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집자 주] 이 글은 지난 2015년 10월 31일부터 11월 11일까지 12일간 진행되었던 <그리스 터키 문화기행-유럽 문명의 뿌리를 찾아서>의 동행 강사 강응천선생의 답사기를 편집한 것이다.

2015년 11월 7일 (토)

시지포스

오늘날 코린토스 시는 펠로폰네소스 반도의 동북단, 코린토스 만을 바라보는 해안에 있다. 그러나 성서에 ‘고린도’로 나오는 옛 코린토스(Αρχαία Κόρινθος)는 이곳이 아니다. 일찍이 무역과 상공업으로 번영했던 코린토스는 1858년 지진으로 파괴돼 북동쪽 3킬로미터 떨어진 현 지점에 신도시를 건설한 것이다.

성서에서 고린도는 소돔과 고모라에 비견되는 환락의 도시였다. 상업이 발달하면서 온갖 성매매도 발달했다. 음화와 성적 행위를 묘사한 석상, 성인 용품이 넘쳐나는 도시였고 미의 여신 아프로디테가 음란 코드로 인기를 끌던 도시였다. 그러나 정작 코린토스에 가장 크고 깊은 자취를 남긴 것은 아프로디테 여신이 아니라 인간 시지포스였다.

호메로스는 코린토스 왕 시지포스가 '인간 중에서 가장 현명하고 신중한 사람'이었다고 전한다. 반면 신들에게는 엿듣기 좋아하고 입이 싸고 교활하며 신들을 우습게 여긴다는 이유로 미움을 받았다고 한다.

어느 날 시지포스는 제우스가 독수리로 둔갑해 요정 아이기나를 납치해 가는 현장을 목격했다. 시지포스는 잠시 궁리한 끝에 아이기나의 아버지인 강의 신 아소포스를 찾아갔다. 그리고 자신의 부탁을 들어 주면 딸이 있는 곳을 가르쳐 주겠다고 했다. 그의 부탁은 물이 귀한 코린토스의 산에 마르지 않는 샘을 만들어 달라는 것이었다. 아소포스는 그 부탁을 들어 주고 딸을 제우스의 손에서 구출할 수 있었다.

분노한 제우스는 시지포스를 하데스가 다스리는 지옥에 처넣었다. 하데스는 시지포스에게 지옥에 있는 높은 바위산의 기슭에 있는 큰 바위를 산꼭대기까지 밀어 올리라고 했다. 시지포스가 온 힘을 다해 바위를 밀어 올리자마자 그 바위는 밑으로 굴러 떨어졌다. 그러면 시지포스는 다시 바위를 밀어 올리고, 굴러 떨어지면 다시 밀어 올리는 일을 무한히 반복할 수밖에 없었다.

지금도 코린토스 유적에는 시커먼 바위산이 우뚝 서 있다. 그 산은 시지포스가 물길을 만들려 했던 현실의 산이기도 하고, 그가 바위를 끌어올리고 있는 신화 속의 산이기도 하다.

로자 룩셈부르크는 시지포스를 자본의 굴레에 갇힌 노동자의 상징으로 보고 반복의 사이클을 깨뜨려야 한다고 주장했다. 알베르 카뮈는 시지포스의 반복 노동을 인간 실존의 상징으로 보고 패배할 줄 알면서도 도전하는 시지포스를 승자로 찬양했다. 요즘 동력이 꺼져 가는 세계 자본주의를 보면, 인류는 착취든 실존이든 반복 노동조차 더 이상 허용되지 않는 지점까지 내몰린 것 같다.

피레우스 항

코린토스에서 에기나 만 연안을 따라 80킬로미터를 동진하면 아테네가 나오는데, 중간쯤 가다 보면 오른쪽으로 살라미스 섬이 보인다. 기원전 480년 제2차 페르시아 전쟁 당시 테르모필레에서 스파르타의 결사대를 전멸시키고 내려온 페르시아 대군이 수장된 곳이다. 그리스 역사의 가장 영광스러운 기억 가운데 하나가 이 섬과 이 바다에 깃들어 있다.

고대에 페르시아가 접수하지 못한 이 바다를 21세기 들어 중국이 접수했다. 살라미스 섬과 마주보고 있는 그리스 최대 무역항 피레우스 항의 관리권을 중국원양운수 그룹이 인수했기 때문이다. 그리스는 경제난 때문에 이곳을 중국에 넘기기로 했다가 급진좌파연합이 집권하자 매각을 중단했었다. 그러나 유로존의 3차 구제금융을 받으면서 다시 국가 기간산업의 민영화를 약속했고, 끝내 67%의 지분을 중국원양운수에 넘긴 것이다.

중국이 피레우스 항에 눈독을 들인 것은 이곳이 인도양과 아라비아 해를 거쳐 온 무역선이 정박하는 주요 항구로, 일대일로 사업의 핵심 거점이기 때문이다. 피레우스 항을 차지하면 지중해를 차지하는 셈이다. 2500년 전 이곳을 공략하는 데 실패했던 페르시아의 후예 이란은 시진핑을 영접하느라 전투기 6대를 띄워 호위하는 과잉 친절을 베풀기도 했다. 유라시아 개발에 나선 중국의 경제 지원을 기대하기 때문이다.

누군가 코린토스 운하를 확장한다면 그것은 중국일 수밖에 없다는 말도 그래서 나올 수 있다. 그렇게 하면 피레우스 항을 떠난 배가 펠로폰네노스 반도를 우회하지 않고 이탈리아까지 빠르게 도달할 수 있을 것이기 때문이다.

중국의 서방 진출로 그리스에 와 있는 중국인만 해도 10만 명에 이르고 그들에게는 각종 혜택도 주어지는 모양이다. 앞으로 그리스에서 대접 받으려면 중국어 좀 배워서 중국인 행세를 해야 하려나.

아크로폴리스 박물관

아테네에 들어선 것은 오후 3시경이었다. 중심가인 신타그마 광장을 지나 아크로폴리스 박물관으로 갔다. 3시가 갓 넘었는데 번화가라는 신타그마 광장 주변에도 문 닫은 가게들이 많았다. 워낙 3시까지만 일하던 것이 습관이 돼서 정부가 경기 좀 부양하려고 연장 영업을 하라고 권장하지만 따르지 않는다고 한다.

이런 모습을 두고 국내 언론은 피상적 취재를 통해 ‘복지 망국’이라고 요란을 떨었다. 그러나 그리스인이 내는 세금을 보면 이 나라의 복지가 지나치다는 소리를 하지 못한다. 그리스의 문제는 복지가 아니라 집단이기주의라고 보는 게 맞다. 스웨덴은 강력한 노동조합이 사회 전체를 시야에 넣고 균형 잡힌 복지를 추진한 반면, 그리스의 각종 이익단체는 근시안적으로 각자의 복지 확대만 추구해 경제의 불균형을 초래했다는 것이다.

아크로폴리스 박물관은 1874년부터 아크로폴리스 위에 자리 잡고 있었다. 그러다가 영국이 가져간 파르테논 신전의 대리석들이 돌아오고 새로운 발굴이 이루어지면서 새 박물관의 필요성이 제기되었다. 여러 차례 시도 끝에 2009년 6월 20일 아크로폴리스 남쪽의 현 위치에 세계적인 명성을 누리는 박물관이 들어서게 되었다. 이 자리도 발굴이 이루어지는 곳이기 때문에 바닥을 유리로 하는 등 만전을 기해 유물의 보전과 전시에서 높은 평가를 받고 있다. 4000여 평의 면적에 약 4000점의 유물을 소장하고 있다.

박물관을 나와 1896년 첫 번째 근대 올림픽이 열렸던 판아테네 스타디움 (Παναθηναϊκό στάδιο)에 들렀다. 내일 열리는 아테네 클래식 마라톤 대회 준비가 거의 다 끝난 상태였다. 1만 5000명이 참가해 마라톤에서 아테네까지 달리는 이 대회는 1972년부터 해마다 거행되어 온 아테네의 대표 축제이다.

내일 마라톤 가는 길이 붐빌 것을 예상해 코스 조정을 하고, 한국 식당에서 저녁을 먹은 뒤 디바니 카라벨 호텔에 여장을 풀었다. 칼람파카에 있던 디바니 메테오라의 자매 호텔이다.

<계속>

글/사진 강응천 역사저술가 및 출판기획자, 인문기획집단 문사철 대표

편집 : 박효삼 부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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