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연도 필연

2010년 11월 11일과 12일 이틀 동안 우리나라에서 ‘서울 G20 정상회의’가 열렸습니다. 당시 대한민국 정부나 언론에서는 야단법석이었지요. 아시아 최초로 서울에서 열리는 정상회의. 마치 중국이나 일본을 제치고 아시아의 맹주가 된 듯했습니다. 보도만 보면 내로라하는 세계 20여 나라의 정상들이 반만년 역사 이래로 최대의 행사에 우리나라의 자랑스러운 대통령을 알현하기 위해 줄 서서 들어오는 착각이 들 정도였지요. 

현실성 있게 우리 피부에 와 닿는 자료들도 쏟아졌습니다. 경제 유발효과라는 이름으로 정부나 관련 연구 단체들이 발표했는데, 그중에 한국무역협회에서는 450조 원에 달하는 경제효과가 기대된다고 했습니다. 일 인당 천만 원 가까이 늘어나니 국민소득도 만 불 가까이 상승한다는 계산입니다. 그래서 찾아봤습니다.

G20 정상회의를 마치고 이명박 대통령 퇴임 전 해의 국민소득을 찾아봤습니다. 2012년 23,679불 34위??? 내친김에 5년 전, 10년 전 자료를 찾았습니다. 2007년 18,938불 34위. 2002년 11,400불 49위입니다.

5년 동안 같은 34위인 걸 보면 G20 정상회의나 4대강으로 의미 있게 올라가지는 않았군요. 반대로 김대중 정부가 끝나는 2002년도에서 2007년 사이에 소득과 순위가 급격하게 올랐습니다. 자료를 알아야 진실이 보입니다.

예전 해외시장에서 한국제품은 떳떳하게 'MADE IN KOREA'를 내세우지 못했습니다. 어떻게든지 일본 제품에 묻어가려는 전략이나 아니면 소비자들에게 다른 선진국 제품으로 오인하게 해서 팔기도 했습니다. 그러다 언제부터인가 반전이 일어났습니다. 물론 모든 나라에서 그렇지는 않아도 한국제품은 좋은 제품으로 인식되었고, 화장품류는 한국 직수입이나 한국 기술제휴가 아니면 아예 시장 진입이 안 됩니다. 일부 국가의 중고차 거래시장에서는 한국어가 붙어있어야 대우를 받는다고 하니 정말 격세지감입니다.

다양한 이유가 있겠지만 저는 '한류'의 영향을 으뜸으로 꼽습니다. 수요가 있으면 공급이 따르는 것이 경제법칙입니다. 아무리 품질이 좋고 광고를 많이 하여도 구매자가 마음을 열지 않으면 거래가 안 되지요. 한류는 소비자들의 그 마음을 빼앗았습니다.

한 대만 여성이 한국 드라마에서 직장여성이 커다란 노트 시리즈를 들고 통화를 하는 모습이 너무 멋지고 능력 있어 보여서 자기도 삼성 노트를 사용한다며 스마트폰을 꺼내어 보여주더군요.

2000년대 초 낙후된 중국의 어느 작은 도시에 갔다가 여직원 컴퓨터 모니터를 보고 꽤 놀랐습니다. 화면에 전지현 얼굴이 떠 있더군요. '엽기적인 그녀'가 중국에선 '流氓的女友(건달여친)'로 번역이 되어 불법 해적판 DVD가 쫙 깔렸습니다.

일반인들에겐 생소한 한류라는 말이 어느 날 오르내리더니 마치 오래전부터 있었던 현상처럼 느껴지실 겁니다.

사실 한류라는 말이 처음 등장하게 된 시기는 2000년 이후입니다. 당시 온 국민은 IMF 구제금융 후유증과 싸우고 있었지요. 혹독한 구조조정으로 정신이 팔려있을 때 한류가 뜨겁게 퍼지고 있었습니다. 그 한류는 바로 대만에서부터 시작되었습니다.   

그 시작은 한국의 연속극입니다. 당시 거의 매달 출국하여 대만 홍콩 중국 싱가포르 말레이시아 태국 등지에 다닐 때였지요. 음주가무를 싫어하고 일찍 자는 탓에 호텔에 들어가 쉬거나 TV 채널과 씨름하곤 했습니다. 대만은 당시에도 유무선 채널이 몇십 개가 되었는데 예전과 다르게 몇 곳에서 같은 제목의 한국 연속극을 방영하고 있더군요. 다름 아닌 김수현 극본의 2000년에 한국에서 방영된 KBS 연속극 ‘불꽃‘이었습니다.

각각 다른 방송국에서 다른 회의 분량이 방영되고 있으니 여기저기서 '불꽃'이 튀어나왔습니다. 차인표, 이경영, 이영애씨 등 낯익은 얼굴이었습니다. 별생각 없이 틀어놓고 있다가 한국 탤런트의 연기와 대만 성우의 대사가 너무 잘 어울린다 생각했고, 좀 더 집중해서 들었더니 마디마디 호소력 있는 대사가 마치 좋은 소설을 읽었을 때의 감동과 흡사하더군요.

다음날 대만 친구에게 ‘불꽃’ 이야기했더니, 지금 난리라고 하더군요. 남편이 퇴근하고 집에 들어가도 아내들이 쳐다보지도 않고 연속극에 빠져 있다고! 언어의 연금술사 김수현 작가는 그 이전에도 ‘욕망의 덫’이나 ‘목욕탕집 남자들‘과 같은 많은 히트 작품을 양산한 대표적인 극작가였는데 왜 유독 ’불꽃‘이 그렇게 환영을 받느냐고 물었습니다. 예전에는 번역해서 그냥 더빙했는데 ’불꽃‘은 번역 후에 대만 유명 작가가 다시 윤문을 했다고 합니다. 중국인 정서에 맞게 거의 새로 쓰다시피 다듬었다고 하니, 한국의 언어 연금술사와 대만의 작가가 합작으로 재탄생을 시켰던 거지요.

‘불꽃’에 이어서 ‘가을동화‘가 강력한 태풍이 되어 상륙합니다. 당시 홍콩 전시장에 갔다가 전시에 참여한 대만 업체 여성들이 한국인인 나를 환호하며 모여들더군요. “송혜교의 짝이 송승헌이냐 원빈이냐?”고. 평소에는 서로 모르는 다른 직원들임에도 자기들끼리 송승헌파 원빈파로 나뉘어 이야기를 하는데, 내용을 몰라 대답을 못했습니다. 대만에서는 ’가을동화’를 ‘藍色 生死戀(남색 생사연)’으로 제목을 바꾸어 방영했습니다.

14화에서 언급한 바와 같이 대만은 전 세계 중화권의 요충지이며 뉴스의 진원지입니다. 한류가 서서히 중화권 네트워크를 통해 퍼져나가기 시작했습니다. 불을 피웠는데 후속타가 이어지지 않으면 열기가 식을 수도 있는데, 곧이어 여심을 뒤흔드는 작품이 또 등장했습니다. 2002년에 한국에서 방영된 ‘겨울연가’는 동남아뿐만 아니라 일본에도 상륙하여 ‘욘사마’ 열풍을 몰고 오지요.

대통령이나 고위직 관료들을 지도자라고 부릅니다. 중화권에서는 영도자라고 하지요. 좋은 정책이 빛을 보려면 많은 노력도 따라야 하고 시기도 잘 맞아야 됩니다.

IMF 금융위기 이후에 대통령이 된 김대중 정부에서 정보통신부를 만들어 육성하는 정책들을 내놨고 혜택도 많이 제공하였습니다. 또한 문화예술 분야에도 노력을 많이 기울였지요. 일본 문화를 개방할 때는 우리 문화가 일본에 예속될 수도 있다는 반대 여론이 많았지만, 개방과 경쟁을 통해서 한국의 예술과 문화가 더욱 단단해졌습니다. 그렇다고 한류가 김대중 정부의 업적이라고 말하기는 곤란합니다. 좋은 정책과 선견지명을 무시할 수는 없지만, 제가 꼽는 한류의 최고 공로자는 김수현 작가이며 국민 모두가 수혜자입니다.

한류로 인한 경제 유발효과는 상상 이상이며 그 어떤 것과도 비교 불가입니다.

뒤를 이어 ‘대장금’이 전파를 타면서 여성들만의 전유물이던 한국 드라마가 남녀노소 불문하고 빠져들었고, 전 중화권에서 감탄과 선망의 눈으로 한국을 바라보게 했습니다. 홍콩에서 마지막 회를 방영할 때는 홍콩 거리가 한산했다고 합니다. 2002년 월드컵 4강전처럼 귀가를 서둘렀고, 아니면 식당에 모여 대형 화면으로 ‘대장금’을 감상하였습니다. 중국 전역에서는 주제가 ‘오나라’가 줄기차게 흘러나왔습니다. 지금도 제가 사는 대만 이웃에 유치원이 있는데 매일 ‘오나라’ 주제가와 원생들의 북소리가 들립니다. 부모님들 앞에서 재롱잔치를 할 모양입니다.

대장금은 대만에서 2004년 5월 방송을 시작으로 일본 2004년 10월, 홍콩 2005년 1월, 중국 2005년 9월, 말레이시아 2004년 말, 싱가포르 2005년, 태국 2005년 10월, 미국에서는 2007년에 방영을 시작했습니다. 위 모든 국가에서 중복방영했습니다.

그 이후로도 ‘별에서 온 그대’와 최근에 방영된 ‘태양의 후예’ 역시 엄청난 반향을 일으켰지요. K-POP도 더불어 한류에 일익을 담당하였습니다. 한동안 원더걸스의 ‘노바디’는 야시장 확성기를 독점하였고, 싸이의 ‘강남스타일‘도 큰 이슈가 되었습니다. 이제 한류는 중동을 넘어 유럽으로 번지고 있습니다.

정부나 일부 언론에서 잘못되거나 의도된 정보만 제공하면 국가는 흥할 수 없습니다. 가정에서도 진실을 숨기면 결말은 파탄입니다. 

노무현 정부 당시와 이명박 정부 내내 경제가 어렵다고, 모든 원인이 노무현이라고 매도했었지요. 하지만 일인당 국민소득의 변화를 보면 특이한 점을 볼 수 있습니다. 경제발전의 최대 공로자로 각인이 된 박정희 정부 18년 동안 대만을 앞선 적이 한 번도 없습니다. 물가를 잡고 경제정책은 성공이라 평가받는 전두환 정부, 노태우 정부, 1만 불을 찍고 IMF 구제 금융을 받았다 다음 해 6천 불대로 떨어진 김영삼 정부에서도 마찬가지였습니다. 최초로 대만을 앞지른 시점은 언론이 경제에 무능력하다고 집중포화를 퍼붓던 노무현 정부 2005년부터라는 사실 믿어지십니까?

우리의 문화적 자산이자 결국 경제적 자산이 되는 ‘한류’를 더욱 아끼고 키워가야 하겠습니다!

편집 : 박효삼 부에디터

김동호 주주통신원  donghokim01@daum.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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