 종부 대대로 전해오던 명주도 즐비했고 명절 손님맞이, 제사를 위한 술도 많았다. 그러나 일제강점기 조세수탈의 수단으로 면허제가 시행되면서 한반도에서 우리 술이 자취를 감췄다. 수천 년 이어오던 술이 일본식 누룩인 입국으로 대체되면서 저급한 서민주로 전락, 씨가 마르고 말았다. 급기야 쌀을 미세 도정해 만든 사케 상표의 '정종' 이 가장 고급술로 둔갑했다. 지금도 명절 차례용으로 정종을 준비하는 어르신들이 있을 정도다. 해방 이후~1988년 서울올림픽 때까지도 쌀로 술을 만들면 양곡관리법 위반으로 적발됐다. 쌀로 못 만들게 하니 수입밀가루 술이 쏟아져 나왔다. 막걸리가 일제강점기에 이어 또 한 번 무국적 술로 전락하게 된 계기다.

우리 술의 우수성은 물도, 쌀도 아닌 누룩에서 찾는다. 우리 누룩은 다른 나라 그것에 비해 결코 뒤지지 않는다. 누룩 속 미생물에는 항암, 항비만, 미백 등 건강나노 성분이 풍부하다. 농산물을 배합해 다양한 모양의 누룩으로 띄워 만든 우리 술은 풍부한 풍미와 맛이 난다. 누룩과 쌀이 섞여 100여 종의 미생물과 다투고 화합하면서 절묘한 화합물의 향연을 이끌어내는 발효주야말로 백약지장(百藥之長) 건강 술이다.

▲ 전통 누룩(출처: 경향신문 2009.10.28 '500년 전통의 산성막걸리 마을')

필자는 전남대학교 공대에서 미생물공학을 가르치고 있다. 그 인연으로 연구ㆍ특허를 낸 뒤 '교수창업 벤처기업' 형태로 장성에서 5년 째 막걸리 '사미인주'를 빚고 있다. '청산녹수' 양조장을 운영하면서 우리 전통주가 얼마나 외면 받고 저평가 되는지 뼈저리게 체험했다. 이제는 우리 전통주의 전통성 회복과 대표 술로 격상시켜야 할 때가 됐다. 물론 수입쌀과 일본식 누룩인 입국, 또는 프랑스 국적의 효모와 버무리면 술은 빚어진다. 하지만 그렇게 만든 술을 어찌 신토불이 우리 술이라 할 수 있겠는가. 일본 사케가 동남아 수입쌀로, 프랑스 보르도 와인이 남미 수입포도로 빚었다면 세계 명주가 될 수없는 것과 같다.

▲ 사미인주

우리 술 연간 생산액이 얼마인지 아는가. 대략 5000억 내외다. 반면 미국 캘리포니아 나파밸리 와인산업의 부가가치는 13조원이 넘는다. 독일은 전통주를 주제로 하는 '옥토페스트 축제'에 정부 차원에서 지원을 아끼지 않는다. 각국이 고부가가치 생산을 위해 심혈을 기울이고 있는 것으로 볼 때, 향후 우리 술의 나아갈 방향이 어딘 지 짐작케 하는 대목이다. 영세 주조장과 주먹구구식 유통 소비 질서로는 전통주 앞날을 기대할 수 없다.

이제부터라도 잊히고 사라진 우리 토속명주를 복원하고 기록, 전파하는 일에 나서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전남에 전통주를 연구ㆍ개발하고 소비문화 확산을 총괄하는 우리술 종합지원기관인 '호남전통주산업진흥원'설립을 서둘러야 한다.

이를 바탕으로 우리 농산물과 우리 누룩으로 막걸리, 약주, 증류소주를 빚어 전국 대표술, 세계 명주로 개발해야 한다. ‘아시아문화전당’을 찾은 외국 관광객들이 스테이크와 맥주로 저녁을 먹고 외국체인 호텔에서 숙박을 한 뒤 떠났다면 이걸 진정한 문화관광 사업이라 자랑할 수 있을까. 우리 쌀을 생산해 가공, 유통, 수출로 이어지는 고부가가치 식품산업을 육성해 문화관광사업과 연계하는 융복합 6차 산업으로 발전시켜야 한다. 전남 대표 전통술연구기관 설립을 촉구하는 이유다.

김진만 전남대 전통양조과학기술연구소장 (2014. 09. 16. 전남일보에 게재된 글임)

편집 : 박효삼 부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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