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완도’ 하면 무엇이 먼저 생각날까? 예전에는 미역, 다시마, 전복이었다. 지금은? 마광남선생님이다. 마광남선생님은 한겨레 주주통신원이다. 마선생님은 한겨레:온에 완도에 관한 많은 글을 올려주시고, 주주통신원 카페에는 완도의 다양한 모습을 거의 매일 사진으로 올려주신다. 이런 글을 보면 있노라면 마선생님의 완도에 대한 자부심과 사랑이 저절로 느껴진다. 마치 귀한 자식을 대하는 모습이랄까?

마광남선생님의 완도에 대한 화수분 같은 애정이 부럽다. 나는 그런 고향이 없기 때문이다. 월남한 실향민 대부분이 그렇듯, 아버지는 정착이 늦어져 결혼도 늦었지만 결혼 후 6년 만에야 한곳에 정착했다. 그래 나는 부산에서 태어나 잠시 살다가 서울로 이사와 4세까지 살았다. 인천으로 가서 16년을 살다가 다시 서울이나 서울근처에서 여태 살고 있다. 굳이 고향이라고 한다면 성장기를 보낸 인천인데 이상하게도 인천에 애정이 없다. 내가 살던 곳이 흔적도 없이 사라지고 어마어마한 번화가로 바뀌어버려 그럴까? 나는 인천교대부속초등학교를 나왔다. 뺑뺑이로 인화여자중학교, 또 뺑뺑이로 인천여고를 졸업했다. 그런데 학교에 대한 애정도 없다. 초등학교는 아주 영리한 남학생들의 집단 괴롭힘에 홀로 투쟁하던 시절이었고, 중학교는 백인협의 군대식 교육을 받던 굴욕의 시절이었고, 고등학교는 권위와 불의에 저항하다 선생님과 대결이 벌어져 정학까지 갈 뻔했던 도전의 시절이었다. 초등학교부터 학교를 수차례 그만둘까도 생각했던 나의 학창시절은 한마디로 야만의 시절이었기에 정이 없는 것일까? 물론 그 고난을 자처한 내 책임도 있기는 하지만... 

어려서부터 그런 삭막한 세상을 살아서 그럴까? 아니면 사교성과는 담을 쌓고 살아서 그럴까? 어릴 적 지내던 장소를 그리워하고, 그때 함께 했던 사람들에게 애정을 가지고 아직도 잘 어울리고 있는 사람들을 보면 부럽다. 그런 애틋한 감성이 없는 내가 때론 메마른 인간처럼 느껴진다고 하면 지나친 자학일까?

이런 나에게 마광남 선생님의 완도 사랑은 감동스럽다. 완도가 어떤 동네일까? 어떤 사람이 모여 살까? 궁금했다. 사실 여행을 짧게 간다는 것은, ‘그곳에 어떤 이들이 있다’가 아니라, ‘그곳에 뭐가 있다’만 슬쩍 보고 오는 것이라 완도의 진면목은 볼 수는 없다는 것을 알지만 짧게라도 가고 싶었다.    

제주도 색달해변의 서핑과, 협재해변의 사파이아 물빛, 그리고 여기저기 숨어있는 스노클링 해변에 목말라하는 아이들에게 마광남 선생님의 ‘웃는 섬 완도 본섬관광 (http://www.hanion.co.kr/news/articleView.html?idxno=1970 )'과 ’완도에서 가장 아름다운 섬 보길도 (http://www.hanion.co.kr/news/articleView.html?idxno=1860)‘ 글을 보여주었다. 아이 둘 다 강요 같지 않은 강요에 "네" 라는 답변.

그렇게 낯설지 않은 것 같지만 실제 낯선 초행길의 3박 4일의 완도 여행이 시작되었다.

첫날 오후 4시에 완도에 도착했다. 바로 완도수목원에 갔다. 6시까지가 관람시간이라 2시간만 보고 나와야 했다. 완도수목원에 가보니 2시간 갖고는 턱도 없었다. 하루 종일 슬슬 쉬다 걷다 해도 좋을 공간이다. 아쉽지만 2시간으로 대충 훑고 다음을 기약할 수 밖에....

▲ 수변 데크
▲ 수변 데크에서 바라본 산림전시관

군데군데 동백나무 숲이 있었다. 그 안으로 들어가면 다른 세상을 만날 것 같이 깊다는 느낌이다. 수백 년 전 이어온 동백나무의 감추어진 이야기들이 으스스하게 들릴 것만 같다.

▲ 동백나무 숲

곳곳이 이런 예쁜 꽃들 천지다

▲ 산책 중 만난 꽃들

다음날은 아이들이 원하는 해변에 가는 날이다. 숙소도 신지 명사십리 해수욕장 근처로 잡았다. 바다가 햇볕에 달궈지기 전에, 먼저 완도 본섬에 있는 명승 제3호인 정도리 구계등 몽돌해안에 갔다. 오후 1시 넘어 갔는데 우리 밖에 없었다. 구계등이란 말은 아홉 개의 몽돌계단이 만들어진다는 데서 생긴 이름인데 바닷물이 완전히 빠질 때나 그런 광경이 펼쳐질 거다. 우린 4계단 정도 밖에 볼 수 없었지만, 더 멋진 광경이 우리 넋을 빼 놓았다.

한적한 해안 멀리 바다에서는 해무가 밀려오고 있었다. 해무는 산골짜기를 타고 사람들이 사는 곳으로 넘어갔다. 맑은 하늘, 에머랄드 빛 투명한 바다, 하얗게 흘러가는 해무 그리고 크고 작은 몽돌에 부딪치는 파도소리.... 잠시 다른 세상에 온 것 같은 착각이 들었다. 식구들도 해무가 펼쳐주는 환상적인 모습에 빠져, 조용히 “아.. 좋다.” 는 감탄사만 연발. 1시간이 훌쩍 가는 줄도 몰랐다.    

 

배경이 어찌나 좋은지 아이들을 넣고 찍은 사진은 무슨 화보 사진 같다

두 번째 간 곳은 천연기념물 제428호인 완도 대문리 모감주나무군락이다. 모감주나무는 세계적인 희귀수종이다. 그 열매는 사찰에서 염주를 만드는 나무라서 '염주나무'라고도 부른다. 대문리의 모감주 나무군락은 세계에서 가장 오래되고 큰 나무들이 모인 군락으로 1km 길이에 474주가 모여 살고 있다.

▲ 모감주나무 군락

모감주나무는 7월에 꽃이 핀다. 

▲ 꽃이 활짝 핀 모감주나무

다음은 우리는 가장 싫어하지만 아이들은 가장 좋아하는 해변에 가는 일이다. 아이들을 그늘막과 함께 해변에 떨어뜨려놓고 우리는 해변 앞산으로 등산을 했다. 그 이름은 뾰쪽산. 보길도에도 뾰쪽산이 있는데.. 완도는 뾰쪽산이란 이름을 좋아하나 보다. 뾰쪽산 너머로 보이는 4km에 달하는 명사십리 해수욕장이 보인다. 남도라 그런지 물은 따뜻하고 아직 시즌이 되지 않아서 한가했다. 등산 후에 나도 남편이 끌어주는 보트를 타고 마음껏 소리 지르며 파도타기를 했다.

▲ 신리 명사십리 해수욕장 옆의 뾰쪽산
▲ 신리 명사십리 해수욕장

저녁은 마광남 선생님께서 소개해주시는 ‘남강’이란 식당에 가서 자연산 농어를 먹었다. 농어회, 물회, 한치구이, 전복, 산낙지, 멍게, 소라 등 먹어도 먹어도 끝이 나지 않았던 해물, 그리고 독특한 열무김치까지.. 마선생님 덕에 완도의 해물을 원 없이 먹었다고나 할까?

▲ 농어회 옆에 동백꽃 ^^* 무엇으로 만들었을까?

저녁 식사 후 완도 밤바다 구경을 갔다. 밤에도 바다에서 밀려오는 해무를 볼 수가 있었다. 순식간에 우리에게 다가온 해무... 신비하기도 하고 좀 무섭기도 하다. 

▲ 해무가 오기 전 완도 야경
▲ 해무가 깔린 완도야경

마광남 선생님과 기념사진도 찍었다. 해무로 가려져 세월의 자국이 옅어 보인다.

▲ 해무 속에서...마광남선생님과 함께

다음 2편에는 보길도에 다녀온 이야기를 하고자 한다.

편집 : 박효삼 부에디터

김미경 주주통신원  mkyoung60@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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