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집자 주] 이 글은 지난 2015년 10월 31일부터 11월 11일까지 12일간 진행되었던 <그리스 터키 문화기행-유럽 문명의 뿌리를 찾아서>의 동행 강사 강응천선생의 답사기를 편집한 것이다.

2015년 11월 8일 (일)

수니온 곶 (Aκρωτήριο Σούνιο)

▲ 수니온 곶은 시인 호메로스가 '포도주색바다'라며 격찬을 아끼지 않았던 곳이다. 발칸반도의 최남단이며 에게해를 감상할 수 있다.

마라톤으로 가는 길과 반대쪽인 해안 도로를 택해 아티카 반도 남단에 있는 수니온 곶으로 향했다. 아테네에서 차로 한 시간 거리인 이곳은 아테네 시민의 여름 휴양지로 유명하다. 곳곳에 별장과 콘도가 들어서 있고 한화로 20억 원을 호가하는 고급 주택들도 있다고 한다. 11월인데도 춥지 않아 도중에 알몸으로 해수욕을 즐기고 있는 노인들을 볼 수 있었다.

그리스 신화에 등장하는 아테네 왕 아이게우스는 어느 날 수니온 곶에 서서 하염없이 바다를 바라보고 있었다. 당시 아테네는 바다 멀리 크레타 왕국에 주기적으로 젊은 남녀를 바쳐야 했다. 크레타 왕비 파시파에는 아름다운 황소와 수간(獸姦)을 저질러 머리는 소, 몸통은 인간인 괴물 미노타우로스를 낳았다. 크레타로 끌려가는 남녀는 동굴 속 미로에 갇힌 미노타우로스의 제물이었다. 아이게우스의 용감한 아들 테세우스는 괴물을 처치하겠다며 인질 일행에 끼었다.

아이게우스는 아들에게 이르기를 괴물을 처단하고 살아서 돌아오게 되면 꼭 배에 흰 돛을 달라고 했다. 그리고는 곶에 나와 이제나 저제나 아들 실은 배가 돌아오기만 기다리고 있었던 것이다. 이윽고 수평선에 배가 나타났다. 그러나 배에서 나부끼는 것은 검은색 돛이었다. 아이게우스는 아들이 죽었다는 생각에 비탄에 잠겨 푸른 바다에 몸을 던졌다. 그 후 이 바다는 아이게우스의 이름을 따 에게 해가 되었다. 그러나 정작 테세우스는 죽은 것이 아니라 돛을 바꿔 다는 것을 깜빡했을 뿐이었다.

그리스 신화에서 바다의 신은 포세이돈이다. 수니온 곶에는 그리스에서 가장 유명한 포세이돈 신전이 세워져 있다. 기원전 5세기에 창건된 이 신전은 34개의 도리아식 기둥이 떠받치고 있는 60미터 높이의 거대한 직사각형 건물이었다. 아테네 아고라에 잘 남아 있는 헤파이스토스 신전과 비슷한 모양으로 보아 같은 장인이 지었을 것으로 보인다. 지금은 15개의 기둥만 남아 있지만 에게 해를 호령하는 위용은 어디 가지 않았다. 한 기둥의 아랫부분에는 영국 시인 바이런의 이름도 새겨져 있는데, 그가 직접 새긴 것인지는 알 수 없다.

마라톤(Μαραθών)

▲ 마라톤 평원

수니온 곶에서 북상하다가 호반 레스토랑에서 피자를 먹고 마라톤 평원에 도착한 것은 오후 2시 반경이었다. 마라톤은 회향 풀을 가리키던 말이라서 이 지역이 회향 풀 산지였다는 것을 알려준다.

이 도시에 불후의 명성을 안겨준 마라톤 전투는 기원전 490년 제1차 페르시아 전쟁의 운명을 결정한 일전이었다. 페르시아군이 쳐들어오자 아테네는 스파르타에 페이디피데스를 보내 지원군을 요청했다. 그러나 스파르타는 7, 8일이 흘러 보름달이 떠야 출진할 수 있다는 규정에 따라 난색을 표했다. 아테네는 홀로 제국의 원정군을 막아낼 수밖에 없었다.

수적 열세였던 아테네군은 가운데에 약한 보병을 배치하고 좌우 날개에 최정예군을 배치하는 진을 짰다. 전투가 시작되자 페르시아군은 거침없이 아테네군의 중앙을 격파해 들어왔으나, 그 결과 좌우로부터 협공을 당하는 신세가 되었다. 아테네의 정예군은 사생결단의 공격을 펼쳐 페르시아군 6000여 명을 죽이고 승리했다.

마라톤의 협공 작전은 아테네에서 막 꽃피고 있던 민주주의의 주역인 평민에 의해 수행되었다. 국가의 주인으로 올라선 평민들은 스스로 갑옷과 장창을 구입해 나라를 지키러 나섰다. 그들에게 국가는 곧 자신이었고 목숨 바쳐 지킬 만한 가치가 있는 대상이었다. 이것은 오늘날 한국의 혜택을 가장 많이 받으면서도 온갖 구실로 병역을 회피하는 상류층의 행태와 대조된다. 반면 ‘헬조선’의 막장 경쟁에 뛰어드는 것을 잠시 미루고 입대를 위해 줄지어 선 대다수 젊은이들에게 이 나라는 과연 어떤 조국일까?

마라톤 전투에서 목숨을 잃은 아테네 병사 192명의 무덤은 오늘날의 민초들에게 이렇게 말하는 것 같다. “당신은 애국자인가? 잘 모르겠다면 먼저 나라를 당신 것으로 만들어라. 목숨을 바쳐 지킬 만한 대상으로 만들어라. 그러면 당신은 애국자가 될 수밖에 없다. 그것이 바로 민주주의다.”

당시 승전보를 전하기 위해 아테네까지 뛰어갔다는 병사를 기리는 것이 오늘날 올림픽의 꽃으로 불리는 마라톤이다. 그러나 이는 헤로도토스의 <역사>에 나오는 페이디피데스 이야기가 후세에 와전된 결과로 보인다. 즉 페이디피데스가 전투 전에 스파르타까지 뛰어간 것을 후대 시인들이 전투 뒤 아테네까지 뛰어간 것으로 바꿔 놓았다는 것이다. 이 와전이 아니었더라면 마라톤 경기의 길이는 42.195킬로미터의 몇 배로 늘어날 뻔했다. 아테네부터 스파르타까지는 200킬로미터가 훌쩍 넘어가니 말이다.

아테네 클래식 마라톤

우리는 마라톤부터 아테네까지 뛰는 대신 차를 타고 가서 오늘 대회의 결승점인 근대 올림픽 경기장(판아테네 스타디움)으로 갔다. 오후 다섯 시가 넘어 마라톤 대회는 이미 끝나고 수많은 사람이 목에 메달을 걸고 경기장을 빠져나가거나 기념사진을 찍고 있었다. 어떤 이는 완주 메달을, 어떤 이는 반주 메달을, 또 어떤 이는 단순 참가 메달을 달았지만 모두 환하게 웃고 있었다. 마라톤의 발원지에서 달려 본 기분을 무엇과 바꿀 수 있을까?

마라톤 동호회라면 어느 나라 못지않게 많은 한국에서도 적잖은 사람들이 참가했다. 어떤 이는 일곱 번째 온다고 했고, 어떤 이는 유럽의 유수 마라톤 대회는 다 돈다고도 했다. 중국인, 일본인, 미국인, 독일인, 프랑스인…… 없는 나라가 없다. 아니, 한 나라는 없겠군. 이란!

한국인이 운영하는 선물 가게에 들렀다가 어제처럼 한식을 하고 같은 호텔에 들었다.

<계속>

글/사진 강응천 역사저술가 및 출판기획자, 인문기획집단 문사철 대표

편집 : 박효삼 부에디터

한겨레테마여행  themetour@hani.co.kr

한겨레신문 주주 되기
한겨레:온 필진 되기
한겨레:온에 기사 올리는 요령

관련기사 전체보기
저작권자 © 한겨레:온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